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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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는 홀로 안 온다는 말이 불행한 사람에게는 정말 적중한 말인상싶다. 김해댁의 경우에 한사람에게 어떻게 이처럼 재난이 거듭될수 있을가 하고 놀랄 지경이였다. 그러나 남의 눈에는 애처로와보이는 김해댁이
시어머니와는 달리 며느리는 몸도 체소한편이고 다정다감하고 인정이 많아 눈물도 비교적 헤프다. 시아버지는 남의 귀한 자식을 데려다가 고생시키는것이 노상 가슴아파 무엇이건 도와주지 못해 애썼다. 나무를 해다가 때기 좋게 잘게 패서 잘 말려가지고 부엌에 차곡차곡 쌓아주군 했다. 그런다고 마누라에게서 지청구를 듣군 했다.
《강아지 곱다고 하다간 아래목에 똥을 싸요. 해온 나무 날라다 때지야 못한다우?》
령감이 버럭 화를 냈다.
《종이 한장도 맞들어야 가볍다구 구차한 살림에 서로 도와서 나쁠게 뭐야. 뒤퉁스런 소리 작작해.》
《누가 뒤퉁스러운지. 원, 남자란 좀 크게 놀아야지 부엌에나 들락날락하는게 그래 남자 할일이요? 그러다간 며느리의 업신여김이나 받아요.》
《저 망할게 이젠 지애비 꼭대기에 올라앉으려드네.》
이렇게 자기때문에 시부모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면 며느리는 몸둘바를 몰라했고 한편 속으로 시어머니를 야속하게 생각하군 했다. 이 집에 시집온지 10여년동안 고생고생하며 살아오는데 따뜻한 말이야 어찌 한마디 못하랴싶었던것이다.
정씨가 이 집에 시집오게 된것도 하나의 기연이라면 기연이다. 그의 아버지 정진사는 부자는 아니라도 구마산에서는 상당히 행세하는 인물이였다. 그는 일찌기 소과(봉건사회에서 생원과 진사를 뽑는 과거시험인 생원시나 진사시를 이루는 말)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는 오르지 않고 한생을 진사로 지냈다. 망국후에는 모든것을 단념하고 이미 가진 한문지식을 밑천으로 한약방을 차려놓고 호구를 도모했지만 워낙 성미가 호협한지라 가난한 사람에게서는 약값을 받지 않아 생업이 오히려 밑지는 장사였다. 그런만큼 구마산일대에서는 인망이 높았다.
이 약방에 하루는 리윤재가 찾아왔다. 그가 마산창신학교에서 교원을 할 때였다. 오랜 체증때문에 고생하다가 정진사의 의술이 용하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것이다. 환자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집맥을 해본 정진사는 허연 수염을 쓸어내리며 《임자는 근심이 많은 사람이군.》하고 리윤재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병을 봐달랬지 누가 관상을 봐달랬나 하고 리윤재는 생각하며 대답했다.
《망국민이 어찌 근심이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마음을 언제나 편안히 갖는것은 수양을 위해서나 건강을 위해서나 좋은 일이지.》
《그러니 제겐 병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속병은 근심을 하면 할수록 심해지느니 음식을 잘 씹어먹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면 차도가 있을거네.》
리윤재는 참 별난 의원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다. 여느 의원은 약을 팔아먹기 위해서도 병을 과장하기 일쑤인데 이 정진사는 있는 병조차 수양으로 고치라고 한다.
《그러니 약은 쓰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약은 만능이 아니야. 하지만 소원이라면 위를 보하는 약을 반제 써보지.》하고 그는 붓을 들어 백지에 한문초서로 약방문을 썼다. 그리고 안쪽방문을 향하여 소리쳤다.
《애야, 나와서 약 좀 지어라.》
그러자 옆방에서 《네.》하는 대답과 함께 처녀가 살며시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 약방문을 받아서 한번 훑어보고는 두번다시 보지 않고 약장앞에 앉아서 이 서랍 저 서랍 열고 약을 한줌씩 꺼내여 약저을에 달아 방바닥에 펴놓은 한지에 소복소복 쏟아놓는다. 그 거동이 하도 날렵하여 리윤재는 넋을 잃고 바라보고있었다. 둥근 얼굴에 좀 클사한 눈도 반달같고 날이 선 코아래 오목한 입술은 꽃잎같다. 처녀로서 한창 꽃필 스무살나이다. 볼수록 탐스럽고 그 처녀전체에서 향기로운 약냄새가 풍기는것 같다. 그러나 곧 리윤재는 외간남자로서 남의 집 규수를 찔끔찔끔 보는것이 례의에 어긋남을 깨닫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처녀는 약봉지를 차곡차곡 싸서 열첩을 끈으로 묶어가지고 정진사앞에 살며시 밀어놓고 소리없이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리윤재는 한순간의 꿈을 꾼것 같았다. 멍하니 앉아있는 그를 정진사가 피끗 거들떠보았다.
이제는 약을 내주고 약값을 받으면 그만인데도 그도 역시 다 자란 딸자식을 가진 아버지임에는 다름이 없었다. 넌지시 말을 꺼냈다.
《임자 창신학교 교원을 한다고 했지? 무엇을 가르치나?》
《국사와 국어를 가르칩니다.》
《왜놈들은 학교에서 저희네 력사와 말을 국사와 국어라고 한다던데.》
《저는 왜놈의 력사와 말을 국사니, 국어니 하고 부른 일이 없습니다.》
《음.》하고 정진사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고향이 김해라고 하니 마산에서 딴살림을 하겠네그려.》
《저는 아직 미혼이라 하숙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정진사는 몇마디 말을 시켜봐도 젊은이의 태도가 의젓하고 주대가 서있는것을 느낀데다가 그가 아직 미혼이라고 하니 구미가 바싹 동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아직 미혼이라니, 나이가 몇인데?》
《무진생입니다. 》
《어이쿠, 스물다섯살이네그려. 장가드는게 너무 늦었는걸.》
《늦어 시작한 학교공부를 하다나니 그렇게 되였습니다.》
《공부는 어디서 했나?》
《동네서당을 다니다가 열아홉살에 김해보통학교에 들어가 4년과정을 2년에 끝마치고 대구계성학교를 나왔습니다.》
《리씨라고 했지. 본관이 무엇인가?》
《외람된 말씀이지만 조선리가올시다.》
정진사의 눈이 꼿꼿해지다가 곧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조선리씨란 말이지, 그럴듯해. 반상의 문벌을 타파한 성씨로군. 그런걸 따져물어 안됐네, 젊은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정진사에게는 그 청년이 퍽 믿음직해보였고 리윤재는 정진사의 딸의 모습이 눈에 사물거려 잊혀지지 않았다.
며칠후 리윤재가 옷도 갈아입을겸 김해의 집에 들리니 그날도 역시 부모에게서 혼담이 나오고 끈질긴 성화를 받았다. 그는 하는수없이 정진사의 딸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펄쩍 뛰였다.
《아니, 그 댁이 어떤 집안이라고 우리같은 가난뱅이와 혼처를 정하겠니?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
어머니는 생각이 달랐다.
《길고짧은거야 대봐야 알 일이지. 견주어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안된다는건 또 뭐요.》
《저 인간은 내 말이라면 덮어놓고 쌍지팽이를 들고나서거던. 그렇게 똑똑하거든 제가 나서서 어디 한번 성사시켜보지.》
이렇게 옥신각신한 다음에는 언제나 김해댁이 이겼다. 그는 곧 정진사집에 소개군을 띄웠다. 며칠후에 소개군이 헐레벌떡거리며 달려와서 희색이 만면하여 떠들었다.
《됐어요, 됐어요.》
김해댁은 짐작은 하면서도 아닌보살하고 물었다.
《뭐가 됐다고 이 야단이요?》
《저쪽댁에서 허혼을 했단 말이요. 이거야말로 놀라운 경사가 아니고 뭐요.》
《아니, 청혼하고 허혼하는거야 인생의 상사인데 그게 뭘 그리 놀랄일이라고 이 야단이요.》
김해댁은 여전히 시침을 뻑 땄다. 그럴수록 소개군은 어이가 없다는듯 지껄여댔다.
《아니, 내가 이번에 이 혼사를 성사시켜놓은게 례사일이란 말이요? 원, 말은 바른대로 그 댁과 이 댁이 짝이 기울지 않는다는 말씀이요? 내가 가서 이 댁의 의사를 통언했더니 그 댁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오. 온 집안이 들고일어나서 가문의 망신이라고 하는 판이요. 더구나 최도사댁 둘째아들 최재현이와 한창 혼담이 오고가는중이였으니까 더할밖에요. 그런데 정진사어른만이 자초지종 입을 꾹 다물고있더군. 낌새를 보아 내가 진사어른에게 조용히 말씀드렸지요. 혼사에서는 첫째로 당자를 봐야 하는데 저쪽의
결국 소개군의 공적자랑이다. 소개군의 말 한마디에 움직일 정진사가 아니라는것을 잘 아는 김해댁은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이틀후에 정진사댁에서 허혼한다는 기별이 정식으로 왔다. 행여나 하던 김해댁도 이번에는 놀랐지만, 정진사가 이미 간선할 필요도 없이 병을 보이러 온 리윤재를 직접 만나 그의 됨됨이를 알고 점찍어두었었다는것을 알리는 없었다.
김해댁은 부랴부랴 신랑의 사주를 정진사댁에 보냈다. 그쪽에서 사주를 받고 아무 딴 말이 없으니 약혼은 이미 성립된것이다.
그후 혼인날자가 결정되여 혼사는 착착 진척되였으나 리용준내외에게 가장 큰 근심거리는 새색시집으로 보낼 례물을 준비하는 일이였다. 아무리 못살아도 붉은 비단, 푸른 비단 한끝씩은 보내야 하니 말이다. 농량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면 새해에는 보리고개를 어떻게 넘겠는지 막막했으나 래일에 대한 근심은 오늘의 걱정보다는 아무래도 한걸음 멀었다.
드디여 혼례식날이 닥쳐왔다. 리윤재는 사모관대를 하고 관복을 입고 신부집으로 떠나는데 신랑은 말을 타고 그앞에는 초롱을 든 사나이가 견마잡이를 겸하고 뒤에는 홍보에 목기러기를 싸안은 기럭아비가 따르고 후행(혼례에서 가족이나 친척가운데서 신랑이나 신부를 데리고 가는 사람) 한명이 일행을 거느렸다. 조그마한 량반행차같았다. 신랑신부일행이 명동리를 지나 정오가까이 진영에 당도하자 여기에는 이미 신부측의 영접사가 초롱을 들고나와 기다리고있었고 그들이 마련해온 음식으로 점심요기를 했다. 일행은 다시 떠나 초저녁에 구마산 신부집에 당도했다.
신랑이 접대하러 나온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그의 안내로 집안에 들어서니 뜨락에는 천막을 치고 손들이 상앞에 주런이 앉아있으며 안방에는 의관정제한 로인들이 정진사와 함께 상을 놓고 앉아있으며 건너방에는 녀자손님들이 신부와 함께 있는 모양이다. 식장은 대청에 꾸려져있다.
례식은 소례로부터 시작되였다. 리윤재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고 그저 식장에 서서 례식을 거행하는 사람의 웨치는 소리에 따라 움직일뿐이였다.
《신랑 존안상앞에 나서시오.》
《배석우에 꿇어앉으시오.》
《기러기를 존안상우에 놓으시오.》
《신랑 일어서시오.》
《두번 절하시오.》
《뒤로 물러서시오.》… 웨치는 소리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사이에 소례는 끝나고 대례가 시작되였다.
그제서야 신부가 초례청에 나타났다. 활옷(녀자의 례복의 한가지)을 입고 족도리를 쓰고 기다란 은비녀를 꽂았으며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은 신부는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옛이야기책에서 녀자의 아름다움을 형용하여 화용월태(꽃같은 얼굴과 달같은 자태)라든가 물찬 제비같다든가 했는데 그 말도 무색할 지경이다. 리윤재는 그저 꿈을 꾸듯이 례식거행자의 웨침소리에 따라 배석우에 오르고 서쪽으로 외면한채 신부를 맞이하고 신부와 함께 꿇어앉아 손을 씻고 신랑은 재배(두번 절을 하는것), 신부는 사배(네번 하는 절)하는 그 까다로운 의식을 거행했다. 대례를 마치고 정해준 처소로 가자 그는 비로소 이마에 밴 식은땀을 닦으며 안도의 숨을 쉬였다. 그리고 농민의 자식인 그는 이런 량반식의 허례와 번문욕례(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례절)를 마음속으로 경멸했으며 앞으로 자기 자식들에게는 이런 불필요한짓을 결단코 시키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허례를 싫어하는것은 그에게서 체질적인것이였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10여년전 일이니 지금에 와서는 다 즐거웠던 일처럼 추억될뿐이다. 과거도 현재도 현실이 가혹하기는 한가지지만 과거가 아름답게 회상되니 현재가 더욱 쓰라린것이다. 하여간 그동안에 많은것이 변했다. 늙은 세대는 하나둘 저승으로 가고 다음세대는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각이하게 번져갔다.
장인인 정진사도 이미 세상을 떠나고 대를 잇는 사람이 없으니 그의 한약방도 자연 없어졌다. 손아래처남인 정성택은 마산에 나가 정미업을 크게 벌리더니 그곳으로 아예 자리를 옮겨앉고말았다. 그는 공부란 아버지한테서 한문을 배운것밖에 없지만 장사속은 밝아 물려받은 얼마 안되는 유산을 잘 구불리여 착실히 불구어가더니 이제는 영업도 크게 벌리고 땅도 적지 않게 사서 어느새 마산에서 부자소리를 듣게 되였다.
어느날 리윤재는 장인의 묘지에 성묘를 할겸, 아직 생존해있는 장모에게 인사도 할겸 한번 처가집나들이를 하려고 마음먹고 안해에게 같이 가자고 권했다. 결혼한지 10여년이 넘도록 어디 한번 같이 가본 일이 없는 안해인지라 매우 반색할줄 알았는데 안해는 뜻밖에도 《전 설명절에 다녀왔는걸요.》하고 시답지 않아했다.
리윤재는 그저 먼길을 자주 가기가 힘들어서 그러는가부다 하고 례사롭게 생각했지만 안해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 음력설에 정말 오래간만에 친정에 갔다가 설음만을 안고 돌아왔던것이다. 친정어머니는 이미 년로하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떠난 후로는 더욱 무력해져서 이 집에서는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다. 그대신 드센 오레미가 그 왕방울같은 큰소리로 온 집안을 쥐락펴락하고있었다. 재산이 불어나는데 맛을 들인 오레미는 한푼을 쓰는데도 벌벌 떠는 수전노로 화해가더니 못사는 친척이 찾아오는것조차 달가와하지 않는 눈치였다. 못사는 시누이도 례외일수 없었고 세상물계가 환하다는 오라비도 오레미의 치마자락에 휘감겨사는것 같았다. 이 오레미가 중간에 서있는 한 동기간의 정리도 차차 멀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어머니만 없으면 이 집이 남의 집과 거의 다름이 없으리라는것을 정씨는 안타깝게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은 어디 가나 천대받기마련이였다.
안해의 이런 심정을 알리 없는 리윤재는 이튿날 아침일찌기 마산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는 이번 걸음에 이미 오래전에 근무한 일이 있는 마산창신학교와 의신녀학교에서 교원자리를 더듬어볼 작정이였다. 김해협성학교에는 이미 말해보았지만 아직 아무 기별이 없다. 김해에서 교원자리를 얻지 못하면 마산에서라도 구해야 할 형편이다. 우선 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하기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사립중등학교 교원자리 하나도 얻기가 조련치 않으리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 교장들은 학무당국에서 친일경향이 강한자들로 갈아치웠기때문에 그런자들이 필경 요시찰인물로 점찍혀있을 리윤재를 선뜻 받으려 하지 않으리라는것쯤은 짐작되였다. 설혹 교장이 받으려고 해도 학무당국에서 승인할지 의문이다. 학교에서 교원 하나를 채용하는데도 일일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달리 나아갈 길도 없다. 이 넓은 세상에서 모든것이 남의것으로 되여있으니 조선의 지식인으로서는 교원으로 되는것만이 민족의 후대를 위하여 이바지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다. 일생을 혀와 붓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리윤재였으니 다른 길은 생각해본 일도 없었다. 그러나 누구나가 다 걸으려고는 하지 않는 그 길조차 그에게는 이미 곧은길이 아니였다. 그는 저도모르게 한숨을 쉬였다.
머리를 숙일사 하고 땅만 굽어보며 걷고있는 리윤재를 스쳐지나가던 한 사나이가 갑자기 돌아서며 소리쳤다.
《어, 리윤재가 아닌가?》
리윤재가 돌아보았다. 중키에 어깨가 쫙 벌어지고 몸이 다부지게 생긴 사나이였다. 알듯 하면서도 모를 사나이였다.
《날 모르겠어? 최재현이야.》
그제서야 리윤재는 비로소 생각이 났다. 턱이 네모지고 이마도 네모지게 불거져서 얼굴륜곽이 네모지게 보이고 퉁방울눈이 금붕어처럼 불거지고 불거진 이마와 턱과 눈이 살갗을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뺨이 팽팽한 그 얼굴은 10대시절의 그를 상기시켰다. 리윤재는 대구계성학교에 다닐 때 그와 한학급에서 공부한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불량소년으로 소문이 난 부자집 망나니자식이였다.
지금 그의 차림새는 날아갈듯 하다. 질좋은 재빛모직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받쳐입은 조끼에는 금시계줄을 늘이고있다. 멋으로 들고있는 가느다란 단장의 상아손잡이를 쥐고있는 손가락에도 금반지가 번쩍인다. 그는 무명두루마기를 허름하게 입고있는 리윤재를 찬찬히 보다가 말을 걸었다.
《지나에 갔다가 왔다지? 많은걸 보았겠구먼. 그대신 주의해야 하네. 그래 이젠 뭘하겠나?》
요령부득의 말에 리윤재는 그저 《글쎄.》하고 대답했을뿐이다.
《여긴 중국이 아니라 일본사람의 세상이야. 그들과 등지고는 살아갈수 없지. 어때, 군촉탁서기라도 해볼 생각이 없나? 내가 군수에게 말해줄수 있어. 그치가 내 말은 어지간히 들으니까.》
리윤재는 이자가 어째서 이렇게 치근거릴가 하고 생각하며 될수록 빨리 자리를 뜨려고 《아직 그럴 생각은 없네.》하고 잘라말했다.
《음, 일본사람에게 머리숙이기는 싫단 말이지?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인가? 옳지, 마산에 처남이 있지, 정성택이 말이야.》
역시 무엇을 대답해야 할지 모를 요령없는 질문이다. 리윤재는 이런자와 더는 말도 하고싶지 않아 고개만 끄덕이였다. 그러나 그는 또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내 그치한테서 홀랑 벗기웠어. 여간내기가 아니거던. 구마산에 있는 내 땅을 팔라고 조르기에 별 타산없이 팔아치웠지. 그런데 그리로 경전선철도가 부설되는 바람에 땅값이 하루아침에 열배로 뛰여올랐거던. 오래전 일이지만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알알하네. 그치는 언제나 장사속이 밝거던. 이제는 군납량곡의 도정을 맡아하다나니 정미업계의 왕자로 군림하는 판이네.》
리윤재는 갈수록 더 불쾌한 이야기만 듣게 되여 낯을 찡그렸다. 최재현의 구마산땅에 대해서는 그도 들어 알고있었다. 왜놈들이 1912년에 《토지조사령》을 공포하자 그에 편승하여 한몫 보려는자들이 측량기술을 배우기에 혈안이 되였다. 최재현도 그중의 하나였다. 계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가서 빈둥거리던 그가 측량기술을 배워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제 애비의 땅이 없는 구마산일대를 측량기를 가지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때 많은 농민들은 《토지조사령》에 의하여 자기의 소유지를 정한 기일안에 관청에 신고해야 한다는것도 모르고있었고 아는 경우에도 그 수속이 까다롭고 복잡하여 미처 신고를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런 기회에 최재현이 구마산일대의 많은 림야와 전답을 측량하여 자기의 명의로 신고해버렸다. 농민들은 후에야 이 날강도행위를 알았지만 행차후 나발이였다. 왜놈의 권력을 끼고있는 최도사집의 세도에 엇설수는 없어 눈을 펀히 뜨고도 제땅을 잃고말았다. 그 땅을 정성택이 눅거리로 사서 폭리를 본것은 그후의 일이다.
리윤재는 이런 인간쓰레기와 더는 상대하고싶지 않아 돌아서며 말했다.
《나는 갈길이 바빠 그만 실례하겠네.》
《응, 가보게. 그런데 곤난하면 날 찾아오게, 도와줄테니. 하여간 자네 처지로서는 매사에 주의하는게 좋아.》하고 최재현이 등뒤에서 또 아리숭한 소리를 던졌다.
《더러운 놈!》하고 리윤재는 입에 잔뜩 고였던 침을 길바닥에 탁 뱉었다.
그날 이른 저녁에 처가집에 당도한 그는 구마산에 있는 장인의 묘도 성묘하고 자리보전하고있는 장모도 만나보고 저녁늦게 처남 정성택과 마주앉았다. 정성택은 키는 작은편이나 골격이 실해보이고 단정하게 생긴 얼굴에 눈이 류달리 령리해보이며 쇠소리가 나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그가 록록치 않은 인물임을 느끼게 한다. 덤덤히 앉아있기만 하는 매부를 힐끗 쳐다본 처남이 무료한 나머지 먼저 말을 걸었다.
《자형, 요전에 누님이 집에 왔다가 기색이 좋지 않아서 돌아갔는데 무슨 말을 안합디까?》
《말은 무슨 말, 자네의 자격지심이겠지.》
《그러면 좋아요. 그동안 나도 누님을 잘 돌봐주진 못했지만 나야 한다리 건너가 아닌가요. 자형이야 처자를 그렇게 고생시켜서야 안되지요.》
《내가 워낙 못난걸 어찌하나.》
《자형이 못나요? 말은 바른대로 김해골안에서 학문에서나 인격도야에서 자형을 따를만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소. 그런게 아니라 자형이 세상과 보조를 맞추려 하지 않는게 탈이예요.》
《세상과 보조를 맞춘다? 왜놈의 세상과 말인가?》
《옛날에 성현도 여세추이(세상이 변하는데 따라 변함)라고 했어요. 세상과 더불어 변해야 한다는건 가장 현명한 리치지요. 굴원이처럼 지조를 지킨다고 물에 빠져죽어서야 무엇이 남겠소. 나의 리익을 위해서는 적도 리용할줄 알아야 하지요.》
말은 번드르르하나 쥐여짜보면 왜놈의 세상에서는 그들과 손잡아야 한다는 소리다. 리윤재는 심한 말은 하고싶지 않았지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누를수가 없었다.
《그래, 그래서 왜놈군대에 량곡을 섬겨바치고있나? 그게 누가 누구를 리용하는건가? 그것도 궤도인가?》
정성택은 그런 말쯤에 찔끔할
《그건 사실이지만 누가 그럽디까?》
《오다가 최재현이를 만났는데 그자가 그러더군.》
정성택이 껄껄 웃었다.
《그놈이 누님에게 청혼했다가 퇴맞은걸 지금까지 원혐(원망과 혐의)을 품고있어요. 그놈이 자형에게 몹시 치근거리지 않습디까?》
《꽤나 치근거리더군.》
《그것 봐요. 그놈에게 주의하시오. 자형의 코를 꿰여보자는거지. 그치가 일본에 가서 기껏 배워온게 유도라오, 5단이라던가.》
《성택이, 딴전을 부리지 말게. 자넨 내 물음에 대답을 회피하고있어.》하고 리윤재가 처남을 응시했다.
《그건 영업상거래요.》
《영업상거래라고?》
리윤재가 저도 모르게 어성을 높였다.
《조선백성의 피로 살찐 왜군에게 식량을 대주는게 그래, 민족적량심이 있는 행동인가?》
《그럼 자형은 나를 친일파로 보는거요?》
《
그리고 리윤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이 밤중에 어디로 가겠다는거요?》하고 처남이 따라일어서며 만류하려 했지만 리윤재는 굳이 처가집을 나오고말았다.
달도 없는 밤길은 지척도 분간할수 없게 캄캄했다. 무겁게 드리운 어두운 하늘처럼 그의 마음도 어두웠다.
《흥, 나더러 군청 촉탁서기나 해보라고?》
지그시 지켜보던 최재현의 퉁방울눈이 떠오른다. 그 팽팽한 낯짝에 침을 탁 뱉어주지 못한것이 분하다. 그러나 그런 인간쓰레기에게는 마음속으로라도 침을 뱉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처남 정성택의 《여세추이》론은 귀에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여세추이》란 《효》를 위주로 하여 통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을 요구하는 유교의 고루한 교리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는 현명한 말이다. 그러나 모든 리치에 절대적인것이란 없다. 《세상과 더불어 보조를 맞춘다.》는것은 시대의 정신을 긍정할 때는 좋은 말로도 되지만 망국민으로서는 나라가 망한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의 권력에 아부한다는 의미에서는 반역으로도 되는것이다. 《세상과 더불어 보조를 맞춘다.》는 이 한마디로 정성택은 오늘의 모든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있다. 그는 축재에 맛을 들여 량심을 저버리고 왜적의 권력에 아부하고있다. 그것을 그는 친일이라고 하지 않고 《영업》이라고 하며 협력이라고 하지 않고 《리용》이라고 하고있다. 이런 령리한 사람의 눈에는 세상과 보조를 같이하지 않는 리윤재 같은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보이는것이다. 그의 앞에는 가시밭길밖에 없을것이기때문이다.
리윤재는 실지로 가시밭길을 걷는듯 걸음이 바로되지 않고 자꾸 어푸러질것 같았다. 먼길을 걸은 피로때문만은 아니다. 실은 다리보다도 마음이 더 무겁다. 정성택의 속물적처세, 이것이 그의 마음을 몹시 우울하게 했다.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했다. 자기도 그렇게 변할수 있을가? 왜적에게 저항하여 조선말을 연구하고 지키려는 자기의 뜻만은 변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빠질듯 한 자기 마음을 버리고 모든것에 반발하듯 소리내여 말했다.
《아니, 나는 가시밭길을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