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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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성시백은 시름을 잊고 두시간동안이나 집에 누워 편안히 낮잠을 잤다. 깨여나서는 장에 나간 안해가 돌아오기 전에 저녁밥을 다 지어놓을 《기발한》 착상이 떠올라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내려갔다.
지난해 성시백이 평양을 방문하고 떠날 때
그는 흥이 나서 물부리에 담배까지 말아넣고 퍼런 담배연기를 풀풀 피워올리며 가마를 부시기 시작했다. 입에 문 담배물부리도 역시
성시백은 자기가 아직은
지금 성시백이 관심하고있는 일들이 잘 되여나가고있었다. 특히 괴뢰국회에서의 미군주둔반대투쟁에서 눈에 뜨이는 성과가 있었다.
이미 신문에도 공개하고 광범한 민중속에 널리 알려진 남조선에서의 미군철거를 요구하는 63명 《국회의원》들의 련명으로 된 서한이 서울에 주재하고있는 《유엔조선위원단》에 전해져 한창 론난을 불러일으키고있었다.
세계앞에 공개된 직책상의 의무가 있어 이 서한을 받고 모르쇠를 할수 없었던 《유엔조선위원단》에서는 별수없이 이 63명 《의원》의 대표자들인 두명의 《국회의원》을 불러 협의를 하기로 하였다.
그 두명의 《국회의원》들은 다 성시백과 친분이 두터운 진보적인 정치인들이였다.
한편 서한에 서명을 한 《국회의원》들전체가 거의 매일이다싶이 철병에 관한 협의를 하자고 재촉하는 바람에 더는 견딜수 없었던 《유엔조선위원단》에서는 부득이 기구안에 제3분과위원회라는것을 설치하고 전문 미군철병에 관한 문제를 토의하기로 하였다.
이에 바빠난 리승만은 또 리승만이대로 3분과위원회설치를 막기 위하여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유엔조선위원단》은 지금 량틈에 끼워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무쵸를 비롯한 현지의 미국인들은 남조선《국회》가 대단한 두통거리라면서 리승만, 김성수를 비롯한 우익보수세력이 구실을 못한다는 야비한 비난을 보내고있었다.
개는 짖어도 행렬은 나간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김구도 신심을 가지고 《유엔조선위원단》앞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자기의 립장을 당당히 주장하고있었다.
지금까지 모든 노력을 다 하여 투쟁한 보람이 있어 남조선에서의 미군의 운명이 벼랑끝에 몰리게 되였다. 이제 우리가 또 한번 힘을 쓰면 벼랑끝에 이른 그 바위돌은 아래로 떨어지기마련이다. 그 힘이 바로 이번에 평양에서 결성하기로 발표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일것이다.
이미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널리 공개되여 성시백도 잘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조국전선결성과 관련하여 남조선 정당, 사회단체들이 북조선민전에 보낸 호소문은 지금 북조선의 모든 정치단체들의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받고있었다. 이 호소문이 나온 때로부터 나흘이 지난 1949년 5월 16일 평양에서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에 대한 당신들의 제의를 토의하였습니다.》라고 시작된 회답서에서는 먼저 미군철퇴와 조국의 독립과 통일과 민주발전을 위하여 투쟁하는 전체 애국적 정당, 사회단체들을 련합할 조국전선을 결성할 시기가 왔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북조선민전의 립장이 밝혀져있었다.
《조국과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우리 조국의 전체 애국적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은 우리 조국에 대한 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예속화정책과 그들의 주구, 친일파, 민족반역자, 매국도당들의 배족적행위를 보고만 있을수 없습니다.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중앙위원회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에 대한 당신들의 제의를 열광적으로 지지찬동하면서 그를 급히 실천시키기 위하여 조국전선에 참가하려는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준비위원회를 조직할것을 제의합니다.》
계속하여 회답서에서는 민전산하에 망라된 북
이 회답서의 전문이 며칠동안의 새벽과 밤시간에 걸쳐 라지오로 랑독보도되였다.
성시백은 이것이
성시백은 역시 우리
평양방송을 통하여 조국전선결성제의소식에 접한 남조선전역이 들끓었고 벌써 종교인, 농민, 학생 등 남조선의 각계층 사회단체 대표들이 선출되여 평양의 조국전선결성식에 참가하기 위해 입북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조국전선까지 결성되면 미군은 더는 남조선에 배겨있을수가 없을것이다.
미군이 철퇴하고 미국의 정치적 및 군사적간섭이 없어진다면 우리 인민은 자주적인 원칙에서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방법으로 원만히 수행할수 있을것이였다.
조국통일의 찬란한 래일이 결코 멀리 있는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고향에서 부모처자들과 함께 마음놓고 농사를 짓고 희열에 들떠 웃고떠들 그날이 멀리 있는것이 아니다.
성시백은 가슴을 벅차게 하는 흥분에 넘쳐 석유곤로의 불심지를 한껏 높여놓았다.
어느새 가마안에서 당콩이 익는 기분좋은 냄새가 몰몰 피여난다. 이제는 찬거리를 준비해야 하였다. 여기저기 뒤적거려 고추가루며 절인 무우같은것을 꺼내놓고 그것을 조리대에 올려놓았다.
고향에 들려 안해를 데리고 서울로 나올 때
그러나 성시백이 그토록 품을 들여 발휘한 《창발성》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안해의 칭찬을 받을수 있는 행운이 차례지지 않았다.
시장에 부식물을 사려 나갔던 안해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는데 어째서인지 낯빛이 컴컴해있었던것이다.
그는 성시백이 부엌 한가득 널어놓은 그릇이며 칼도마며 그우에 어설프게 놓고 손질하던 절인 무우쪼각들에는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여보, 김구선생에게서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생겼다나봐요.》
《뭐요?》
안해는 자기가 시장에 가던 길에 리병우를 만났댔으며 그가 구체적인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동생인 리창우를 인차 집으로 보내겠다고 하더라는 말을 무척 심각해서 전달해주었다.
안해의 표정을 보고 안해와 만났던 리병우의 안색이 어떠했겠는지를 짐작할만 하였다.
무슨 심상치 않은 뜻밖의 정황에 부닥친듯 했다.
성시백은 들고있던 식칼을 맥없이 칼도마우에 올려놓았다.
《당신이 마저 하오.》
그는 끝내 안해앞에 보여주려던 남편의 성의를 끝맺지 못한채 부엌간을 인계해주었다. 그의 입에 물려있던 물부리에서 피여오르던 담배연기도 서서히 죽어갔다. …
리창우는 반시간이 좀 지나 성시백의 집에 달려왔다. 황급히 뛰여오느라 온통 땀투성이가 된 그 젊은이는 성시백의 앞에 앉자마자 놀라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김구선생이 평양에서의 조국전선결성제의에 거부의사를 표명했다고 합니다.》
성시백은 《누구라고?》하고 되묻고싶은것을 겨우 참았다. 온갖 인내성을 동원하여 침착성을 되찾으려 하였다.
다름아닌 김구가, 남북련석회의때
더우기 김구는 평양에서 내각부수상으로 사업하고있는 홍명희가
현재 남조선에서 활동하는 남북협상파의 중진인물인 김구의 이와 같은 립장은 그가
그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
《형님의 말에 의하면 그 원인은 〈유엔조선위원단〉에 대한 환상이라고 합니다.》
대답을 듣는 순간 성시백은 자기가 지금껏 괴뢰국회의 소장파세력이 진행하고있는 《유엔조선위원단》과의 교섭에만 신경을 쓰면서 거기서 파생될수 있는 다른 정황에 대하여서는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는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미군을 그대로 두고서 통일을 한다는것은 곧 전쟁을 의미하며 철병을 해야만 평화적이며 자주적인 통일로 될것이라는 63명 《국회의원》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하여 지금 남조선의 미군주둔에 대하여 프랑스와 영국, 인디아대표를 비롯한 《유엔조선위원단》의 대부분 대표들이 반대나 혹은 립장표명거부의 의사를 가지게 되였다. 여기에 또 맥아더의 조선증병요청을 거부한 트루맨이나 로얄의 태도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주객관적인 요인들로 하여 남조선정계에서는 미군이 더는 남조선에 눌러앉아있을수 없게 되였다는것이 기정사실처럼 인정되고있었다. 물론 지금 미군의 남조선주둔이 점점 수습할수 없는 위기에 직면해가는것은 사실이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결국은 김구가 미군의 남조선에서의 철퇴를 《유엔조선위원단》에 의거하여 해결할수 있다는 관점에 빠진것이 분명했다.
성시백은 김구가 결코 자주적인 원칙을 저버리고도 평화적인 통일을 할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판단에 빠진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미국과 같은 어느 개별적인 국가가 아니라 《유엔조선위원단》과 같은 국제기구에 의거하는것은 민족자주의 원칙과 어긋나는 행위로 될수 없다는 주관에 빠져있는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그가 《유엔조선위원단》을 통하여 벌리고있는 미군주둔반대투쟁의 결과를 지나치게 환상적으로 기대하고있기때문이였다. 사실 《유엔조선위원단》에 서한을 보내고 또 그 무엇인가 피터지게 호소하는 등 투쟁을 벌리고있는것은 다만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민족의 자주권을 쟁취하려는 남조선민중의 의지를 내외에 똑똑히 천명하고 국제적인 지지를 얻어 미군의 남조선철퇴에 유리한 환경과 조건을 마련하는데 그치는 일이였다. 서한이나 보내고 호소나 하여 설혹 《유엔조선위원단》이 별수없이 그를 지지한다 하여도 유엔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손아귀에 잡혀있는 꼭두각시의 처지에서 벗어날수 없는것이다.
《만약 창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백범의 사고야말로 정말 위험한거요.》
성시백은 김구가 당장 눈앞에 앉아있기라도 한듯 분노하여 주먹을 불끈 쥐였다.
리창우는 늘 평온하고 침착한 거동을 유지하던 성시백이 이처럼 분노한것을 처음 보는지라 한동안 할 말도 잊고 숨죽이고있다가 조심히 한마디 더 보탰다.
《형님이 하는 말이 백범은 지금 남북의 협상통일을 추진할수 있는 믿을수 있는 세력은 〈유엔조선위원단〉이라고 하면서 평양에서 주최하는 조국전선결성이 남북의 좌익력량의 통합이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성시백은 점점 더 어처구니없는 말이 흘러나오는 리창우의 입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마침내 손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공교롭게도 거기에 놓여있던 재털이가 성시백의 손에 맞아 활 뒤집혀져 안에 차있던 담배재가 어지럽게 쏟아졌다.
신음같은 그의 부르짖음이 담배재가 흩날리는 공간에서 맥없이 흩어져나갔다.
《이건… 배신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