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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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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리성하부부장의 집에서는 태혁의 부부를 초빙하고 요란한 성찬까지 마련하였다. 신숙경은 그 뜻깊은 좌석에서 어제날의 더벅머리 강계청년이 우리 나라 《전력부문의 왕!》이 되였다고 환성을 올리였다.

자강도발전소건설련합기업소 지배인으로부터 전력공업부 부부장으로 승진한 리성하는 행정일군일뿐아니라 과학자로서의 능력과 재능을 겸비한 남다른 장점을 소유하고있었다.

지금도 리성하는 전력공업부 부부장의 책임적인 직무를 맡아보면서 짬짬이 나라의 전력공업발전에 보탬이 될수 있는 가치있는 론문들을 발표하는 일군으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의 명석한 두뇌와 열정에 탄복해마지 않는 동료들중에는 일찌기 40대부터 부부장의 앞머리카락이 성글어지기 시작한건 밤마다 자기 집 서재에 구겨박혀 머리를 혹사한 후과라고 즐겨 말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태혁이도 언제인가 리성하가 자기의 때이른 탈모증을 귀찮게 여기며 조심히 대머리를 쓸어만지자 《부부장동문 아직도 젊었군. 그래도 사람들이 부부장동무의 대머리속에 전국의 발전소들이 다 들어있다고 부러워하던걸.》 하고 웃어준 일이 있었다.

태혁의 말에는 조금도 과장이 없었다. 실제상 리성하는 전력부문의 거장답게 높은 실무에 능숙한 사업수완을 소유한 흠잡을데 없는 일군이였다. 리성하는 남달리 성격도 호방하여 자기 부문만이 아니라 다른 부문 일군들과의 교제범위와 안면도 넓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태혁은 그러한 리성하에 대한 기대도 크거니와 막다른 형편에서 벼르고 찾아온 걸음인것만큼 어떻게 하든지 전천탄광의 전력문제만은 기어코 해결받을 결심이였다.

마침 일이 뜻대로 되려고 그러는지 2층복도로 올라가자 리성하가 자기 방에서 나오다가 그를 먼저 알아보고 큰소리로 반겨맞았다.

《원 이런! 책임비서동무가 어떻게 오셨습니까?》

태혁은 한팔을 버쩍 쳐들고 다가오는 리성하의 손을 마주 잡으며 빙긋이 웃었다.

《무고하셨소? 부부장동무.》

《저야 뭐 일년열두달 재채기 한번 하지 않는 강질인걸요. 책임비서동무의 심장질환은 어떤가요?》

태혁은 자기도 별반 관심하지 않고 지내는 건강을 걱정해주는 리성하가 무척 고마왔다.

《일없소. 그럭저럭 견딜만 하구만.》

그들은 한동안 서로 손을 잡은채 놓지 못하고 마주 서있었다.

《얼굴색이랑 시원치 않군요. 자강도인민들이 고생한다는 말은 자주 듣지만 책임비서동무까지 이럴줄은 몰랐는걸요.》

《내라고 다를게 있겠소.》

《책임비서동문 언제봐도 여전하시군요.》

오래간만에 찾아온 태혁이와 허물없이 인사말을 나누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 리성하는 창가의 긴 쏘파를 가리키며 량해를 구했다.

《잠간만 여기에 앉아계십시오. 제길 요즘은 우리 일이 아예 말이 아닙니다. 엉망이라니까요.》

《어서 맘놓고 가서 볼일을 보시오.》

리성하가 방에서 나가자 태혁은 담배를 꺼내여물고 방안의 여기저기에 눈길을 던졌다.

책상우에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두툼한 책들, 담배꽁초가 수북이 찬 파르스름한 유리재털이옆에는 시허옇게 재티가 흩날린대로 있었다. 이전에는 리성하의 사무실이 이 정도로 어수선해보인적이 없었다. 그때와 너무도 대조되게 잘 거두지 않은 방은 리성하도 어딘가없이 마음의 안정을 잃고 되게 들볶이우는 일군임을 말해주는듯 했다. 맞은켠에는 그 무슨 거대한 작전지도와도 같은것이 벽의 옹근 한면에 요란하게 붙어있었다. 한참 자세히 바라보니 전국의 수력발전소들과 화력발전소들의 배치, 송배전망들의 분포상태가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기록되여있는 세밀지도였다. 푸른색, 암갈색의 지형표식들과 등고선, 크고작은 강하천의 위치를 표식한 선들, 화살부호들로 가득찬 지도만이 이 크지 않은 방이 나라의 전반적인 전력을 통솔하는 사령실이나 다름없으며 그가 전력공업부문의 무시할수 없는 실력자임을 여실히 보여주는듯싶었다.

얼마후 리성하가 비대한 몸에 혈색이 불깃한 얼굴을 하고 방으로 급히 들어오며 쾌활하게 말했다.

《이거 정말 안됐습니다. 빈방에 귀빈을 너무 오래 혼자 앉혀놔서… 여간 인사불성이 된것 같지 않군요.》

리성하는 두드러져나온 이마와 떡 벌어진 어깨우의 실한 목덜미를 손수건으로 문지르면서 태혁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별소릴… 난 부부장동무가 문전축객을 하지 않은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이요. 요즘에야 전력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로 이 방의 문짝이 불이 날 지경이겠는데 말이요.》

《아무리 그렇기로 책임비서동무를 박대했다가 현이어머니한테 뺨 맞자구요?》

리성하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통쾌하게 웃고나서 《그래 현이어머니는 잘 있습니까? 이따금 평양의 맏딸네 집에 나들이를 오겠는데 나한테도 좀 들리라고 하시지요. 이러다가 자칫하면 얼굴도 잊어먹겠군요.》라고 즐거움에 차서 말했다.

태혁의 안해 신숙경을 화제에 올린 리성하는 한결 낯빛이 밝아졌다. 전쟁때 형이 전사한 후 자기 가정을 위안하려고 강계의 초라한 동기와집으로 찾아와준 간호장에 대한 고마움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있는 그였다.

《말두마시오. 딸네 집이 다 뭐요. 이젠 년로보장나이가 되여 집에서 돼지를 치느라 꼼짝달싹할 사이가 없이 돌아가오.》

그 말에 리성하는 어처구니없어하며 태혁을 쳐다보았다.

《가부간 책임비서동문 유명하군요. 평양에 있을 때 예술체조를 시킨다던 딸 현이를 자강도에 데리고가서 공장 선반공으로 집어넣질 않나. 이젠 부인마저 돼지사양공으로 만들었군요. 정말 가부장적인 모범세대인걸요.》

태혁은 자기를 집안의 굉장한 독재자처럼 몰아대면서 나무람하는 리성하의 말에 허허 웃어버리였다.

부부장이 서로 허물없는 사이여서 아무렇게나 험구를 씌우며 비난해도 년로보장을 받고 집에서 놀고있는 안해가 돼지를 기르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였다. 이전에 딸 현이가 예술체조에 취미를 가지고있었던건 사실이지만 그애가 강계기계공장에 취직한것도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한 직업이였다. 그런 현이여서 태혁은 여간 딸을 기특하게 여기지 않는데 리성하의 입에서 왕청같은 불만이 터져나오니 웃을수밖에 없었다.

《결국 도당책임비서의 〈벼슬자리〉에 어울리게 제 집사람들을 호강시키라는 말인데… 부부장동무의 권고에 넘어갔다가 우리 집안이 비단보자기에 싼 개똥처럼 될것 같지 않소?》

《됐습니다, 됐습니다.》

태혁의 걸죽한 입담에 말문이 막혀버린 리성하가 기겁하여 손을 활활 내저었다.

《아무렴, 제가 책임비서동무의 능변을 당해낼라구요. 이젠 저한테 찾아온 용건이나 이야기하시구려.》

《앙갚음을 당하지 않을가-》

태혁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뭐 말하나마나 뻔하지 않소. 전력공업부 부부장을 찾아왔을적에야 다른 일이 있겠소?》

《물론 저도 대체로 짐작은 합니다만…》

태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쏘파의 등받이에 몸을 젖히였다.

《부부장동무야 자강도에 고향을 둔 사람이니 잘 알지 않소. 온통 산밖에 없는데다 공장들은 멎어서고 작금년에 연거퍼 큰물피해까지 입어 형편이 험악하오. 모두들 변변히 먹지 못하지. 살아있는것이 기적이요. 기대앞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오. 사흘전엔 장군님께서 희천공작기계공장의 실태를 보고받고 너무나 가슴아파서 공장으로 찾아오셨소.》

《그게 사실입니까?》

리성하가 꿈쩍 놀라며 그를 쳐다봤다.

《그날 장군님께서 어떤 괴로운 마음을 안고 돌아가셨는지… 눈물이 나서 이루 다 말할수 없소.》

두 일군은 침울한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태혁은 가슴속의 공허, 절망감을 참기 어려워 담배를 붙여물었으나 소태를 씹는것처럼 입안이 썼다. 쏘파에서 엉거주춤 일어난 그는 둬모금 피우다만 담배불을 재털이에 눌러끄고 도로 앉았다.

《우린 죄진 심정이요. 어떻게 하든지 도안의 인민들을 먹여살려야겠는데… 며칠전엔 전천탄광이 침수되여 그곳 탄으로 겨우 돌아가던 지방산업공장들까지 다 멎어버렸소. 전력이 보장되여야 물을 퍼낼게 아니요. 전천탄광이 생산을 못하면 우리 도의 형편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어려워질수 있소. 아무래도 부부장동무가 좀 힘써줘야 할것 같소.》

워낙 남한테 구차스런 소리를 하기 싫어하는 태혁은 생겨먹은대로 투박하게 말하고 턱밑을 쓸어만졌다. 뭐든지 되면 되고 안되면 안된다, 그처럼 결단성있게 일처리하는 그의 성미를 모르지 않는 리성하는 무척 조심스러워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 전화를 해서 알고있었습니다.》

《그렇소?》

태혁은 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리성하의 시들한 말투로 보아 장관우부위원장에게 어떤 대답을 주었겠는가 하는것만은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었다.

《정말 딱하군요. 장관우부위원장은 자기 사무실에서 전화로 부탁했는데… 책임비서동문 이렇게 불원천리하고 찾아왔으니 말입니다.》

《그게 무슨 큰 문제요.》

《저도 전화로 부탁했다고 해서 해결해줄걸 안해줄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무실에 앉아 전화질이나 하는 일군이 있으니 책임비서동무가 이런 걸음을 한것 같은데… 마음이 썩 좋지 않군요.》

《그건 공연한 오해요.》

태혁은 가뜩이나 찾아온 일이 될지말지한 판에 장관우부위원장까지 비호해나서려니 여간 진땀이 나지 않았다.

《내가 전력문제때문에 평양으로 올라온걸 알고있으니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을거요. 부부장동무와는 학창시절의 동창이고 막역한 사이가 아니요! 괜히 부위원장동무를 탓하지 말구 우리 일이 되는 방향에서 의논해보기요. 하루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탄광은 구원될 가망이 없소.》

태혁은 그로 하여 초래될 후과에 대해서는 구태여 중언부언하지 않았다.

방바닥에 눈길을 박은 리성하는 두손을 힘주어 깍지꼈다. 투실투실한 손가락마디들에서 으득으득 아츠러운 소리가 났다. 리성하는 마치도 전천탄광에 필요한 전력이 아니라 자기 체내의 마지막힘을 짜내려고 모지름쓰는 사람같았다. 그것을 괴롭게 지켜보던 태혁은 부질없이 시간만 끄는것 같아 마지막으로 타협안을 내놓았다.

《정 막부득이한 경우엔 말이요. 난 도안의 다른 공장들에서 전천탄광에 전기를 끌어올수 있는 림시조치라도 취해줬으면 하오.》

《다른 공장의 생산을 죽인다는 말인데 정무원에서 승인하겠는지… 토론해봅시다.》

《미안하오.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해서…》

《뭐, 거기만인줄 압니까. 지금은 어디서나 눈만 뜨면 전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목청을 돋과댑니다. 정신을 차릴수 없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전력이 있어야지요. 정말 죽여줍니다. 동무네 전력공업부가 떨떨히 일하여 나라의 경제를 망쳐먹는다고 욕지거리를 퍼붓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압니까.》

리성하가 허거프게 웃으며 좀전처럼 손가락마디에서 소리가 나게 다시금 두손을 꽉 비틀어잡았다. 그의 말을 들어봐선 도무지 전력문제가 풀릴수 있는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안타까우니 그럴테지. 아무튼 전력문제는 해결해야 하지 않소.》

《지금 상태에서는 암담합니다. 책임비서동무도 잘 알다싶이 우리 나라 발전소들은 대체로 전후에 다른 나라들에서 들여온 설비인데 사람의 수명에 비기면 로화기에 처해있는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설비들이 불량하여 자기 출력을 내지 못하지만 우린 속수무책입니다. 이전에 사회주의시장이 운영되던 때와 달리 요즘은 발전기의 설비를 하나 교체하자고 해도 적들이 방해책동을 놀아서 부르는게 값입니다. 아이보다 배꼽이 더 큰격이 되고말았지요. 얼마전 장군님께서는 이런 실태를 료해하시고 놈들의 악랄할 경제봉쇄와 압력에 대처하여 어떻게 하면 전력문제를 시급히 풀수 있겠는지 토론하고 보고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습니다. 우리는 고난의 행군의 간고한 시기이지만 이번 기회에 장군님의 결론을 받고 대담하게 태천발전소와 안변청년발전소 2계단공사, 새로 보천발전소건설을 내밀기로 큰 마음을 먹었습니다. 거기다 조미회담에서 합의된 경수로까지 받아내면 전력문제를 능히 해결할수 있다고 보았지요. 그런데 문건을 올린지 열흘이 지났지만 아무런 결론의 말씀도 없으시여서 속이 새까매있는중입니다… 정말 가슴이 탑니다.》

《음…》

태혁은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목석처럼 앉아있었다. 말이 더 나가지 않았다. 남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이 찾아와서 전력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한 자신이 어쩐지 민망스럽게 생각되였다. 전력공업부 일군들이 안타까운 나날을 보낸다지만 그들의 문건을 받아보시고 결론을 주지 못하시는 장군님의 심정인들 오죽하시랴 싶었다.

《부부장동무, 괜히 괴롭혀서 미안하오.》

태혁이 쏘파에서 육중한 몸을 일으키자 뒤따라 리성하도 천천히 일어났다.

《뭐, 도와드린게 없어 안됐습니다. 며칠째 우리 전력공업부건물안은 이렇게 조용합니다. 어느 방에 들어가봐도 모두들 근심에 잠겨 컴컴한 얼굴로 앉아있지요. 이젠 퇴근시간이 지났는데 우리 집에나 함께 갑시다.》

《아니, 아니… 난 가야 하오.》

태혁은 그만 손을 내저어보인 후 리성하와 황황히 작별인사를 나누고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리성하가 송구스런 낯빛을 띠고 복도로 따라나오며 친절히 바래워주었지만 태혁은 무거운 마음에 잠겨 경황없이 걷느라 그런줄도 몰랐다. 잠시후 전력공업부 마당으로 나가 승용차에 오른 때에도 태혁은 앞이 막막하여 의자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책임비서동지, 어디로 가시렵니까?》

《돌아가기요.》

태혁은 힘없이 말하고 두눈을 조용히 감았다.

전천탄광 지배인실에서 장군님께 자강도의 전력사정을 보고드리려고 수화기를 들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수화기를 놓기를 잘했어… 장군님께서도 나라의 긴장한 전력문제때문에 고심이 많으신데 무턱대고 전력공업부로 찾아온 내가 어리석었지. 너무도 심중이 복잡하여 그는 차가 달리는지 서있는지도 분간할수 없었다.

운전사도 그의 울적한 기분을 감촉하고 승용차를 조심히 몰았다.

그러나 이날 태혁은 자기가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리라는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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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중앙위원회청사의 소회의실에서는 엄숙한 분위기속에 협의회가 열리였다.

정무원 총리와 경제부문사업을 담당한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 책임일군들, 전력공업부 부장, 부부장들이 참가한 회의장의 맨 뒤자리에 자강도당책임비서 강태혁이가 손님격으로 옹색하게 앉아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지방당일군은 유독 그 한사람밖에 없었다.

무슨 일로 소집된 협의회인데 내가 필요했는가? 물을 뿌린듯 한 장내의 정숙과 주석단에 장군님께서 나오신 사실만이 이제 곧 중요한 문제가 토론되리라는것을 어렴풋이 시사해주었을따름이였다.

태혁은 회의장안의 엄숙한 분위기에 눌리여 숨을 죽이고 앉아있었다. 무릎우에 올려놓은 두손을 움직이는것마저도 장내의 정숙을 깨뜨릴것처럼 느껴져 무척 조심하며 거의나 부동의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마음속의 번거로운 생각만은 털어버릴수 없었다. 그 번거로움때문인지 이번에 자기가 평양으로 올라와 중앙병원에서 검진을 받게 된 일도 죄다 뜻밖의 일로 생각되였다.

오늘도 김정일동지께서는 늘쌍 단벌옷처럼 입고다니시는 야전복차림으로 근엄한 표정에 잠겨 장내를 굽어보시였다.

《동무들, 지금 우리 경제는 매우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으며 고난의 행군은 의연히 계속되고있습니다. 적들의 검질긴 압력과 제재로 하여 인민생활은 날로 곤난해지고 승승장구하던 우리 혁명은 시련을 겪고있습니다.》

회의가 시작된 첫 순간부터 잠시도 장군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있던 태혁은 저도모르게 고개를 숙이였다.

며칠전 그이께서 희천으로 찾아오셨던 일이 뼈아픈 자책속에 다시금 떠올랐다. 불시에 태혁의 이마에 진땀이 뿌직뿌직 내돋고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그이께서는 무거운 심중에 잠겨 말씀을 중단하시였다.

한동안 회의장의 정숙이 사람들의 마음을 옥죄이였다. 태혁이 얼굴을 버쩍 쳐든것은 그 다음순간이였다.

갑자기 깊은 정적을 흔들며 장군님의 격한 음성이 다시금 쩌렁쩌렁 울렸던것이다.

《우린 하루속히 오늘의 이 고난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우선 결정적으로 전력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인민들이 생활난으로 고통을 당하는것도 다른데 원인이 있는것이 아니라 나라의 전력문제를 추세우지 못하기때문입니다. 내가 오늘 동무들을 부른것은 바로 이 문제, 현시기 가장 절박한 문제로 나서고있는 전력의 긴장성을 해결하기 위해서인데 허심탄회하게 의논해봅시다.》

조금도 격식없이 협의회취지를 밝히시고 그이께서는 리성하에게 시선을 멈추시였다.

《전력공업부 부부장동무.》

태혁은 마치도 자기가 호명 받은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의자에서 풀기없이 일어서는 리성하의 옆모습을 근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동무들이 태천발전소와 안변청년발전소 2단계공사, 보천발전소문제를 제기하였는데 몇해면 완공할수 있습니까?》

《장군님, 적어도 4~5년쯤은…》

리성하의 얼굴이 삶은 가재처럼 붉어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말없이 그를 지켜보시였다.

《동문 그동안 우리 인민이 이 엄혹한 난관을 참고 견디여낼수 있다고 생각하고있는게 아닙니까. 물론 우리 인민은 참고 견딜것입니다. 그러나 참고 앉아 견디는것은 피동입니다. 우리는 과감히 이 난관을 주동적으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결정적으로 전력문제를 풀어야 하며 그래야 놈들의 악랄한 경제봉쇄도 허물어버릴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근엄한 안색을 띠우고 말씀을 중단하시였다.

수령님께서 미국의 전 대통령 카터와 만난 담화석상에서 명백히 천명하셨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제국주의자들의 제재를 받지 않은 때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고립압살책동과 경제봉쇄는 그 악랄성에 있어서 세계력사상 전례를 찾아볼수 없다, 이전 쏘련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주의를 일조일석에 무너뜨리는데 재미를 본 놈들은 저들의 상투적인 수법에 우리도 의례히 말려들것이라고 망상하며 분별없이 날뛴다, 그러나 우리는 피동이 아니라 주동에서 놈들의 망상을 짓부셔버려야 한다.

《물론 우리는 큰 발전소들을 전망성있게 건설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놈들이 우리에 대한 제압을 강화하는 조건에서 오늘의 고난의 행군을 하루라도 앞당기면 앞당길수록 우리 혁명에 유리합니다. 당장은 대용량발전소건설에 투자할 자금도 없습니다. 동무들이 경수로에 기대를 걸고있는데 물론 그것도 받아내야 합니다. 적들이 그 무슨 선심을 쓰며 제공하는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응당히 받을것을 받지만 놈들은 교활하게 경수로건설도 질질 끌면서 못된짓을 하고있습니다.》

조국이 처한 어려운 실상을 그대로 헤쳐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의분을 금치 못하며 앞탁우의 두주먹을 꽉 움켜잡으시였다.

1993년 미제의 사촉하에 감행된 우리의 흑연감속로에 대한 핵사찰소동과 우리 당이 단호하게 선포한 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의 탈퇴… 그이께서는 그 격동적인 사변이 련이어 일어나자 세계가 들끓고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이 극한점에 도달한 때의 일들이 다시금 떠오르시였다. 세계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며 전횡을 부리는 미제의 오만무례한 요구에 순응하는가 아니면 사회주의조국의 존엄을 지켜 맞서싸우는가. 그 심각한 위기상황에서 미행정부가 보내온 담보서한은 우리의 정정당당한 자위적조치가 거둔 커다란 승리였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 그 담보서한도 경수로건설의 지지부진으로 신뢰성을 잃고 우리를 질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있다. 미대통령 클린톤의 담보서한이 만천하에 공개된 후 경수로건설을 기본의제로 뉴욕과 베를린에서 개최된 조미간의 회담과 실무자급회담의 재개, 련이어 향산에서 있은 쌍방간의 실무자접촉도 유야무야되고 관례상 회담끝에 모여앉군 하는 연회석만 흥성거릴 때 케도가 2003년에 경수로를 완공하기로 도장을 눌렀지만 그때에 가봐야 안다, 경수로란 정치의 소산이 아닌가고 지껄여댄 경거망동한 발언은 놈들의 음흉한 지연술책을 그대로 파렴치하게 드러내보인것이였다.

그날 평양전력설계사업소의 로설계가 리경훈은 너무 분격한 나머지 《개새끼들! 네놈들이 우리 숨통을 조이려고 잔꾀를 부리지만 어림도 없다. 이 인디안족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찐 흡혈귀들아!》라고 기염을 토했었다. 평양으로 돌아오는 승용차안에서도 울분을 억제하지 못하여 중풍 만난 늙은이처럼 팔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는 로설계가… 잠시 가슴 아픈 회억에 잠기셨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적들이 속에 칼을 품고 제공하는 경수로보다 훨씬 더 위력한 발전소, 우리의것을 창조합시다. 동무들, 나는 일찌기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것처럼 강하천이 많은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전국도처에 중소형발전소들을 건설하여 현 시기의 긴장한 전력문제를 전군중적운동으로 풀자는 생각인데 어떻소?》

모두들 두눈을 크게 뜨고 그이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먹장구름을 불사르며 터져나오는 어마어마한 천둥소리라도 들은듯 한 놀란 표정들이였다.

《지금은 전력문제도 그렇고 이여의 모든 문제들도 하루속히 적들의 경제봉쇄를 헤쳐나가는데 목표를 두고 풀어야 합니다. 중소형발전소만 대대적으로 건설해도 우리는 방대한 량의 전력을 해결하는것으로 됩니다. 그렇게 하면 국가적으로 크게 투자하지 않고도 우리 경제와 인민생활을 한계단 급속히 추켜세울수 있지 않습니까?》

태혁은 눈앞이 탁 트이는것을 느끼며 부지불식간에 리성하의 얼굴에 얼핏 눈길을 보냈다. 그렇다. 바로 저것이다! 현 시기의 전력문제를 풀수 있는 비결도 자력갱생뿐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수 있는 사람은 리성하부부장이 아닌가. 태혁은 그가 힘차게 일어나서 장군님앞에 신심에 넘친 답변을 드리기를 바랐다. 그런데 답답하게도 리성하는 가슴에 턱을 눌러박고 컴컴한 낯빛으로 옴두꺼비처럼 앉아있기만 했다. 무엇을 주저하는가? 무엇을!… 태혁은 너무도 안타깝다 못해 리성하의 덜미를 잡아 일쿼세우고싶었으나 떡심이 풀려 그만 총리쪽을 돌아다보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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