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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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고있던 리극로가 신문지를 훅 밀어놓으며 중얼거렸다.
《왜놈의 보도는 거꾸로 봐야 바로 보이거던,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놈들이니까. 류조구사건(9. 18만주사변)도 례외겠나. 안그렇습니까, 장선생?》
장지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나니 남이 모르는 정보를 많이 알고있었고 또 그것을 이야기하기 좋아했다.
《허허허, 거꾸로 봐야 바로 보인다는건 정통을 찌른 말이군요. 거짓말도 백번 하면 누구나 속아넘어간다는게 그네들의 정치철학이거던. 류조구사건에 대한 왜놈의 보고를 곧이들을 사람은 없을거요. 왜놈들은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하는 일은 없고 언제나 불의공격을 하고 사건이니 사변이니 하고 부른단 말이요. 장개석이 남경에 개선하자 련공을 파기하고 중국공산당의 소탕을 선언하여 내란이 벌어져서 일본과의 충돌을 극력 피하고있는데 국민당에 기울어진 장학량이 무엇때문에 만주에 투자한 일본의 최대의 자본이고 권익인 만철의 철도를 폭파하여 불집을 쑤셔놓겠나요. 이건 관동군이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라 벌린 연극이지요.》
시사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외면하고 살다싶이 하는 학자들이지만 장지운이 늘어놓는 새 소식에는 귀맛이 동해서 자연 그의 두리에 빙 둘러앉았다.
《이게 큰 전쟁으로 번지지 않을가요?》 하고 누군지 묻자 장지운이 말을 받았다.
《일본의 내외정세로 보아서는 그네들이 침략전쟁의 길로 나갈수밖에 없어요. 1929년 10월 뉴욕의 주가폭락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공황은 일본경제를 파국에 몰아넣었고 정계에 혼란을 빛어냈지요. 대륙침략을 목표로 팽창의 일로를 걸어온 일본군대는 일본경제에 지나친 부담으로 되였지요. 경제위기를 수습하고 군대의 팽창을 막아보려던 하마구찌수상은 이에 불만을 품은 과격파들에 의해서 암살되였지요. 이딸리아와 도이췰란드에서 대두한 파시즘을 일본에 수입하여 현 정권을 전복하고 군부의 실력자 우가끼대장을 수위로 하는 강력한 군사정권을 세우려고 한것이 청년장교들의 이른바 3월사건이지요. 우가끼의 반대로 이 정변은 실패했지만 본의아니게 여기에 말려들었던 우가끼는 륙군대신자리를 떼우고 올해 6월에 조선총독으로 밀려 나온거예요. 그래서 새로 조작한 와까쯔끼내각의 륙군대신으로 들어앉은게 조선주둔군사령관을 하던 미나미 지로지요.》
《이놈은 사이또총독의 <문화통치>를 일일이 비방하고 조선에 대한 강경통치를 주장한자라면서요?》하고 리극로가 물었다.
《그뿐인가요. 미나미는 지난 8월초에 륙군본부에서 <륙군성사단장회의>라는걸 열어놓고 대일본제국의 생명선이 만주와 몽골로 북상했다고 떠들어댔지요. 그리고 제국의 운명이 어디 있는가를 모르는 유약한 정치가들이 외교적인 미사려구나 통하면서 귀중한 시간만 허비하고있다고 같은 내각의 시레하라외무대신을 마구 욕했다지 않아요. 이 미나미란 놈이 무슨 일이건 저지를줄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만주사변의 직접적계기로 된건 일본장교 실종사건이지요.》
장지운은 이렇게 이야기의 딱지를 떼여놓고 더 듣겠냐는듯 좌중을 둘러보았다.
줄곧 입을 꾹 다물고있던 리윤재가 참다못해 조끼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보았다. 벌써 시침이 두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시간을 초로 재다싶이 하고사는 그로서는 이렇게 시사한담으로 시간을 허비하는것이 무척 아까왔다. 우선 장지운의 식자자랑과 다변이 싫었다. 그는 잡다하게 알고있지만 어딘지 자신을 내세우고있었다. 그는 조선어연구에서도 많은 자료를 라렬은 하지만 그것을 하나의 사상으로 관통시키는 주장이 뚜렷하지 않은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최현배와 아주 대조적이다.
고집스럽게 침묵을 지키고있는 리윤재를 피끗 거들떠본 리극로가 커다란 눈을 띠룩거리며 익살스럽게 한마디 했다.
《왜놈은 전쟁이나 하고 우린 우리 일이나 합시다. 남의 나라를 처먹기 좋아하는 놈 망하지 않을리 없으니 우리도 우리의 일을 서둘러야겠어요. 자, 환산선생,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들이 다 자리를 잡고 앉자 리윤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초안의 <어간과 어미>조항에서 우리는 의견일치를 못 보고 론쟁만 계속하고있습니다. 어원이 분명하거나 규칙적인 용언에서는 어간과 어미를 구별하여 적으며 원형을 밝혀서 적는데 대해서는 문제될게 없지만 변격용언에서 어간과 어미가 변하는것을 인정하느냐 않느냐 하는게 문제로 되고있습니다. 의견을 계속 나누어봅시다.》
어제 초고에서 어법을 중시하고 문법을 홀시한 실례를 들어 신랄한 발언을 하여 리윤재와 감정적마찰까지 일으킬번 했던 최현배가 오늘은 잠자코 있는데 리락이 일어섰다.
《초고의 가장 큰 결함은 변격을 지내 많이 인정하여 맞춤법을 란잡하게 하고있는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우심하게 나타난게 변격용언처리에서입니다. 그래서 나는 규칙적인 용언이나 변격용언이나 통털어 어간과 어미를 구별하여 적을것을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따르다>를 <딸으니>, <딸아서>로, <아프다>를 <앞으니>. <앞아서>로, <오르다>를 <옳아서>로 적자는것입니다. 또 ㄹ변격용언(울다, 우니따위)에는 △받침을 되살려쓰고 1변격용언(곱다, 고와따위)에는 ◇받침을 새로 만들어써서 변격을 없이 하자는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변격을 거의 처리하며 하나의 원칙으로 일관하게 될것입니다.》
김윤경이 못마땅한듯 숱이 많은 눈섭을 움씰움씰하다가 말했다.
《초고에서 용언의 변격을 지내 많이 인정하며 맞춤법을 복잡하게 만들고있다는 리락님의 의견에는 일리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변격용언까지 일률적으로 어간과 어미를 갈라써서 <아프다>를 <앞으다>, <앞으니>라고 적자는것은 어원의 견지에서 볼 때 의미없는 새 말을 만들어내여 우리 말을 어지럽히는 결과를 가져올수 있습니다. 어원을 무시하고 철자법을 규정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 팝>을 <조ㅎ밥>으로 <물결>을 <물→결>로 기사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왈가왈부하는 론쟁이 끊기지 않았다.
리윤재가 발언했다.
《자연스럽게 발전해왔고 그렇게 쓰고있는 말을 무리하게 인위적인 문법에 들어맞춘다면 어법을 무시하고 부자연스러운 말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가져올것입니다. 더우기 이미 도태되여 없어진 글자를 복구해쓴다거나 새 글자를 만들어쓴다는것은 우리 글을 어지럽히고 기사를 복잡하게 할뿐이니 나는 이를 반대합니다.
또한 어원을 밝힐것을 지내 고집하여 사이소리를 표기하자는 주장도 나왔는데 이런 사이소리의 표기가 우리 글을 얼마나 지저분하게 합니까. 그러니 불규칙은 모두 그대로 인정하고 표음식으로 기사하는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철자법에 대한 리윤재의 움직일수 없는 주장이였지만 이것이 위원모두에게 통할리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학설이 있고 양보할수 없는 주장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날도 공회전에 가까운 론쟁만 거듭하다가 리윤재는 몹시 지쳐서 저녁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저녁상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불현듯 원고지를 마주하고 앉았다. 오늘 론쟁의 초점으로 되였던 변격활용에 대하여 론문을 하나 쓸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는 생각을 가다듬으며 써내려갔다.
《마음같아서는 말이란 모두가 일정한 법칙에 딱 들어맞아서 천편일률 문자 그대로의 편의를 얻었으면 작히나 좋으랴만 그렇지 못함이 큰 유감이다. 그러나 원래 말이란 누구나 다 아다싶이 어떤 리론적규칙밑에서 요리조리 맞춰가며 의식적으로 만들어놓은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문법이란것은 어느 나라의 례를 보더라도 자연에서 생기여서 자연에서 발전된 산만한 말들중에서 어떤 공통되는 규칙을 발견하여놓고 거기에다 이리저리 갖다붙여서 한 법칙을 세워놓은것에 지나지 못한것이다.》
안해가 상을 차려들고 들어왔는데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국이 식기 전에 진지를 드시지 않구.》 하고 정씨가 푸념조로 말했지만 그는 대꾸도 않고 계속 써내려간다.
《그러므로 수다한 말가운데서 흔히 있는 어법의 불규칙을 과도히 근심한다든가 또는 불규칙어법을 없이 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어떤 법에 들여대여서 실제 어법과 음리에 구속을 준다든가 하는것은 애초부터가 기우며 오유일것이다.》
이때 대문밖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나무아미타불, 관세 음보살.》하고 념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 늦은 저녁에 무슨 중이 시주를 달래누.》하고 정씨가 의아해하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후에 정씨가 마당에서 방에 대고 소리쳤다.
《어떤 대사가 시주는 거절하고 당신을 만나재요.》
리윤재는 어쩌다 한번씩 찾아오는 화계사 주지 청악대사가 아닌가 해서 《손님이 왔으면 모셔오구려.》 하고 그제서야 펜을 놓고 쓰던 원고지를 주섬주섬 거두었다.
이윽고 한 중이 마루에 바랑(중이 길갈 때 등에 지는 자루주머니)과 삿갓을 벗어놓고 방에 들어와서 고개숙여 합장배례했다. 청암대사가 아니라 낯선 중이였다. 리윤재가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는데 중이 비로소 고개를 들고 말했다.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최기봉이올시다.》
리윤재는 깜짝 놀랐다. 머리를 빡빡 깎고 장삼에 자주빛가사를 걸치고 손에 목탁과 념주를 들고있으니 영 딴 사람 같았던것이다. 그러나 다부진 몸매와 의지적인 얼굴과 웅글은 목소리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이게 누구여? 최군이라니, 정말 뜻밖이군. 앉아요, 앉아. 그런데 언제 나왔소?》 하고 리윤재는 드물 정도로 흥분했다.
《지난해 말에 나왔는데 숨어다니다나니 뵙는게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최기봉이 침착하게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후에 정씨가 들어와서 아직 수저도 들지 않은 상에 손님을 위한 밥과 국과 수저를 챙겨놓았다.
《자, 시장하겠는데 저녁이나 들며 이야기합시다.》 하고 리윤재가 상을 둘사이에 옮겨놓고 말했다.
《녕변에 계신 자당(남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을 가뵈웠소?》
《아직 가뵙지 못했습니다.》
《물론 최군의 현재 처지는 리해되지만 그래서야 쓰나. 10년동안 자당의 마음고생이 오죽하다고.》
최기봉의 얼굴에도 비감이 어리였다.
《일간 가뵙겠습니다.》
이 뜻밖의 상봉에서 무엇부터 이야기할지 몰라 둘은 묵묵히 밥을 먹었다. 상을 물리자 리윤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독립군을 하다가 곧장 귀국했소?》
《아닙니다. 상해에서 독립군에 돌아간 후 저의 신상에는 큰 곡절이 있었습니다.》 하고 최기봉이 대답했으나 그 다음은 침묵해버렸다.
리윤재는 그 곡절에 대하여 더 캐여물으려 하지 않았다. 최기봉이 국내에 들어와서 이렇게 중으로 변장하고다니니 그의 모든 행동이 비밀로 여겨졌기때문이다.
《화계사의 청악대사를 만나보았겠군.》
《예, 그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게 곧 선생님의 도움이지만.》
《허허, 공연한 소리, 그래 법명은 무엇이라고 부르오?》
《단심이라고 합니다.》
《단심대사, 정몽주의 단심가에서 취했군. 이젠 단심대사라고 불러야겠군.》
《왜놈경찰이 제 본명을 알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겝니다.》
이렇게 이날 저녁은 둘이 례사로운 이야기로 보냈다. 늦은 저녁에 최기봉이 돌아가자 그가 겪었다는 곡절이 무엇이였을가 하고 리윤재는 생각해보았지만 물론 알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