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제 5 장 의서도적놈들
2
허준은 끊임없는 사색과 탐구의 과정을 거쳐 1편의 《내경편》과 2편의 《외형편》의 집필구성안을 세운데 이어 나머지 세편의 집필구성안도 마저 세울수 있었다.
제3편은 《잡병편》으로서 진찰법과 병의 원인을 쓴 다음 《내경편》과 《외형편》에 포함되지 않은 질병들과 산과병, 소아병에 대하여 서술하기로 하였다. 제4편 《탕액편》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흔히 쓰이고있는 고려약을 주기로 하였는데 그 수는 무려 1 400여종이나 되였다. 이 개개의 고려약에 대하여 그의 효능, 맞음증, 채취법, 가공방법을 주고 산지까지 밝혀주어야 했다. 실로 방대한 량이였다. 제5편은 《침뜸편》으로서 침놓는 법, 뜸뜨는 법, 질병에 따르는 침구치료방법 등을 주려고 하였다. 다섯개 편에 달하는 의서집필의 기둥을 세워놓으니 마음이 한결 개운하였다. 이와 함께 허준은 의서의 제목에 대하여 자못 큰 왼심을 썼다. 책은 이름이 잘되여야 하는것이다. 책의 이름에는 그 책의 서술내용의 알맹이와 저자의 넋과 뜻이 속속이 어려있는것이다. 어느날 허준은 설유에게 물었다.
《의서의 이름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긴 속눈섭을 슴벅이며 설유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글쎄. 의서의 이름을 어떻게 그리 가벼이 정할수 있겠나요? 좀 깊이 생각해보자요.》
허준은 근 달포째 또다시 의서의 제목을 놓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했다. 그러던 허준의 머리속에는 산음에 있을 때 류이태가 하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의서를 써도 보감이 될수 있는 의서를 써야 돼!》
(가만, 보감이라면 어떨가? 보배로운 거울, 그런즉 보배처럼 귀하면서도 거울처럼 본보기라는 뜻이렷다.… 의서로 놓고볼 때에는 매우 귀중한 본보기가 될만 한 책이라는 의미로 되지 않는가. 그렇다! 보감, 보감이라는 뜻이 참 마음에 들어. 그러면 의서의 취지가 명확히 안겨올수 있어. 이 의서가 의술의 모든 성과와 경험을 반영한것이니 기필코 의서의 보감으로 되도록 훌륭히 쓰리라.)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도모르게 흥분되였다.
《어서 빨리 들어오오!》
부엌에서 저녁때식을 준비하던 설유가 웬일인가 해서 들어섰다. 평시의 남편답지 않게 헤덤비는 허준의 기색을 의아해서 쳐다보며 설유가 다정히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왜 그리 흥분하세요?》
허준이 설유의 팔을 그러쥐며 열에 떠서 부르짖었다.
《찾았소. 의서의 제목을 찾았다 그 말이요.》
《예?!》
《<보감>! 어떻소? 보배처럼 진귀하고 또 본보기 의서라는 뜻에서 말이요.》
설유의 눈에 생기가 반짝거렸다.
《<보감>, 정말 멋있어요. 대찬성이예요. 어쩌다 그런 제목을 다 생각하셨어요?》
《일전에 선생님이 <의서를 써도 보감이 될수 있는 의서를 써야 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지 않겠소. 정말 선생님은 훌륭한 스승이시고 뛰여난 의학자요!》
설유가 격정과 흥분에 휩싸여있는 허준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더니 살며시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그저 허준의 높뛰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으며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쓸어만지고 또 만지였다. 그의 두눈에 행복의 맑은 눈물이 그윽히 고여올랐다. 설유의 동가슴이 뭉실 가슴에 와닿자 허준의 심장은 더 세차게 높뛰기 시작하였다. 허준은 말없이 설유를 꼭 껴안았다. 참으로 깨끗하고 순결한 두 넋이 하나가 되여 오래도록 방안에 굳어져버렸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아침상을 물리고 집을 나서는 허준에게 설유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그 제목말이예요. 그저 <보감>이라고 부르자니 뭔가 아쉬운 감이 들어요. 어딘지 명확치 않은 생각이 들어요.》
허준이 흠칫 하며 되물었다.
《뭐가 아쉽다는거요?》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어딘지 의서의 의미가 잘 안겨오지 않는것 같기두 하구 또… 하여튼…》
《알겠소. 내 좀더 생각해보지.》
허준은 자기의 뜻을 리해해주고 자기가 하는 일을 더 빛이 나게 해주려는 설유의 그 마음에 코마루가 찡해왔다.
그날 저녁이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허준을 뜨락에서 붙들고 설유가 생긋 웃었다.
《하루종일 제목을 생각해보았는데 보감이라는 말앞에 우리 나라 의서라는 뜻을 강조해주는게 어떻겠어요?》
《?!》
《이를테면 우리 나라는 해뜨는 동쪽에 위치한 나라이고 우리 나라 의술의 력사도 유구하다는 의미에서 그앞에 <동의> 라는 말을 덧붙이면 하는 생각이예요.》
허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가만, 이자 뭐이라고 했소?》
《의서이름을 <동의보감> 이라고 붙이면 좋지 않냐고 했어요.》
허준이 덥석 설유를 들어올렸다.
《그거요, 그거! <동의보감>! 정말 당신은 내 보감이요! 하하!》
너무 기뻐 허준은 설유를 부둥켜 안아올리고 뜨락을 빙빙 돌기 시작하였다.
《아이, 어지러워요! 그만하세요. 사람들이 보면 어쩔려구…》
설유가 종주먹으로 허준의 어깨와 잔등을 콩콩 때리며 아부재기를 쳤다.
《보면 뭐라우? 다 보라는거요. 이 세상에서 이런 멋있는 녀인과 함께 사는 이 청원을 부러워하라는거요.》
《아야, 예영이가 보겠어요.》
뒤에서 예영이가 손벽을 짝짝 쳐대며 깔깔거렸다.
《어머니, 내가 다 봤어요! 정말 멋있어요!》
너무 창피스러워 설유의 하얀 얼굴이 익은 홍시마냥 빨개졌다.
《그거 보라요. 아이앞에서 망측스레…》
그제야 허준은 설유를 내려놓았다. 어느새 처녀꼴이 다 잡힌 예영이가 뛰여온다.
《아버지, 나두!》
설유가 나무랜다.
《다 큰 애가 무슨…》
《나보다 더 큰 어머니두 그러는데 나라구 못 그럴가. 그렇지요, 아버지!》
《오냐. 우리 예영이도 네 어머니같이 아름다우니 이 아버지가 한번 들어보자!-》
허준은 설유를 품에서 떼놓고 예영이를 버쩍 하늘높이 추켜들고 온 뜨락이 좁다하게 돌아갔다. 온 뜨락이 눈부시게 밝아졌다.
《우리 나라는 동방에 치우쳐있으며 의약학이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선과 같이 계승되여왔으니 우리 나라의 의학은 <동의> 라고 말할수 있다. <감>자는 <거울 감>자인데 만물을 밝게 비추어서 그의 생김새가 그대로 나타나게 한다.》
붓을 들고 머리글을 써나가던 허준은 여기서 붓을 멈추었다. 가슴속에 끓고있는 격정을 누를길 없어 방안에 들어서자바람으로 붓을 쥔 허준이였다. 크게 숨을 쉬고난 허준은 설유와 예영이를 한번 돌아보더니 다시금 붓을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책을 펴고 한번 보면 좋고 나쁜것, 경하고 중한것이 거울에 비치듯이 명확해지므로 <동의보감>이라고 책이름을 붙인것도 옛사람들의 뜻을 본받은것이다.》
붓을 뗀 허준은 자기가 금방 쓴 머리글을 설유에게 넘겨주었다. 글을 다 읽고난 설유가 탄성을 질렀다.
《옳아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의서의 취지와 내용이 한눈에 안겨와요. 책이름을 이렇게 <동의보감>이라고 하니 책을 쓰려고 하는 의도와 뜻이 명명백백하게 리해되는군요.》
《그렇소. 이 의서는 단순한 나 개인의 의서가 아니라 이 나라 의술의 전서이고 나라의 재부로 될거요!》
확신성있게 단언하는 허준의 얼굴에 숭엄하다고 할 그런 진중함이 어렸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의서의 이름까지 명백하게 달아놓으니 더욱더 신심과 용기가 온몸에 끓어넘쳤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동의보감》을 나라의 재보로 완성하리라.
허준과 설유는 희망과 격정에 겨워 먹냄새가 자욱한 원고의 글을 읽고 또 읽어보았다.
바야흐로 우리 나라의 3대의학고전의 하나인 《동의보감》이라는 생명체가 태동하며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의보감》이 완성될 때까지는 기나긴 세월의 수난에 찬 고행길이 앞에 가로놓여있었다. 허준은 그 수난에 찬 기나긴 로정에서 가슴이 찢기는 아픔과 참혹한 일들을 겪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아직은 상상하지도 못하였다.
오매가 한성에 있는 허모에게로 옮겨온지 서너달이 지났다.
감찰이란 품계가 비록 높지 않아도 허모는 그 벼슬을 리용하여 아주 로회하게 보따리를 꿍졌다. 사헌부에서 감찰은 국고의 출납과 과거응시, 나라의 제사 등의 방면에서 관리들과 량반들의 탐오행위를 감시하고 죄를 가하는 소임을 맡고있었다. 한두명도 아니고 스물네명이나 되는 감찰들속에서 솟구친다는것은 그리 헐한 일이 아니였다.
청렴과 결백이 감찰들의 징표라고들 전해왔고 또 그 청렴결백성을 자랑으로 생각하는것이 감찰들이였다. 오죽하면 항상 해진 옷을 입고 헌 안장을 메운 비루먹은 말을 타고다니는 량반은 감찰뿐이라고 항간의 두메오지에까지 소문이 짜하겠는가. 실지로 그리도 청렴했는지도 모른다. 개중에는 청백리로 한생을 마친 감찰들도 없지 않았으니 말이다.
허나 허모는 그런 감찰벼슬에 있으면서 아주 솜씨있게 재물을 긁어모았고 누릴수 있는 환락을 마음껏 맛보고있었다.
방법은 간단하였다.
문서장을 들이캐는것이 그의 장점이였다. 그 아무리 몰래 해치운 일도 문서장만은 속이지 못하는 법이다. 설사 그 누가 문서장을 깐깐히 정리하면서 유리하게 고쳐놓았다 해도 허모의 눈에서는 빠져나가지 못하였다. 비록 실눈이지만 그 측면에서는 허모보다 배나 큰 눈이 배긴 사람도 혀를 빼물었다.
서로 련관되는 문서장들을 까보면 영낙없었다. 나간 량과 들어온 량, 출고량과 쓰인 량 그리고 명세와의 교차대조는 그 아무리 령리하고 약삭바른자라고 하여도 어쩌는수가 없었다. 그렇게 비행을 발가놓으면 금은재물은 저절로 들어왔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그까짓 재물이 무엇이냐 하는 생각은 관리들의 하나같은 심정이였다. 빠져나갈수 없는 구석으로 몰아가다가 상대방이 이제는 다 죽었구나 하고 자포자기할 때 허모는 쥐구멍을 열어주군 하였다. 이제는 끝장이로구나 하며 락심천만해있던자들이 그 쥐구멍에 빛이 들자 코를 땅에 박고 열백번나마 절을 하며 금은재물을 들이밀었다.
《아, 이건 무슨짓이요?!》
아닌보살하며 점잖게 밀어버릴수록 더 달라붙었다. 괴여바친 재물이 눈에 차지 않는가부다 생각하고는 이번에는 더 큰것을 들이밀었다. 허모가 거절하면 거절할수록 금은붙이는 굴러가는 눈덩이마냥 점점 더 커졌다.
이런 방법으로 허모는 별찮은 감찰직에서, 그것도 어마어마한 배경을 등대고 기세등등한 스무나문명의 감찰들속에서 일약 떠오르게 되였다. 감찰의 벼슬우로 두명씩이나 되는 지평, 장령의 벼슬관들이 있다지만 사헌부에서 허모의 지위는 무시 못할 정도로 굳건하였다.
허모는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고 또 말년이나마 어머니를 편히 모시자는 의도로부터 한성으로 오매를 올려왔다. 그간 챙겨놓은 금은전으로 고래등같은 집을 꾸릴수 있었지만 허모는 집꾸리는것만은 초라하다 할 정도로 간단하게 차려놓았다. 행색을 봐서는 으리으리한 집을 쓰고살것 같은데 방안의 가장집물이 하도 초라하니 왔다간 사람들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 역시 허모의 계책이였다. 인파가 물결치는 시가에서는 남들한테 숙보이기 싫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보는 사람도 없으니 달랐다. 명색이 청백리로 자칭하는 사헌부의 감찰인데 방안까지 으리으리하면 아무리 얼뜬한 조정이라 하여도 단박에 목이 날아날수 있었던것이다.
솜씨있게 재물을 꿍졌지만 어찌된지 자식만은 생기지 않았다.
허씨가문의 대가 이 허모대에 와서 씨가 마르다니 웬말인가. 안해에 대한 구박은 로골적이였다. 그리고 안해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계집질을 해댔다. 당당한 명분이 있었다. 허씨문중의 대가 끊어진다는것이였다. 부친의 경우를 봐서 첩은 두지 않았다. 첨엔 하루가 멀다하게 야단치던 안해가 그 당당한 명분앞에 손들고 나앉고말았다. 허나 허모가 아들을 낳아줍소사 하고 숱한 녀인들에게 정력을 소비했건만 아들은커녕 사람종자 그림자도 선보이지 않았다. 이는 허모의 안해가 아니라 분명 그
생모인 오매의 명은 얼마 갈것 같지 못하였다. 반신불수로 기나긴 세월 누워있다나니 뚱뚱하던 몸집은 한줌으로 졸아들었고 뼈만 앙상하였다.
함치우가 허모의 집으로 출입하며 오매의 병치료를 하였다. 함치우는 허준이보다 의술은 못했지만 그래도 내의원에서는 양례수 다음가는 의술을 지녔다고 말할수 있었다.
오늘도 함치우는 오매를 치료하러 왔다.
병고로 시달리는 오매의 모습을 기웃이 들여다보는 함치우의 입에서 긴 한숨소리가 새나왔다. 암만 봐도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허나 의원으로서 사람이 죽어간다고 치료도 하지 않는다는것은 마음에 걸리는 일이였다. 어쨌든 함치우는 의원이였던것이다.
오매는 자주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때마다 오매는 헛소리를 쳤다. 언제 들어봐야 꼭같은 소리였다. 이젠 너무 들어서 오매가 헛소리를 칠랴하면 또 이런 말이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아니나다를가 또 그 소리가 오매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어느 하루는 허모에게 《려월이란 어떤 계집이요?》 하고 물었다.
허모의 챕챕이눈이 돌멩이에 맞은 개구리눈처럼 휘딱 번져지더니 입이 쓰거운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헌데 그 개구리눈에선 보기에도 소름끼치는 무서운 독기가 풍기는것이였다.
함치우는 병자의 코밑에 손가락을 갖다대였다. 알릴가말가한 숨소리가 간신히 슴새나왔다. 그는 말없이 병자의 몸을 뒤척이며 치료를 하였다. 다음날 병자가 생각밖에도 정신이 또릿해가지고 그를 반겼다.
《아이구, 오늘은 어떻게 된것이오이까?》
진심으로 기뻐하며 함치우는 병자의 손을 잡아쥐였다.
함치우는 자기를 올려다보는 오매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어떻게 되여 이런 차도가 생겼나 하고 관찰하다가 뚝 굳어져버렸다. 병이 호전된것이 아니라 마지막요동임을 의원의 눈길로 직감했던것이다.
이제 몇시간? 아니, 한시간? 그것도 아니였다. 마지막몸부림을 치다가 목숨이 끊어질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였다.
함치우는 이때라고 생각하고 나직이 물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저주하는 려월이란 대체 누구오이까?》
오매가 가드라든 손을 후들후들 떨었다.
《의원선생두 들었나? 그년은 내가 땅속에 들어가도 눈을 감을수 없는 그런 년이야.》
손발은 낫가락처럼 가드라들고 온몸은 여위여 강대나무처럼 바싹 말랐지만 그 우직한 심술과 사나운 입만은 전보다 더 살찌고 등등한 오매였다.
오매는 잘 놀려지지 않는 찌그러진 입을 뜨직뜨직 열며 려월과 허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숨이 차고 힘이 든지 도중에 말을 끊었다가는 또 계속하고 끊었다가는 다시 이으며 만단사연을 다 토설해버렸다. 그리고는 지친듯 눈을 맥없이 감았다. 잠시후 요란하게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함치우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래서였구나! 허준이와 허모는 그야말로 수화상극이 될수밖에 없구나.)
《그래 이젠 다 알았소?》
등뒤에서 허모의 음침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의 가정사를 들추어냈으니 이젠 속이 시원하겠구만, 판관나리!》
허준이가 어의로 등용된 후 함치우는 다시 판관으로 벼슬이 올랐다. 함치우는 허모의 어조에 가시가 돋친듯 하면서도 왜 그런지 말소리가 젖어있는듯 느껴져 엉겁결에 그를 올리보았다. 허모의 얼굴에서 눈물이 좔좔 흐르고있었다. 허모는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기별을 받고 들어서던 길이였다. 어머니가 함치우에게 하는 말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들었던것이다.
불쑥 함치우는 마음이 누긋해지면서 스스로도 이 의뭉스러운 허감찰에 대한 동정이 슬그머니 솟구치는것이 이상했다. 그와 함께 자기가 이 감찰과 이미전부터 막역한 사이였고 앞으로 사생동고할수 있는 지기가 될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까지 들었다.
허모가 말없이 손을 내민다. 함치우는 얼결에 그 손을 마주잡았다. 두사람은 마주잡은 손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누가 먼저 힘을 주었는지 알수 없었다.
정신없이 드렁드렁 코를 골던 오매가 헛소리를 치기 시작하였다. 함치우가 다급히 다가갔다. 그 마중켠에 허모가 고개를 수그리고 앉았다. 간난신고하며 겨우 눈을 뜬 오매가 허모를 알아보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손을 더듬어잡았다.
《얘야!- 에구… 불쌍한지고… 나이 쉰이 돼가지구두… 새끼하나… 없으니… 그게 다 그 년놈들탓이야.… 헌데 내… 끝내… 한을 풀지 못하구 가는구나.…》
오매의 숨소리는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금시라도 심장이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여위고 강파른 가슴이 한뽐이나 되게 오르고내렸다. 허모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부짖었다.
《어머니, 왜 이러시우?!》
맥없이 도리머리질을 하는 오매의 입에 질질 거품이 흘렀다.
《난 죽으면… 안돼!…
내 아들… 아! 부디… 잊지… 말아라. 내가… 어느 년때문에… 이꼴이 됐는지… 그 려월이년… 허준이놈… 그놈들을…》
목구멍까지 차오른 가래끓는 소리가 간간해지더니 오매의 손이 맥없이 축 늘어졌다. 오매의 반쯤 열린 눈엔 흰자위만 보였다.
《어머니!- 》
허모는 우들우들 떨리는 손으로 오매의 눈을 감겨주었다. 허모의 눈에서 눈물이 오매의 얼굴에 뚝- 뚝- 떨어진다. 억제 못할 슬픔이 그 눈가에 비꼈다. 아니, 슬픔을 띠였다기보다는 적의와 복수의 빛이 무섭게 타오르고있었다. 분명 함치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 무서운 빛이 어디로 향하며 그 끝이 어디겠는가 가늠해보는 함치우는 가슴이 섬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