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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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의 가을이였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물론 귀전을 스치는 바람결이며 흐르는 강물우에도 며칠전에 있은 공화국창건의 희열과 환희가 그대로 남아있어 매일같이 호흡하는 공기마저 별스럽게 달고 쩡하게 느껴지는 초가을이였다.
아직은 신생공화국의 첫 기슭에 어떤 언덕들이 가로막아설지 알수 없고 헤쳐나가야 할 무수한 난관과 뼈아픈 희생이 또 얼마나 있겠는지 누구도 몰랐으나 미지의 앞날에 대한 근심에 사로잡히기에는 오늘에 흘러가는 하루하루의 희열이 너무도 벅차고 뜨거운것이였다.
천지를 진감하던 9월 9일의 환호소리, 하늘높이 솟구쳐오르던 국기의 퍼덕임소리와 우주를 꽉 메운듯 한 애국가의 울림소리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여운으로 도시와 마을의 가없는 공간속에 녹아붙어있는듯 했고 그래서 그것이 누구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현악기의 금선처럼 튕기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듯 했다.
그러나 그처럼 아름다운 선률을 마련해주신
《미군 조선에서의 철퇴, 조선의 미군 인천기지로부터 상선준비 완료, 병사들은 콘드라바스를 어깨에 메고 계속 올라타고있다, 미군은 공화국(리승만의 《대한민국》을 의미함)의 성립후 조선을 떠나가고있다.》
이것은 남조선에 주재하고있는 AP통신이 인천항에 정박한 저들의 함선에 오르는 미군병사들의 사진을 소개하며 보도한 해설문의 한 대목이였다. 리승만의 동향에 대한 보도자료들도 있었다.
《1948년 9월 18일, 북조선주둔 쏘련군의 철거에 관한 쏘련정부의 성명과 관련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리승만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언명. 〈로씨야사람들은 옳은것을 하고있다. 그들이 옳은것을 하는 한 우리도 협력할것이다. 로씨야사람들이 완전히 군대를 철퇴한다면 조선사람은 내란없이 자기
《〈대한민국〉의 성립으로 해체된 미군정 장관 하지 서울을 떠나 비행기로 동경에 도착. 미군이 앞으로 〈한국〉에서 철퇴하게 되는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침묵으로 대답.》
원래 조선에서의 쏘미량국의 군대철수는 이미전에
사실 미군이 철퇴하는가 마는가 하는것이 단순한 문제같아보여도 오늘의 조선이 처한 실정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관건적인 문제였다. 이 문제에서 한순간 정세판단을 잘못하면 앞으로의 당과 정부의 로선수립에서 과오를 범할수도 있고 그렇게 되는 경우 차례질 후과는 돌이킬수 없는것이였다.
그리하여
문득
《웬일들이요?》
제일 나중에 산업상을 겸임하고있는 내각 부수상 김책이 저 못지 않게 허우대가 큰 민족보위성 부상 김일의 뒤를 따라 자기는 마치 어쩔수없이 끌려왔다는 식의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고 재차 물으시였으나 김책은 《
이때 제일먼저 들어온 총참모장 강건은 뒤늦게 들어선 김일과 함께 묵직한 보따리같은것을 들고 현관쪽으로 내처 다가가 누군가를 찾는듯 분주히 두리번거리고있었다. 그러다가 뒤울안에서 나오시는
지금은 1948년의 9월, 오랜 세월 항일의 전장을 함께 누벼온 전우들끼리 모여앉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경축하자고 언제부터 제기를 해오던 이들이였다.
그러는것을 일이 바빠 차일피일 미루어오시였는데 아마 이러다가는 이해가 다 지나갈것 같은 우려가 부쩍 들었는지 자기들끼리 무슨 공론을 하고 이렇게 거의 기습적으로 저택에 찾아온것이 분명했다.
물론 공화국창건을 경축하는 공식적인 연회석상은 이미전에 마련되였었지만 항일의 눈보라를 함께 헤쳐온 투사들끼리 모여앉아 그간의 회포를 마음놓고 풀고싶은것이 누구에게나 자리잡고있는 동심같은 욕망일것이다.
(그래… 지금껏 난 저들에게 일만 시켜왔지. 언제한번 시름을 놓고 모여앉아 웃고 떠들어본적이 없었어. )
(허… 이렇게 들이닥칠줄 알았으면 뭘 좀 준비라도 시키는건데…)
다행히도 누구인가 보따리속에 꿩을 몇마리 가져온것이 있어 그것으로 육수물을 만들어 랭면을 하기로 했다.
한동안이 지나
문득
사실 20년간의 항일혁명투쟁과 3년간의 민주건설과정을 거쳐 드디여 자주적인 우리의 국가를 창건했으나 그 내각기구안에서 책임적인 위치에 앉은 빨찌산출신이라고는 부수상 김책과 민족보위상인 최용건밖에 없었다.
잔마다 맑은 액체가 부어지고 좌중의 년장자라고 할수 있는 김책이 내각수상이고 국가수반이신
그 순간
이날에 이르는 장구한 혁명투쟁의 길에서 헤쳐넘어야 했던 허다한 시련의 나날들과 그 과정에 오늘을 보지 못하고 희생된 동지들의 생각이 사무쳐왔던것이다. 김혁, 차광수, 최창걸, 오중흡 등 항일전의 나날에 희생된 못 잊을 동지들의 모습과 해방된 조국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이역의 황야에 묻힌 박락권이며 군건설과정에 잘못된 안길의 모습들이 련이어 떠오르시였다.
오늘날에 와서 그들이 모두 살아있다면 새로 창건된 공화국정권에서 천사람, 만사람의 몫을 대신하여 어렵고도 영예로운 직책들을 굳건히 떠메고나갈것이다.
문득
그들의 모습들을 보느라니 한결 마음이 안정되고 든든해지시였다. 바로 이런 미더운 동지들의 고귀한 투쟁과 희생의 대가로 드디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명예롭고 존엄있는 국가가 수립되였다. 민족의 장래와 인민의 운명을 떠받쳐주는 든든한 기반이 마련된것이다.
그러니 우린 희생된 렬사들앞에 부끄럽지 않다. 못다 산 그들의 인생을 살아있는 우리가 책임적으로 대신해주고있는것이 아닌가. 우리들만이 아니다. 홍명희, 허헌, 허정숙, 정준택, 방학세 등 국내와 해외에서 각이한 길을 걸어온 수많은 일군들도 우리와 함께 희생된 렬사들을 대신하여 새 조선의 선두에 서있는것이다.
새롭게 도래한 이 시대는… 이제 얼마나 많은 영광과 행복, 번영의 력사를 아로새길것인가.
《동무들!》
《드디여 우리는 나라를 창건했소. 이제는 우리가 수십년동안 애타게 꿈꾸어오던 모든것을 다 이루었소. 조국으로 나올 때는 그렇게 아름차보이던 건당, 건군, 건국의 3대과업도 마침내 모두 수행했소. 그것을 위해 동무들은 산에서 싸우던 군복차림 그대로 언제한번 발편잠을 자보지 못하고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지. 이제는 나라도 세웠으니 이 나라를 더욱 부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꾸려나갑시다. 인민들이 먹을 걱정, 입을 걱정없이 평화롭고 자유롭게 사는 전설속의 리상사회를 현실로 펼쳐놓읍시다. 이것이야말로 맘먹고 해보고싶은 욕망을 한껏 불러일으키는 거창하고 보람찬 사업이 아니겠소. 자, 동무들! 그것을 위하여 모두 잔을 내기요.》
모두가
누구인가 이제는 나라도 창건했으니
당장은 먼곳보다 눈앞의 모란봉에 가는것이 더 좋다느니 양덕의 온천맛을 모르니 그런 소리를 한다느니 떠들썩한 론쟁도 벌어졌다.
아득히 흘러간 어린시절의 일이 떠오르시였다. 만경봉우에서 반짝이는 별무리를 보며 별찌가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하던 만경대할머님의 말씀이 생각나시였다. 그래서 그때
그리하여 오늘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였고 새 나라도 창건하시였다. 그길을 함께 헤쳐온 전우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으니 만시름을 잊게 되시였다. 그래, 이제는 그 시절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수 있지 않는가.
창가밑의 자그마한 탁자에 놓인 전화기가 울어댄것은 바로 이때였다. 떠들썩한 소음에 누구도 거기에는 주의를 돌리지 못했고 애당초 전화종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는듯 했지만
《어디라고? 내무성? 아, 박일우동무요?》
노래시작을 어느 좌석에서부터 뗄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 하는 바람에
《음, 방동무가 어떻게? 저녁식사는 했소?》
《네, 밤늦게 전화를 걸어 죄송합니다. 다른게 아니라… 오늘 오후에 38도선의 3경비려단방어구역에서 적들의 도발행위가 또다시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룡당포경비초소라고 하는데 접전끝에 우리측에서도 부상자가 생겼는가봅니다. 최근 2~3일어간에 그 일대에서만도 벌써 몇차례의 도발행위가 발생했는데 일이 심상치 않은것 같습니다.》
《38도선…》
마치 백년만에 처음 들어보는 단어인듯 하시였다.
그 정적속에서
《그래서? 계속하오.》
《더이상 보고드릴것은 없습니다. 다만 이번 룡당포에서 있은 도발사건에 쏘미공동위원회 미군장교들까지 개입했다는것입니다.》
《미군이? 쏘미공동위원회 장교라는건 또 어떻게 된 일이요?》
《그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통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것으로써 지금껏 즐거움에 넘쳐있던 좌중의 분위기도 끝장이 났다.
외무상의 통신자료들이 상기되시였다. 미군이 철수한다… 미군이… 그렇게 요란하게 소문을 내며 인천을 떠나간다던 미군이 38도선에는 왜 자꾸만 나타나 복잡한 정세를 조성시키는것인가?
결국 사색은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간셈이였다. 순간이나마 잊고계셨던 시름이 수십년간 쌓이고쌓인 피로와 함께 총공격해오는듯싶으시였다.
그래도
《허… 방금전의 기색들을 봐선 범이라도 한마리 잡아올것 같더니 영쭐난이들만 모여앉았나보구만. 좋소, 그럼 내가 먼저 노랠 부르지.》
…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
《사향가》를 부르시는
한사람, 두사람
페부에 차넘치는 조국애, 민족애의 열기가 일군들의 몸과 몸을 거쳐 이 크지 않은 방안에 꽉 들어찼다.
그렇다, 아직은 평화의 노래를 부르며 창조와 건설에 대하여서만 생각할 때가 아니였다. 나라의 부강도, 민족의 번영도 갈라진 땅, 갈라진 민족안에서는 존재할수가 없는것이다.
떠나가는 전우들을 바래주고 돌아서실 때
《사람이 소원을 이룬다는것이 쉽지 않구만.》
《38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