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4
기계공장의 최성진기사도 일년나마 코피가 터지게 있는 힘껏 추진해온 자동선개조의 실패로 파김치가 되여버리였다. 막대한 로력과 자재를
랑비한 책임에다 주병호지배인의 철직문제까지 겹치여 엄중하게 제기되는 바람에 된서리를 맞고 주눅이 들어버린것이였다. 그러나 장관우부위원장의
참석하에 진행된 공장기술협의회에서 주병호지배인이 벌겋게 피발이 선 눈을 부라리며 기계공장의 자동선개조는
그 일로 공장안에는 한동안 뒤숭숭한 여론이 떠돌았다. 당장 살아갈 일도 힘겨운 때에 산 송장이 됐던 기사가 지배인을 업고 괜히 되지도 않을 자동선개조를 꿈꾸며 사람들을 들볶는다는것이였다.
요즘도 귀구멍이 쑤시게 날아드는 비난을 떡 먹듯 하며 아닌보살하는 남편에 대해 성실은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성실은 성실이대로 자기의 연구사업을 포기할수밖에 없는 괴로움속에 너무도 깊이 빠져있었던것이다.
오늘 저녁도 남편이 여느때없이 기분이 썩 좋지 않아 퇴근해왔으나 성실은 가정부인으로 늘쌍 집안일을 팽가치고 시험포전들에 나가 객지생활을 한 죄스러움밖에 다른것을 느끼지 못했다. 남편에게 성실이란 존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였다. 성실의 출장이 잦은탓에 아이들도 어머니의 떠살이생활에 치워 활짝 피지 못한다. 성실은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모르고 자라는 그애들이 가엾어 어느 하루도 마음이 홀가분할 때가 없다. 그런대로 무던한 남편을 만나서 여태껏 아무런 말썽도 없이 가정의 화목을 유지해왔는데 몇해동안 뼈심을 들여온 연구사업을 중단하게 됐으니 남편과 아이들을 볼 면목이 있는가? 이날도 근 두달만에 집에 들어선 성실은 저녁상을 너무 허술히 차릴수 없어 타개죽이나마 푸짐히 떠놓고 앉았으나 차마 숟갈을 들지 못했다.
그가 말없이 혼자 조용히 눈물을 머금는 모양을 유심히 지켜보던 남편이 빈털터리 홀아비살림에 어디서 났는지 꽁무니에 손을 찔러 술 한병을 꺼내놓으며 심드렁히 물었다.
《당신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요?》
성실은 애간장이 말라 얼른 대답을 못하고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무 일도 없다는 사람의 얼굴이 왜 그렇소?》
성실은 저녁상이나 물리고 자세한 내막을 말하려 했으나 남편이 욱박지르는 바람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저한테야 뭐 다른 일이 있겠어요. 늘쌍 농업위원회 과학기술국 일부 일군들때문에 애먹는걸요. 한주일째나 매일같이 리미액이 전망이 없다면서 당장 중지시켜야 한다고 과학원에 전화가 걸려온다는데 정말 성가스러워 더는 못 견디겠어요.》
《보자보자하니 정말 그 사람들이 못되겐 노누만. 여보. 과학기술국에 나쁜놈이 엎데있는게 아니요?》
워낙 고지식한데다 량심이 곧은 남편이 한바탕 걸죽히 욕사발을 퍼붓고나서도 성차지 않는지 안해를 나무람했다.
《하긴 당신도 떨떨해. 여기서는 리미액이 농사에 효과가 있다고들 소문이 도는데 당신은 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만날 두드려맞기만 하오. 당신이 죽기내기로 연구사업을 하는게 자기의 공명과 명예를 바라기때문이요? 그런데도 어째서 당신을 개밥에 도토리처럼 천대하는지 의심스럽단 말이요.》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저를 도와나선 희천미생물공장 지배인은 일부 일군들로부터 시비를 들었고 사날전엔 저의 연구사업을 조력하던 동무가 애매한 피해를 당했어요. 갑자기 연구소의 호출을 받고 올라가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저의 연구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일군과 맞서 언쟁을 벌렸다질 않겠어요. 그날로 연구소에서 쫓겨났어요. 저의 연구사업을 적극 지지하는 동무이니 눈꼴사납게 여기다가 구실을 잡아 쫓아낸거예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예요.… 저도 돌심장이 아닌데 물러나겠어요.》
《그건 무슨 소리요. 이제 와서 연구사업을 그만둔단 말이요?》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나서 결김에 소주를 고뿌에 부어 맹물마시듯 꿀꺽꿀꺽 들이켰다. 성실은 남편을 속이 한줌만 해서 바라보았다. 술에 약골인 남편은 안주도 없이 화김에 강술을 마시고 대뜸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씨근거리며 써레기를 손가락같이 두툼히 말아 물었다. 삽시에 남편이 연방 내뿜어대는 지독한 담배연기가 좁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아이들은 울음이라도 터뜨릴것처럼 겁에 질려 오돌오돌 떨면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여보. 재작년 농업과학원에 들리신
《그건 당신 생각이구. 농업위원회 과학기술국에선 매일과 같이 연구소일군들을 쑤셔대며 완강히 반대하지 않아요?》
성실은 남편을 애끓게 쳐다보며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토막토막 끊어지는 소리로 안타까이 말했다.
《당신까지 이러면 어떻게 해요? 전 그저 죽고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에익! 누군 똥집이 편해서 당신한테 이따위 훈시질을 하는줄 아오?》
남편은 상우의 술고뿌를 부셔뜨릴것처럼 우악스레 꽉 움켜잡았다. 고뿌의 술이 한절반 쏟아져 힘줄이 시퍼렇게 울뚝불뚝 살아오른 그의 손등으로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평시의 유순하던 남편이 두눈을 뚝 부릅뜨고 노려보는 바람에 오싹 소름이 돋힌 성실이가 다가들어 남편의 손아귀에서 고뿌를 빼앗으려다가 깜짝 놀랐다.
《걷어치우오!》
남편은 성실의 손을 매정하게 홱 뿌리쳐버리며 그냥 기염을 토했다. 도수가 넘게 술을 마셨지만 그의 입에서는 취중의 말이 아닌 대바른 소리가 울분에 뒤섞여 가슴을 치며 거침없이 울려나왔다.
《내 말을 똑바로 듣소. 난 누구보다도 당신을 잘 아오. 당신은 리미액연구사업을 관두면 두번다시 과학연구사업을 못해. 과학자로서의 당신의 인생은 이것으로 끝장나고 마오. 당신은 살아있어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이 된단 말이요.》
성실은 남편의 말에 담겨있는 진실을 부정할수 없었다. 내가 리미액연구에 미련을 둔채 그 누구의 강요에 못이겨 다른 새로운 연구과제를 맡아할수 있는가? 과학자의 심장과 열정이 식어버리면 어떤 재능도 저절로 죽어버리기마련이다. 그 엄연한 리치를 번연히 알면서 자기의 피땀과 넋이 스며있는 리미액연구사업을 포기할수밖에 없는 성실은 절망의 벼랑끝에 나선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밥상우에 이마를 떨구고 고통스럽게 앉아있던 남편이 때마침 흐릿한 눈길을 들면서 《우리 집안일은 풍전등화로구나!》 하고 장탄식을 했다.
성실은 아무리 남편이 기가 죽어 락심한 소리를 해도 다 자기때문에 벌어진 일이기에 눈가장이 발깃해서 입을 봉하고있다가 애타게 말했다.
《여보. 이젠 좀 쉬세요.》
남편도 한동안 피대를 돋구며 성풀이를 하고는 어지간히 지쳐버린 사람처럼 상머리에서 물러앉으며 무거운 한숨을 몰아쉬였다.
《난 당신한테 하고싶은 말을 다 했소. 당신은 과학원에 밥탁을 둔 사람이니 평양으로 올라가겠으면 가오. 당신이 과학원으로 올라가도 난 공장에 남아서 자동선을 완성해야 할 사람이요. 결국 우리 가정은 두동강이 난단 말인데 그건 걱정할것 없소. 내가 여기서 아이들을 데리고 살겠으니 당신은 맘 놓고 가란 말이요!》
성실은 자기를 문밖으로 내동댕이치는것 같은 남편의 말에 얼혼이 나간 녀인처럼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말 못할 안타까움에 휩싸인 그의 마음은 매운 재라도 뿌린것처럼 아리고 쓰리여났다. 아직은 한창 나이인데 내 인생은 왜 이다지도 기박한가? 성실은 남편과 생리별을 하나 다름없는 서러움에 마침내 눈물이 왈칵 솟구쳐올라 얼른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는 등잔불도 없는 캄캄한 부엌바닥에 쪼크리고 앉아서 속상한김에 소리를 죽여가며 실컷 울고난 후에야 방으로 들어가 남편의 잠자리를 펴주었다. 그리고는 자기도 아래목에 두 아이를 끼고 숨 죽은듯이 누웠다가 밤 열시가 되자 살그머니 일어나 역으로 나갈 차비를 했다. 더 남아있었대야 집안의 기분이나 흐려놓을뿐 좋을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과학원으로 올라가야 할 몸인데 밤차를 타고 조용히 떠나기로 마음먹은것이였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오겠는지?… 앞일을 기약할수 없는 길이였다. 성실은 망연한 눈길로 잠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측은히 내려다보았다.
요즘 뉘집이나 할것 없이 살림살이형편이 어려운 때에 아이들을 남편한테 맡기고 떠나자니 성실의 마음은 칼로 저미는듯 아팠다. 아마 하루
한끼쯤 번지는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거야. 그 뻔한 내속을 번연히 알면서 과학원으로 올라가려고 결심한 자기라는
5
(1)
스위스에 파견된 기술자대표단성원들은 조국을 떠난지 열흘만에 예정한 날자보다 앞당겨 귀국할 자기들의 의향을 전신으로 당중앙위원회에 보고해왔다.
대표단의 긴급통보를 받은 즉시 문성태비서가 전신내용을 들고
문성태가 여러권의 두툼한 서적들과 문건들이 가려있는
대표단이 무슨 일로 갑자기 일정을 변경하여 돌아오려고 하는지 전신지우의 짤막한 글줄만으로는 내막을 알수 없어 그들의 대외활동에서
제기될수 있는 문제들을 여러가지로 추측해보시였다. 그러나 스위스가 유럽의 오랜 영세중립국이고 순수 그 나라 참관을 목적으로 떠난것만큼 대표단이
중도에서 돌아올만 한 리유가 없었다. 손에 드시였던 전신지를 책상우에 놓고
《내가 전쟁때 동무들을 잃어버릴것 같아서 엄지닭 병아리를 품듯 했는데 이렇게도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다니… 동문 내곁에서 떠나지 말아야 할 사람같소. 내가 좋은 병원을 알선해줄테니 우선 한 반년가량 가서 몸보신하며 병을 뚝 떼고 오라구. 새 과업은 그때에 주겠소.》
태혁은 이튿날로
그러나 입원한지 한달도 못되여 《푸에블로》호사건이 터지고 조국이 전쟁의 위험에 직면하자 병원을 뛰쳐나와 평양으로 달려온 태혁의
두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그날의 열혈전사, 태혁의 억센 모습을 잠시 눈앞에 그려보시고나서
《문성태동무, 동문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오?》
《좋습니다. 대표단이 요구하는대로 답전을 보내시오.》
이튿날 오후 3시, 대표단이 탄 려객기는 정시에 회백색동체를 번쩍이면서 비행장에 착륙하였다.
이어 대표단성원들을 태운 승용차들은 비행장구내를 벗어나 순안ㅡ평양사이의 도로를 따라 쾌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날 하루 출장기간의 피로를 풀겸 휴식하기로 되여있어 시내에 들어서자 서로 다른 로선을 따라 뿔뿔이 흩어져갔다.
태혁이만이 려관에 행장을 풀어놓고 한참이나 거울앞에서 옷매무시를 바로잡은 다음 지체없이 당중앙위원회로 향했다.
이번 해외출장기간
《반갑소! 여기 앉으시오.》
태혁이가 자강도에서 올라온 그때처럼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귀중한 체험은 금주고도 사지 못합니다. 동무들이 출장기일을 앞당겨온 심정이 리해됩니다. 이번에 리성하부부장동무도 대표단에 망라되여 그것을 느꼈을겁니다.》
《내가 리성하부부장의 문제를 중요시하는건 그가 앞으로 전국적인 발전소건설을 책임지고 내밀 일군이기때문입니다. 자강도에서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끼는 전투도 어렵지만 그에게도 무거운 과업이 지워져있습니다.》
《나도 그랬으리라고 생각하오.》
태혁은 순간 자기의 어깨우에 얼마나 무거운 책임이 얹혀있는가를 깨닫고 숨김없이 말씀드렸다.
《자강도공장들이 거의 다 섰는데…
《공장들이 섰다.ㅡ 그렇지만 거기엔 사람들이 있지 않소. 로동계급말이요.》
태혁은 그만 뗑해지고말았다.
《〈강계싸움대장〉인 최덕삼과 덕순, 희천의 기술자들도 있고 주병호지배인과 장강군당책임비서 김충모,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 장관우와 같은 끌끌한 일군들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이야 나도 동무와 같지. 우리에게 무엇이 있소. 그러나 난 인민을 믿고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안변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이 발휘한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자강도로동계급을 불러일으키시오. 우리에게는 그보다 위력한 힘이 없습니다. 난 우리 인민과 함께라면 그 어떤 강적과도 싸워이길수 있다는 배심을 가지고 오늘의 난관을 이겨가고있습니다.》
태혁은 갑자기
태혁의 눈시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 그 동무도 자강도에 있지.》
《성실동문 멀지 않아 자강도의 척박한 땅에서도 알곡수확고를 훨씬 높일수 있는 효능이 높은 리미액을 내놓게 됩니다.》
《지금 일본과학계에서 새로운 미생물을 개발하고 일확천금을 하고있는데 성실동무가 큰 마음을 먹고 그들과 겨룰수 있는 리미액을 연구하면
대단합니다. 난 그러한 놀라운 기적이 자강도에서 일어나고있는것을 더없이 만족하게 생각합니다. 자강도의 발전소건설도 그처럼 로동계급을
불러일으켜 냅다 미시오. 사람들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 어려운 고난의 시기
태혁은 호기있게 대답올렸다.
《그렇다.ㅡ 과시 태혁동무다운 말이요. 10년전 운성에 내려가서 기계공장을 일떠세우던 억대우지배인을 다시 보는것 같소.》
《아직도 눈에 선하오. 모두들 강태혁이 펄펄 난다지만 운성에 내려가면 평양으로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던 일이… 한데 동무가 지배인으로
내려가자 일년열두달 계획을 못하여 뚜드려맞던 운성기계가 꽝꽝 소리치며 계획을 넘쳐수행하지 않았소? 태혁이
태혁은 그때 운성광산기계공장이 국가계획을 못하는 문제가 정무원 중공업부 책임일군인 자기의 사업태만에 원인이 있다는 허위자료가 제기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속에서 불이 확 일군 한다. 워낙 특급기업소이다보니 운성광산기계공장의 생산문제가
공장의 한심한 실태를 빤드름히 알고있는 태혁은 머리우에 벼락이 떨어지는것 같았다. 아무리 날구뛰는 재간이 있어도 엉망진창이 되여버린 공장을 일떠세울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태혁이가 다시 솟아나겠느냐고 진심으로 걱정했다.
회의가 끝났으나 기가 푹 꺾인 태혁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남들이 회의장에서 밀려나간 후에도 그는 여전히 까딱 않고 혼자
앉아있었다. 잠시후 텅 빈 회의장의 바닥을 울리며 누군가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시르죽은 얼굴로 무거운 한숨만 내쉬던 태혁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태혁동무, 동무도 가슴아프겠지만 회의를 마치고 휴계실로 나오신
태혁은 목이 콱 메여 아무말도 못했다. 그날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