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장  산음의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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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음으로 뻗은 행길에 한적한 산골에서는 보기 드문 량반행차가 가고있었다.

경상도 사천에서 현감벼슬을 하는 허모가 산음고을로 향하는 행차였다. 사천에서 산음까지는 오십여리가 잘된다. 산음현감은 그와 함께 패치며 서원을 다니던 완기이다. 비스듬히 수레에 기대앉아있는 허모는 배를 쓸어만지면서 벼슬이란 참 묘하고도 신비스럽다는 생각에 옴해있었다.

벼슬살이를 하기 전에는 수레를 타고 움직이는것이 고작이였다. 그러나 고을원(비록 자그마한 현감이라지만 고을원인것만은 틀림없었다.)이 된 지금에는 장독교에 덩그렇게 올라 건들거리며 가고있는것이다.

장독교의 앞에는 《물럿거라!- 게 섯거라! 사또님 행차이시다!》 하는 벽제소리 울리며 억대우같은 두명의 아전들이 열성스레 목청을 돋구며 걸어가고 장독교의 뒤에는 다섯명의 수행아전들이 활개짓을 하며 줄줄이 따르고있다.

한적한 산골길에서 갑자기 맞다든 요란한 행차를 보고 길가던 사람들이 황황히 길옆에 엎드리거나 논밭아래에로 미끄러 떨어졌다.

이게 바로 권력맛이라는게야. 분명 인간의 피를 받고 세상에 태여난것만은 사실인데 저 무지렁이 백성놈들은 죽을 때까지 저렇게 길가에 엎드려있어야 하고 한뉘 주린 배를 채우려고 저렇게 이고지고 자개바람 일도록 뛰여다녀야 한다.

그러나 난 벼슬에 오른 량반이니 이렇게 척 장독교를 타고 거들먹거리며 친구를 찾아가는것이고 또 하루삼시 기름도는 고량진미에 밤이면 간장을 살살 녹이는 곱고 젊은 계집을 끼고 도락을 즐기고있지 않은가. 이 얼마나 묘하고 유쾌한 일인가.

이게 다 벼슬길에 오른 덕이고 또 그 벼슬의 힘이라는게지. 이런 멋에 누구나 벼슬을 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재물을 긁어모으는게 아닌가.

그새 허모는 현감노릇을 하면서 벼슬살이의 묘리를 적지 않게 터득하였다.

벼슬살이도 묘리가 있어야 한다. 자기의 본관과 현 벼슬의 위치만을 믿고 멍청해있다가는 인차 그 벼슬살이를 저도모르게 떼우고만다.

허모는 우선 고을의 모든 대소사를 그러쥔 현감의 권세를 리용하여 갖은 수단과 권모술수로 금전과 재물을 긁어모았다.

고을현감에게 나라에서 주는 한해 록봉이란 명주 세필과 베 열세필, 곡식 서른네섬이였다.

허모에게 그 록봉이 도무지 눈에 찰리 만무하였다. 더 높은 벼슬에 올라 권력을 쥐려면 재간껏 재물을 모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 허모는 어떻게 하면 재물주머니를 늘구겠는가 하는 궁리밖에 없었다.

허모는 권력을 쥔자들에게는 신통히도 일맥상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는것을 벼슬살이과정을 통하여 더욱 절감하였다. 그것은 하나와 같이 아첨을 좋아하고 뢰물을 좋아하며 녀색에 혹한다는것이였다.

허모자신도 그러하였지만 허모의 상전들도 역시 그러하였다.

허모는 앞으로 장차 조정의 사헌부의 벼슬을 노리고있었다. 사헌부라고 하면 임금님과 함께 현행정사를 토론하고 모든 관리들을 규찰하며 풍속을 바로잡고 협잡과 부정행위를 단속하는 감찰부서이다. 오죽 노란자위의 벼슬인가?!

그러자면 조정의 유력한 줄을 잡아야 한다. 하여 그는 언제인가 사천에 내려온적 있는 사헌부의 장관인 대사헌(종2품) 박근원을 점찍어두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그런데서 첫째가 재물과 금전이였다. 허모는 금전과 재물이 생기는족족 박근원에게 섬겨바쳤다.

현감이라지만 허모의 집은 매우 검소하였다. 그만큼 허모는 자기가 긁어모은 재물의 거의 전부를 박근원에게로 들이밀었다. 집을 검소하게 하는게 좋은 점이 한둘이 아니였다. 여러가지 재물을 긁어모을대로 다 긁어모으면서도 누가 와봐도 청백리라는 평가를 받을수 있기때문이다. 지금 차지한 현감의 벼슬자리는 벼슬길에서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였다.

지방관의 벼슬중에서 현감(종6품)은 제일 작은 고을의 원이였다. 같은 현이라고 해도 현감보다 한등급 높은 현령(종5품)이 있었고 또 수십개의 현들을 합친 군이나 부, 목에는 군수(종4품), 목사(정3품), 부사(정3품), 부윤(종2품)이 있었으며 다시 그우에는 한개 도를 관할하는 관찰사(종2품)가 있었다.

언제 이렇게 벼슬의 계단을 층층히 밟아 조정의 상층에 진출한단 말인가! 이런 순차를 밟아 벼슬이 오르는것을 허모는 절대로 허용할수 없었다. 하여 그는 몇계단을 뛰여넘으면서 짧은 시일에 벼슬의 상층에 오르기 위해 대사헌 박근원에게 찰거마리같이 바싹 달라붙었으며 그에게 잘 보이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았다.

며칠전에 박근원이한테서 기별이 왔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사헌부의 감찰직에 옮겨놓겠다고 한다. 사헌부 감찰이라고 하면 품계가 현감이나 동급인 정6품이라지만 그 권한과 직능은 모든 관료들의 뒤조사를 하는 중앙관청인 사헌부의 벼슬이였다. 처음에는 감찰이래도 앞으로는 대사헌이 못될것도 없다. 이런 타산과 야심으로 벼슬길을 톺고있는 허모였다.

장독교에 올라 산음의 산천경개를 부감하는 허모의 심정은 감회스럽기 그지없었다.

허모가 산음관아에 당도하니 완기가 버선발로 뛰여나오는데 너무도 반가와 어쩔줄을 몰라한다. 이태전에 치른 특별시에서 두사람이 동시에 급제했다지만 부모들의 막후공작이 간단치 않았다. 허륜은 만사를 제쳐놓고 한성에 있는 친척들과 친구들을 동원하여 허모를 급제시켰고 완기의 부모들도 그에 뒤질세라 뻔질나게 한성으로 출입하며 뒤공작을 하여 아들을 급제시켰다. 한림벼슬을 제수받았다가 금년 봄에 서로가 경상도의 사천과 산음현감으로 부임되여왔다. 이전에 산음현감으로 있던 완기의 숙부는 삼년전에 한성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서로 헤여진지 1년이 된 그들이였다.

《그래, 아버님이랑 그새 별고없나?》

사팔눈을 치뜨며 완기가 물었다.

《그럭저럭 별고없네.》

그 순간 허모의 눈앞에는 현감벼슬을 하사받고 룡천에 갔던 일이 생생하였다.

외직이란 본래 기한이 있는 법이다. 대개 지방의 고을원의 임기는 3년이지만 허륜은 고을의 민심이라면서 조정에선 임기가 지난 그를 그냥 군수벼슬에 류임시켰다. 해서 허륜은 벌써 6년째 그냥 군수벼슬에 있었다.

《아버님, 그새 별고없으셨소이까?》

룡천에 당도하니 해가 기을어질무렵이라 허모는 곧바로 동헌으로 향했다. 마침 아버지가 있었다. 허모의 인사를 받는 허륜의 눈에 물기가 언뜻거렸다.

(아버지가 늙기는 늙으셨구나!)

이전에는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을 본다는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였다.

아버지의 얼굴에 가로 건너간 굵은 주름살은 그가 겉도 늙었지만 마음도 텅 비였다는것을 말해주었다.

하긴 그럴수밖에 없는 허륜이다. 려월모자가 산음으로 떠나가고 오매가 중풍에 걸려 맨날 앓아누워있는 집안엔 썰렁한 분위기만 배회하였다. 그럴 때면 허륜은 산음에 가있는 려월이가 그리웠다. 어떤 때엔 오라고 기별을 띄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허나 그때마다 허륜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허준의 뜻을 위해 자기가 동의하여 떠나보낸 길이 아닌가.

허륜은 차츰 시름시름 심화병을 앓기 시작하였으며 오늘에 와서는 입맛마저 잃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추연한 눈길로 허모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젠 다 자랐구나!》

《아버님께서 뒤에서 잘 밀어주신 덕택이올시다.》

허모의 말에 틀린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가 금전과 권세로 뒤받침하여주지 않았더라면 허모가 아무리 권모술수의 능수라고 해도 오늘과 같은 날이 있을수 없었다. 이런것을 생각하면 허모는 쇠진해지고 늙어서 초췌해진 아버지의 정상을 보는것이 무척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와 헤여진 허모는 어머니가 있는 방에 이르렀다. 관속들이 놀란 눈길로 허모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오매는 아직도 반신불수의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오매는 눈물이 글썽하여 가드라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허모의 두손을 꼭 잡았다.

《네가 오늘은 이렇게 름름하게 자라났고나! 내 오늘을 보지 못하고 죽는가 했더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는것 같구나.》

《무슨 그런 나약한 소릴 하시우?》

허모는 가슴이 아팠다.

부친과 모친의 정상을 목격하니 허모의 가슴속에서는 저도모르게 려월과 허준에 대한 반감이 슬며시 치밀었다.

오매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허모의 팔을 잡고 물었다.

《요새 그것들의 소식을 모르냐?》

《려월이년은 아직도 간간이 심화병이 도져 누워있다 하고 허준이녀석은 의술을 배웠다 하는데 이즈음에는 명의라고 산음고을에서 소문이 자자한것 같수다.》

《어느정도 고치기에 그런 평판을 듣는다더냐?》

《들리는 소문엔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하우.》

불쑥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하고나서도 허모는 속으로 머리를 굴리고있었다.

(명의라-)

명의라고 하면 임금님으로부터 시작하여 고관대작들도 외면하지 못하는 법이다.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른 저들의 목숨을 살려줄수 있는 명의를 외면할 사람이 어데 있을터인가?!

자기의 이 현감벼슬이나 도관찰사의 벼슬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이 대신할수 있어도 명의가 지닌 신비한 의술은 그 사람외에는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한다.

허준이가 앞으로 진짜명의가 된다면 이는 자못 심중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그만큼 명의는 면도 넓고 신세를 지워놓은 사람도 많을터이니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솟구칠지 모르기때문이다.

어떻게 되여 한아비의 피를 받은 이복동생(물론 언제한번 허준이가 자기 동생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었지만)에게 그런 기질이 있는지 밸꼴려 참을수가 없다. 허준이 그 명석한 두뇌와 불같은 기질로 앞으로 팔도강산에 명성을 떨칠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였다. 적자이고 량반신분인 이 허모가 천한 서얼인 허준이보다 못하다는것이 기정사실로 될수 있었다.

한번 다시 된매를 안길수 있는 묘한 수는 없겠는가.

이때 오매의 심술궂은 목소리가 울렸다.

《얘, 허모야! 그전에 과거응시할 때처럼 그년놈들에게 골탕을 먹일 계책은 뭐 없겠느냐?》

보매 오매의 유일한 소원은 바로 그것뿐인듯 하였다.

허모는 병신이 되여 누워있으면서도 머리속에 온통 그 생각만 하는 어머니를 새삼스레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머니, 참말로 그놈들에게 골탕을 먹이고싶으시우?》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속이 씨원하겠니. 내가 이렇게 수족을 쓰지 못하고 페인이 된것도 바로 그놈들때문이 아니냐.》

《그럼 내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리리다.》

오매의 두눈이 번쩍 빛났다.

《어떻게 말이냐? 사또의 권세로 말이냐?》

《아니요. 이 일에서는 그것이 통하질 않을거우다.》

《그럼 무슨 좋은 계책이라도 있느냐?》

《있긴 한데… 어머니도 알겠지만 완기말이요. 그가 이번에 나랑 같이 현감벼슬을 제수받았는데 준이녀석이 살고있는 산음현감으로 부임됐수다.》

《그게 정말이냐? 그럼 그 완기더러 려월이년을 혼쌀내라구 하려무나.》

《걱정마시우. 내게두 다 생각이 있수.》…

집형편을 묻는 완기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 순간 허모의 뇌리속에 불현듯 룡천에 갔던 일이 되살아나는것은 무엇때문일가. 하긴 이번 걸음이 단순히 완기의 청을 받고 오는 친구방문행이 아니다. 친구나 방문하자구 그 먼길을 올 허모가 아니였다.

허모는 완기에게 물었다.

《이 고을에 자네가 손발처럼 부릴수 있는 사람은 없나?》

《그건 무슨 소린가?》

《음- 이번에 여기로 온것은 자네를 보려구 온것두 있지만 거- 있지 않나? 내 이복동생녀석말이야.》

《허준이? 있네. 여기서 한창 명의라구 소문이 나기 시작했지.》

《그녀석을 한번 되게 혼쌀내주려구 그래. 아직두 그 류이태인지 하는 의원네 집에 다니던가?》

《말두 말게. 이젠 한집안식구처럼 지내네. 하루종일 설유라는 계집과 함께 있으면서 류이태를 도와 병치료를 한다더군.》

허모는 완기의 귀에 대고 뭐이라고 수작질을 하였다.

완기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아전 하나를 불러 지시를 주었다.

이튿날 허모는 아전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그의 집에는 환갑이 거의 된 모친이 있었는데 가보니 오매처럼 중풍으로 반신불수였다. 신통히도 오매처럼 몸이 뚱뚱하고 승악스러워보이는게 한판에 찍어낸듯 하여 허모는 혀를 찼다.

그 로파는 허모를 보더니 오매처럼 손을 저으며 중얼거리는데 정신만은 또릿해보였다.

아전이 소개하자 허모는 제법 걱정스러운듯 물었다.

《어머니, 몸이 불편하여 자주 속탈을 앓으신다고 했지요?》

《아 그럼, 밤낮으루 누워있으니 조금만 음식을 많이 먹어도 인차 체기를 받고 배가 팽팽 불어나군 하지.》

《그럼 오늘 저녁에 좀 듬뿍 자시고 래일쯤은 속탈에 좀 들어야겠수.》

《그게 무슨 소리유?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린지?》

허모는 품안에서 은전을 꺼내들어 로파의 앞에 놓았다. 로파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아전이 로파의 귀에 대고 한마디 하자 로파가 찬동한다는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허모가 다시 맡을 걸었다.

《어머니가 한 이틀동안만 괴로우신대로 좀 참아주시면 이보다 더 많은 돈을 주지요.》

《예- 알겠어유.》

허모의 말대로 저녁에 잔뜩 과식한 로파의 배는 남산만하게 팽팽 불어났다. 로파는 진짜 괴로와 신음소리를 내였다.

《아이고 배야! 아이고 명치야! 명치끝에 딱 매달려 어디 살겠나.》

허모는 급히 아전을 불렀다.

《넌 이제 빨리 가서 허의원을 데려오거라.》

《네, 알겠소이다.》

아전이 급히 달려가려 하자 허모는 다시금 그에게 강조하였다.

《류의원이 아니라 허의원을 데리고와야 해. 그러자면 시간이 좀 들더라도 문앞에서 은밀히 지키다가 류의원이 왕진간 틈에 허의원을 데리고와!》

《알겠소이다.》

이것은 설유를 꼬일 때 허모가 이미 한번 써먹은 수법이였다. 문득 허모의 머리속에 설유의 아름다운 용모가 떠올랐다. 생각같아서는 이번 기회에 그년을 깔고앉아 짓뭉개놓고싶었다. 허나 여기는 산음고을이였다. 사천이라면 행수기생을 시켜 꼬드기던가 아니면 권세로 누르던가 할수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럴수 없었다. 아니, 기회는 또 있을것이다.

잠시후 허준이 치료가방을 들고 아전의 뒤를 따라 그 집으로 들어섰다.

허모는 점잖은 언행으로 그를 맞아들였다.

《음, 그새 잘 있었나. 오래간만이구나.》

허준도 깍듯이 인사하였다.

《사또님께 문안드리오이다.》

《아, 사또님은 또 무슨 사또님이야? 그저 형님이라고 부르게.》

《황송하오이다. 언제 여기에 오셨소이까?》

《어제 왔네. 동생의 얼굴도 한번 볼겸 또 이 고을 사또가 한번 오라고 해서 겸사겸사 왔네. 헌데 듣자니 그새 동생의 명성이 이 고을에서 자자하던데 참 대단해. 내 이 고을에 왔다가 이 사람의 모친이 속탈로 몹시 괴로와하길래 한번 보이려고 이렇게 오라고 했으니 어서 좀 봐주게.》

허준은 로파의 맥을 짚어본 후 그의 배를 만져보았다. 손가락으로 타진(배를 두드리는것)해보니 펑- 펑- 하는 북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명치끝은 딴딴하게 굳어져있었다. 어렵지 않게 식상에 의한 체기라는것을 가늠할수 있었다.

로파는 고통스러운지 두눈을 질끔 감고 오만상을 짓고있었다.

《원체 비위가 약한데다가 식상을 만나 심한 체기가 왔소이다. 이걸 제때에 풀지 않으면 위심증이 와 심장에까지 영향을 미칠수 있고 또 아예 고질적인 병으로 되여버릴수 있소이다. 이런건 단박에 떼버려야 하오이다.》

《음, 어디한번 자네 솜씰 좀 보세나.》

허준은 침통에서 장침을 꺼내들었다. 로파의 눈이 겁에 질려 희뜩거렸다.

《아, 아니! 저렇게 긴 침을 내 배에다 놓나?》

허준은 아무 응대도 없이 로파의 중완혈에 침을 푹 들이찔렀다.

《아이고!-》

엄살을 치는 로파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침자루를 쥐고 서서히 들이찌르면서 허준은 득기감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이제에 와서는 어제날의 허준이가 아니였다. 거침없이 들어가는 침이 첫번째 저항을 받는듯 힘들게 들어갔다. 그 저항을 넘어 침을 더 들이찌르니 두번째 저항에 부딪쳤다. 배의 근육층들을 통과하는 저항감이였다. 좀더 깊이 들이찌르자 허준의 손에 미세한 진동이 와닿았다. 확연하게 알리는 득기감이였다.

《으흐혹!》

로파의 입에서 괴상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위전단계(정확히는 복막전단계)까지 침끝이 정확히 박혀 위전체를 끌어당기는듯 한 침감이 쭉 느껴지면서 로파의 온 배에로 퍼져나갔다. 허준은 자기의 손에서 느껴지는 득기감과 로파의 찌프린 인상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껄- 하는 길고 요란한 트림소리가 로파의 입에서 터져나오더니 배안에서 꾸르륵- 꾸르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일각(15분)이 지난 후 침을 뽑아든 허준은 자신있게 말하였다.

《이젠 체기가 다 떨어졌소이다. 저녁부터는 제 량대로 식살 하셔도 되겠소이다.》

허모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자네 의술이 정말 간단치 않구만.》

허준은 가방에서 종이에 싼 약봉지를 꺼내며 말하였다.

《이걸 드시게 하오이다. 그럼 이렇게 불어난 헛배가 깨끗이 없어지오이다.》

《이게 뭔가?》

《귤껍질이오이다. 한번에 5돈씩 물에 푹 달여 하루에 세번 들게 하오이다. 그러면 알도리가 있을것이오이다.》

《음?》

허준이 일어서자 허모는 얼른 그의 손에 은전 세잎을 쥐여주었다.

《이건 뭣이오이까?》

《치료빌세.》

《그만두시오이다. 사또님의 명의로 병을 봐주었는데 내 어찌 치료빌 받겠소이까?》

허준은 허모가 내미는 손을 뿌리치고 집밖으로 나섰다. 허모는 아전더러 곧 허준이 가르쳐준대로 굴껍질을 달여 모친에게 먹이게 하였다. 점심경이 되자 로파가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아애비야! 이것 좀 봐라. 내 배가 푹 꺼져버렸다!》

아전이 모친의 배를 보니 만삭이 된 임신부와 같이 남산만 하던 그 배가 정말 훌쭉 꺼져버렸다.

《어쨌든 헛배가 싹 꺼지니 거뜬한게 살것 같구나!》

허모는 실눈을 짓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음- 그놈이 명의는 명의로다! 술법이 여간 높질 않은걸.》

산음관아로 돌아가려던 허모는 자기가 데려온 사천관아의 의원에게 물었다.

《이보게, 독을 쓰는 초약들에 뭣이 있나?》

허모는 자기 몸보신을 위해 언제나 의원을 달고다녔다.

《네에?》

의원이 영문을 모르고 눈이 휘둥그래서 되물었다.

《독한 초약말일세.》

《네에- 독을 쓰는 초약들 말이웨까? 그런것이야 많지요. 살구씨, 박새풀뿌리, 파두, 조피나무열매, 석웅황, 랑아, 미치광이풀, 부자…》

《됐네, 됐어. 그런데 지금 자네한테 그런것이 있나?》

《아 그런 독한 초약들을 가지고다닐게 뭣이오이까?》

《그런게 하나도 없단 말인가?》

잠시 눈을 깜박거리던 의원이 말하였다.

《아 부자가 있소이다. 랭증에 쓰려고 마련한 법제하지 않은 생부자가 한알 있습니다요.》

《한알? 그 한알루 사람을 죽일수 있나?》

《원 이런, 법제하지 않은 부자야 독약 한가지지요. 그 한알이면 두세명도 죽일수 있소이다. 하기에 랭증에 부자를 쓸 때에도 꼭 쌀씻은 물에 하루동안 불쿠었다가 검정콩과 함께 한겻동안 푹 끓여낸 다음에야 약재로 씁니다. 그걸 보고 법제라고 하오이다.》

벼슬살이의 리치에는 제노라하지만 의술에는 전혀 문외한인 허모이다.

《얼른 한사람분량을 준비하게.》

《아니 그건?》

허모의 엄한 눈초리를 받은 의원은 의아한 기색을 지으면서도 부엌으로 다급히 내려갔다가 인츰 들어왔다.

《사또님, 이것이오이다.》

허모가 실눈을 치떴다.

《아니 요것으루?》

콩알만큼 짓찧은 부자덩어리가 의원의 손에 댕그랗게 놓여있었다.

《요것이 뭣이오이까? 이것만 먹어도 여간 독을 쓰지 않소이다.》

《음, 요것이 그렇게두 센가? 헌데 죽지는 말아야 하네.》

《네, 치사 직전량입니다.》

《음, 알겠네. 날 따라오게.》

아래방으로 내려와 로파를 바라보는 허모의 눈빛이 자못 우멍스러웠다.

《어머니, 이 약을 한번 더 잡수셔야 하겠소이다.》

《이건 대체 뭐유?》

허모가 로파의 귀박죽에 자그마한 얼굴을 바투 들이대고 몇마디 주어섬겼다. 이미 돈을 받았고 또 허준의 의술을 목격한 로파인지라 이제는 별 지랄을 다 부린대도 겁이 나지 않았다. 조금만 참으면 이제 묵직한 돈이 차례질 판이라 쉬이 승낙하였다.

허나 정작 콩알만한 부자덩어리를 바라보더니 로파가 허모를 근심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헌데 이걸 먹으면 몹시 아프지 않수?》

《아니우다. 그저 잠간 잠들었다고 생각하면 되우다.》

《그러다 혹 영 잠드는건 아니유?》

《아따, 안할 걱정을 하면서… 여기에 의원이 옆에 딱 불어있질 않수?》

《음, 하긴 그래, 그까짓것 잠간 졸리면 뭘하우.》

이윽고 부자덩어리를 삼킨 로파는 의원이 권하는 랭수를 들이마셨다.

허모와 의원이 긴장한 눈길로 로파를 바라보았다. 그옆에 산음관아의 아전이 제 에미의 목숨을 놓고 벌리는 무서운 흉계에 말려들어 개구리처럼 툭 불거져나온 두눈알을 떼룩거리며 멍청히 서있을뿐이였다.

한식경이 지나자 로파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니, 왜 이렇게 손발끝이 짜릿짜릿하느냐?》

산음관아의 아전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고 두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허모는 재빨리 자기가 데리고온 사천관아의 아전에게 눈짓을 하였다. 아전이 벌떡 일어나 대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여나갔다.

잠시후 로파는 더욱 기승을 쓰며 고아댔다.

《아이고!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느냐? 가슴이 막 터지는것 같구나! 머리가 뗑하고 왜 이렇게 메슥메슥하냐. 아이고- 아이구, 사람죽는다!-》

허모는 다급히 의원에게 물었다.

《아니, 이거 약기운이 너무 센게 아닌가?》

의원이 머리를 기웃하며 아리숭한 목소리를 내였다.

《하- 글쎄요.》

《머저리같은것!》

대문을 박차고나온 아전은 곧바로 산음관아로 향하였다. 관아에 당도한 아전은 삼문을 통과한 다음 현감이 정사를 보고있는 동헌대청으로 질풍같이 달려갔다. 동헌대청에서는 완기가 한창 례방과 형방을 세워놓고 초달을 하던중이였다.

《아뢰오! 우리 사또께서 살인이 났다고 기별하라 했소이다!》

사천고을의 아전이 동헌대청을 향해 다급히 소리를 뽑았다. 완기의 사팔눈이 우로 솟구치며 흰자위만 번뜩였다.

《뭐 살인이? 대체 무슨 살인이냐?》

허모의 아전이 약삭바르게 앞으로 나섰다.

《소인은 산음현에 오신 우리 원님을 시중드는 소임을 맡고있사오이다. 우리 원님의 먼 친척되는 부인이 이곳에 계시는데 진시(오전 7~9시)경에 식상을 당해 이 고을 허준이라는 의원이 지은 약을 잡수셨소이다. 헌데 무슨 약제를 썼는지 지금 막 절명직전에 있소이다. 아마 지금쯤은 절명했는지도 모르오이다.》

이미 완기와 짜고든대로 아전은 옆사람들이 다 들으라는듯 큰소리를 질렀다.

《뭣이?》

완기의 사팔눈이 하늘로 곤두섰다.

《허준이라면 사천현감의 이복동생이 아니냐?》

량수거지하고 서있던 례방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였다.

《그렇소이다.》

완기가 의아하다는듯 사천관아의 아전을 응시하였다.

《그렇다면 허준에게도 그 부인이 친척이 아니냐?》

《따져놓고보면 정말 그러하오이다.》

완기의 사팔눈에 미묘한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형방은 듣거라!》

《네잇!》

《형방은 이제 당장 군졸들을 데리고가서 살인의 진상여부를 알아보고 문초장을 작성한 다음 살인이 적실하면 살인죄를 지은 허준을 곧 끌어오도록 하라!》

《알겠소이다!》

형방이 급급히 돌아서려 하자 완기는 한마디 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가만, 형방은 범죄를 확인할 때 류의원을 같이 데리고가서 증명하도록 해라. 의술에서는 류의원을 따를 사람이 없으니 사태의 진상은 류의원만이 자상히 밝힐수 있노라. 그리고 살인이 확실하거든 류의원의 수결을 받아오도록 하라!》

《알겠소이다!》

형방이 관아의 군사 여럿을 데리고 허모가 파한 아전의 안내를 받으며 떠나갔다. 떠나기 전에 형방은 관속 하나를 파하여 류이태에게로 기별을 보냈다.

허모의 아전을 앞세우고 막 그 집에 당도한 형방은 아연실색하였다. 사천사또의 친척이라는 집이 다름아닌 산음관아의 아전의 집이였던것이다.

이 무슨 도깨비판인가? 이런 의문이 형방의 머리에 피뜩 드는데 벌써 류이태와 허준이 관속의 뒤꽁무니를 따라 동시에 들이닥쳤다.

숨가삐 방안에 들어선 류이태는 다급히 로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로파의 눈은 이미 꼿꼿해지기 시작했으며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는 연신 가슴을 쥐여뜯으며 《아이고! 나 죽는다, 아이고!-》 하고 고함을 질러대고있었다.

그옆에 서있는 허모와 사천관아의 의원이 어쩔바를 몰라하며 안절부절 못한다.

로파를 찬찬히 바라보는 류이태의 예리한 눈초리에서 섬광이 일었다.

《독한 초약에 의한 중독이오이다! 뭘 먹이였소이까?》

허모는 당황해하면서도 짐짓 아닌보살을 하였다.

《아침에 허의원이 지어준 약밖에…》

류이태는 다급히 로파의 맥을 짚어보았다. 홍대(정상보다 크고 힘있는 맥)맥이 뚜렷하게 알렸다. 그는 허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리님, 이 홍대맥이 세맥(가는맥)으로 넘어가면 병자는 다시는 못살리오이다. 이 늙은이가 잘못되기를 바라오이까? 어서 말하시우!》

절망에 빠진 로파가 가슴을 안타까이 쥐여뜯으며 소리쳤다.

《저기, 저- 의원이 나에게 뭘 먹였소! 아, 나 죽는다! 아직은 죽고싶질 않아! 난 살고싶단 말이야!》

갑자기 허모가 아닌보살을 하며 옆에 있는 의원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뭘 먹였어?》

《아, 사또님!》

《네놈이 내가 없는 사이에 작당질을 했구나! 썩 이실직고하지 못할가!》

《아, 아니- 이런 원통할 일이 또 어데 있소이까! 버선목이라고 뒤집어보일수도 없구…》

류이태가 로파의 눈과 얼굴,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보더니 머리를 끄덕거렸다.

《동자(눈동자)가 저렇게 작아지는걸 보면 분명 부자중독이오이다!》

의원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네, 옳소이다! 제가 그만 법제 안한 부자를…》

《뭣이?》

류이태가 분격하여 허모와 그 의원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언제 꾸물거릴새가 없었다. 류이태는 다급히 가방에서 오지병을 꺼냈다. 허준이 물었다.

《선생님, 무엇이오이까?》

《음, 감두탕일세. 감초와 검정콩, 참대잎으로 만든것인데 해독작용에 즉효일세. 구급약으로 항상 가지고다니지. 어서 병자에게 먹이게!》

이어 류이태는 허모의 옆에서 얼굴이 꺼멓게 죽어있는 의원에게 다급히 말했다.

《자, 어서 이걸 빨리 달여 탕약으로 만드오.》

의원이 제꺽 일어서서 부엌으로 내려갔다.

류이태는 부자중독에 처음 맞다든 허준에게 하나하나 세심히 가르쳐주었다.

《의원들은 언제 어디서 중독자를 맞다들릴지 모르기때문에 중독해제에 좋은 감두탕을 이렇게 오지병에 구급약으로 가지고다니는게 좋다네.》

《선생님, 이제 그 첩약은 무슨 약이오이까?》

《음, 감초 20돈, 검정콩과 록두 각각 한줌 그리고 방풍 6돈으로 이루어진 첩약인데 부자중독을 비롯한 중독해제에 좋은 약일세. 몇번 달여먹이면 효험이 있을거네.》

아닌게아니라 첩약까지 달여먹이니 로파의 발작은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어 드렁드렁 코고는 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제서야 치료에서 손을 뗀 류이태는 날카로운 눈으로 허모를 쳐다보았다.

《이보시우, 사또님!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그렇게 롱간질을 하면 안되오이다. 그러단 하늘의 벌을 받소이다!》

허모는 함구무언으로 류이태의 말을 듣고있었다. 너무도 빤드름한 계책이여서 류이태의 앞에서는 변명할 여지도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이 모든 광경을 낱낱이 목격한 형방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옆에 있는 관아의 아전을 보니 인상이 말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각 아전은 사또의 흉계에 말려들어가 제 어머니의 생명을 놓고 이런 놀음을 벌린것을 속으로 후회하고있던중이였다.

(아니, 세상에 별일 다 있군. 허의원을 모함하려고 남의 모친의 생명을 가지고 계책을 꾸몄구나. 허참, 하늘도 무심하지, 내 눈뜨고 세상에 태여나 사십평생 이런 일은 처음 보는구나.)

형방은 몸서리가 쳐지는지 몸을 으쓱거렸다. 데쳐낸 시래기마냥 풀이 죽어있는 아전을 흘겨보던 형방은 그옆에 실눈을 쪼프리고있는 허모를 보며 제 심장이 졸아드는 느낌이 들었다.

치료를 끝내고 일어나면서 류이태는 허모가 데리고온 의원에게 말했다.

《이제 저녁이면 병자의 얼굴과 아래배, 다리에 좁쌀같은 발진이 날것이요. 감두탕을 며칠 더 달여먹이면 그 증세도 싹 없어지게 되오.》

말을 마친 류이태는 싸늘한 기색으로 대문밖을 나섰다. 그의 뒤를 허준과 형방이 따르고있었다. 그들의 뒤모습을 허모와 의원이 나비쫓던 수닭마냥 멀거니 바라만 보았다.

이윽고 의원과 함께 웃방으로 올라온 허모는 의원의 등을 두드려주며 나직하나 아량있는 어조로 말했다.

《네가 오늘 욕을 봤노라. 헌데 넌 의원이란게 왜 그 모양이냐? 의원이랍시고 명판을 썼으면 저쯤 해야 할게 아니냐? 지금 너처럼 의원흉내를 내는 사람들은 많은데 진짜명의는 얼마 없는게 탈이야.》

의원도 그 말에 동감이라는듯 연신 머리를 조아리였다. 그도 오늘 진짜명의를 처음으로 본것이다.

허모가 류이태의 일행이 나간 뒤 의원에게 욕설을 퍼붓지 않은것은 그래야 필요없었기때문이였다. 차라리 등을 두드려주면서 아량을 베푸는편이 더 나았다.

허모는 꿔온 보리짝마냥 풀이 죽어있는 아전에게 은전을 안겨주며 어머니를 잘 돌봐주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 집을 나섰다. 아전의 집을 나서는 허모의 실눈에 이름 못할 번뇌와 함께 가늠 못할 독기가 언뜩거렸다.

(내가 벼슬살이물계에서는 막히는것이 없고 또 모든 계책이 잘 맞아떨어졌지만 의술로 계책을 꾸미는 일은 내 몸에 잘 맞질 않는구나! 오직 권력으로써, 권력으로써 눌러놓아야 한다! 계책을 꾸며도 권력의 터밭우에서 계책을 꾸며야 성공할수 있어.

음- 어디 두고보자!)

집으로 돌아온 류이태는 진중한 어조로 허준에게 말했다.

《자네 앞으로 저 허모를 조심해야겠네. 분명 서자인 자네를 눌러놓으려고 기회만 있으면 작당질을 하는것 같은데 내 말을 꼭 명심하고 주의하도록 하게. 자고로 의술은 사람을 다루는 일인것만큼 사람들의 병뿐만아니라 그 속내까지도 환히 꿰들고있어야 하네. 그래야 병치료에서도 그렇고 인간생활에서도 랑팰 보지 않을수 있네. 헌데 자네에겐 아직 그것이 부족해. 절대로 사람들을 함부로 믿질 말라구. 특히 량반들일수록 더해. 그놈들은 염통을 두개씩 가지고있는 놈들이야. 겉과 속이 아예 판판 다르지. 저 허모가 바로 그런 량반일세.》

허준자신도 이것을 인정하는터였다.

이번 일을 통하여 허준은 참으로 교훈이 컸다. 한편 마음속으로부터 류이태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우러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오늘 그가 아니였더라면 일이 어떻게 번져질번 했는가?

생각만 해보아도 머리칼이 곤두서고 식은땀이 쭉 뻗어내렸다. 영낙없이 관가의 옥살이신세를 질판이였다. 자칫하면 살인죄로 목숨까지 잃을번 한 허준이였다.

류이태는 허준에게 있어서 한갖 의술을 배워주는 선생이 아니라 험난한 인생길을 어떻게 헤쳐가야 하는가를, 더우기 허준이 세운 뜻을 실현해나가는 길에서 어떤 각오와 의지를 가져야 하는가를 가르켜준 은사이기도 하였다.

허준은 공경어린 눈길로 류이태를 바라보았다. 왜서인지 그의 머리에 내린 백발이 아프게 허준의 눈길을 자극하였다.

《선생님, 제 앞으로 오늘의 그 가르침을 골수에 새겨넣고 항상 명심하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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