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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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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아직도 《강계싸움대장》이 늙지 않았다며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

《장군님, 지금 우리 자강도인민들의 식량사정이 곤난하지만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도안에서 생산되는 공작기계와 정광과 농토산물로 변강무역을 잘하여 어떻게든지 식량문제를 풀겠습니다.》

태혁은 자강도가 고산지대여서 교통조건이 불리한데다 휘발유사정으로 변강무역에 지장이 많았지만 이제부턴 수출전용견인기가 뛰게 된다며 자랑삼아 말씀드렸다.

《고난의 행군기간 자강도인민들이 제일 고생하는데 정말 좋은 착안을 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강도에서 소문없이 큰 일을 한다며 대단히 기뻐하시였다.

《우리 자강도인민들에게는 그 수출전용견인기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도당의 신입부원 박혜경동무가 현지에 내려가서 로동자들의 심장에 호소하여 석달이 걸려도 어림없다던 견인기를 보름동안에 기적적으로 살려내였습니다.》

《음…》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직 한번도 만나보신 일이 없는 박혜경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시였다.

《지금 중앙기관 일군들속에는 난관에 겁을 먹고 다른 나라를 쳐다보면서 동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강도인민들이 남보다 어렵게 살면서 자체로 수출전용견인기도 살리고 공장의 자동화에도 떨쳐나선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현시기 경제봉쇄를 뚫고 살아갈수 있는 길은 자력갱생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못한데서는 무엇이나 침체입니다. 나라의 전력이 부족하여 인민경제와 인민들의 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있지만 경제부문 일군들이 똑바른 방도를 찾지 못하는것도 바로 그때문입니다. 됐습니다. 나는 자강도로동계급의 비등된 열의만 발동되면 이번의 전투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태혁이와 이야기를 마치고 곧 문성태비서를 불러 그에게 과업을 주시였다.

《문성태동무, 강태혁동무를 단장으로 스위스에 파견할 기술대표단을 조직하시오. 스위스에서 중소형발전소를 잘 운영하고있는데 한번 가보게 합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소. 앞선 나라들의 기술을 봐야 우리도 얼마든지 잘할수 있다는 배심을 가지게 됩니다. 나는 이번의 중소형발전소들을 어디까지나 실리적으로 건설하자는것이요. 기술대표단을 강력한 력량으로 뭇고 이틀후엔 어김없이 출발시켜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문성태가 한나이 젊어진듯 기운차게 대답올렸다.

《내 생각에 출장기일은 보름이면 충분할것 같습니다. 재삼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 시간이 귀중합니다. 대표단이 돌아오면 발전소건설을 위한 실무적인 대책을 세우고 각 도시군당에 내려보낼 당중앙위원회지시문을 작성하여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중소형발전소건설을 정책화하고 전당적인 사업으로 내밀자는것입니다. 다른 의견이 없으면 돌아가서 즉시 사업에 착수하시오.》

 

×

 

그날 밤이 퍼그나 깊어서였다.

스위스에 파견할 기술자대표단명단을 펼쳐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심중한 표정으로 문건에서 시선을 떼며 문성태를 바라보시였다.

《여기에 전력공업부 부부장 리성하동무를 망라시키지 않았는데 그 동무한테 무슨 일이 제기되였습니까?》

문성태는 뜻밖의 질문이여서 그런지 얼른 대답을 못했다.

지금까지 자그마한 실수도 없이 그이의 사업을 보좌해온 일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장군님, 리성하부부장동무의 문제를 심중히 고려하고 대표단에 망라시키지 않았습니다. 일전에 전력공업부에서 장군님께 올린 문건은 부부장동무가 관료주의적으로 작성하고 통과시킨것이였습니다. 전력공업부 기관협의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시기 새로 대용량발전소들을 건설할수 있는가 하는 정당한 의견을 제기했지만 부부장동문 나라의 사정을 고려함이 없이 깔아버렸다고 합니다.》

리성하가 전국의 전력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를 론의하면서 대중의 의견을 허심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고집한건 옳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어려운 실정에 대한 고려와 타산이 없었을뿐이지 대용량발전소들을 건설하여 전력문제를 해결하려는 리성하의 견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것은 아니다. 그이께서는 이제 적들의 경제제재를 분쇄하고 나라의 형편이 펴이면 대용량발전소들을 본격적으로 건설할 결심이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성하의 주장을 엄중히 여기며 결함이 있는 일군이라 하여 대표단에 망라시키지 않은건 편협한 처사였다. 혹시 이 오랜 당일군이 해외에 파견하는 기술자대표단의 선발사업을 그 무슨 표창내신처럼 생각한것이 아닌가. 대표단이 스위스에 관광객처럼 한가하게 휴양을 하려고 떠나는것도 아니다. 나라의 첨예한 전력문제를 풀기 위한 무거운 과업을 받고 파견되는데 앞으로 전국적인 범위에서 대용량발전소와 중소형발전소건설을 확대해나갈 때 주인구실을 할 일군을 제껴놓고 대표단을 구성하였으니 여간 불만스럽지 않으시였다.

《저희들은 부부장동무가 지난 기간 자강도발전소건설련합기업소 지배인사업을 하며 어버이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중소형발전소건설을 중도반단한 결함도 있기에…》

《그거야 그 한사람의 잘못이라고 할수 있습니까. 전력이 넉넉한 때였고 중소형발전소를 망탕 건설하다보니 덕을 보지 못했지. 그래 자강도에서도 집어던졌던거요. 그때문에 부부장동무를 스위스에 보내려고 했는데… 내 동무들한테 사업과정의 결함만 보지 말고 믿어주라고, 그 믿음이 충신을 낳는다고 몇번이나 말했습니까.》

《저희들이 미처 그렇게까지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상우의 담배곽에서 담배를 집으시다가 도로 놓고 천천히 일어나시였다. 전사들에 대한 그이의 믿음과 신임은 통털어 무한한 인정의 세계였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일군들의 사업에서 자주 나타나고있는 혁명동지에 대한 랭대와 몰리해로 하여 이런 뜻하지 않았던 일에 부닥치게 되는것이 무척 가슴아프시였다.

《문성태동무, 일을 하느라면 누구든지 결함을 범할수 있습니다. 리성하부부장도 동무도…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중요한 문제의 집행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장군님, 명심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깊은 자책에 잠겨 서있는 문성태에게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내 생각엔 동무들이 나라의 형편이 어렵다보니 푼전을 따져가면서 대표단을 구성한것 같은데 이런 일에 자금을 아껴서는 안됩니다. 그러지 말고 평양전력설계사업소의 로련한 설계가인 리경훈선생도 대표단에 망라시켜 보내는것이 좋겠습니다. 이 동무들한테 어떤 과업이 맡겨져있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가까운 시일안에 전력문제를 해결하여야 합니다. 이번의 기술자대표단이 아주 중요한 걸음을 합니다. 이왕 먼 길을 떠나는 동무들인데 중소형발전소만 아니라 전력공업발전의 전반실태를 보고 오게 해야 합니다. 문건을 작성하면 대표단성원들을 즉시 불러올리고 려권수속을 하시오.》

 

3

 

성실은 중키에 입이 무겁고 얼굴이 가무숙한 내성적인 녀성이다. 사십대 젊은 나이인데도 연구사업에만 몰두하다보니 남들처럼 활짝 피여나지 못한 성실은 오늘따라 눈에 띄게 상큼한 목에 입술까지 초들초들 말라서 폴싹 겉늙어보였다. 성실은 희천미생물공장에 나가서 3년동안이나 피땀을 바쳐온 연구사업을 포기하고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밤길을 떠났던지 몰랐다. 동신에서 구봉령밑의 부지리마을까지 겨우 화물자동차를 얻어타고는 온밤 혼자서 캄캄한 령길을 걸었다. 소름이 돋치게 불어치는 바람을 안고 그가 구봉령을 넘어 강계에 도착하자 도당책임비서의 집뜰안에서는 현이 어머니 숙경이가 안달복달하며 돌아갔다.

(이 꼭두새벽에 웬일인가?)

숙경은 소매속으로 스며드는 고산지대의 차거운 바람에 오싹 몸을 떨다가 어망결에 성실이와 눈길이 마주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에그머니나. 성실동무가 마침 오누만. 이 일을 어쩜 좋담?》

《현이 어머니, 왜 그러세요.》

성실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글쎄. 지금까지 별일없던 돼지가 왜 갑자기 저렇게 설치며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니까.》

숙경은 늘쌍 주인이 나타나면 가름대사이로 나팔 같은 주둥이를 내밀고 꿀꿀대던 짐승이 눈정기가 풀려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가뜩이나 연구사업을 포기하고 속이 설뚱했던 성실은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자기가 연구한 발효사료를 먹고 돼지가 탈을 만난게 아닐가? 그러지 않아도 요즘 성실이가 돼지의 사육에 적용한 발효사료를 두고 구구하게 뒤소리들이 많았다. 성실은 저도모르게 손에 들었던 손가방을 토방우에 집어던지고 굴뚝담밑의 돼지우리앞으로 달려갔다. 돼지우리바닥에 축 늘어진 배를 끌면서 안절부절 못하던 돼지가 구석켠에 털썩 드러누워 풀무질하듯 헐떡거리는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혹시 분만할 때가 된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짐작에 불과할뿐 말 못하는 짐승의 속내는 도무지 알길 없었다. 성실은 돼지우리안으로 정신없이 뛰여들었다. 밤도와 캄캄한 령길을 걸어온 그가 무슨 힘으로 돼지우리의 높은 가름대를 눈깜박할 사이에 훌쩍 뛰여넘었는지 알수 없었다.

우리안에 드러누운 돼지옆에 붙어앉은 성실은 숙경을 얼핏 돌아다보았다.

《현이 어머니, 얼른 더운 물을 한소랭이 갖다주세요!》

성실이가 급하게 구는 바람에 숙경은 부엌의 법랑소랭이에 퍼들고 나오던 물을 한절반 치마자락에 쏟뜨리며 달려와서 물었다.

《이거면 되겠나?》

《됐어요.》

성실은 소랭이를 받아들고 돌아앉아서 돼지의 분만을 열심히 돕다가 마른 벼짚을 갖다달라고 재차 독촉했다. 숙경이 김치움안의 북데기를 한아름 안아다주자 성실은 돼지우리구석에다 얼른 폈다. 그가 어찌도 잽싸게 돌아가는지 말 한마디 나눌 사이도 없었다. 젖은 치마자락을 축 드리운채 돼지우리앞에 조마조마해 서있던 숙경은 반시간가량 지나서야 일어서는 성실의 땀투성이얼굴을 긴장히 쳐다봤다.

《어떻게 됐나?》

《돼지가 새끼를 아홉마리나 낳았어요.》

《죽지 않구?》

《보세요. 모두 살아서 엄지의 젖을 먹고있지 않아요.》

숙경은 너무도 좋아서 대뜸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히 밝아졌다.

《됐구만! 성실이 어서 나와서 손도 씻고 세수도 해요.》

성실을 세면장으로 들여보내고 숙경은 돼지우리안에서 아홉마리의 갓난 새끼들이 엄지의 젖꼭지를 물고 꼼지락거리는 모양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자기집 돼지가 정말 용타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세상만사를 잊은듯이 돼지우리앞에 서있다가 등뒤로 조용히 다가서는 성실을 정찬 눈길로 돌아다보았다.

《성실이, 우리 집 돼지에게 동무가 연구한 발효사료를 먹였지. 그런데 보라구. 정말 기쁘구만.》

《현이 어머니가 저의 연구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정말 수고하셨어요.》

《내야 수고한게 있나. 그저 성실이가 연구사업을 성공하고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게 되기를 바랐을뿐이야.》

《고마와요.》

성실은 얌전히 말하고 어설프게 웃었다.

작년에 숙경이가 길바닥에서 그와 만나 재미나게 들려주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숙경은 워낙 집안에서 고양이를 기르는것도 딱 질색하는 성미였는데 4년전 자강도로 갓 이사해왔을 때 장관우부위원장이 어디서 생겼는지 완구상점의 오또기 같은 새끼고양이를 안고 오는 바람에 눈이 휘둥그래졌다고 한다.

그날 장관우는 고양이를 방안에 집어넣으며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느물느물 웃더라는것이였다.

《현이 어머니, 제 책임비서동무한테서 현이 어머니가 고양이라면 천리밖으로 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칭찬받지 못할 싱거운 일을 한다는것두 알고있구요. 한데 엊그제 책임비서동무가 부임되자마자 가족을 두고 먼저 내려왔다길래 날이 어둡자 이 댁으로 찾아와보니 말이 아닙디다. 책임비서동문 고지식한분이라 텅 빈 집의 부엌아궁이앞에 앉아서 장작을 때더군요. 방안에 온통 연기가 꽉 차서 불난 집 같았습니다. 글쎄 바깥에 굴뚝이 붙어있지만 그리로 빠져나가는 연기가 있어야지요. 부엌의 곰보딱지처럼 숭숭 패운 쥐구멍들에서만 살 때를 만난듯이 승강내기로 시커먼 내굴이 뭉글뭉글 뿜어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책임비서동문 눈물을 짜며 앉아서 그냥 아궁이에 장작을 집어넣질 않겠습니까. 허허… 정말 여불없는 직사포더군요. 하기야 제가 뭐 책임비서동무의 마음속에 한두번만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라구요.》

장관우는 숙경을 놀려주기라도 하듯이 능글맞게 구슬려대였다.

《현이 어머니, 부엌의 쥐구멍은 아무리 재간껏 틀어막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밤이 되면 또 쏠라닥거리며 뚫거든요. 그저 도적쥐한텐 고양이가 제격이지요. 제 그래서 고양이새끼를 하나 구해가지고 왔습니다.》

숙경은 그날 기분이 흥떠서 돌아가는 장관우가 미워서 울고싶었다고 했다. 정말 고양이와 앙숙인게 틀림없었다.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 위신없이 별걸 다 들고다닌다니까. 숙경은 도적쥐의 성화를 막아주는 고양이였지만 아침저녁 밥상밑으로 버르장머리없이 살살 기여들 때면 장관우에 대한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가만히 쥐여박군 했다. 그런데 어느날 집으로 퇴근해온 현이 아버지가 이제부터 우리도 돼지를 길러야겠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돼지를 치다니요?》

《여보, 자강도에서 농사도 짓고 산을 리용하여 축산도 하라는건 장군님의 가르치심이요. 당신이 하고싶으면 하고 싫으면 관둬도 되는 일이 아니란 말이요.》

《그럼 진작 그렇다고 하시지요.》

숙경의 새파랗게 질렸던 얼굴이 금시 부드러워졌다. 이튿날로 태혁이와 기계공장에 다니는 현이까지 달라붙어 하루동안에 돼지우리를 번듯하게 만들어놓자 이번에도 장관우부위원장이 새끼돼지를 안고 나타났다.

장관우는 생겨먹은대로 넉살좋게 웃으며 《현이 어머니, 이신작칙은 책임비서동무의 생활신조니까 할수 없수다. 지금이야 돌격앞으로가 아니라 날따라 앞으로! 하는 때가 아닌가요. 자, 이 미련한 짐승아, 어서 책임비서집 우리안에 들어가서 안주인속을 실컷 태워봐라!》 하고 토실토실하게 생긴 돼지새끼를 돼지우리안에 집어넣더니 훌 돌아서 가버렸다.

숙경은 그 이후 돼지기르는 일을 장군님의 가르치심으로 생각하고 온갖 정성을 다 쏟아부었다. 늘쌍 돼지우리에 붙어 달달 볶아대며 돌아가는 숙경이때문에 집안에 굉장한 웃음거리까지 생겼다.

《여보, 우리 집 돼지가 빤히 쳐다보는 그 눈길을 봤어요? 얼마나 고운지 몰라요. 살짝 쌍까풀이 진게… 보면 볼수록 정이 든다니까요.》

태혁은 그 말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이거 제발 웃기지 마오. 난 돼지눈이 쌍까풀졌다는 말은 듣다 처음이요. 가만 보니 당신이 돼지한테 푹 빠져버렸구려.》

남편만이 아니였다. 그의 집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돼지의 눈이 쌍까풀졌다는 숙경의 말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애당초 시틋한 낯빛으로 대꾸도 하지 않던 현이는 너무도 우스워 배를 그러안고 대굴대굴 굴었다. 숙경은 곧장 우겼다. 네가 나처럼 돼지를 기르는데 애착을 느껴봐라, 그러면 그 미욱한 짐승과도 교감이 된다라고 하자 현이는 또다시 갑자기 뿜어나오는 폭소에 숨넘어간다며 제 가슴을 탕탕 두드려대였다. 그 귀여운 《쌍까풀눈》이 성실이의 발효사료를 먹고 새끼를 아홉마리나 낳았으니 숙경이가 기뻐할만도 했다.

《성실이, 이젠 집안으로 들어가자구.》

숙경은 기분이 활짝 개여 성실의 팔을 끌었다. 성실이 주춤거리는 기색이자 그는 현이 아버진 출장중이라고 나직이 귀띔했다.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났는데 열흘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누만.》

《그래요?》

성실은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왜 무슨 일이 있나?》

《현이 어머니, 전… 연구사업을 그만둬야 할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린가?》

숙경이 깜짝 놀랐다.

성실은 너무 죄송스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다. 지금까지 현이 아버지가 리미액연구에 얼마나 큰 기대와 애착을 품고 살틀히 돌봐줬던가. 3년전 평양에서 내려와 리미액연구사업을 하던 성실이가 농업위원회 과학기술국 일군들의 반대에 부딪쳐 고심할 때 태혁은 그를 찾아가 절대로 동요해선 안된다고 적극 고무해주었다. 리미액연구사업은 장군님께서 관심하시는 문제인데 어떤 사람들이 되느니마느니 하며 시비질인가. 성실이가 안착된 마음으로 일할수 있게 태혁은 평양에 있는 그의 가족까지 데려다 강계에 거주시키고 《연구사업을 기어코 성공하고 여기서 행복하게 사오.》라고 말했다. 그 일이 고마와 성실이가 희천미생물공장과 시험포전들에 나가서 살다싶이하자 태혁은 가족들과 만날수 있게 몇번이나 승용차를 보내주었는지 모른다. 여태껏 그렇게 애써 추진시켜온 연구사업을 중단하게 된 성실의 얼굴은 이지러진 희미한 달처럼 처량한 인상을 자아내였다.

《현이 어머니, 절 나쁜 녀자로 생각지 마세요. 전 자강도에 와서 많은걸 배웠어요. 책임비서동지와 같은 당일군을 만나면 수많은 과학자들이 제 구실을 하게 된다는것을 진심으로 느꼈어요. 전 연구사업이 고되고 힘에 겨웠지만 행복했어요. 제가 언제 이런 말을 하던가요? 안했어요. 전 연구사업을 성공하고 말씀드리고싶었어요. 그런데 과학원에서 연구소 부소장이 저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다며 매일같이 연구사업을 그만두고 올라오라는 독촉이예요. 아무 일도 할수 없어요. 정말 마음이 괴로와 더는 못 견디겠어요. 전 가도 책임비서동지한테 간다는 말이라도 하려고 이렇게…》

성실은 숙경이한테 손을 맡긴채 목안의 점막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아니, 아무데도 못가! 동문 책임비서의 승인이 없이는 이 자강땅을 떠날수 없는 사람이야.》

숙경이도 안타까움에 싸여 그렇게 말하고 성실의 앞을 막아섰다.

《성실이가 연구한 미생물을 맨 먼저 도입한게 축산이였지. 지금도 얼마나 말들이 많아? 알곡만 먹던 돼지들이여서 발효사료를 잘 먹지 않고 먹은 돼지들은 류산을 하거나 죽은 새끼를 낳는다고들 해. 저 도깨비 같은게 멋모르고 덤빈다거니 정신병자라느니 별 험한 소릴 다 한다면서? 그따위 소릴 두려워해선 과학을 못해. 우리 집 〈쌍까풀눈〉은 발효사료를 먹고도 끄덕없이 자라구 아홉마리의 새끼를 낳았어. 뭐가 겁나서 연구사업을 포기해? 배심을 굳게 가지고 모두들 들으란듯이 당당히 소문을 내자구. 축산을 전문으로 하는 독산동가내반에서도 귀가 항아리만 해지게! 이런 소문이야 왁자하게 나면 날수록 좋을게 아닌가. 성실이 덕분에 온 자강도사람들이 돼지를 식은죽먹기로 기르게 됐다고 신문에도 내고 한바탕 법석 떠들어보잔 말이야.》

때마침 집안에서 뜨릉뜨릉 울리는 전화종소리를 듣고 달려들어간 숙경이 얼른 송수화기를 들었다.

《예? 예 예… 아니,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동무가 어떻게 김철에 강재를 받으러 갔어요. 네… 에… 그런데 왜 못 받아요. 어림도 없다구요? 하기야 지금은 모든게 바른 때니까… 예.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숙경은 전화를 받고 얼른 나와 성실의 손을 당겨 잡으며 또다시 극성스럽게 타일렀다.

《성실아, 도안에 강재가 떨어져 행정위원회 장관우부위원장까지 김철에 강재를 받으러 갔다누만. 기계공장의 자동선을 내밀자고 해도 강재가 없다면서… 모두들 저렇게 뛰고있는데 동문 이게 무슨 꼴인가. 사실 동무의 연구사업을 위해 가정까지 강계로 내려온게 아니겠어? 안해를 도와나선 남편을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물러서면 안돼!》

성실의 남편 최성진은 기계공장의 자동선개조의 설계를 담당한 근면하고 량심적인 기사이다. 성실이가 두석달씩 빈번히 집을 떠나 시험포전들에 나가 살아도 성진은 군말없이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주부노릇을 하며 자동선개조의 완성을 위해 애써왔다. 이제 자기가 연구사업을 포기하고 평양으로 올라가면 그의 가정도 부득불 이사짐을 싸들고 강계를 떠날수밖에 없다. 남편까지 가버리면 기계공장의 자동선개조는 어떻게 될것인가? …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일이 한두가지 아니여서 속상해하는 성실의 오목하게 꺼진 눈구석에 갑자기 눈물이 샘솟듯 고여올랐다.

《현이 어머니, 전 남편앞에서도 죄진 녀자예요.…》

성실은 서러운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젖은 얼굴을 싸쥐며 대문밖으로 와락 뛰쳐나갔다.

《성실이!》

깜짝 놀란 숙경이가 뒤쫓아나갔으나 성실은 돌아다보지 않고 그냥 엎어질듯 하며 마구 달음쳐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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