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불우한 서자

5

 

드디여 향시를 치르는 날이 다가왔다. 이른새벽에 일어나 부엌에 나가 붙어있던 려월은 새날이 밝기 전에 상을 차려가지고 들어왔다. 밥상우에는 자못 풍성한 음식들이 챙겨져있다.

《어서 밥을 먹으렴.》 ·

오늘 평양부로 떠나는 허준이 밥상으로 나앉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아니 어머니! 이건 뭐 이렇게 요란스레 차렸소이까?》

《과거보러 떠나는 날이 아니냐? 범상치 않은 오늘을 이 어미가 어찌 훌렁 지나보내겠냐.》

허준은 말없이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불쌍한 어머니, 애오라지 이 아들 하나만을 믿고 온갖 수모와 멸시를 고수란히 감수하며 살아오는 어머니! 이자 겨우 서른여덟나이건만 벌써 머리엔 흰오리가 드문히 엿보인다. 허준은 불쑥 눈굽이 젖어들었다.

《어머니, 너무 걱정마시오이다. 제 어떻게 하나 과거를 잘 치르겠나이다.》

잔주름이 간간이 건너간 려월의 눈가에 맑은 눈물이 괴여올랐다.

《오냐, 여부가 있겠니. 그리도 직심스레 글을 익힌 네가 아니냐. 이 어머닌 내 아들을 믿는다. 어서 많이 들고 떠나거라!》

려월은 맛있게 음식을 드는 아들의 모습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 찰떡을 들거라. 예로부터 과거보러 갈 때면 의례히 찰떡을 대접했다고 하더라. 그 찰떡처럼 꼭 붙어서 떨어지지 말라구 말이다.》

《참, 어머니두 》

아침식사를 마친 허준은 아버지가 보낸 수레를 타고 평양부로 떠났다. 어머니가 문밖까지 따라나섰다. 솔숲이 우거진 언덕우에서 소복차림의 려월이 수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점도록 서있었다.

바람질에 솔숲이 우- 우- 불어댄다.

평양부에 이른 허준은 도감영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한 다음 감영을 찾아가 이름을 등록하고 과거날을 기다렸다. 과시까지는 이틀이 남아있다. 평안도땅에 할당된 초시합격인원은 l5명이라지만 등록할 때 둘러보니 수십여명은 실히 될것 같았다. 저들중에서 15명을 선출하는 향시였다.

초시를 하루 앞둔 날 저녁 감영의 도사는 상시관(향시를 주관하는 시험관)을 찾아갔다.

한성시나 성균관시와는 달리 해당 지역에서 치르는 향시는 자기 도내에서 문관출신의 고을원을 상시관으로 임명하여 시험을 주관하며 이외 시험을 감독하는 참시관 두명도 문관출신 고을원이나 교수중에서 임명한다. 이번 향시의 상시관으로는 녕변부사이고 참시관으로는 평양부서원의 교수 두명이였다. 녕변부사는 이전에 도사와 안면이 있는 사람인데 조정에서 례조참의를 하던 사람이였다.

《아니, 도사가 이밤중에 어떻게?》

한창 참시관들과 래일 있게 될 응시생명부를 검토하고있던 상시관이 놀라며 물었다.

도사가 참시관들을 둘러보며 머밋거리자 상시관은 인츰 옆방으로 그를 데리고갔다. 도사는 그 방안에 자기와 상시관 두명뿐임을 재삼 확인한 다음 품안에서 금가락 두개를 꺼내 탁자우에 놓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왜 그러나?》

도사보다 댓살 우이고 품계가 정3품 당상관인 상시관은 공식석상에서는 례를 차렸으나 단둘이 있을 때에는 허물없이 하게로 말한다.

《래일 치를 향시와 관련하여 부사령감께 여쭐 말씀이 있어 왔소이다.》 ·

응당 그 일때문이라고 넘겨짚고있던 상시관은 탁자우의 금가락과 도사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은듯 물었다.

《누군데?》

《허준이라구 룡천군수의 자제올시다.》

룡천군수라는 말에 상시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룡천군수라면 한성에서 오위도총부에 있던 허륜이 아닌가?》

《그렇소이다.》

《그의 아들이 이번 향시에 응시한다는건가?》

《네-》

녕변부사는 한동안 주밋거렸다. 허륜이라면 좋은 감정을 품고있는 부사이다. 한성에서 례조참의로 있던 그가 녕변도호부 부사로 부임되여왔을 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온것이 다름아닌 한발 먼저 룡천군수로 와있던 허륜이다. 그때 허륜은 자기 집안의 래력을 이야기하면서 본댁의 새암으로 머리가 흴 정도라고 하소연하였다. 그럼 이번에 향시에 응시하는 애가 정실댁 소생인가? 가만, 혹시 소실댁 소생이 아닐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등골이 선뜩해졌다. 만약 소실의 아들이라면 서얼인데 나라법에는 서얼은 문무과에 응시하지 못하게 되여있지 않는가? 례조에 있을적부터 과거시험에 수태 관여해온 상시관인지라 서얼출신이 과거에 응시한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고있었다. 상시관은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나직이 물었다.

《그래 허륜령감의 자제가 정실댁의 아들인가?》

도사는 불찌가 몸에 와닿은듯 덴겁하며 놀랐다.

이 구렝이같은 령감이 허륜의 가정사를 손금보듯 알고있구나. 마치 자기의 속을 들여다본듯 물어보는 상시관의 살집좋은 번번한 얼굴을 도사는 한동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범 본 할미처럼 놀라나?》

갑자르며 도사가 대답하였다.

《사실은 서얼이올시다.》

상시관은 제가 속으로 우려하던 서얼이라는 말에 대뜸 언성을 높였다.

《안돼. 어떻게 감히 서얼이 과거장에 나선단 말인가?》

상시관이 부리나케 옆방으로 갔다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응시생명부가 들려있었다.

《아니, 이 허륜이가 미친게 아니야? 어데라구 감히 출신을 속여?》

상시관의 손에 들려온 명부에는 허준이 적자라고 등록되여있었다. 룡천군에서는 세명의 응시생이 추천되였는데 허준은 룡천군수의 정실자제라고 해놓고는 그밑에 군수의 수결을 뻐젓이 써넣었다.

《어험! 변괴로다. 서얼을 감히 적자라구 속이다니?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는 날에는 나나 자네는 물론 도감사도 무사치 못해. 허륜령감은 더 말할것두 없구. 자네 오위도총부에서 허륜령감의 밑에 있었다더니 정신이 쑥 빠졌구만. 나라법이 뭐인지 그래, 감영의 도사라는 자네가 모른단 말인가? 일언이페지하구 안돼! 내 이제 당장 감사한데 찾아가서…》

도사는 제가 저지른 일이 탄로날가봐 얼른 상시관의 옷깃을 붙들었다.

《왜 이러시오이까? 내 말을 마저 다 듣고 그래야지… 난 아직 말을 채 못했수다.》

《그 말을 들어봐야 뻔하지. 서얼놈을 눈감아달라 그거겠지? 자네 허륜령감한테서 이런걸 몇개 받았나? 이런 금가락 두개때문에 일가식솔이 파산되고 나도 파직되고싶지 않네.》

상시관은 탁자우의 금가락을 쳐들고 소리쳤다. 실한 목대에 애기손가락만 한 지렁이가 가로세로 건너갔다.

《그런게 아니라…》

도사는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며 허륜이 례방비장을 자기한테 보낸 이야기를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토 하나 틀릴세라 룡천관가의 례방비장과 나눈 내용이 그대로 상시관의 귀에 전달되였다. 다만 산삼뿌리와 허모가 왔다간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여기로 오면서 혹시 자기 말에서 그런 내용이 발설될가봐 몇번이나 입안에서 굴려본 도사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나면 마치 도사는 청렴결백한듯싶었다. 인정상 의리상 외면할수 없어 뿌리치지 못했지만 나라법을 한치도 어길수 없기에 찾아온것처럼 상시관에게 인식되였다. 하면서도 갖신으로 구정물을 퍼마신것같이 뭐인가 께름직한게 잘 리해가 오지 않아 상시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자네의 의견은 뭔가?》

《허륜령감의 성의를 봐서 모른다고 딱 잘라버리지 못했지만 그 서얼자식놈에게 이번 기회에 량반신분이란게 어떤것인지 본때를 보였으면 하오이다. 아마 그 소실과 서얼놈의 성화에 못이겨 허륜령감이 이런 엄청난 일에 뛰여든것 같은데 자식가진 아비로서야 응당 그래야지요. 허륜령감이 이 일이 글러지면 날 탓할수 있지만 사실은 부사령감이나 내가 자기를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었다는것을 안다면 노여움이 사라지겠지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량반인 제 애비를 팔아먹구 사지판에 몰아넣는 그 허준이란 놈이 제 처지를 깨닫구 다시는 과거장에 머리를 기웃거리지 못하게 하자는것이 제 소견올시다.》

듣고보니 리해가 되였다. 감영의 도사가 허륜의 밑에서 일을 했다더니 인정에 못 이겨 승낙했지만 실지로는 허륜의 앞날이 걱정되여 자기를 찾아왔다는 생각이 머리에 인박혔다.

상시관이라는게 이렇게 놓고보면 한갖 시험감독관이 아니라 량반의 세상을 공고히 하는 주추돌과 같다는 생각이 녕변부사의 머리속에 갈마들었다. 상시관은 허륜의 낯을 봐서는 서얼이라는 허준을 응시시켜야 도리상 옳으나 허륜과 그 가문의 앞으로의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나라법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알겠네. 이자 보니 자네 여간 속이 깊지 않구만.

목숨이 티끌이라면 의리는 산이라는데 허륜령감이 저를 위한 자네의 속깊은 마음을 안다면 그 서얼자식의 문제때문에 자네를 멀리하지 않을거네. 그리구 내 그 령감을 한번 만날 기회가 있으면 자네의 그 진정을 말해주지. 그리구 이건 도루 걷어넣게.》

뜻하지 않게 상시관으로부터 찬사를 받으니 아무리 낯가죽이 곰발통같은 도사였지만 간지럽기 그지없었다. 도사는 상시관이 자기의 본심을 알아차릴가봐 신경쓰며 금가락을 그냥 밀어버렸다. 이왕지사 청백리로 인식하고있는데야 그까짓 금가락 두개가 대수랴.

《그럼 전 가보겠소이다.》

허모로부터 금가락 다섯개를 받고 찰떡같이 약속한 도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가 며칠밤을 모대겼다. 더구나 청렴결백하기로 한성에서 례조참의를 할 때부터 소문자자한 녕변부사를 어떻게 설복할가 바재이다가 생각해낸것이 오늘과 같은 수였다. 결국 무거운 철추를 등에 지고 들어왔던 도사는 돌아갈 때에는 티끌 하나 없는 가벼운 몸으로 나섰다. 등뒤에서 자기를 찾는 상시관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못들은척 하며 걸음을 떼는 도사의 귀에 상시관의 감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안감영에 저런 청백리가 있었던고!》

드디여 초시(향시)를 치르는 시각이다. 시험장소인 평양부서원의 강실에는 응시생들이 입술을 감빨며 긴장한 표정으로 앉은뱅이책상들을 마주하고있다. 이번 향시에는 허준의 예측대로 응시자가 도합 쉰다섯명이였다. 이중에서 15명이 선발되여 다음해 봄에 치를 본시험(복시)에 참가한다.

벼슬길에 오르는가 아니면 락방하여 시골에 묻히는가 하는 그야말로 운명적인 시각이였다. 늦은 진시(오전 7~9시)경쯤 되자 드디여 틀진 팔자걸음의 상시관 한명을 앞세우고 그뒤로 참시관 두명이 시험장인 서당강실로 들어섰다. 술렁거리던 과시장에 쥐죽은듯 정숙이 흘렀다.

과시장의 맨 앞에 놓인 자리에 마주앉은 상시관이 부리부리한 눈을 들어 좌중을 한번 휘둘러보았다. 어딘가 모르게 우둥퉁한 그의 얼굴에선 그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위협적이고 고압적인 자세가 엿보였다.

허준의 가슴은 자못 두근거렸다. 그 위압적인 상시관의 눈길앞에서 마치 자기가 들어오지 말아야 할 장소에 들어와 앉은듯한 느낌이 들면서 앉은 자리가 거북스러웠다.

엄한 기색을 짓고 응시생들을 휘둘러보던 상시관이 호명을 하려고 명부를 기웃이 내려보다가 뜨직이 입을 열었다.

《여기 허준이 누군가?》

허준은 상시관의 입에서 불쑥 자기 이름이 튀여나오자 가슴이 섬찍하였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속에 갈마들었다. 주춤거리는데 다시 상시관의 목소리가 불렀다.

《여기에 룡천에서 온 허준이가 없는가?》

허준은 엉거주춤 일어서며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예- 저올시다.》

상시관의 매눈이 허준의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얼마나 그 눈초리가 날카로운지 허준의 얼굴에 구멍이 뚫릴것 같다. 한동안 허준을 쏘아보던 상시관이 단도직입적으로 따졌다.

《너 서얼이지?》

과시장이 술렁거렸다. 백여개의 눈이 허준에게로 쏠렸다. 허준은 눈앞에 무수한 별찌가 일면서 그 너렁청한 강실이 빙빙 도는것 같았다. 미처 대답을 찾지 못하는데 거칠고 포악스러운 고함소리가 허준의 귀청을 때렸다.

《네 이놈! 서얼이 감히 과거보려구 이 신성한 장소에 꺼리낌없이 들어와? 네놈이 제 푼수를 알아야지 언감생심 서얼인 주제에 과거에 응시하려 하다니. 정신이 있어, 이놈아! 너같은 서얼들이 여기에 끼여든건 봉황무리속에 까마귀가 끼여든것과 뭐가 다르다더냐? 그리구 사람이라면 부모한테 효도하구 의리가 있어야지. 네놈은 서얼인 주제에 량반인 제 부친을 든장질하여 나라법을 위반케 하였으니 그래, 그게 어디 삼강오륜에 부합되는 노릇이냐. 자기를 키워준 부모도 모르는 이놈아! 네놈때문에 량반인 네 애비가 파직되고 가문이 망하는걸 보기가 그리도 소원이냐?》

허준은 자기의 머리가 둔중한 쇠몽둥이에 맞은듯 한감이 들면서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고 금시라도 심장이 뚝 멎는것 같았다. 주위에서 쉬쉬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두 뭘 멍청해 서있어? 당장 나가지 못할가!》

풀벌레가 우는지 귀가 웅웅거렸고 눈앞이 새까매지면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수 없었다. 비칠비칠 걸음을 뗐다. 오늘따라 발은 왜 이다지도 무거운지 아니면 발이 땅에 붙었는지… 과시장을 나서는 걸음이 아득히 길다. 허준은 허탈상태로 휘청거리며 과시장을 나섰다.

어떻게 서원을 나섰는지, 어떻게 거리에 들어섰는지 허준은 의식하지 못하였다. 정처없이 걷느라니 문득 눈앞에 대동강의 푸르른 물결이 출령거렸다. 강반의 버드나무는 풀어헤친 녀인의 머리태마냥 실실이 드리워 강바람에 흐느적이고있다.

허준은 아름드리 버드나무에 머리를 박고 주먹으로 터실터실한 나무기둥을 힘껏 내리쳤다.

(아! 내가 어리석었구나. 이 우둔한 자식아, 서자인 주제에 무슨 미련이 있어 이곳까지 기신기신 기여든단 말이냐. 아- 아- 불쌍한 서자신세, 아- 가련한 허준아!)

허준은 꺼지듯 주저앉아 버드나무밑둥에 머리를 찧었다. 수양버들이 많아 예로부터 류경이라 일컫는 평양이다. 그 류경이 오열에 떨고있는 허준을 말없이 굽어보며 자기의 풍만한 젖줄기를 달게 마시고 푸르싱싱한 거목으로 자란 대동강변의 버드나무로 포근히 감싸안아주었다. 후날 임진년 허준은 임금을 따라 의주로 피난갈 때 이 버드나무를 찾았다고 한다. 아직도 대동강변의 그 어딘가에는 피의 울분을 토하며 그날의 우리의 주인공이 부둥켜안았던 버드나무가 살아있을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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