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4 장  왕실의 어의

5

 

열흘째 령의정 리산해의 얼굴은 시꺼멓게 죽어있었다. 어찌 그러지 않으랴. 거의 보름나마 임금이 식음을 전페하다싶이 한것이다. 워낙 체질이 약해서인지 임금은 몸이 건강치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전혀 수라를 들지 못하고있는 형편이였다. 나라안에 임금이 단 하루도 없으면 변고인데 글쎄 보름씩이나 정사를 보지 못하니 일인치하 만인지상의 령상벼슬에 앉아있는 리산해가 마음이 편할리 없는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였다. 오늘도 리산해는 너부죽한 얼굴에 먹장구름을 띠우고 좌의정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좌상대감이 보기엔 정녕 전하의 병을 고칠 방책이 없단 말이요?》

좌의정의 얼굴도 그닥 밝지 못하였다.

《글쎄, 전하의 주치의가 이젠 나이가 많다나니 예전같질 않소이다. 이전날의 령험스럽다던 의술은 다 어데다 집어던졌는지 아무리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으니 말이요.》

임금의 주치의인 류지번은 현재 고령의 나이였다. 사람이 나이가 들게 되면 아무래도 체력은 물론이고 지력도 떨어지기마련이다. 그렇게 반짝이던 그의 눈에서 정기가 점차 사라지고 그 어떤 병도 귀신같이 찾아내던 예민한 손감각도 차츰 무디여가고있었다. 그래서인지 드문히 오진하거나 오처방을 내리는 일이 간혹 있군 하였다. 그래서 태의 양례수를 몇번 붙여보았으나 신통치 않았다. 참으로 난사였다.

임금님이 강녕하셔야 나라정사를 주관한다는 의정부의 세 정승들도 건재할수 있는것이다. 임금이 바뀌우면 정승들도 갈리는것이 례상사였다. 좌의정이 무슨 신통한 수가 생각났는지 《아차-》하고 이마를 쳤다.

《그렇지, 작고한 류희춘대감이 말하기를 내의원에 있는 판관 허준의 의술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능하다고 했소이다.》

《류대감이 그렇게 말하던가? 아무리 그래두 내의원 의관이 어의만이야 하겠소?》

《들리는 소문엔 그렇지도 않소이다. 을해년에 전하가 중병에 들었을 때 그 허준이라는 의원이 진찰을 했다던데… 아다싶이 그때 류대감이 약방제주로 있었지요. 류대감의 지인지감이야 조정의 대신들이 다 인정하지 않았소이까. 전하에게 허준을 알선한것도 류대감이라고 하오이다. 다른 대신들의 말에 의해도 딴 의원들이 손털고 나앉은 중한 병도 그 허준은 어렵지 않게 고쳐냈다고 하오이다.》

《음 그렇소?》

허준을 성심으로 리해하고 위해주던 류희춘은 허준이 내의원에 들어온 그해 동지달에 귀양지에서 얻은 병이 심하여 래년 봄까지 치료를 받으며 안정하겠다는 상주문을 올리고 고향인 선산으로 내려갔다. 선조는 그에게 중추부 동지(종2품)벼슬을 하사하면서 몇번이나 올라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왜냐면 류희춘이 없는 경연은 선조에게 의미가 없었기때문이였다.

류희춘은 병이 너무 중하여 올라갈수 없다고 하면서 자기대신 리이를 추천하였다. 병이 좀 나아지자 류희춘은 다시 한성으로 올라왔으나 그의 병은 오랜 귀양지에서 생긴 병이라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할수없이 봄에 올라왔던 류희춘은 가을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였다. 선조는 그와 헤여지는것이 너무도 섭섭하여 그를 단독으로 접견하고 그에게 흰명주 천릭과 붉은 천릭, 검은 신을 하사하였다. 류희춘에 대한 선조의 총애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잘 알수 있게 하는 이례적인 대우였다. 임금의 은총에 감격한 류희춘은 앓는 몸으로 이듬해 봄 다시 한성으로 올라왔었는데 선조는 《류희춘은 오래동안 경연에 참가하여 나를 이끌어준 공로가 실로 크다.》고 하면서 특별히 그에게 자헌대부(정2품)의 품계를 내렸다. 허나 두달후인 1577년 5월 류희춘은 고향 선산에서 65살로 사망하였다. 류희춘의 사망소식을 들은 선조는 너무도 슬퍼 이틀간 조회와 저자를 파하였으며 특별히 부의를 보내주고 전라감사에게 글을 내려보내여 초상을 보살피게 하였고 상여가 지나가는 각 고을들에서 상여를 호송하도록 하였다.

희춘의 부고를 받고 허준은 며칠동안이나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인간에게서 제일 고마운 사람은 자기의 재능과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의 공적중의 가장 큰 공적은 인재를 알아보고 추천한 공로라 하지 않는가.

류희춘은 비록 높은 벼슬에 앉은 고관이였으나 허준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의 뜻을 귀히 여겨주었으며 국왕앞에까지 내세워준 사람이였다. 인재를 볼줄 아는 그런 량반이 조정에 있었다는것은 허준의 인생에서 자못 의의가 있었고 어찌보면 《동의보감》같은 민족의 재부를 산출하는 길에서 다행이 아닐수 없었다.

만약 류희춘이 아니였다면 허준의 운명이 어찌 될지 누가 알랴. 허준은 그래서 류희춘을 잊지 못하고있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리산해는 찬성에게 분부를 내렸다.

《대감은 리조에 가서 그 내의원 판관의 개인자료를 가져오도록 하오.》

《알겠소이다.》

찬성이 가져온 문서를 한동안 들여다보던 리산해는 눈이 둥그래졌다.

《아니, 이런! 내의원 판관이 서얼이로구만.》

옆에 서있던 우의정이 자기 의견을 내비쳤다.

《서얼이면 뭐랍니까. 전하의 병을 고칠수만 있다면야 그게 대수겠수? 지금 현재로서는 다른 방책이 없지 않나이까. 류희춘대감이 살아있을 때 전하의 병을 진찰하지 않았소이까. 그때에도 별일 없었는데 지금이라고 다른 일이 있겠나이까.》

리산해가 두 정승을 번갈아 바라보며 미타한 기색을 지었다.

《일없을가? 그때엔 진찰하였지만 지금은 전하의 병이 다 나을 때까지 치료해야 하는데…》

량반들의 서렬속에 서얼출신이 끼여있다는것이 리산해에게는 별로 께름직하였다. 혹 그러다가 무슨 불상사라도 일어난다면?

나라의 법은 사정이 없다는것을 늘 강조하군 하는 저들이다. 왕씨의 세상을 뒤집어엎고 조선봉건왕조를 세운지도 어언 200년이 되여오는데 지금에 와서 서얼출신의 의원을 데려다 임금의 병을 치료한다는게 불미스러웠다.

더우기 반상의 구분이 그 어느때보다 더 엄격한 조선봉건왕조의 세상에서 저들을 하대하는 법을 만들어놓은 왕실과 고관대작들을 좋다고 볼 서얼은 어디에도 있을상싶지 않았다. 좌의정이 령상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히 말하였다.

《내의원 판관으로 여러해동안 일했다고 하는데 대감들의 병이랑 성심으로 보고 고쳐주었다고들 하오이다.》

그 말에 리산해는 반신반의하며 입속으로 되뇌이였다.

《그럼 어디 한번 병을 보일가?》

두 정승이 옆에서 부채질을 하였다.

《그렇게 해보시오이다. 꿩 잡는게 매라구 전하의 병부터 고치는것이 옳은 처사인것 같소이다.》

《만약의 경우를 타산해서 병을 보일 때 령상대감께서 지켜보면 더 좋을듯 하오이다.》

리산해는 두 정승의 의견이 옳다고 여겨졌다. 아무리 생각해보아야 다른 방도가 더는 없었던것이다.

《좋소. 우리 그렇게 하기로 락착을 짓기요.》

 

선조는 경복궁의 침전구역인 강녕전에 있었다.

허준은 령의정 리산해의 뒤를 따라 아늑하면서도 호화찬란하게 꾸며진 강녕전안에 들어섰다. 선조는 평상에 모로 누워있었다.

리산해가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전하! 전하의 병을 보일 명의를 한명 데려왔소이다.》

평상우에서 임금이 누운채로 물었다.

《누군고?》

허준은 얼른 부복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였다.

《내의원 판관 허준이 전하에게 삼가 문안드리옵니다. 언젠가 전하의 병을 진찰한적이 있소이다.》

《그랬던가? 가만, 이자 보니 생각나는군. 류희춘이 소개했던것 같은데…》

《그렇소이다. 을해년 정이월이라고 생각되오이다.》

리산해가 임금이 허준을 알아보자 한걸음 나섰다.

《조정안의 숱한 대신들이 이 의관의 의술에 의해 난치로 되여있던 병들을 고쳤다고 하오이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보게나. 이즈음 가슴이 활랑거리고 심신이 좋질 않아.》

허준은 다시금 례의를 표시하였다.

《소신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힘껏 해보겠소이다.》

처음으로 임금을 마주할 때와는 다르다. 그때엔 진찰하고 비방만 알려주면 되였지만 지금은 임금이 호전될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인지 허준의 이마에서는 저도모르게 구슬땀이 돋기 시작하였다. 허준은 조심스럽게 임금의 위와 배를 만져보았다. 잔뜩 불어난 배는 가스가 차서 펑- 펑- 하는 소리를 내였고 명치끝은 딴딴하게 굳어져있었다.

(무슨 비위가 이럴가. 비위가 이런 상태이니 식음을 제대로 할수가 있나?)

허준은 미간을 찌프리고 누워있는 임금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피로한 기색이 잔뜩 실려있었다. 이어 그는 조용히 감고있는 임금의 눈까풀을 유심히 살폈다. 눈까풀이 파들파들 떨고있었다. 신기(정신활동)가 과도해지면 저렇게 눈까풀이 떠는것이다.

허준은 임금의 혀를 딱 한번만 보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라의 정사를 쥐락펴락하는 지엄한 나라님더러 혀를 쑥 내밀어보라고 할수도 없는 일이였다.

참으로 임금의 병을 치료한다는것은 까다롭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수 없으니 정확한 진단과 적중한 치료를 의도대로 할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먼 옛날에 태후를 치료할 때 존귀하신 태후마마의 손목을 감히 잡을수가 없어 어의가 손목에 실을 매고 그 실을 끄당기며 맥을 보았다지 않는가. 이런 지엄한 임금인것으로 하여 진단과 치료를 적절하게 하지 못해 도리여 화를 입은 경우가 드물었다.

후의 일이였지만 17대왕인 효종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였다.

등창(등에 난 큰 부스럼이나 상처)이 잔뜩 곪아서 그 고름을 빼내기 위해 칼을 대려는 어의에게 국왕의 충신이라 자처하는 대신들이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아 기염을 토했다.

《감히 전하의 몸에 칼을 댄단말인고. 그 죄는 대역부도죄에 못지 않노라!-》

결국 《훌륭한 충신》들을 대신으로 둔 탓에 효종은 치료 한번 변변히 받지 못하고 하찮은 등창패문에 비명에 붕어하고말았던것이다. 그러니 그보다 앞선 시기인 이때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것으로 하여 어의들은 임금의 옥체에 감히 침을 찌르고 뜸쑥으로 살을 태우기를 저어하고있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허준은 말하였다.

《전하! 소신이 좋은 환제(알약)를 가지고있사온데 그걸 한번 써보시면 어떠하오이까. 그 약을 쓰시면 곧 효험이 있을것이오이다.》

《그런가? 그럼…》

허준이 환제를 꺼내들자 리산해가 얼른 다가왔다.

《자네부터 한알 먹어보게.》

그 말의 의미를 허준은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응당 그래야 옳은것이라고 생각한 허준은 주저없이 환제 한알을 입에 넣고 삼켰다. 리산해가 그제서야 임금에게 환제를 복용시키라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내시가 제꺽 청자물고뿌를 들고왔다. 허준은 공경한 자세로 알약을 왕의 입가에 가져갔다. 선조가 입을 벌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허준은 임금의 혀를 예민한 눈길로 더듬었다. 예견한바 그대로 혀끝이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틀림없이 심신이 불타서 그러는구나!)

치료대책이 떠올랐다. 허나 허준은 재삼 확인해보기로 하였다.

《전하! 소신이 전하의 치료에 효험이 있는 안마와 지압을 해드리겠소이다.》

《음.》

허준은 손으로 임금의 가슴을 더듬다가 단중혈부위를 가볍게 눌렀다.

《으흠-》

선조의 입에서 가느다란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가슴을 슬슬 문지르던 허준은 다시금 가슴웃부위의 주영혈을 꾹 눌렀다. 또다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잔등의 어깨박죽에 있는 천종혈과 심유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병상태가 일목료연하게 안겨왔다.

(비위가 근본이 아니다. 근본은 신기에 있다, 신기가 과도해지니 심장이 불안해지고 또 심화가 타오르면서 저렇게 혀끝이 빨갛게 되는것이다. 위는 마음의 거울이라 하였거늘 신기가 과민해지면서 그것이 비위의 기를 억제하니 저렇게 수라를 제대로 드시지 못할수밖에…)

선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허준의 생각을 중지시켰다.

《그래 무슨 병이뇨?》

《전하께서 비위가 편안치 않으심은 신명(정신신경)이 과도해지신데 그 원인이 있소이다. 이건 전하께서 몹시 심려하시는 문제가 있다는것을 의미하오이다.》

령의정 리산해의 맞갖지 않은 눈길이 자기 등뒤에 와닿는감을 느꼈다. 한갖 의관으로서 감히 나라의 정사에 끼여든다고 질책하는 눈초리가 분명하였으나 허준은 개의치 않고 의원으로서의 자기의 견해를 그대로 서슴없이 밝혔다.

《그런즉 전하께선 수면이 불충분하실것이오며 심계(가슴이 두근거리는것)와 정충(불안한것)이 있을것이오이다.》

선조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너무도 신통히 알아맞춘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를 명의라고 소개한 류희춘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렇게 자기의 속마음까지도 다 들여다보는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계속하라!》

《네, 전하의 불안정한 신명을 개선하고 심신을 안정시키오면 비위는 저절로 건전해지리라고 보오이다.》

《음, 과연 그럴듯하노라. 그럼 그 진단에 근거하여 과인을 한번 치료해보라.》

《황공무지로소이다.》

허준은 그날부터 치료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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