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서 장
2012년 3월.
손을 얼핏 스치기만 해도 파란 물이 묻어날것 같은 맑은 하늘에서 비둘기떼가 한가하게 날아예고있었다. 그 하늘아래 펼쳐진 아득한 들판을 꿰지르며 달리는 승용차행렬에서 유난히도 눈부신 해빛의 반사광이 휘뿌려진다.
주위는 고요하고 이따금씩 가벼운 봄바람이 조심스럽게 불어오군 했다. 멀지 않은 어디선가 뜨락또르의 탁한 발동소리가 들려와 농촌특유의 목가적인 정서를 보태주고있었다. 문화주택이 즐비하게 늘어선 마을과 평행을 이루며 뻗어나간 뚝길 한가운데서 새김질을 하고있던 황소 한마리가 이쪽을 멀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평화롭다못해 한가로와보이는 분계연선지구의 풍치였다.
《차를 세우시오.》
《여기가 어딘줄 아오?》하고 누구에게라없이 물어보기는 하셨지만 별로 대답을 기대하시는것 같지는 않았다.
누구인가 개성시 북서부라고 대답을 올리는데 그러면서도
《여기는 그저 개성이 아니라 38도선이요.》
《만져보오. 부드럽소. 화약내도 안 나고… 총정치국장동무의 아버님이 피를 뿌리면서도 50년 6월의 그 일요일까지 끝까지 고수했던 땅의 흙입니다. 최현동지는 그때 이곳을 방어하고있던 제3경비려단을 지휘하고있었지요.》
어디선가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지나간 시대에 삶을 보냈던 전세대의 자취가 그 바람결에 후덥게 실려오는듯 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등산을 하고 야유회를 하고 아이들이 원족을 가는 경치좋은 송악산의 웅자가 가까이 치솟아있다. 한때 피어린 싸움터였고 고난과 피로 새겨진 준엄한 투쟁사의 한 부분이 지심깊이 뿌리내려있는 송악산에도 계절을 가리지 않는 푸름이 자리잡고있어 아직은 쌀쌀한 초봄이지만 사람들에게 수려한 여름의 모습을 시사해주고있다.
《어떻습니까? 총정치국장동무, 내가 오늘 판문점에 나간다는것이 세상에 공개되면 적들이 뭐라고 할가요?》
《여간 긴장해하지 않을겁니다.
그렇다. 그럴수도 있을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민족의 희망과 삶의 전부로 우러러 따르던
《전쟁이 일어난다?》
이제 적들이 조선인민군
문득 며칠전 우리의 신문과 방송으로 전세계에 선포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번 〈키 리졸브〉, 〈독수리〉합동군사연습은 우리의 애도기간을 노리고 감행되는 불한당들의 용납할수 없는 전쟁광기이고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에 대한 참을수 없는 침해이다.
그것은 또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전면도전이며 로골적인 파괴행위이다. …》
사실 그것은 민족의 령수를 잃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누를길 없는 분노의 화산을 일으키는 선전포고라고밖에 달리 볼수 없었다.
《…우리에 대한 선전이 포고된 이상 우리 식 성전으로 맞받아나아가 민족의 안전과 나라의 평화를 지키자는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단호한 결심이다. …》
《…지금까지 우리는 높은 인내와 아량을 가지고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
그렇다.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라 장장 반세기에 걸치는 긴 세월을 그렇게 보내왔다.
그 오랜 세월 우리
그런데
《미제는 반세기이상 우리 민족의 가슴에 씻을수 없는 분렬의 한을 남기고도 모자라 또 한차례의 침략전쟁으로 〈미국식정치방식〉을 우리에게 강요하려고 달려드는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제의 반공화국전쟁책동이 강화되면 될수록 반미결전태세를 갖추고 무모한 군사적도발과 무력증강, 전쟁연습책동을 짓부셔버리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의 기본장애물인 미제침략군무리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한 강도높은 투쟁에 총진입할것이다. …》
봄이 꿈을 안고 깃든 잠풍한 날씨였다. 가볍게 불어치던 바람결도 사그라들었다.
뜨락또르의 발동소리, 황소의 영각소리, 비탈밭 한가운데 전주대에 매달린 고성기에서 울려나오는 《풍년가》의 노래소리…
밟고계시는것은 그저 땅이 아니라 민족분렬의 피어린 력사가 깃든 38도선의 옛 전선지대이다.
《이 땅에서 전쟁의 포성이 울린 때로부터 벌써 반세기가 지나갔습니다. 너무도 오랜 기간 이 땅의 력사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정전상태에서 흘러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오늘 전쟁을 위해서 판문점으로 나가고있는것이 아닙니다. 전쟁을 선포하는것은
문득 어느 영화에서 들었던 노래의 한구절이 떠오르시였다.
이제는 옛 전호에 탄피도 삭았으리
고지엔 산딸기가 빨갛게 익었으리
…
상기하기조차 괴로운 50년 6월의 일요일, 력사에 상처로 남은 그날을 생각할 때면 자연히
문득 어디선가
그러나
그것은 민족분렬의 력사와 함께 시작된 준엄한 결전의 길에 울리던 30대청년
나는 무엇때문에 이 길을 가는가? 적진과 마주한 판문점의 그 땅에서 무엇을 보려 하고 어떤 일을 하려 하는가. 그곳의 그 무엇이 이렇게도 발길을 끌어당기고있는가? 그 대답은 지나간 력사의 갈피마다 웅변으로 깃들어있을것이다.
다가오는 남쪽의 연연한 산발들도
그 수림과 산과 언덕들사이로 과거의 화약내와 철조망들, 포연이 서린 송악산에서 육박전을 벌리던 유명무명의 수많은 영웅들과 이 계선의 가는 곳마다에 박혀있던 38도선표말들이 어려온다.
판문점이 가까이 다가올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