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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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정월 초엿새에 사전편찬위원들이 모여 일에 착수하기로 하였으나 일할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맨주먹뿐이였다. 사전편찬회라는 새 기관이 세상에 태여나긴 했으나 편찬위원들이 앉아 일할 건물도 없어 수표동에 있는 교육협회에서 방 한칸을 빌려쓰고있는 조선어연구회사무실에 자리를 잡는수밖에 없었다. 하긴 편찬위원전원이 조선어연구회 회원들이고 사전편찬사업이자 조선어연구회의 사업이기때문에 이름만 다르지 같은 기관이나 다름없었지만 사업조건은 달랐다. 어휘수집부터 새로 시작하고 수집한 어휘를 카드에 올리고 그것을 자모순으로 배렬해야 하며 카드를 원고로 작성해야 하는 복잡한 사전편찬에서는 그만한 장소와 비품이 요구되였고 조용한 환경이 없어서는 안되였다. 그러나 외인의 출입이 빈번하고 모임이 자주 있는 연구회사무실에서 그런 조건을 바랄수는 없었다. 게다가 빈터에서 새로 생긴 기관이니 아직 경비가 없어 카드함 같은 비품은 고사하고 용지 한장 있을리 없었다.

사전편찬실을 책임진 리극로가 우선 사전편찬의 재정적, 물질적조건을 마련하려고 매일같이 뛰여다니다가 리우식을 만나려고 경상남도 의령까지 간것은 그해 4월이였다. 의령은 그의 고향이지만 만주에 있을 때 아버지가 세상떠나서 한번 다녀간 후 10년만에 비로소 와보는것이다. 어머니가 세상 떠났을 때에는 베를린에 있었으므로 와보지도 못했다. 그후 형도 죽고 고향에 남아있는것이 늙은 형수와 조카들이 고작이였다. 고향도 살붙이가 있고서야 고향이다. 이번에 귀국한 후 도리상으로라도 고향에 가보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만 했었지 일도 바쁜데다가 어느덧 생각도 멀어져서 질질 끌어왔던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와보니 고향은 역시 살뜰한 어머니같다.

의령은 서북쪽이 산들로 병풍처럼 둘러싸이고 동쪽은 락동강과 남쪽은 남강이 흘러 그 류역이 부림의 기름진 평야를 이루고있어 경개도 좋고 농사도 잘된다.

읍에서 10리안팎인 정곡면에는 솔같이 생긴 솥바위가 있는데 이곳은 이 고장출신인 홍의장군 곽재우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크게 이긴 곳으로서 지금도 홍의장군전첩비가 서있다. 새가 춤추는듯 한 봉황산이며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봉황대, 어디를 보나 봄이 무르녹아 가지가지 꽃들이 피고 신록이 우거져 가슴을 들먹이게 한다.

고향집에서 늙은 형수의 울음섞인 넉두리와 《개천에서 룡이 났다.》고 떠드는 마을사람들의 치하에 어리둥절해서 하루밤을 보낸 리극로는 이튿날 부모의 묘지를 성묘하고 곧 리우식을 찾아갔다.

이 일대에서 손꼽히는 부자치고는 그의 집이 그리 으리으리하지 않고 그가 거처하는 사랑방도 비교적 검소했다. 흑단목으로 만든 탁자장에 놓여있는 희귀한 골동품들과 벽에 걸려있는 몰골기법으로 친 산수화족자가 그의 취미의 일단을 말해주는것 같다.

리우식은 이미 50대에 들어섰으나 용모나 행동거지에서 늙은티는 거의 없고 특히 말에서 세련미가 느껴진다. 높은 교육과 교양의 결과일것이다.

《리박사, 잘 오셨습니다. 이렇게 벽지에서 살다보니 서울에서 오는 손님이 제일 반갑더군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리선생은 요즘 서울출입은 통 안하시는것 같군요.》

둘은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세상이야기를 벌렸다. 리극로는 돈 한푼 없이 만주까지 걸어간 이야기, 중국과 도이췰란드에서 고학을 힘들게 하던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리박사는 손문도 레닌도 만나보셨다지요?》하고 리우식이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예.》 하고 리극로가 빙그레 웃었다.

《손문은 김규식선생의 수원으로 따라가서 만났고 레닌은 리동휘선생의 통역으로 따라가서 만났습니다.》

《그들을 만나보니 소감이 어떻습니까?》

리극로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분들처럼 민족을 통일적으로 이끌어갈 뛰여난 지도자가 우리에겐 아직 없다는걸 그때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만주에만 해도 독립운동자들이 천명은 넘겠는데 모두가 제뿔뿔이지요. 셋만 모여도 파쟁이니까요.》

리우식이 동감인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나도 한때 독립운동을 해본답시고 상해에도 가보았지만 파쟁군들의 꼴이 하도 보기 싫어 뜻을 버리고 귀향하여 이렇게 벽촌에 묻히고말았습니다. 그런데 변변히 하지도 못한 독립운동덕에 일본경찰의 감시만 계속 받고있습니다.》

《리선생이 은둔했다고 생각할 사람이야 없지요. 우리의 여윌대로 여윈 민족운동은 어느 하나도 리선생 같은분들의 재정적원조 없이는 생각할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어문운동도 그렇지요. 돈이 없어 오늘 이때까지 조선말사전 한권 못 만들고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한글날기념식에서 각계인사 108명의 발기로 조선말사전편찬회가 무어지고 리선생이 그 회장으로 추천된건 아시겠지요?》

《그때 내가 초청을 받고도 집사정으로 가지 못했는데 신문지상에서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학자도 아니고 그만 한 재목도 못되는 나를 그런 자리에 뽑은건 잘못된 일입니다.》

리극로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발기인 108명이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그건 리선생의 기왕의 업적을 바로 평가한거지요. 이번 사전편찬사업에도 리선생의 큰 기여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하하, 감투를 하나 씌워놓고 돈을 내라는 말이군요.》

《하하하, 말하자면 그렇지요.》

둘은 기탄없이 속을 터놓고 시원히 웃었다.

《그런데 나는 사회사업에 돈 몇푼 희사하고는 크게 떠드는 그런 눅거리독지가가 되고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의 궁한 처지에서는 그런 독지가라도 많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리극로는 여전히 우스개삼아 말했지만 리우식은 이미 웃지 않았다.

《사전편찬이란 장기간에 걸치는 방대한 사업이니 누구 한사람이 돈 몇천원 한번 내서 해결될 일이 아니지요. 108명의 각계 인사들이 사전편찬회를 뭇듯이 뜻있는 자산가들로써 사전편찬회 후원단체를 무어야 하지 않을가요?》

《아아, 옳습니다!》 하고 리극로가 환성을 질렀다.

《리선생은 사전편찬회 회장으로서 벌써 중대한 문제를 구상하고계셨군요.》

《허, 너무 추어올리지 마십시오. 이 후원단체를 뭇는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전편찬에 돈을 대는걸 주저하지 않을수는 있어도 그 후과를 념려하는 경우도 있을수 있습니다. 조선어연구회가 하는 우리 말의 정리와 통일이 조선어를 말살하려는 왜놈들에게는 눈안의 가시같을겁니다. 그러니 조선어연구회활동에 협력했다가 화나 입지 않을가 하고 생각할수도 있지요. 제 돈을 써서 좋은 일을 하고 욕을 보려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리극로의 얼굴이 흐려졌다.

《리선생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참 기가 막힙니다. 왜정치하에서는 조선사람이 조선사람을 위한 일에 돈을 쓰기도 돈을 받기도 어렵지요. 그러니 민족을 위한 모든 일이 정체되고 이어가기 어렵지요.》

리우식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 생각엔 후원단체를 비공개로 꾸리고 그 명단을 일체 비밀에 붙였으면 하는데 어떨가요?》

《나는 리선생의 심사숙려에 감복할따름입니다. 그런데 리선생은 언제쯤 가겠습니까?》

《후원단체일때문에라도 곧 가겠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이튿날 빈손으로 서울에 돌아가는 리극로에게는 근심만이 더해졌다. 비공개후원단체를 꾸리는게 헐하지도 않고 날자도 상당히 걸릴것이다. 그것을 꾸릴 동안은 사전편찬위원들이 무엇을 먹고 어디서 무엇을 가지고 일한단 말인가? 참을성도 많고 비위도 좋은 리극로지만 사전편찬과 같은 큰 사업을 사회유지들에게 동냥질하는 방법으로 운영해갈수는 없었다.

사전편찬을 시작한지 반년도 못되여 편찬위원들이 모여앉아 사전편찬을 당분간 쉬기로 결정하였다. 그 주되는 리유는 철자법과 표준말을 통일하지 못하여 사전원고를 각인각색으로 써서 도저히 수습할수 없으며 이 모순이 날이 갈수록 더 심해져서 온전한 사전을 만들수 없다는것이였지만 실은 재정난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는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사전편찬사업의 첫 실패는 리극로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108명의 발기인에 의한 사전편찬회의 구성이라는 큰 성과에 들떠서 재정적안받침도 없이 무모하게 사전편찬에 착수한 자신의 일을 두고 가슴아프게 뉘우치지 않을수 없었다. 사전편찬사업은 걸어서 만주까지 가는 그런 의지력만으로는 이끌어갈수 없었던것이다.

바로 이 좌절의 시기에 리극로는 생각도 않던 만주려행을 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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