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5 장  의서도적놈들

1

 

나고야 겐이는 왜나라에서 첫손가락에 꼽히우는 명의이다.

희미한 불빛이 새나오고있는 그의 집 한방에서 지금 나고야 겐이는 고니시 유끼나가(소서행장)에게 부항치료를 해주고있었다. 다다미우에 넙적 엎드린 고니시 유끼나가의 잔등에는 척추의 량옆을 따라 여섯개씩 짝을 무은 어른주먹만 한 청자부항단지 열두개가 원숭이처럼 털이 부시시한 그의 유들유들한 몸통에 박혀있다.

도요도미 히데요시(풍신수길)를 따라다니며 저들의 반대파세력을 진압하는 싸움에서 단련된 고니시는 나고야와 퍽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때없이 그를 찾아와 치료를 받는다.

부항치료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치료이다. 길들이지 않은 수말처럼 전장을 누비며 길길이 날뛰다나니 온몸에 성한 자리가 별로 없는 자기의 지친 몸뚱아리를 거뜬하게 하는데서 부항치료만 한것이 없다고 여기는 고니시였다. 한바탕 나고야에게서 부항치료를 받으니 온몸에 쌓였던 피로가 쭉 풀리고 기운이 뻗치면서 기분까지 상쾌해진 고니시는 나고야를 한껏 춰주고싶었다.

《나고야상, 확실히 자넨 명의는 명의일세. 자네한테서 한번 치료를 받으면 이상할 정도로 몸이 거뜬하거든. 그게 다 자네의 치료덕일세. 내 앞으로 한상 단단히 내지.》

나고야 겐이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군장, 그건 나의 치료가 신통해서가 아니라 부항치료법의 덕이요. 부항치료법은 저 고마인들의 유명한 민간료법이니 나한테 인사할것이 아니라 부항치료법을 고안해낸 고마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 옳지요.》

나이가 고니시보다 많은 나고야는 오랜 기간 그와 교제한 까닭에 이제는 너나들이로 허물없을 정도로 친숙한 사이였다.

《오, 그런가?! 어떻게 되여 요렇게 자그마한 단지가 이런 좋은 효험을 나타낼가?》

《그건 말이요, 잔등의 척추옆 두치 바깥에는 무려 열쌍 이상이나 되는 침혈들이 주런이 내려있는데 이 침혈들을 배유혈이라고 하오. 이 혈들이 오장륙부를 통솔하는데서 기본역할을 하고있다고 볼수 있소. 그래서 침혈의 이름도 오장륙부의 이름자뒤에다 <유>자를 붙이지요. 례를 들어 심유, 간유, 담유, 비유, 위유 등이 그러한것이지. 이 침혈들을 부항으로 잘 다스려주면 오장륙부를 건전하게 하고 온몸에 활력을 주게 되오. 그래서 그렇게 입맛이 당기고 몸이 거뜬하다오.》

《하! 의학의 리치는 참으로 오묘하구만. 헌데 나고야상은 어떻게 되여 이런 신묘한 술법들을 터득했소?》

《그건 내 비밀인데 군장한테야 뭘 숨기겠소. 앞으로 내가 군장의 신세를 지려면 어차피 알게 될터인데 말난김에 알려주니 절대로 발설하지 마시우. 다름아니라 저 조선의 한성부에 내가 박아놓은 사람이 한명 있소. 그 사람더러 조선의 의서를 좀 수집하여 보내라 했더니 몇년전에 자그마한 의서를 하나 보내왔소. 그래서 그 의서를 읽고  이 비방을 터득했소.》

《그러니 나고야상은 <손자>나 <륙도>, <삼략>을 도통했구려. 제법 정보활동두 할줄 알구. 간자까지 한성에 박아넣었다니 정말 간단치 않구만.》

잔등에 부항을 주런이 붙인 고니시의 이 말은 진심의 소리였다. 고니시도 도요도미관백의 정보활동을 뒤에서 조종하는 거물급의 첩보능수였다. 나고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니시는 앞으로 조선원정시에 나고야의 정보선도 써먹을수 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불현듯 나고야 겐이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군장이 이번에 조선원정군의 선봉장의 중임을 맡았다고 하던데 내 한가지 긴히 부탁해도 일없겠소?》

목소리까지 낮추어가며 사정하는것을 보면 분명 중한 부탁인지도 모른다. 이 의술귀신이 뭘 부탁하려고 이럴가.

《무슨 부탁이요? 나고야상의 부탁이라면 내 뭘 마다하겠소. 어서 말하오.》

《조선에 출병하면 나에게 긴히 요구되는 보물들을 좀 가져다주었으면 하오.》

《유명한 고려청자기 말인가?》

《아니요.》

《그럼 금은붙이요?》

《그건 더욱 아니요.》

고니시가 의아해서 몸통을 돌리며 나고야를 쳐다보았다.

《그것보다 더 값나는 보물이 또 있소?》

나고야가 웃음을 짓고 눈을 끔쩍거렸다.

《있지요.》

《대관절 그게 뭐게?》

《의서올시다.》

고니시가 크게 놀라와하였다.

《뭐 의서? 의서가 그렇게두 귀한 보물이요?》

《군장! 내 말을 좀 들어보오. 내가 치료하는 의술의 술법들도 다 의서에서 터득한것들이요. 진귀한 의서일수록 더욱 령험스러운 의술을 낳게 하는 법이요. 이마 그런 령험스러운 의술을 이 나고야 겐이가 소유하면 그 의술로 군장어른을 백살까지도 살게 할수 있소.》

《그렇소? 헌데 우리 일본에는 그런 의서가 없는가?》

《유감스럽지만 우리 땅에는 아직 자기의 독자적인 의서가 없소.》

나고야 겐이의 말은 사실이였다.

우리 나라는 자기의 독자적인 의술을 근 수천년전부터 개척하고 발전시켜왔으며 이 과정에 세상에 자랑할만 한 우수한 의서들을 수많이 내놓았다.

단군에 의하여 B. C. 3000년에 세워진 고조선은 단군시기에 벌써 중앙에 단군8가에 속하는 의학담당기관인 로가가 있었고 의학지식이 깊은 사람들을 가리켜 선인 또는 선가라고 불렀으며 이때부터 전통적인 민족의학을 발전시켜왔다. 고조선시기에 발생한 민족의학은 세나라시기에 고구려를 중심으로 더욱 발전하였으며 이 과정에 그 치료성과와 비방을 묶은 의서들인 《고려로사방》(6세기말), 《백제신집방》(7세기 전반기)이 편찬되였으며 후기신라시기에는 《신라법사방》(8세기 전반기)이라는 의서가 나왔다.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겨레의 넋을 이어 전 조선강토에 통일국가를 세운 고려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유명한 고려자기를 생산하여 그 명성을 떨쳤을뿐아니라 민족의학을 체계화하고 가치있는 의서들을 적지 않게 남기였다. 대표적인 의서들만 보아도 《제중립효방》(1166년경), 《어의촬요방》(1226년), 《비예백요방》(1226~1260년경), 《향약구급방》(1236~1251년), 《향약혜민경험방》(고려말), 《진맥도결》(1389년) 등이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들어와서도 우리 인민은 이 민족의학을 더욱 세분화하고 발전풍부화시켰으며 이때까지 85권에 달하는 《향약집성방》(1431~1433년)과 무려 266권에 달하는 세계적인 걸작 《의방류취》(1443~1445년 편찬, 1477년 출판)를 세상에 내놓았던것이다.

하지만 일본에는 이러한 독자적인 의술의 력사가 없었다. 일본의 최고의서라고 일컫는 984년에 편찬된 《의심방》도 자기의 독자적인 의술리론과 방법, 처방은 하나도 없이 다만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방의학의 자료들을 그대로 고스란히 베껴쓴것에 불과하였다. 나고야의 말을 듣는 고니시는 제땅에 진귀한 의서가 없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 조선땅에 무슨 진귀한 의서가 있나?》

《동방의 최고의서라고 평가하는 <의방류취>라는 의서가 있소. 이번 출정에서 그 원간본을 어떤 수를 쓰든지 우리 땅에 가져와야 하오.》

고니시는 흔연스럽게 대답하였다.

《그건 도요도미관백의 의사와 일맥상통하구만.》

《그건 무슨 뜻이요?》

《음, 관백이 얼마전에 원정군 선봉장들을 모아놓고 조선으로 쳐들어갈 문제를 놓고 일장 훈시하더군. 그 훈시속에 이제 조선과 싸움을 벌리면서 서적들을 비롯한 보물들을 갖은 수단과 방법을 써서 일본에 가져오라는 내용도 있었소. 그러니 내가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는건 관백의 그 훈시와 하나로 련결된다 그 말이요. 그런 책이나 얻어오는게 뭐가 힘들겠나. 내 꼭 가져오지. 훔쳐오든 로략질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져오겠다는것을 약속하네.》

고니시의 말은 사실이였다. 당시 일본침략자들은 전쟁을 일으키기전에 벌써 조선의 문화재를 강탈할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전투병력외에 특수임무를 맡은 여섯개의 부를 만들었었다. 즉 서적략탈을 맡은 서적부, 도자기류를 비롯한 각종 공예품과 기술자들을 랍치할 임무를 담당한 공예부, 젊은 남녀를 랍치할 포로부, 금속문화재를 맡은 금속부, 금은붙이와 진귀품을 맡은 보물부. 짐승략탈을 맡은 축부 등 여섯개의 부를 조작하였던것이다.

왜놈들이 이중에서 제일 힘을 넣은것은 서적부였다고 볼수 있다.

《정말 고맙소.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일이 있소.》

《뭔데?》

《지금 그 나라에서 최고경지의 의술소유자는 임금의 주치의원 허준이라고 합디다. 그가 지금 <의방류취>보다 더 좋은 의서를 쓴다고 하는데 그 원고를 훔쳐오는것이요.》

고니시가 머리를 기웃하였다.

《그건 좀 미타하구만. 임금의 주치의라면 임금을 따라다닐게 아닌가? 우리가 조선왕을 사로잡는다면 몰라두 만약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주치의를 어디에 가서 찾겠는가?》

《내게도 생각이 다 있수다.》

나고야가 두손바닥을 몇번 마주쳤다. 잠시후 웃방에서 매력적이고 날씬한 젊은 미인 하나가 들어섰다.

《선봉장님께 문안드리옵니다.》

미인의 요염하고 교태스러운 얼굴에 관능적인 욕정이 생생히 나타났다. 뭇사내들의 간장을 깡그리 녹여낼 미인이였다. 늘씬하고 미츨한 허리며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젖가슴이 고니시의 눈을 휘딱 뒤집히게 하였다 엎드린채로 반쯤 돌아누운 고니시가 입을 항 벌리고 다물줄을 몰랐다.

《하! 천하에 둘도 없는 미인이로다! 어데서 나타난 미의 요정인가?》

나고야 겐이는 눈가에 미묘한 웃음을 짓고 녀인을 고니시에게로 떠밀었다.

《고니시군장에게 드리는 선물이오이다.》

고니시의 두눈이 퉁방울눈으로 변해버렸다.

《정말 나에게 주는건가?》

《기운이 항우같은 군장이 유쾌한 시간을 보내기 바라는 의미에서 드리는것이오이다.》

미인이 매혹적인 미소를 짓고 고니시앞에 두무릎을 꿇고앉아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후유꼬라 하오이다.》

뜻밖에도 미인의 입에서 류창한 조선말이 흘러나왔다.

《후유꼬! 조선말이나 다 할줄 아는가?》

당장 조선으로 출병할 선봉장인지라 고니시도 서투르게나마 조선말을 번지고있었다.

조선의 의술에 대해 다년간 파고들었던 나고야 겐이도 이미 조선말을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었다.

생각지 않게 젊고 고운 미인을 차지한 고니시는 저도모르게 기운이 불끈거리는것을 느꼈다. 한편 의서가 대체 무엇이기에 나고야가 이런 천하의 미인을 안겨주는걸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뇌리를 쳤다. 의심이 얼핏 스쳤으나 눈앞의 관능적인 미인이 그 생각을 앗아갔다.

《나고야상, 자넨 확실히 할줄 알거던. 내 자네 부탁을 들어 그 의서를 꼭 가져오겠소.》

고니시앞에 무릎을 꿇고앉은 후유꼬가 스스럼없이 말쑥한 손을 내밀어 고니시의 털이 부시시한 팔뚝을 쓰다듬었다.

《나리께서 많이 귀여워해주세요.》

고니시가 짐승처럼 털이 부시시한 커다란 손으로 새하얀 후유꼬의 손을 힘주어 잡고는 놓을줄 몰랐다. 그 손을 놓으면 눈앞에서 미인이 사라질가 우려되는가. 그 심리를 넘겨짚으며 나고야 겐이가 살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젠 이 미인이 군장의 차지가 되였으니 마음을 푹 놓아도 되오. 헌데 조선에 가면 이애의 일을 어른이 전적으로 밀어주어야 한다는걸 여기서 매듭을 짓기요.》

고니시가 후유꼬의 손목을 슬며시 놓아주며 물었다.

《무슨 일이게 그래?》

《다름아니라 의서를 빼오는 일이 이애한테 달려있다 그 말이요.》

고니시가 고개를 흔들거렸다.

《그렇다면 내 도와주지.》

고니시 유끼나가가 돌아간 후 나고야 겐이는 후유꼬와 단 둘이 마주앉았다.

《넌 이번에 고니시선봉장과 함께 조선땅에 들어가야 한다. 조선땅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너의 이름은 후유꼬가 아니라 조선인 랑자 수미로 되여야 한다. 우리 군대가 한성부에 진출하면 넌 이미 박아넣은 사람과 접선해야 한다. 한성부 장동근처에 석구라고 부르는 장공인(높은 기술을 가진 수공업자)이 한명 있는데 그가 바로 내가 박아넣은 사람이다. 그의 일본이름은 곤도인데 접선암호는 매화꽃 세송이와 여섯송이이다.

곤도를 통해 너는 사헌부 감찰인 허모라는 량반의 출처부터 알아야 한다. 그놈이 조선왕의 주치의라는 허준과 이복형제간이라고 하더라. 곤도의 정보에 의하면 허모라는 그놈은 여간 간특하지 않다고 하는데 넌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자식을 나꾸어챈 다음 그를 통하여 허준의 행적을 찾아라. 그러다가 기회가 생기면 그 의서의 원고를 훔치도록 해라. 너의 미모와 재간이면 그 허모를 얼마든지 휘여낼수 있을게다. 곤도의 말에 의하면 의서의 원고가 얼마나 완성되였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만약 의서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면 기다려서라도 꼭 빼와야 한다.》

《알았사와요.》

《우리 일본이 강하려면 저 조선의 모든것, 금은보물은 물론 지식과 학문의 집합체인 서적들을 다 걷어와야 하느니라.

후유꼬! 넌 언제나 자기를 단순히 재물을 바라며 칼물고 뜀뛰기하는 사무라이들과는 달리 일본을 위해 녀성의 순정도 젊음도 희생하는 녀걸이라고 생각해야 해. 그래야만 녀성의 소중한 순정도 바칠수 있고 목숨도 불사할수 있는거야. 그래서 내가 숱한 계집들가운데서 너를 천만금을 들여 데리고온것이구 또 널 위해 심신을 다 바치는거지.…》

피줄까지 다 들여다보이는 후유꼬의 새하얀 얼굴에 쓸쓸한 빛이 어리더니 그만에야 눈물이 가랑가랑 두눈에 고이기 시작하였다. 나고야 겐이에게서 일본의 우월성에 대해 그리고 일본의 부흥에 이바지하는 길에 녀자도 응당 한몫 기여해야 한다는 정신을 골수에 새긴 후유꼬였다.

후유꼬와 마주앉아 말을 하면서도 나고야는 관백의 모사 겸 젊은 주치의인 마나세 쇼링이 자기한테 한 약속을 머리속에서 굴려보았다. 마나세는 나이가 서른살도 안되였지만 관백을 뒤에서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인 동시에 나고야가 품들여 의술을 배워준 제자이기도 하였다.

관백이 령주들을 평정할 때 뒤에서 모사역할을 한것이 다름아닌 마나세였고 조폭하면서도 무자비한 관백의 기분을 눅잦혀주는것도 열여덟살난 애첩이 아니라 바로 이 마나세였다. 처음엔 마나세를 제몸이나 치료하는 주치의로 하찮게 여기던 도요도미는 자기의 두뇌를 대신하여 기묘한 수를 내놓는 마나세를 자기의 모사로 임명했으며 군장들의 모임이나 각료들의 회합에 어김없이 참석시켰다.

며칠전 나고야는 마나세를 만나 자기의 취지, 다시말하여 조선원정시 그 나라의 의서를 가져와 일본인 나고야 겐이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을 의향을 비쳤다. 아무리 사무라이들이 살판치는 일본땅이라고 하여도 책 하나를 내놓자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법이다. 제 나라 사람이 쓴것도 아닌 남의 나라 사람이 만든 의서에 자기 이름을 붙인다는것은 결코 식은죽 먹기가 아니였다. 더구나 영악스러운 사냥개처럼 남을 물고늘어지기 좋아하는 왜나라에서 자칫하면 들판에 죽어자빠진 들소처럼 이리떼와 까마귀들에게 갈기갈기 찢길수 있었다. 이럴 때엔 든든한 방패가 있어야 무탈하였다. 하여 나고야는 미리 마나세에게 선통하려고 그를 청하였던것이다. 마나세옆에는 요염한 옷차림을 한 후유꼬가 앉아있었다.

마나세는 스승의 제의에 쾌히 응하였다.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고 스승의 이름을 단 의서가 출판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보매 마나세의 온 정신은 후유꼬한테 가있는듯싶었다. 빨리 나고야와의 대화가 끝났으면 하는 기색이였다. 나고야는 달아오른 마나세의 가슴을 툭 치며 헌헌히 일어섰었다.

나고야는 후유꼬의 얼굴에 마나세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나 자세히 뜯어보았다. 후유꼬가 말을 하다말고 자기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하는 나고야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후유꼬의 얼굴이 저도모르게 빨개졌다. 나고야의 우멍한 눈길에서 인차 그 의미를 알아차린것이였다. 너무나도 나고야를 잘 알고있는 후유꼬여서 그의 눈짓, 손짓을 보고도 그의 속을 꿰뚫어본다. 입속말로 후유꼬는 중얼거렸다

《그 마나세란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않겠소이다.》

나고야는 자기가 만든 인형의 산아인 후유꼬의 얼굴을 한손으로 들어올리며 껄껄거렸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만나 주물러대라구.》

후유꼬를 잃는대도 의서를 잃을수는 없었다. 나고야 겐이는 훌륭한 의서의 가치를 잘 알고있었다. 그것은 의술의 리치와 치료의 술법을 깨치는데서도 자못 의의가 컸지만 국보적인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자못 높은지라 손쉽게 가늠할수 없는 거액의 금전으로도 전환될수 있는것이다. 의서의 원본이 들어오면 진짜 일확천금을 얻는것은 후유꼬가 아니라 나고야 겐이였다.

허나 수만금보다 더 나고야의 심기를 자극하는것은 바다건너 고마인들이 자기가 나서자란 일본보다 더 문명하고 우수하다는것이였다. 민족적수치와 모멸감이 온 심신을 휩쓸었다.

피를 사려물고 의술을 터득한 나고야는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가 그리도 심혈을 기울여 련마한 의술이, 일본땅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명의라 자처하는 자기의 치료비방이 저 조선에서는 오래전부터 써오던 술법인것이였다. 손맥이 풀리고 미칠것만 같았다.

아, 그러니 우리 일본은 영원히 조선의 후진국이란 말인가. 아니, 절대로 그렇게 될수 없다. 딛고 일어서야 한다.

나고야는 제딴의 지론을 가지고 차곡차곡 준비를 갖추어나갔다. 그래서 마나세를 통해 한성부에 자기의 심복을 박아넣을수 있었고 정기적으로 의서와 관련한 정보들을 수집할수 있었던것이다.

의원인 나고야로서는 조선의 의서를 몽땅 가져다 저들의것으로 만들고싶은것이 소원이였다. 오래동안 이런 꿈을 품고있던 나고야의 눈에 절색의 후유꼬가 걸려들었다. 병부의 련무생들가운데서 나고야는 제일 나이가 어린 후유꼬를 점찍어놓고 거액의 금전을 뿌려 데려왔다. 그때 후유꼬는 열네살이였다.

그가 나어린 후유꼬를 선택한것은 의서를 빼오는 일이 장기적인 일이고 또 조선의 제일가는 명의라는 허준이 거질의 의서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기때문이였다. 허준이 의서를 완성하려면 세월이 걸릴것은 뻔한데 그러자면 애어린 후유꼬가 적임자였던것이다. 처음엔 갓 까나온 참새새끼같던 후유꼬가 열일곱살이 되니 활짝 피여난 사꾸라꽃처럼 아름답게 피여났다. 이 삼년간 후유꼬는 육체도 혼도 완전히 나고야 겐이의 화신으로 변하고말았다.

일본을 위해 정조도 젊음도 지어 목숨도 불사해야 한다는 나고야의 설법에 순진한 후유꼬는 독사한테 물리운 쥐마냥 꼼짝 못하고 심취되고말았던것이다.

후유꼬의 매력은 순진한듯 한 얼굴표정이였다. 마치 티없이 웃는 요람속의 아기와 같은 그 표정과 아릿다운 자태는 뭇사내들의 넋을 빼앗고도 남았다.

잠시후 후유꼬는 그 인상적인 표정으로 돌아오며 요염한 입을 열었다.

《주인님! 소녀를 믿으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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