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7 장

 

5

 

만주사변이 일어난 이듬해 정초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리봉창사건으로 서울장안의 여론이 물끓듯 했다.

1월 8일에 왜왕 히로히또가 괴뢰만주국 황제 부의와 함께 도꾜교외의 련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올 때 앵전문에서 대기하고있던 조선청년 리봉창이 히로히또가 탄 마차에 수류탄을 던졌던것이다. 명중시키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지만 리봉창은 피신할 생각도 하지 않고 《조선독립 만세!》삼창을 소리높이 불러 조선사람의 기개를 떨치고 태연하게 포박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리봉창사건을 대서특필해서 보도한 중국신문이 《불행하게도 명중하지 못했다.》고 써서 일본군부를 자극했고 만주를 먹은 다음 중국본토를 호시탐탐 노리고있던 일본침략군이 이것을 구실로 상해에 쳐들어갔다. 그리하여 리봉창사건은 이른바 상해사건을 유발하는 도화선으로 되여 중국천지를 뒤흔들었다.

리봉창사건에 대한 여론이 잦아들무렵인 4월 29일에 상해 홍구공원에서 왜왕의 생일인 천장절의 기념식장에 청년 윤봉길이 폭탄을 던져 다나까내각때 륙군대신을 했던 현 상해주둔군사령관 시라가와대장을 죽이고 기타 여러명의 고위급들을 살상했다. 그때 윤봉길의 나이는 스물세살이였다.

그후 리봉창도 윤봉길도 애국단원이라는것이 드러났고 그들의 의거를 조직한것이 김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오래동안 상해림시정부의 빈 집이나 지키며 구차한 생활을 해오던 김구가 만주사변이후 숨을 돌리고 침략자 왜적에게 폭탄세례를 안겨 조선사람이 왜놈에게 굴복하지 않는다는것을 시위했던것이다.

김구를 체포하려고 혈안이 된 왜놈들은 프랑스령사관에 압력을 가하는 한편 김구의 목에 6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또한 련이어 일어난 이 두 폭탄투척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우가끼총독은 조선통치의 강경화방침을 내놓았고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엄중히 보도관제하며 조선인의 신문에서 《독립》이라는 용어를 쓰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리게까지 되였다.

조선어학회에 나갔다가 저녁늦게 집에 돌아온 리윤재가 저녁상을 기다리면서 신문을 뒤적이다가 윤봉길이 일본헌병에게 호송되여 오사까에 이감되고 군법회의에 회부되게 되였다는 기사를 읽고 문득 최기봉의 생각이 떠올랐다.

(최기봉이 혹시 리봉창이나 윤봉길의 사건에 관계된게 아닐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것은 그도 그런 열혈청년으로 보았기때문이며 그가 바로 그 사건을 얼마 앞두고 국내에 잠입하여 중으로 변장하고 다니다가 그 사건이 있은 후 종적을 감추고는 전혀 소식이 없기때문이다. 그가 그 사건들에 관계하지 않았다 해도 그와 류사한 중대한 사명을 띠고 국내에 들어온것만은 틀림없다고 리윤재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야 귀국한지 거의 반년이 되도록 어머니도 만나지 않을리가 있는가. 더우기 그가 자기의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비치지 않는것이 리윤재에게 이런 생각을 더욱 굳혀주는것이였다. 그런데 그가 지금 어디 있을가? 혹시 왜경에게 잡히지 않았을가 하는 근심도 들었다. 그의 활무대인 만주로 돌아갔을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먼저의 생각을 부정도 해보았다.

이때 별안간 대문밖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최기봉군이 아닌가!) 하고 그는 자기의 생각이 지나친 기우였다는것을 깨닫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부엌문이 삐걱소리를 내고 안해가 나가는듯 하더니 잠시후에 최기봉이 방안에 들어서서 합장배례했다.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허, 최군이 아닌가. 그동안 어디에 가있었기에 꿈쩍도 안했소?》 하고 리윤재가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동안 녕변 천주사에 가있었습니다. 화계사 주지 청악대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럼 자당을 만나뵈웠겠군.》

《예, 만났습니다.》하고 최기봉이 간단히 대답했다.

《이젠 외로운 자당을 모시고 살아야 하지 않겠소.》

《지금 제 처지에서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어머니를 뵙는데도 뻐젓이 찾아가지 못하고 저희 집 대문앞에서 삿갓을 쓴채 천주사에 어느날 불공 드리러 가면 아들의 소식을 알수 있다고 아리숭하게 한마디 하고 가버렸습니다.》

《허, 그래서.》

《며칠후에 어머니가 천주사에 불공 드리러 오셨기에 아무도 없는 법당에서 만났습니다. 부처님의 령험이 그 자리에서 나타난셈입니다.》하고 최기봉이 빙그레 웃었다. 리윤재도 따라웃었다.

《그 극같은 장면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는군. 뜨르르한 독립군용사로 알고있던 아들이 념주를 손에 걸고 가사를 걸친 중으로 되여 불현듯 나타났으니 자당이 오죽이나 놀라고 서글퍼하셨겠소.》

최기봉이 웃음을 거두고 숙연히 고개를 숙이였다.

《어찌하겠습니까, 피해다니는 몸이니. 더구나 요새 리봉창, 윤봉길사건으로 신경이 바늘끝처럼 되여있는 경찰의 눈을 피하기가 조련치 않습니다.》

이 말을 듣자 리윤재는 자기의 짐작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직팡 그 사건에 관계했는가고 물으려다가 그만두고 그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에둘러 물었다.

그런데 그 물음에 대한 최기봉의 대답은 너무도 뜻밖이였다.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목숨도 청춘도 서슴없이 바친 그 렬사들의 애국충정을 본받고싶습니다만 그들처럼 개별적으로 왜놈 몇놈이나 잡는 그런 방법은 본따고싶지 않습니다.》

《그럼 군에게는 조국광복의 다른 방략이 있소?》

《제게 무슨 그런 방략이 있겠습니까. 저는 한 의인(의로운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이는 군중속에 들어가 군중에 의거하고 그들을 조직에 묶어세우는것을 모든 활동에서 좌우명으로 삼고있습니다. 그이께서 이끄는 항일무장투쟁은 바로 이 군중적지반우에서 일떠선것입니다. 공산주의자건 민족주의자건 일제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단합하여 전민항쟁을 벌려야만 강대한 왜적과 싸워이길수 있다고 그분은 가르치셨습니다.》

리윤재는 신중히 듣고있다가 물었다.

《그 의인이란분이 누구요?》

김일성장군님이십니다.》라고 최기봉이 나직이 말했다.

리윤재는 깜짝 놀랐다. 독립군 부령이였던 최기봉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데 우선 놀랐고 지금 왜경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는 사람이 왜놈이 듣기만 해도 질겁을 하는 그 이름을 자기에게 공공연히 이야기하는데 더욱 놀랐다. 그러나 지금 자기를 지그시 지켜보고있는 최기봉의 랭철해보이는 눈을 일별한 그는 요즘 항간에서 떠도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가 한낱 전설적인것이 아니며 최기봉이 그 말을 지나가는 말로 한것이 아니라는것을 느꼈다.

그는 얼결에 물었다.

《그럼 군도 공산주의자요?》

《그렇습니다. 저는 조선혁명에 관한 김일성장군님의 로선이 가장 옳다고 믿고있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생을 바칠 각오입니다.》

리윤재에게는 최기봉의 말이 너무도 뜻밖이였고 이런 말을 구태여 자기에게 하는 그의 의도도 명백치 않았다.

《그러니 군에겐 나같은 민족주의자가 상당히 고루해보이겠구먼.》

최기봉이 신중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김일성장군님은 참된 민족주의는 곧 애국주의이며 애국에 바탕을 두고있는 점에서는 진정한 공산주의도, 참된 민족주의도 공통적이며 따라서 서로 손잡고나가지 못할 조건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일생을 일관하고있는 사상이 애국애족이니 어떤 공산주의자도 선생님을 고루한 민족주의자라고 보지는 않을겁니다.

조선어학회선생님들이 지금 우리의 말과 글을 연구하고 지키기 위하여 자기희생적인 노력을 하시는것은 단순히 학술상문제가 아니라 왜적의 민족말살정책에 항거하는 민족운동입니다. 친일파가 아닌 이상 공산주의자이건 민족주의자이건 이 애국적인 민족운동을 어떻게 지지성원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리윤재는 이 나무랄데 없는 말에 가슴이 후더워짐을 느끼며 그의 무쇠로 부어놓은듯 한 얼굴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5년전에 상해에서 만났던 때하고도 완연히 다른 새로운 면모였다. 공산주의와는 원래 인연이 없던 그를 이렇게 개변시켜놓은 김일성장군님은 도대체 어떤분이실가? 참된 민족주의가 곧 애국주의라고 평가하신 그 말씀이 리윤재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기였다.

저녁상을 물리고 한동안 묵묵히 앉아있던 최기봉은 창밖이 어두워지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날이 저물었는데 이제 어딜 가겠소? 자고 가지.》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어서 가봐야 하겠습니다.》

리윤재는 그를 대문밖의 골목까지 배응했다. 삿갓을 쓰고 바랑을 진 그의 뒤모습이 어둠속에 사라질 때까지 바래우며 그는 최기봉이 무사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이제는 그가 남모르는 중대한 활동을 하고있다는것을 의심치 않았기때문이다.

리윤재는 그가 참으로 돋보이였다. 그리고 그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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