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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3

(2)

 

문성태는 비좁은 길에 드리운 강냉이잎사귀들을 조심스럽게 젖혀놓으면서 단층집부엌문으로 다가섰다.

그런데 이상하였다. 두세번 문을 두드려도 방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집이 빈것 같습니다.》

《빈집이면 저렇게 등잔불을 켜놓았겠습니까?》

아직 잠자리에 들기엔 너무도 이른 시간이였다. 그이께서 다시 한번 찾아보라고 이르시자 문성태는 좀 더 크게 문을 두드렸다.

방안에서 《누구야요?》 하는 애된 목소리가 되알지게 울려나왔다.

문창호지구멍으로 가만히 내다보는 어린것의 그림자가 얼른거리였다.

《손님이다. 집에 어른들이 없느냐?》

《없어요!》

《우린 집구경을 좀 해야겠는데 야단났구나.》

《안돼요. 우리 엄마가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말랬어요.》

문성태가 그이를 돌아다보며 《이거 보통 말짼 녀석이 아닙니다.》라고 딱한 기색을 지었다.

사람과의 사업을 본업으로 삼고 일하는 당중앙위원회 비서라는 사람이 어린것을 구슬리는 솜씨가 당초에 서툴기 짝이 없었다.

슬며시 문성태를 밀어내고 부엌문앞으로 다가서신 그이께서는 《그럼 할수 없군. 너희 어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으니 마음을 놔라.》라고 어린것을 안심시키시였다.

그이의 인정겨운 말씀에 어린것의 동심이 흔들린듯 잠시 방안이 조용해지더니 깜찍스레 흥정을 붙이는 목소리가 새여나왔다.

《좋아요, 문을 열어주겠는데 엄마한테 잘 말해줄래요?》

《아무렴, 걱정말아라. 어머닌 널 칭찬하실거다.》

《그럼 들어오라요.》

빠금히 열리는 문짬으로 대여섯살난 사내아이의 동그스름한 얼굴이 나타났다.

밤알처럼 여무지게 생긴 녀석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이가 놀라지 않게 다정히 미소를 지으시며 부엌안으로 천천히 들어서시였다.

그이가 어떤분인지 알지 못하고 문도 열어주지 않은 녀석이 또다시 무슨 버릇없는 행동을 할런지 몰라서 문성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보았다.

《이름이 뭐지?》

《설송이!》

《집엔 누가 있느냐?》

《할아버지와 엄마, 나 그리구 저 동생…》

설송은 방안에 덮개도 없이 배를 드러내놓고 자는 동생을 흘끔 돌아보았다.

《아버진 없느냐?》

《앓다가 돌아갔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방안의 어수선한 광경을 살펴보시였다. 집은 두칸이여서 웬간한 식솔이 살아갈만 한데 가산이란건 변변한게 없었다. 얼럭덜럭 덧붙인 장판바닥만 봐도 근근히 살아가는 살림살이형편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었다. 부뚜막의 비닐버치에 데쳐놓은 푸성귀와 되는대로 벗어놓은 허름한 신발들이 눈에 띄며 더구나 마음이 쓰려나시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설송이가 눈이 동그래서 그이를 쳐다보았다. 철없는 아이의 마음에도 혹시 장군님이 아니신가 하는 의문이 생긴 모양이였다.

방안으로 뿌르르 달려들어간 어린것은 한참이나 벽에 모신 장군님의 초상화를 보고나와서 그이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이의 그 사랑스런 모습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였다.

아무래도 어린것의 안타까움을 풀어주어야 할것 같아 그이께서는 색안경을 벗어들며 부드러운 눈길로 어린것을 바라보시였다.

순간 설송이가 《아버지장군님!》 하고 옷자락에 와락 매달리였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의 그 기쁨에 찬 목소리가 반갑다기보다는 가슴을 허비고들어 김정일동지께서는 저도 모르게 눈앞이 흐려지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너무 좋아서 깡충깡충 뛰는 아이의 작은 어깨를 꼭 껴안아주시였다.

《설송이, 배고프지?》

《안고파요.》

아이의 말똥말똥한 두눈이 새별처럼 빛났다.

《누가 널 보고 그렇게 시키더냐?》

《아니야요. 할아버진 이제 잘 살게 된다고 했어요. 엄마한테 장사두 하지 말라구 했어요. 아버지장군님께서 가슴아파한다구…》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만 목이 콱 메여오르시였다. 조금도 보태지 않고 덜지도 않으며 제가 보고 들은대로 종알거리는 아이의 말이야 누가 의심할 사람이 있는가. 비록 집안형편은 볼꼴 없어도 한평생 당을 믿고 살아가는 늙은이의 고마운 마음에 눈시울이 젖어드는것을 가까스로 참으시였다.

《할아버진 어데로 갔느냐?》

《경비서요. 엄마가 밥 갖다줬어요.》

《너흰 저녁을 먹었느냐?》

《엄마가 와서 같이 먹자구 했어요.》

《음, 너희집에서 뭘 먹는지 한번 볼가.》

《우리 엄만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말랬어요.》

《그래도 나한텐 보여줄수 있지 않느냐?》

《안돼요. 보면 안돼요. 보지 마세요.》

어린것은 울먹이면서 두팔로 가마뚜껑을 꽉 그러안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마뚜껑을 그러안은 아이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시였다.

조금만 더 조르면 어린것이 왕 울음을 터뜨리고 그이께서도 더 이상 자신의 아픈 마음을 지탱해내실것 같지 못하시였다.

옆에서 문성태가 어린것에게 나직이 사정했다.

《얘야, 장군님께서 보자고 하시는데 어서 일어나거라.》

그러자 가마를 붙안은 어린것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아버지장군님, 정말 보지 마세요. 보지 말아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린 아이가 애원하는 그 말을 듣고 눈앞이 뿌얘지시였다.

철부지 어린것은 가마우에 엎드린채 엉엉 울었다. 그 애처로운 소리가 그이의 가슴을 저며내는것같은 아픔을 자아내였다. 문성태도 눈물을 듬뿍 머금고 어린것을 지켜보다가 슬며시 눈굽을 닦았다.

그제야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쳐든 설송은 《장군님… 보세요…》 하고 흐느끼며 가마우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이앞에 가마뚜껑을 열어보인 설송은 연신 두 팔소매로 젖은 얼굴을 번갈아 문대였다.

연한 뜬 김이 서린 가마안에 세그릇의 풀죽이 놓여있었다. 서로 크기가 다른 사발에 골숨골숨하게 담겨있는 풀죽을 내려다보시는 그이께서는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지만 애써 참으시며 자신의 음성같지 않은 목소리로 나직이 물어보시였다.

《여기 큰 사발의 죽은 누구거냐?》

《동생거야요.》

설송이가 울먹울먹해서 대답올렸다.

《그 다음건?》

《내거.》

《그러니 제일 작은게 어머니거구나.》

《엄만 만날 우리 보다 조금 잡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고생속에서 일찍 철이 든다더니 어머니의 그런 마음이나마 알아주는 아이가 얼마나 기특한지 몰랐다.

《그런데 얘야, 어째서 동생의 죽그릇이 제일 크냐. 너희집에선 제일 어린데.》

《동생은 철이 없어서 만날 배고프다구 많이 달라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수건을 꺼내여 조용히 눈굽을 훔치시였다.

아이들에게 풀죽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분통이 터지시였다. 문성태가 그이께서 괴로와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참지 못하고 결연히 말씀드리였다.

《장군님, 이젠 그만 떠납시다.》

《그래, 가기요. 갑시다.》

그이께서는 천천히 밖으로 나서시였다. 뒤따라 나온 설송이가 울먹이면서 《아버지장군님! 안녕히 다녀가십시오.》 하고 인사를 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시며 두손으로 아이의 량볼을 꼭 싸쥐시였다. 순간 예리한 아픔이 또다시 가슴을 허비였다.

그이의 가슴속에서 일어번지는 격랑인양 우르릉 밤하늘을 뒤흔들며 둔중한 음향이 울려왔다. 이런 때면 정말 소낙비라도 한줄금 시원히 쏟아부었으면 싶으시였다.

조금후 그이의 일행이 짙은 어둠을 가르며 험준한 령길을 달리고있을 때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폭풍이 원시림을 뒤덮으며 휘몰아쳐왔다. 우ㅡ우ㅡ 사나운 광풍은 성난 맹수떼처럼 괴성을 지르며 삽시에 온 우주공간을 꽉 메워버리였다. 어둠을 휩쓸며 솟구쳐 오른 거대한 회오리가 령길에 화산재처럼 시커먼 흙먼지와 돌가루를 와르르 쏟아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온통 흙빛으로 변한 혼돈속에서 몸부림치는 대자연을 묵묵히 응시하시였다.

하늘과 땅을 들부시는듯 한 무시무시한 검은 바람, 태질하는 천연수림… 지상의 모든것을 일시에 쓰러뜨릴것처럼 세차게 불어치는 회오리의 광란속에서 대지는 단말마적인 아우성을 지르며 전률했다. 넝마쪼각처럼 갈기갈기 찢어진 구름장들이 깊은 골짜기에 곤두박히고 아름드리 고목이 뿌리뽑힌채로 날아오르는 광경에 질겁한 운전사가 마침내 급한 소리를 질렀다.

《장군님, 흙바람입니다. 차를 세워야겠습니다.》

운전사는 눈을 흡뜨고 자연의 어마어마한 횡포를 넋없이 바라보았다. 사나운 바람은 길바닥의 흙먼지를 사정없이 승용차의 유리창에 휘뿌렸다.

《그냥 모시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승용차의 전조등불빛은 황토빛 흙먼지가 매삼치는 길바닥을 불과 2~3m도 비치지 못했다. 도로와 낭떠러지와의 구획도 온전히 구별해볼수 없었다.

어찌보면 운전사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신것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하지만 그이의 눈앞에는 이 하루동안에 목격하고 체험하셨던 비통한 일들이 고통스럽게 떠올랐다.

그때의 모진 아픔, 쓰린 눈물이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 그이의 걸음을 무자비하게 재촉했다.

《가야 하오. 마음을 크게 먹고 흙바람을 헤쳐나가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사에게 힘주어 말씀하시고나서 승용차의 뒤창을 얼핏 돌아보시였다. 뒤따라 오는 승용차에서 연방 다급히 울리는 경적소리를 가려들으신것이였다.

무슨 일인가. 혹시 사고라도 난게 아닌가?… 하지만 육안으로는 뒤차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으시였다. 검은 연기처럼 뭉게쳐오르는 흙먼지속에서 희미하게 비쳐오는 전조등의 불빛만을 겨우 분별해보실수 있었을뿐이였다. 순간 불길한 예감에 싸여 차를 급히 멈춰세우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꿈쩍 놀라시였다. 문성태가 세찬 바람에 가랑잎처럼 날아나려는 몸을 허우적거리며 위태롭게 달려오고있었다.

저 동무가?… 그이께서는 두손으로 흩날리는 옷자락과 머리칼을 움켜잡고 비칠거리는 문성태를 향해 급히 뛰여나가 그의 몸을 꽉 부둥켜안으시였다. 그리고는 뒤미처 달려나온 운전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승용차안으로 문성태를 와락 끌어들이면서 물으시였다.

《어떻게 된 일이요? 문동무!》

문성태는 컴컴한 낯빛으로 헉헉 가쁜숨을 몰아쉬면서 넋없이 말씀드렸다.

《장군님… 못가십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있소! 이까짓 바람에 겁쟁이가 되였소?》

그이의 안광에서 노기가 번뜩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문성태까지 자신의 심정을 몰라주며 큰일이라도 난것처럼 소동을 피우는 일이 불만스러우셨던것이다.

하지만 문성태도 쉽사리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안됩니다. 이 일만은… 이 일만은 절대로… 우리 인민들이 이런 험한 령길에 장군님을 모셨다는것을 알면 저희들을 용서할것 같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이 없으시였다. 문성태의 절절한 간청을 단호히 물리쳐버리고 싶으신 마음이 가슴속에서 뜨겁게 굽이쳤다.

이 하루동안에 체험하신 눈물겨운 일들을 하루빨리 끝장내기 위하여 어떤 사나운 광풍이 앞을 가로막아도 과감히 헤치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 우리 혁명의 절박성을 심장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과연 문성태를 당중앙위원회 비서라고 할수 있는가!

《가야 하오. 잠시의 지체도 없이!》

문성태는 천연림의 울부짖음을 제압하며 쩌렁쩌렁 울리는 김정일동지의 말씀에 기가 꺾이여 마침내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이의 강직하신 마음, 철의 신념에 떠밀려 승용차는 다시금 흙바람이 검은 연기처럼 타래쳐오르는 령길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문성태는 그이의 촉박한 걸음을 더 이상 막아나설 용단을 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았다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혼자소리처럼 중얼중얼 뇌이였다.

《너무하십니다… 너무하십니다.》

어느새 그의 두눈에도 물기가 한가득 어려 소리없이 번들거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간 아무런 응답이 없이 승용차의 전조등불빛에 어렴풋이 드러난 령길을 굽어보시다가 너무나도 혹심하게 문성태를 책망하신것같은 쩌릿한 생각이 드시여 그 무슨 사죄라도 하듯이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문성태동무, 내 심정을 리해해주시오.》

《장군님.》

문성태가 눈물을 삼키면서 목멘 소리로 말씀올렸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렇게도 지독하게 불어치는 흙바람을 일생에 한번도 본적이 없다보니… 자강도의 세찬 눈보라는 맞다들려 봤지만 이런 스산한 흙먼지바람이 있다는건 말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저 유럽땅을 휩쓴 유혹의 미친 바람 같습니다.》

《아니요. 그거야 동무가 고산지대태생이 아니니 그럴수 있지. 하지만 조선땅에서 부는 바람인데 왜 그렇게 저주를 퍼붓소. 아무렴 이 흙바람이 사나와도 수만사람의 건전한 의식을 마비시키고 부패타락하게 만드는 미친 바람같겠소. 지금 거기에 오염된 사회에서는 돈에 환장한 현대의 인간추물들, 각양각색의 기형인들이 욱실거리고있지만 우리 인민들은 오늘의 시련을 끄떡없이 이겨내고있습니다. 적들의 악착한 고립압살책동과 경제봉쇄로 하여 굶어쓰러지면서도 기대앞을 떠나지 않구… 철부지 아이까지도 오늘의 고난을 견디여내며 굳세게 자라는데 얼마나 장하오. 자강땅의 저 황토색바람, 흙바람속에는 인간의 정신을 마취시키고 죽여버리는 독이 없소!》

문성태는 비로소 놀란 얼굴을 버쩍 쳐들었다. 자기가 실언한 가책과 뉘우침때문만이 아니였다. 그는 이 순간도 위태롭게 앞을 막아서는 사나운 흙바람속에서 자기 조국, 자기 인민에 대한 사랑과 애착을 그토록 뜨겁게 감수하시며 고심참담한 현지시찰의 험난한 길을 굽힘없이 이어가시는 그이의 모습을 크나큰 충격속에 우러러보았다.

《문성태동무.》

김정일동지께서는 한팔을 좌석의 등받이에 얹으시며 문성태를 정답게 바라보시였다.

《예로부터 이 고장사람들은 룡권(룡이 승천한다는 뜻)현상이라는 이 거대한 흙바람, 세찬 회오리가 고산지대의 척박한 땅을 살찌워준다고 전설처럼 일러왔습니다. 이 횡포한 바람에 휘말려 올라간 산양이 흙비, 흙눈에 섞여 떨어지면 하늘이 인간세상에 제물을 바친다고 남녀로소 할것없이 엎드려 참배를 올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해마다 가물을 면해보려고 기우제를 지내며 하늘에 비를 빌었다는 벌방사람들의 생활과는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오랜 세월 전해온 그러한 풍설이 남아있어 지금도 오지사람들은 흙바람이 불면 이듬해에 풍년이 든다고들 합니다. 얼마나 고마운 흙바람이요. 우리도 인민이 길할 징조로 여기는 흙바람을 달게 맞으면서 갑시다. 오늘의 곡절에 찬 모든것이 말끔히 가셔지게 될 밝은 래일을 바라보면서 말이요.》

문성태는 락관에 찬 그이의 의미심장한 말씀을 듣고 감격하여 무슨 말을 더 못하였다. 풍파많은 이 고난의 행군의 진두에서 오로지 우리 인민을 위해 자신의 괴로움을 묵묵히 이겨나가시는 김정일동지이시였다.

차창밖에서는 여전히 흙바람이 세차게 울부짖으며 지동쳤다.

 

4

(1)

 

가파른 령길을 벗어나 대도로로 달리는 승용차의 불빛이 어둠을 휘저으며 번쩍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며칠 밤을 주무시지 못해 깔깔해진 눈을 반쯤 내려감고 의자등받이에 지그시 몸을 기대시였다. 사납게 휘몰아치던 흙바람의 소란도 멎고 차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깃들었다.

문성태가 때마침 무슨 말을 하려고 그이를 쳐다보았다. 분명 눈을 좀 붙이라는 권고를 하고싶었을것이였으나 왜서인지 입을 다물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마음을 육감적으로 느끼셨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육체의 피로보다도 못견디게 그이의 온몸을 사로잡고 괴롭히는것은 이 이틀동안에 목격하신 가슴아픈 일들이였다. 그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머리속에 다시금 생생히 떠오르시였다.

우리 인민은 지금 한발자욱도 더 물러설수 없는 생사의 계선에서 눈물겨운 생활난을 지탱하고있다. 한 민족에게 이 가혹한 참상을 들씌우는 제국주의자들은 어리석게도 우리의 붕괴와 죽음만을 바라고있다. 우리가 저절로 항복하고 손을 들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악착하게 숨통을 조이고있다.

그이께서는 차창밖에 드리운 어둠을 뚫어지게 바라보시였다.

과연 이 엄혹한 정세를 근본적으로 변경시킬수 없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헤쳐나갈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희천땅으로 찾아오시기전에도 수십수백번 곱씹었던 생각을 또다시 굴리며 지그시 입술을 깨무시였다. 아니, 어떤 세상풍파가 휘몰아치며 앞길을 가로막아도 추호의 동요없이 뚫고나가야 한다. 누가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 없다. 우린 비굴하게 남을 넘겨다보지도 말고 다른 나라 장단에 춤추는 넋빠진 행위도 하지 말며 오로지 제힘으로 돌파구를 열어나갈 때만이 다시 일어설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가? 공장들의 거세찬 동음은 멎고 생때같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퍽퍽 쓰러지지 않는가. 하지만 그이께서 이 난세에도 굽힘없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확신하시는것은 오늘의 준엄처절한 시련의 시기에도 우리 인민의 심장속에서 변함없이 활화산처럼 살아 숨쉬는 자기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의 감정을 절감하시기때문이였다. 전후에 피땀을 쏟아부어 건설한 공장을 자기의 생명재산보다 소중히 여길줄 아는 우리의 믿음직한 로동계급과 장두칠의 유언, 지어 거리의 방랑아들한테서도 그것을 눈물이 나게 체험하시였다. 그 인민이 주먹을 부르쥐고 분발해 일떠서면 이 지구상에 무서울것이 있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간 깊은 사색에 잠기셨다가 잠자코 앉아있는 문성태를 측은히 돌아보시였다. 며칠동안 퍼붓는 폭우속을 뚫고 함흥지구의 장마피해를 막느라 뛰여다니던 문성태인데 잠간이나마 눈을 붙일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것인가. 홍수의 피해로 수다한 사람들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란리통에 식사도 제대로 했을리 만무하다. 요즘은 그이께서도 때식을 잊고 분주히 지내시는것쯤 례상사였다.

《문성태동무, 배고프지 않소?》

문성태가 뜻밖의 물음에 놀라며 헐끔해진 얼굴을 쳐들었다.

《동문 어제 하루도 나와 함께 다니며 굶었는데…》

《전 일없습니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성실한 일군을 위해 그냥 밤길을 갈수 없다는 생각이 뜨겁게 굽이치시였다.

《난 좀 속이 출출하구만. 운전사동무, 여기 어디서 간단히 요기나 하고갑시다. 수염이 댓자라도 먹어야 기운을 내오.》

《장군님, 희천에서 방랑아들한테 줴기밥을 다 주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 그렇군.》

《저기에 가면 기딱막힌 샘물터가 있습니다.》

《그럼 시원하게 샘물이나 한모금씩 마시고가지.》

조금후 승용차가 멈춰섰다. 그이께서는 어느새 운전사가 샘물을 떠오려고 물주전자를 흔들며 어둠속으로 신나서 달려가는 모양을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우리도 바람을 쏘일겸 밖으로 나갑시다.》

차에서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사가 사라진쪽 야산의 도두룩한 바람맞이언덕으로 문성태를 데리고 천천히 올라가시였다. 이틀전의 소낙비에 후줄근히 두들겨맞은 풀잎들에 물방울들이 맺혀 바지가랭이와 신발을 적시였다.

비에 말끔히 씻긴 맑고 청신한 밤공기가 페부로 스며들며 한순간 심신이 거뜬해지는 상쾌한 감을 느끼시였다. 축축히 젖은 대지에서는 싱그러운 땅냄새, 풀냄새가 밤바람을 타고 가슴후련히 풍겨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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