(제 26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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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그해도 저물어가는 섣달 어느날 아침 리윤재는 가회동에 있는 박승빈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미 서울시내의 유한층의 사교단체로 화한 계명구락부로 가기는 싫었고 그의 집으로 가는 한 아침시간이상 좋은 시간이 없었다.

대지주라는 그의 간판에 어울릴만큼 그의 집은 과연 으리으리했다. 안국동에 있는 윤치소의 백간짜리 집에 비하여 그리 손색이 없을것 같았다. 조선봉건국가 말엽의 큰 량반이였다는 그의 선대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집인 모양이다.

량쪽에 행랑을 거느린 솟을대문에 들어서니 뚝 떨어져서 중문이 있고 중문을 들어서니 조그만 운동마당만 한 앞뜰에는 온갖 정원수가운데 조그마한 련못이 있고 그 너머에 안채가 있다. 지금은 나무잎이 떨어져 앞이 훤히 보이지만 잎이 무성할 때는 안채는 앞뜰에서 보이지도 않을것이다. 안채뒤에는 또 후원이 있고 별채가 서있다. 도대체 방이 몇간이나 되는지 짐작도 할수 없다. 집은 오래되여 퇴락한감이 있으나 옛날 세도가의 집다운 위세는 아직도 남기고있다.

행랑살이하는듯 한 늙은이의 안내를 받아 안채에 들어가 박승빈이 기거하는 방에 들어가니 그는 방금 일어난듯 동저고리바람으로 개지도 않고 밀어놓은 이부자리옆에 멍청해서 앉아있다. 아직도 지난 밤의 숙취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듯 하다.

자개와 주석으로 요란하게 장식한 장농들과 아래목에 빙 둘러친 현란한 병풍과 진귀한 골동품을 층층이 얹어놓은 윤이 나는 가래나무탁자 등 온 방의 치장거리들이 부유한 생활을 시위하는것 같다.

리윤재가 자리를 잡고앉자 박승빈은 부수수한 머리를 쓸어넘기며 의아한듯 말했다.

《이게 웬일이요. 이렇게 아침 일찌기 환산이 나를 다 찾아오고.》

리윤재는 빙그레 웃었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이미 늦은 아침이라 나는 박선생이 어디 나가시지나 않았나 해서 근심하며 왔는데요.》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는가. 어제 밤에 각계 인사들이 모여 우리의 조선어학연구회 창립축하연을 베풀다나니 내 늦어 돌아와서 새벽잠이 들었던거요.》

《아, 그렇습니까. 많이 모였던가요?》

《물론이지.》

그러나 리윤재는 그 축하연이라는것이 돈 많은 박승빈이 일류급료정인 명월관에 잔치를 차리고 사람들을 청하니 공짜판을 좋아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들어 박승빈을 추어올리며 왁작 떠들어대였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때 문밖에서 《나리마님, 세면물을 들여가랍니까?》하는 소녀의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를 어쩐다? 내가 아직 소세를 못했는데.》하고 박승빈이 부수수한 머리를 긁었다.

《일 있습니까. 때아닌 때 찾아온 내가 도리여 안심찮습니다.》

《그럼 좀 실례하겠소.》 하고 박승빈이 문밖을 향하여 소리쳤다.

《들여 오너라.》

몽당치마에 버선만 신어 장딴지를 빨갛게 내놓은 열댓살 되여보이는 소녀가 방문을 살며시 열고 김이 문문 오르는 놋대야를 들고 들어왔다. 이어서 양치물을 담은 놋대접과 세면도구를 들여오고 놋요강을 대야옆에 가져다놓았다. 그래서 웃목이 마치 유기점(놋그릇, 놋수저와 같은 놋쇠로 만든 일용품을 파는 상점)처럼 차려졌다.

박승빈은 그리로 다가가서 명주저고리를 입은채 소매를 약간 걷고 고름을 어깨너머로 넘기더니 양치를 하여 요강에 뱉고 푸푸거리며 세면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세면을 다하자 기다리고 서있던 소녀가 수건을 섬겨바쳤다. 그리고 소녀는 들여왔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내가고 걸레를 들고 와서 아른아른한 장판에 흐른 물을 꼼꼼히 닦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이부자리를 차근차근 개여서 이불장에 넣고 나가버렸다.

박승빈의 생활양식의 이 한토막을 보고도 리윤재는 속으로 메스꺼움을 느끼였다.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을 부려먹으면서도 약간의 수치도 가책도 느끼지 않는 그 귀족적인 라태성과 비인간성이 리윤재에게는 혐오스럽기까지 한것이였다.

둘이 자리를 마주하고 앉자 이번에는 차를 들여왔다. 차잔에서 가물가물 오르는 김으로 인삼의 상긋한 향기가 온 방에 확 풍겼다.

박승빈은 더운 차를 훌훌 마시며 입을 열었다.

《환산이 이렇게 일부러 찾아온걸 보니 긴히 할 말이 있는것 같은데 만일 주파로서 내게 훈시를 할 생각이라면 아예 그만두는게 좋겠소. 주파와 박파가 한동아리로 된다는건 도대체 어불성설이니까.》

그리고 그는 위신을 돋구듯 축축한 코수염을 비벼올렸다.

《아니, 나는 그때문에 왔고 하고싶은 말은 기어이 해야겠습니다.》하고 리윤재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4백 수십년간의 침묵을 깨뜨리고 비로소 국문운동이 일어나 바야흐로 철자법의 통일이라는 민족적성업을 성취하려는 이때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할 사람들이 분렬되여 비방중상을 일삼고 통일을 훼방한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리롭고 그 결과는 어찌되겠습니까. 나는 이 사태를 우려하는 한 개인으로서 말하는것입니다.》

박승빈이 상기한 리윤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은근히 말했다.

《차라리 그 개인이 우리와 손잡지 않겠소? 환산이 우리한테 오면 사전편찬을 다시 시작하겠소. 연구비도 생활비도 내가 당하겠소.》

리윤재가 껄껄 웃었다.

《내가 그런 식의 권고를 한다면 박선생이 동의하시겠나요? 페일언하고 박선생과 우리의 대립이 단순히 학술상의 견해차이에서 온것이라면 론쟁을 통하여 합의를 보지 못할게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어학회안에서도 각자의 학설이 각이하여 론쟁이 끊길 날이 없지만 의견상이를 극복하는 방향에서 우리는 맞춤법통일안을 완성해가고있으며 사회계의 지지를 받고있습니다. 이것을 허황한 꿈이니, 편견적주장이니 하고 헐뜯으며 조직적분렬을 꾀하여 얻자는게 무엇입니까? 이것이 학술상론쟁, 이전의 파쟁심리에서 나온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의 의혹에 응당한 대답을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격분하여 얼굴을 붉힌 박승빈이 그동안 그나마도 점잖은 티를 내던것을 싹 가시고 기고만장하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파쟁심리라고? 내가 뭐 할 일이 없어 보잘것없는 어학회를 대상으로 파쟁을 하겠소. 어학회의 몸값이나 높여주자고? 도대체 어학회의 신철자법이라는게 어디 바로된게 하나나 있소? 그저 야야꼬시이(까다롭다는 일본말) 할뿐이지. 민중적실용성을 떠난 그런 독단으로 어학회가 히메이오아게루(비명을 지른다는 일본말)할 날이 없을것 같소? 두고보오, 내 말이 틀리나.》

성이 나서 마구 지껄이다나니 박승빈의 입에서는 버릇된 왜말마디들이 저도 모르게 튀여나왔다.

좀체 성내는 일이 없는 리윤재지만 치미는 분노를 참을수 없었다.

《우리 조선말이 무엇이 모자라서 왜말을 섞어 쓰는겁니까? 20년간이나 국문을 연구했다는 박선생으로서 창피하지 않습니까? 일찌기 선생이 <륙법전서>를 지을 때 <읽어>를 <덕거>로, <먹으니>를 <식그니>로 쓰고 이렇게 적는 법을 <계명>잡지에서 주장한것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이런 왜말의 모방이 조선말을 더럽히는짓이 아닙니까.》

《그게 어째 나쁘오? 어느 나라 말에서나 외래어를 쓰는 법이고 일본말 독법에서 좋은것은 우리가 도입해서 나쁠게 뭐요? 그만두시오. 오늘은 어학회가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비록 오늘은 세상이 다 나를 반대하더라도 50년뒤에는 내 학설이 확실한 정설로 될것이요.》 하고 박승빈이 돌아앉았다. 이 말은 박승빈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투적으로 쓰는 말이였다.

리윤재는 이미 예상했던바와 같이 이 완미한 사람과 아무리 이야기해야 소귀에 경읽기라는것을 확신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고 가겠습니다. 세종왕은 이렇게 말씀하였지요. <중심(민심)을 얻는자는 늘 안전을 보전하고 중노(민심을 거역함)를 범하는자는 늘 화패(재화와 실패)에 미치나니라.> 깊이 새겨볼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방에서 나가버렸다. 어지간히 회의실만 한 륙간대청에서 언 손을 호호 불며 마루를 닦고있는 소녀를 본 리윤재는 애처로운 마음에 소녀의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고싶었다. 이러한 부자집에 이런 불행한 소녀가 얼마나 많을것인가!

행랑채를 끼고돌아간 긴 골목길을 걸어가며 그는 곰곰히 생각했다. 박승빈이 어째서 그렇게도 집요하게 조선어학회에 대립하여나서는것인가? 그는 순진한 학자적량심에 의하여 조선어학회의 철자법을 배격한다고 했지만 리론도 아닌 리론으로 철자법의 통일을 방해하고 력사적제도를 존중하고 민중적실용성을 중시한다는 구실로 철자법을 혼란된 과거에로 오도하는것이 과연 학자적량심일가? 그가 사교단체로 화한 계명구락부를 통하여 어학자도 아닌 사람들을 자기 학설의 지지자로 만들고 가난한 고학생들에게 돈푼이나 쥐여주어 그들을 자기의 시녀처럼 만드는것은 전혀 학자다운 소행이 아니다. 야심이 남달리 강하지만 권력의 자리에는 오를수 없는 그로서 (그도 조선사람이니까) 권력에 대한 야심을 만족시키는 길을 소위 학문에서 찾으려 한것은 아닐가? 근래 민족의식의 구심점의 하나로 일어난 국문운동의 흐름을 타고 학계에 풍미해서 학파의 우두머리로 등장하여 자기의 권력욕을 만족시키려는것일지도 모른다.

박승빈이 《동상(도꼬에 간) 7인》의 우두머리로 일본에 건너가 이중교(궁성앞에 있는 다리)앞에 엎드려서 조선사람에게도 벼슬자리를 달라고 일본천황에게 애걸한 사실이 상기되자 리윤재는 박승빈의 권력욕이 단순한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박승빈을 둘러싸고있는 정체모를 인물들을 더듬어볼 때 그의 정체에 대한 의혹이 더욱 깊어지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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