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1 장  불우한 서자

9

 

려월모자가 산음으로 떠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부터 오매는 속을 앓았다.

정말 그년이 고향으로 떠난단 말인가. 책방을 몰래 불러 이 일을 물었을 때 책방은 금시초문이라는듯 펄쩍 뛰였다.

《그럴수가 없소이다. 마님! 작은댁이 경상도로 가다니 그 무슨 말이웨까? 아니, 아니! 그럴리가 있나요? 사또어른이 작은댁을 그냥 보낼리가 있겠소이까? 아마 마님을 놀래우느라고 한마디 한거겠지요.》

그러던 책방이 이튿날 허겁지겁 들어섰다

《마님의 얘기를 듣고 다시 알아보니 작은댁과 작은도련님이 정말 경상도로 간다고 하오이다.》

《그게 적실한가?》

《예, 듣자니 작은도련님을 위해 그런다는것 같소이다.》

《그건 무슨 소리냐?》

책방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오매의 귀박죽에 대고 수군거렸다.

《서얼출신인 작은도련님이 무슨 학문연구를 한다는것 같소이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스무해전에 저 송도부중에 화담이라는 신선같은 량반 한분이 살았습니다. 평생 벼슬을 버리고 학문을 연구했다는데 지금 조야에선 그 화담이라는 량반을 성인군자라고 괴여올리고있습니다. 임금님도 그분의 학문에 대한 글을 읽고는 <이 나라에 그런 성인학자가 있었다는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하시며 이미 세상을 떠난 그 량반의 신주를 성묘와 같이 배향하고 잘 받들라고 어지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 화담선생과 같은 인물이 되겠다는것이 작은도련님의 취지인가 봅니다. 그래서 작은도련님이 과거와는 등을 돌리고 그 화담선생처럼 일생 학문을 연구하겠다고 하는데 사또어른도 못내 대견해하였다던지. …

사람들이 지금 작은 도련님이 앞으로 큰일을 칠 재목이라고 찬사가 대단합니다.》

책방이 왔다간 후 오매는 우리안에 갇힌 승냥이처럼 방안을 맴돌았다. 령감없이 홀로 청상과부처럼 지낼 때에는 너렁청하게 크던 방안이 정신없이 오락가락하는 지금에는 너무도 비좁았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거야 우리안에 갇혀있던 범을 산속에 놓아주는 격이고 조롱에 든 소리개를 창공에 날려보내는 격이 아닌가! 도무지 마음을 안정할수 없었다. 만약에 허준이가 그 화담인지 꽃담인지 하는 량반처럼 학문으로 명성을 날리는 그날엔 오매는 복통이 터져 죽을것만 같았다. 아니, 어떻게 하나 그년들의 산음행을 중지시켜야 한다!

하여 오매는 다시 책방을 호출하여 《소수서원》에 있는 아들에게 기별을 띄우라고 분부하였다. 그들이 떠나기 전에 아들이 오면 아들의 팽이머리에서 어떤 기막힌 묘안이 나올지도 모른다. 아마 허모는 이 에미가 상상도 못할 기막힌 수를 끄집어내여 려월모자를 덫에 걸린 쥐처럼 만들어놓으리라.

이날도 오매가 이제나저제나 아들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마루에 서서 대문을 멀거니 바라보고있는데 불쑥 려월이와 허준이가 남편을 앞세우고 대문안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려월이 오매앞에 공손히 머리를 수그렸다.

《마님! 오늘 우린 고향으로 내려가오이다. 그간 여러모로 마님의 신세를 많이 졌소이다. 우리 모자때문에 마음을 많이 써온 마님인데 이젠 우리로 하여 속을 쓸 일이 없을터이니 아무쪼록 앓지 마시고 건강하길 바라오이다.》

허준은 그저 머리를 숙여 인사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려월은 그 한마디 말을 남기고는 돌아섰다. 그뒤를 따라 허준이 대문을 나서고 뒤에 서서 그들의 인사하는 모습을 일별하던 남편도 말없이 쑥 나가버렸다.

삽시에 동헌대청뜰안에 정적이 깃들었다. 오매는 순간적으로 귀가 멍해지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서 얼른거리던 하인들이며 한무리 뒤따라 들어섰던 관속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오매는 자기가 망망대해속의 자그마한 무인도에 홀로 서있는듯 한 환각이 들었다. 온 뜨락이 빙빙 돌기 시작하면서 오매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에 무수한 별찌가 이는것을 느꼈다. 그것도 한순간, 오매는 려월모자가 나가던 대문을 바라보고는 그자리에 쿵- 하고 통나무처럼 자빠져버렸다. 하녀 하나가 사또댁마님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마루에 넘어지는것을 발견하고 제꺽 대문을 차고 달려나갔다. 소식을 들은 허륜과 려월, 허준은 황급히 되돌아 들어섰다.

허륜이 마루에 쓰러진 오매를 부둥켜안아 돌려눕히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시뻘겋게 붉어진 오매의 얼굴에서 환자위만 남은 두눈이 허륜을 무섭게 노려보고있고 입귀로는 거품이 슴배여나온다.

《이크! 이 무슨 일이냐?》

허륜은 저도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주저앉았다. 려월이 조심스레 오매의 얼굴을 손으로 들어올렸다. 오매의 얼굴 한쪽이 무섭게 찌그러져있었다. 려월이 다급히 허준을 돌아보았다.

《준이야! 어서 의원을 불러오너라!》

허준은 부리나케 대문으로 뛰여갔다.

잠시후 허준은 죽순이와 함께 들어섰다.

방안에 들어선 죽순은 급히 오매의 맥을 짚어보고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중풍이 왔소이다. 중풍이 와서 저렇게 정신을 잃었고 얼굴에는 구완와사(안면신경마비)가 왔나이다.》

《뭐?!》

안절부절하며 죽순의 옆에서 감돌던 허륜은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화는 쌍으로 온다더니 근일간에 무슨 날벼락이 이리도 잦단 말인가. 어찌하여 이 집의 화는 쌍으로가 아니라 세겹, 네겹으로 겹쳐드는가. 서자인 허준의 장원급제는 모래성이 되고말았고 그리도 정차던 소실 려월은 끝내 고향으로 떠나가지, 본댁은 오늘 이렇게 중풍에 걸려 뻐드러졌다. 아, 처첩생활이란 이리도 복잡다단한가.

정녕 다래덩굴마냥 갈래없이 엉켜돌아가는 운명의 희롱이다.

허륜에게 있어서 소실인 려월은 분명 미모가 뛰여나고 마음 또한 부드러워 사랑스럽기 그지없었지만 본댁인 오매 역시 무시해서는 안될 허씨집안의 정실부인이였다. 오매의 심술과 시기심으로 하여 할수없이 려월을 제 고향으로 보내는 자기 가슴이 막 미여질것 같은데 엎친데덮친 격으로 중풍에 걸려 쓰러진 오매의 정상을 바라보니 커다란 먹장구름이 드리운듯 마음이 무거웠으며 자기의 한쪽팔이 떨어져나간듯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허륜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식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쿠! 이젠 다 망했구나, 망했어!》

그러는 허륜에게 죽순이 충고했다.

《사또나리! 그렇게 탄식만 하면 마님이 살아난답니까? 어서 치료해서 살려내야지 않소이까.》

그 말에 정신이 든듯 허륜이 벌떡 앉은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그래 치료를 해야지! 헌데 치료하면 꽤 살려낼수 있을가?》

죽순은 그 말에는 대척하지 않고 재빨리 가방을 열고 침통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인중혈과 열손가락정혈들에 침을 놓았다. 오매가 조금 움씰하더니 여전히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듯 정신이 없었다. 죽순이 다급히 소리쳤다.

《누가 얼른 참기름을 가져오세요.》

녀종이 달려가 자그마한 술잔에 참기름을 담아가지고 왔다. 죽순은 참기름에다 무엇인가를 섞어 풀기 시작하였다.

죽순이 치료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허륜이 물었다.

《그건 뭔가?》

《우황청심환과 사향 두푼(1푼은 O. 375그람)을 참기름에 풀었소이다.》

《그걸 먹이면 깨날수 있겠나?》

《효험이 있을것이오이다.》

허준은 조금도 덤비지 않고 침착하면서도 자신만만하게 치료하는 죽순의 일거일동을 보면서 정말 의술이란 신비스럽기 그지없구나, 누가 이런 치료비방을 고안했을가 하는 생각이 언뜻 뇌리를 쳤다.

참기름에 푼 사향과 우황청심환을 먹이려는데 오매의 윽다물린 입이 도무지 벌어지지 않았다. 허륜이 안달복달하며 소리쳤다.

《차, 이런 변 봤나. 약을 먹이려는데 입을 좀 벌려야지.

얘! 네가 숟가락같은것을 이발새에 밀어넣어 강짜로라도 입을 별려라! 그래야 약을 먹일게 아니냐.》

녀종에게 소리치는 허륜을 죽순이 다급히 만류하였다.

《덤비지 마소이다. 그렇게 강짜로 열면 이발이 벌어지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부서질수 있소이다.》

《그럼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죽순은 재빨리 매화나무열매살에 천남성과 족두리풀뿌리가루를 버무린 후 그것을 자기의 가운데손가락에 묻혔다. 족두리풀뿌리의 싸한 자극성냄새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확연하게 풍겼다. 죽순은 오매의 입술을 조심히 벌리고 그의 이발을 자기의 가운데손가락으로 냅다 문질렀다. 그렇게도 굳은 성문과 같이 억척스레 닫기여있던 오매의 입이 느슨하게 하- 벌어졌다. 죽순의 어깨너머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허륜의 입도 하- 하고 같이 벌어졌다. 벌려진 이발사이로 사향과 우황청심환을 푼 참기름이 스르르 넘어갔다. 이어 죽순은 종이봉지에 싼 가루약을 꺼내들더니 오매의 코구멍가까이에 대고 후- 하는 소리를 내며 불어넣었다.

《캑!- 캐액-》

죽은듯 기척없던 오매가 연방 크게 재채기를 하였다. 주위사람들의 얼굴에 다소 안도의 기색이 어렸다. 시종 죽순의 거동을 주시하던 허준이 조심히 물었다.

《그건 또 뭐이오이까?》

《이건 주염나무열매와 백반, 족두리풀뿌리를 말리워 가루낸것이예요. 중풍을 맞은 병자가 이 가루를 코구멍에 불어넣었을 때 이렇게 재채기를 히면 치료할수 있다는것을 말해주지요.》

《그러니 고칠수 있단 말이옵니까?》

《네, 살릴수 있지만 그 후유증이 어떻겠는지는 아직 장담하기 일러요. 기본은 병자의 마음인데, 병자가 어떤 기분상태를 가지는가에 많이 달려있어요.》

허준의 물음에 대답하고난 죽순은 허륜을 돌아보았다.

《이제 곽향정기산에 천남성과 목향을 더 첨가하여 약을 지어올릴테니 그 약을 쓰도록 하소이다. 중풍을 맞은데는 알 도리가 있을것이옵니다.》

《음, 그리하세. 이자 보니 임자 의술이 여간 아니구만. 준이한테서 대략 들어 알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니 더욱 탄복하게 되네. 내 돈은 푼푼히 줄테니 살려만 주게.》

오매가 중풍에 걸렸다는것을 인식한 이 순간 려월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여느 사람도 아닌 한 고을의 관장인 남편의 정실이 저렇게 누워있는데 자기마저 훌 떠난다면?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차마 발길을 뗄수 없었고 설사 떠난다쳐도 마음이 개운할것 같지 않았다.

죽순이 떠나가고 오매가 잠든 후 려월은 허준을 조용히 별채로 끌고갔다.

《마님이 저렇게 정신이 없는데 나리시중은 누가 들겠니?》

《그럼 어머니의향은?》

《아무래도 네가 혼자 떠나야 할것 같구나. 이런 형편에서 내가 어떻게 나리곁을 뜨겠니? 내 마음이 허락치 않누나. 그리구 누가 곁에서 마님을 간호해야 하겠는데 병이 나을 때까지 내가 여기 그냥 있어야 할것 같구나.》

허준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때 별채문이 벌컥 열리면서 허륜이 들어섰다.

《무슨 소리! 이왕 결심한 일인데 임잔 준이와 어서 떠나게. 임자가 있다구 해서 기울어져가는 이 집의 대들보를 버티진 못해! 딴 생각말구 당장 여길 뜨게!》

려월은 아연해서 허륜을 쳐다보았다. 허준의 눈에도 의아함이 실렀다.

《?!》

《밖에서 수레가 기다리네. 어떡하든지 자네 모자만은 맘편히 살기 바라네.

그리구 준이! 넌 절대루 뜻을 굽히지 말구 의술을 배우거라. 오늘 녀의원이 치료하는걸 보니 네가 왜 의술을 배우겠다는 결심을 했는지 리해가 오더라. 나라안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명의가 되여 이 허씨 문중의 대들보를 바로 세우거라.

의과는 잡과에 속하니 네형편에선 얼마든지 과거응시도 할수 있으니 주저하지 말구 네 결심대루 곧추 가거라!》

허준은 그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님! 소자는 아버님의 말씀을 뇌심초사하여 받들겠나이다. 부디 몸을 돌보십시오. 이는 어머니와 소자의 진정의 마음이옵니다.》

허륜이 허준을 잡아일으켜세우고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와락 끌어안았다.

《준이야! 내 아들아!》

《아버님!》

려월이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었다.

《여기 일은 걱정말구 어서 떠나거라. 부디 어머니를 잘 모시구 너의 뜻을 이루길 이 애빈 일일천추로 기다리겠다. 알겠냐?》

허준은 아버지의 품에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저 머리만 끄덕거렸다. 허륜의 눈귀가 축축히 젖어있었다. 려월이 나붓이 무릎을 꿇었다.

《나리, 부디 옥체만강하시오이다. 불민한 이 몸이 나리의 속만 태우다가 이렇게 가버리자니 차마 못할짓을 하는것 같아 걸음발을 옮길것 같지 못하오이다. 허나 어데 가든 나리의 일이 만사편안하기를 첩은 빌고빌겠나이다.》

허준은 어머니를 모시고 수레에 올랐다. 점점 멀어져가는 허륜의 모습이 작은 점으로 보인다.

그러고보면 사람의 운명이란 참 묘하기 그지없었다. 허준의 모자가 산음으로 떠나는 바로 그날에 그리도 그들모자를 미워하고 괴롭히던 오매가 지나친 흥분으로 오는 정신적충격으로 그만 중풍에 걸려 반신불수가 되였으니 이 모든것이 과연 하늘의 뜻인가 아니면 행불의 교차속에 서로 엇갈리는 운명의 희롱인가. 아직은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장담할수 없었다. 인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흘려가는 세월이였다.

때는 한해도 다 지나가는 마가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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