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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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창건이후 38도선은 단순한 위도선이나 쏘미주둔군의 관할경계선으로서의 본래의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나 유사시의 전선지대로 화해버렸다.
올해 봄 《5. 10단독선거》를 조작한 미제와 리승만괴뢰역적은 련이어 《대한민국》이라는것을 선포하였고 며칠후에는 이미전에 존재하던 《조선경비대》를 골간으로 하여 정규무력으로서의 괴뢰국군을 편성하는 한편 《통위부》를 《국방부》로 개편하였고 《대한청년단》, 《서북청년단》같은 반군사조직의 인원들까지 대대적으로 늘이고있었다. 《북진하자!》는 구호가 괴뢰군병영의 가는 곳마다에서 울려퍼졌고 그에 따라 38도선에서의 무장충돌사건도 더욱더 빈번해졌다. 그러다나니 룡당포에서 발생한 어제 저녁의 무장충돌사건 같은것은 매일같이 그와 같은 보고를 받고있던 내무성 부상 방학세에게는 별로 특별한 놀라움을 자아내는 일은 아니였다. 그래서 방학세는 처음에 내무상이 왜 그렇게 격분해하는지 인차 리해할수 없어 고개를 기웃하기까지 했었다.
부름을 받고 방음장치가 된 두툼한 문을 열고 내무상의 방에 들어갔을 때 방학세는 자기를 향해 비수같이 날아와 꽂히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방학세는 《안녕하십니까, 상동지?》하고 경례를 붙이며 인사부터 했다. 그러는 그에게 내무상 박일우는 책상우에 있던 얄팍한 서류를 던지듯이 내밀어주었다.
《동무도 이걸 보았소?》
방학세는 저 문건에 상하간에 오가는 초보적인 인사말마저도 잘라버려야 할 어떤 리유가 적혀있겠는가 궁금해하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3경비려단에서 올려보낸 어제 저녁의 룡당포무장충돌경위에 대한 보고서였다.
바로 사건당일날인 어제 아침에 쏘미공동위원회 대표라고 하면서 38도선을 넘어 해주로 들어가려고 하던 미군장교와 하사관을 변익수라고 하는 그곳 경비대원이 단속해놓고 이것저것 조사를 해보다가 나중에는 무기까지 꼬나들고 쫓아버렸다고 한다. 결국 그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놈들이 괴뢰군무장악당들을 시켜 아군초소에 사격을 가해왔다는것이였다. 사실이 그렇다면 물론 격분할만 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방학세는 내무상의 분노가 자기가 생각하던것과는 다른 곬에서 흐르는것이라는것을 차츰 깨닫게 되였다.
《그래 부상동무는 그것을 보고 뭘 좀 생각되는게 없소?》
《네, 제가 현지에 내려가보고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변익수라는 그 풀메뚜기같은 경비대원을 단단히 처벌해야겠소. 그냥 스치고 넘어갈 일이 아니요.》
《이자 뭐라고 했습니까? 누굴… 처벌한다구요?》하고 방학세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도발자인 미군이 아니라 우리 경비대원을 처벌하라는 바람에 신경이 바싹 긴장되였던것이다.
《이제 보니 동무도 같고같구만. 한 나라의 내무성 부상이라는 사람이 정치적감각이 그렇게 무디여서야 되겠소? 그래 쏘미공동위원회 성원들을 그렇게 쫓아버리면 어떤 정치적후과가 차례질지 그렇게도 짚이지 않는단 말이요?》
방학세는 그제서야 내무상이 무엇때문에 저렇게 흥분했는지 짐작이 갔다.
미군이 오늘까지도 38도선출입의 합법적인 구실로 내들고다니는 쏘미공동위원회란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쏘, 미, 영 3국외상회의결정에 따라 조선에서의 림시정부수립을 위해 북조선주둔 쏘련군사령부와 남조선주둔 미군대표들로 구성되였던 림시협의기구였다.
때문에 박일우는 이번 사건으로 하여 쏘미사이의 외교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수도 있고 그것이 궁극에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에까지 저애를 줄수 있다는데 대하여 암시하고있는것이였다. 아니, 그저 암시에만 그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지금이 어떤 때요? 쏘련에서는 이미 북조선주둔 쏘련군의 철거에 관한 우리 정부의 요청을 수락하고 붉은군대의 철수준비를 다그치고있고 미국에서도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 미군을 철수시키게 되오. 쏘미량군의 철수는 조선민족의 자주권을 실현해야 한다는
박일우는 계속하여 3경비려단을 책임진 최현려단장에게도 주의를 줄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오랜 빨찌산출신 지휘관이라고는 하지만 그에게도 정치적감각은 결여되여있고 그래서 아래단위 지휘관들과 대원들도 제대로 교양하지 못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최현려단장까지 비난하는 소리를 들으니 방학세는 속이 좋지 않았다.
그는 이미전부터 최현을 존경하고있었다. 비록 최현이 자기처럼 대학공부를 한것도 아니고 군사칭호상으로도 낮은 지위에 있지만 그대신 그는
그는 박일우가 또 뭐라고 하는것을 더는 듣고만 있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동지.》
방학세는 들고있던 서류를 박일우의 책상앞으로 밀어놓으며 권하지도 않는 걸상을 꺼내 무겁게 앉았다.
《미군이 우리의 눈치를 보고 철수하고 말고 하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구실을 준단 말이요, 구실을! 정치란 바람계와 같은거요. 자그마한 바람결에도 순식간에 방향이 달라지는 바람계와 같은것이 바로 정치란 말이요. 정치를 알아야 하오, 정치를!》
방학세로서는 말끝마다 정치, 정치 하는 박일우의 주장에 공감할수가 없었다. 어떤것이 정치란 말인가.
한 나라의 내무성 부상이라는 중책을 지닌 방학세에게도 정치에 대한 자기딴의 견해가 있었다.
해방직후 우리 나라에서 두차례에 걸쳐 진행되였던 쏘미공동위원회의 교훈이 바로 제국주의정치에 대한 그의 견해를 확고하게 정립해주었던것이다.
그때 미국놈들은 쏘미공동위원회를 기회로 평양과 서울을 자유롭게 오가며 38도선 이북지역에 제놈들의 세력을 부식시키고 그렇게 규합한 반동분자들로 여러가지 파괴암해활동을 감행하였다.
해방된 이듬해인 1946년 3월 3. 1운동 27주년경축대회장에서
대동교(당시)에서 근무를 서고있던 내무원 한명이 속도안전규정을 위반하고도 미친듯이 차를 몰아 달아빼려던 미국대표부차를 위협사격까지 하면서 멈춰세우는 사건이 발생하여 물의를 일으킨것도 그때 벌어진 일이였다.
그때에도 지금의 내무상처럼 적지 않은 일군들이 벅적 떠들며 사건의 장본인인 내무원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해나섰었다. 심지어 쏘련대표부에서까지 그 사건을 불쾌하게 생각하며 은근히 나무람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던 어느날 북조선인민위원회 책임일군들의 협의회를 지도해주시던
그때는 방학세가 이미 쏘련에서 귀국하여 내무국 부국장사업을 하고있을 때여서
쏘련에서 대학을 나오고 거기서 감찰, 정보사업을 진행해오던 방학세가 조국으로 돌아온것은 46년도 3. 1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몇달이 지나서였다. 방학세는 쏘련의 여러 부문에서 일하다가 귀국을 청원한 30여명의 인원들을 인솔하는 대렬책임자의 자격으로 조국에 나오게 되였었다.
쏘련의 해당 기관에서는 방학세에게 귀국하는 사람들을 인솔하여 평양에 데려다주고는 인차 돌아오라는 지시를 주었다.
그즈음 쏘련에서는 조국이 해방된 소식에 접한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너도나도 귀국을 청원하던 때여서 자칫하면 능력있는 실무가로 인정받고있던 방학세까지 평양에 떼울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던것이다. 그래서 처자들도 데려가서 다문 얼마간이라도 함께 있다 오고싶다는 방학세의 의견은 묵살되고 대렬인솔자의 명분으로 된 그 혼자만의 려행이 겨우 승인되였다.
려행… 제 나라 땅을 쏘치의 해수욕장에 휴가를 받고 잠간 다녀오듯이 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조국에 가는 길인것이다. 항일대전의 그 시절부터 그 이름을 전설처럼 듣군 했던 영명하신
렬차를 타고 조국에 온 방학세와 그의 일행은 며칠동안 휴식을 하고 드디여
쏘련제 가죽외투를 입고 승마바지에 목이 긴 가죽장화를 받쳐신은 방학세는 모여온 여러 사람들중에서 그중 표가 나리만큼 젊었었다.
그들이 소회의실에 앉아
사람들은
그러다가 누구의 이야기에서인지 3월에 있은 역전광장 테로사건에 대한 소리가 불쑥 튀여나왔다.
방학세는 쏘련을 떠나기 전에 그 사건에 대하여서와 그때 몸으로 수류탄을 덮은 붉은군대 군관 야꼬브 노비첸꼬에 대하여 들은적이 있었으나 정작 그때 일을 당했던 체험자의 말을 듣고보니 금시에 속이 얼어드는듯 했다. 그리고 까닭모를 수치심 같은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보고나서야 깨닫고 저도 모르는 한숨을 좌중에 끼얹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때 우리 보안대원들은 뭘하고있었는가. 다른 나라 군관이 수류탄을 몸으로 덮을 때까지 기다리고있었단 말입니까?》
순간 좌중의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물을 뿌린듯 삽시에 가라앉았다.
사람들의 민망스러운 눈길이 모두 방학세에게 집중되였다.
강건너 불보듯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건이 벌어질 때에는 중앙아시아의 어느 안침진 건물안에서 펜대나 주무르고있던 사람, 그것도 사람들을 넘겨주고는 인차 쏘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30대 초엽의 젊은이가 끼여들어 주인들을 비난하는것이 누구에게든 신경을 자극하지 않을수 없는것이였다.
방학세는 뒤늦게야 자기가 얼결에 실언을 했다는것을 깨달았지만 겉으로는 처녀처럼 눈을 새초롬히 내리깔고 입술을 꾹 앙다물기만 했다.
그런데 이때 넓게 벗어진 이마때문에 용모가 한결 준수해보이는 그 빨찌산지휘관이 방학세의 혈기왕성한 얼굴에 구멍이라도 뚫을듯 그냥 시선을 박은채 슬그머니 손을 당겨잡는것이였다.
《이름이 뭡니까?》
표정과는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방학세라고 합니다.》
《난 김책이라고 합니다. 동무앞에 면목이 없습니다.》
김책은 방학세와는 달리 자기가 아직도 살아있는것이 정말 부끄러운듯 목덜미까지 벌그레하게 물들였다. 그제서야 방학세도 당황한 기색을 더는 감추지 못했다.
《아… 이러지 마십시오. 생각없이 한마디 한것때문에 분위기가 흐려졌으니 도리여 제가 죄송합니다.》
《동무는 이제 쏘련으로 돌아가야 한다지요?》
《…》
방학세는 가장 아픈 곳을 찔리우는 바람에 눈살을 찌프리며 대답을 못했다.
《방학세동무, 내 오늘 이 자리에서 동무에게 결단코 약속합니다. 이제 다시 그런 수류탄이 날아든다면 조국에 있는 우리모두가 철의 방패가 되여
《네?!》
방학세는 차츰 근엄해지는 김책의 적동색얼굴을 긴장하여 바라보았다.
《그렇소. 오늘 동무가 중요한 문제를 깨우쳐주었습니다. 자기 민족의 령수는 자기
김책의 이 한마디 말에 방안의 공기마저 조심히 가라앉는듯 했다. 바로 거기에는 부정할수 없는 진리와 새로 일떠선 조선민족이 헤쳐나가야 할 준엄한 투쟁의 최종목적이 비껴있었던것이다.
이날 밤 방학세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고 날이 샐무렵까지 베개를 궁싯거렸다.
장내에 만세의 함성이 메아리쳤지만 방학세만은 만세를 부르지 못했다.
뵈온지는 불과 몇분밖에 안되지만 그사이
새벽녘에 잠간 잠이 들었던 방학세는 꿈에서 또다시 김책이 하던 말을 상기하고 소스라쳐 깨여났다.
《자기 민족의 령수는 자기
그런데… 그런데 나는 누구더러 지켜달라고 하려는것인가. 나 역시 조선사람이 아닌가. 안팎의 정세로 말미암아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고비를 겪어야 하는
방학세는 그 자리에서 돌아눕다가 아예 엎드리고는 베개를 뭉그려 턱밑에 밀어넣었다.
(노비첸꼬는 찬양할만 한 영웅이다. 그는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레닌이 일떠세운 사회주의쏘련에서 자라며 소년품팔이군으로부터 붉은군대의 지휘관으로 자라나고 꼼무나생활과 준엄한 전쟁의 불길도 헤치며
방학세는 로씨야에 흔한 교회당들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있다면 그가 지금 자기에게 조국에 남아
자리를 차고 일어선 방학세는 숙소의 창문을 활 열어젖히고 별들이 반짝이는 맑은 밤하늘을 내다보았다. 조국은… 별들마저 더 선명하고 더 아름다운듯 했다.
이튿날 방학세는 김책을 찾아가 조국에 남으려는 자기의 의사를 정식 표명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 민족을 해치려 하는 미제와 계급적원쑤들과는 마지막까지 철저해야 하며 그 어떤 양보나 아량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것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새기게 되였던것이고 룡당포의 무장충돌사건을 놓고 운운하는 박일우의 정치관에 대하여서도 공감할수가 없었던것이다.
《난 상동지의 주장을 납득할수가 없습니다. 도적은 누구이고 주인은 누구인데 누구를 처벌한다는겁니까? 절대로 그럴수 없습니다.》
방학세의 어조는 단호하였고 자기의 주장을 절대로 굽히지 않으려는 맵짠 기운을 한껏 내풍기고있었다.
일단 자기 주장을 한번 세우면 절대로 굽히지 않는 방학세의 성격을 잘 아는 박일우는 한동안 거친 숨을 내쉬며 매섭게 노려보기만 하다가 그가 보는 앞에서 전화를 끄당겨 경비처장을 찾았다. 그리고는 한껏 위엄을 돋군 어조로 이번 룡당포충돌사건의 중심인물인 3경비려단 1대대 부소대장 변익수를 엄격하게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다음은 방학세에게 당신은 돌아가서 쉬라고 짤막하게 일렀다.
방학세는 인차 상의 방을 나섰지만 그의 말처럼 《쉬고》싶은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었다. 처음 계획했던대로
그러나 한시간이 지난 후 그는 볼일이 있어 내각으로 갔다가 김책부수상으로부터
방학세가 과묵하고 엄격하다고 하지만 그에 비할바없이 더 과묵하고 엄격한 김책은 좋지 않은 눈길로 쏘아보며 도대체 그곳에 가야 할 사람이 동무네들인가 아니면
방학세는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자기가 내무상과 책상을 마주하고 갑론을박하는 사이에
어쩐지 짓지 말아야 할 죄를 진것 같은 무거운 감정이 속을 짓누르는것과 동시에 열물같이 쓰거운것이 솟구쳐올라 입안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