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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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인은 지금 전기가 보장되지 않아 베트의 본체를 사락으로 매끈히 다듬던 생산공정을 사람이 대신한다고 말씀드리였다. 하지만 그보다 가슴아픈 일은 허기지고 지친 로동자들이 어깨가 축 처져 후줄근히 서있는 모습이였다.
《저렇게 하여 한달에 30대씩 만든단 말이지!》
하지만 그보다 괴로운 일은 이전의 로련한 기술자들과 숙련공들이 보이지 않는것이였다. 낯익은 얼굴들을 단 한명도 찾아볼수 없으시였다.
어디서나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안깐힘을 짜내며 일하는 생소한 남녀청년들만이 눈에 띄였다.
《저 자동베트흐름선을 만든 기술자동무들은 왜 보이지 않습니까?》
로동자들과 별반 구별이 없이 헐끔한 얼굴에 관골이 두드러진 두 일군은 가뜩이나 가슴아파하시는
《어째서 말이 없소?》
물기가 배여 초점이 흐려진 지배인의 정기없는 눈을 바라보며
희천공작기계공장 로동계급이 새로 현대적인 자동흐름선을 만들고 공작기계생산을 년 1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린 때였다. 공장이 생긴이래
처음으로 경이적인 기적을 창조한 로동계급을 찾으신
《지금 제일 건강이 악화된 기능공들을 희천려관 직원들이 맡아안고 회복시키는중입니다. 그 동무들의 정성이 대단합니다.》
생전에
한평생 인민행렬차를 타고 전국의 방방곡곡을 현지지도하신
공장당비서가
《왜 그렇게만 생각합니까. 물론 기술자, 기능공들이 고지식한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생활력이 약해서 그렇게 된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의 재간을 가지고 가정용철제품 같은것을 만들어 팔았어도 죽지는 않았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들처럼 장사를 하며 자기의 량심을 속이고싶지 않았기때문에 현장에서 쓰러지면서도 일터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난의 시기 량심을 버리지 않고 우리의 사회주의를 지킨 그 귀중한 보배덩이들을 잃은것이 제일 가슴아픕니다.》
《우리 당이 어떻게 애지중지 키워낸 사람들입니까.
《지배인동무, 동무네 공장에 한 교대분의 전력을 보장해주면 공작기계를 얼마나 생산할수 있소?》
《한달에 400~500대가량 뽑아낼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자강도에서는 공작기계와 정광, 농토산물로 무역을 해야 인민들을 먹여살릴수 있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이제부터 희천시안의 공장, 기업소 전력을 여기에 집중하도록 대책을 세우겠으니 공작기계생산을 힘껏 내미시오. 지금은 이 저주로운 기아에서 사람들을 구원하는것보다 더 절박한 과제가 없소!》
지배인이 기쁨에 찬 목소리로 기운차게 대답올렸다.
순간 공장구내에 무겁게 드리운 정적을 몰아내듯 초저녁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조립직장앞의 아름드리 고목이 우수수 설레였다.
《이젠 됐소.》
바깥은 어느새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문성태가 조심스럽게 귀띔해드리였다.
《지배인,
지배인의 기운찬 대답을 듣고서야 얼마간 아픈 마음이 덜리는것을 느끼며 승용차에 오르신
《운전사동무, 좀 더 가봅시다.》
문성태가 나직이 말씀드렸다.
《너무 시간을 지체하십니다.》
《아니요. 더 가봅시다.》
승용차는 공작기계공장을 떠나 어느덧 희천시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퇴근길에 나선 로동자들의 활기찬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이따금 땅바닥에 시선을 끌며 수굿이 걷는 사람들만이 드문드문 차창밖으로 스쳐지났다. 예전에 늘쌍 흥성거리던 공업도시였으나 지금은 그때의 흔적을 찾아볼수 없었다.
흐린 하늘, 건물들의 생기없는 창문들은 점차 엷은 어스름속에 서서히 잠겨들고있었다.
그때였다.
저 산너머 봉화는
우리를 부르는데
강계포수 아들들이
사냥만 즐기랴
한두 녀석은 제법 목청을 뽑아대면서 노래까지 불렀다.
《운전사동무, 차를 세우시오.》
《저, 그런데 놀라서 들구뛰면…》
《한녀석만 붙잡소. 방랑아들이란 저래뵈두 동무를 두고 도망치는 법이 없소.》
잠시후 달리던 승용차가 별안간 멈춰서자 도로의 한켠에 비켜선 애들이 덴겁하여 산지사방으로 달아빼기 시작했다. 번번한 대도로로 냅다 뛰는 아이, 길옆의 가로수밑에 납작 엎드리는 애, 저켠 아빠트모퉁이에 가서 감쪽같이 숨어버리는 녀석, 각양각색이였다. 날쌔다는건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한녀석이 땅에 끌리는 바지가랭이를 너풀거리며 뛰여가다가 넘어져 허우적거리는걸 운전사가 닁큼 안아왔다.
《놔요, 놓아요!》
녀석이 엉엉 울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이녀석, 조용하지 못하겠어?》
생각같아선 그애앞에 앉아 나이는 몇이고 이름은 뭔가, 부모가 있는가 없는가도 자세히 묻고싶으시였다. 하지만 그 모든것을 알면 더이상
쓰린 마음을 감당해낼것 같지 않아 아무 말씀없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로 범벅이 된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시였다.
《너희들이 금방 부른게 무슨 노래냐?》
《강계포수의 노래예요.》
한녀석이 팔소매로 코밑을 쓱 문대며 대답올렸다.
《음…》
강계포수 아들들이
사냥만 즐기랴
순간 그 노래를
《그러니 너희들이 자강도 애들이 틀림없구나. 자강도…》
얼마전 서포에서 방랑아들이 돌아다닌다는 보고를 받고 문성태를 보내여 알아보도록 하셨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그날 서포에 갔다온 문성태는 울면서 말을 못했다. 오죽하면 그랬겠는가.
그런데 며칠후 희색이 만면하여 찾아온 문성태가 서포의 방랑아들이 감쪽같이 종적을 감춰버렸다고 했다. 웬일인가 했더니 그애들한테 새 부모들이 나타났다는것이였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요. 참, 요먼저
《스물여섯명입니다.》
《그래 스물여섯명이라고 했댔지. 무산에는 60명이나 데려다 길러주는 대가정도 있다니 정말 용소. 남의 자식을 데려다가 제 혈육처럼 그렇게 돌봐준다는게 헐한 일이 아닙니다. 모두 이 시대의 영웅들입니다.》
오늘 우리 인민은 비록 시련을 겪고있지만
《운전사동무, 애들을 모두 내 차에 태우시오.》
《예?》
깜짝 놀란 운전사가
그런데 오늘 밤은 왜 주저하는가. 그 소녀와 이 아이들이 무엇이 다른가? 소녀애한테는 제집과 부모가 있지만 이 방랑아들은 집도 부모도 없는 불쌍한 아이들이라는것밖에 구별되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모름지기 이 철부지들은 벌써 이태째 자강땅을 휩쓴 큰물피해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아니면 장두칠이처럼 식량난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자식들일것이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볼품없는 옷을 입고 떠돌아다닌다면 그 누구보다도 살뜰히 아껴주고 돌봐주어야 할 방랑아들이 아닌가.
《저… 제 차가 있지 않습니까?》
문성태가 다가서며 조용히 말씀올렸다.
《운전사동무! 어서 태우시오.》
아이들은 모두 다섯명이였다. 승용차에 태우니 하나 가득 찼다.
《여기서 좀 기다리지. 차에 뭐 좀 없소? 아이들에게 줄것말이요.》
운전사가 또다시 딱한 기색을 지었다.
《없습니다.
《그럼 그거라도 꺼내여 주오. 아이들한테는 그 줴기밥이 성차지 않겠지만 희천려관에 데리고가서 초기라도 면할수 있게 해줍시다. 오다가 희천시당에도 들리시오. 아이들을 맡기고가니 자강도당책임비서에게 잘 돌봐주란다고 하오. 내가 그렇게 부탁하였다고 말해주시오.》
《알겠습니다.》
그때에야 차에 탄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이들은 일제히 《아버지장군님!》 하며 차에서 와르르 뛰여내렸다.
아이들은 저마끔
《됐다, 됐어. 이젠 그만하고 떠나거라.》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떼질을 했다.
아이들의 고향, 산세 험한 자강땅이 조국의 생사존망을 판가리하는 총포성없는 싸움의 격전장처럼 처절히 안겨왔다.
지난 전쟁때에도 우리 인민은 놈들의 야만적인 폭격에 집과 가산을 다 잃고 막심한 고생을 했다. 그래도 그때엔 형제국가 인민들이 물심량면으로 보내준 지원이 있었고 부모잃은 아이들도 데려다 길러주었지만 지금은 그런 지원을 바랄수가 없게 되였다. 우리는 고립무원한 상태에서 익측이 없는 전쟁을 치르고있다.
이해에 우리 인민이 당하는 재난은 너무나도 엄혹했다. 이런때
이제는
심술궂게 불어치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벼랑아래에서는 고산지방의 강물이 소리치며 흘렀다. 한손으로 맞받아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막으며 한참이나 괴괴한 적막에 휩싸인 밤길을 힘겹게 걸어가시였다. 이때 급히 뒤쫓아오는 승용차의 전조등이 어둠을 밝히며 불꼬리를 휘저었다.
가파로운 산골길을 쏜살같이 달려온 승용차가 급정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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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강땅의 천험요새마냥 위용스레 솟은 초상령에 짙은 어둠이 뒤덮였다.
여기서는 산들에 가리워 저녁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황혼속의 가물거리는 땅끝을 찾아볼수 없다. 톱날모양의 들쑹날쑹한 산발들로 너설너설 잘리운 둥그스름한 하늘의 가장자리만을 바라볼수 있을뿐이였다. 그나마 날씨가 흐리면 어둠은 여느날보다 훨씬 더 빨리 이 협착한 산간오지를 메우면서 찾아든다. 요즘은 어느 하루도 번한 때가 없는 장마철이다보니 날만 저물면 사위가 온통 먹물을 칠한듯 캄캄해져 촌보를 가려볼수 없다. 이 밤도 가파로운 산중턱을 에돌아 댕기오리처럼 뻗은 초상령 령길은 어둠의 장막속에 잦아들어 이 울울창창한 수림속에 사람의 발길이 미칠수 있다는 생각마저 가뭇없이 지워버린다. 다만 저켠 골짜기에서 컹컹 개짖는 소리가 들리고 등잔불빛이 희미하게 비쳐와 그곳에 인가가 있다는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수 있게 할뿐이다.
고깔모양의 뾰족지붕과 두칸방이 아늑하게 달린 집들…
청천강상류를 사이에 두고 맞은켠 산자드락밑에도 키낮은 농가들이 드문드문 널려있지만 륜곽을 가려보기조차 어려웠다. 장마비에 불어난 강물우에 어설프게 건너지른 나무다리의 삐걱임소리만 이따금 귀솔게 들려오며 이 깊은 산중에서도 제나름의 특이한 생활이 숨쉬고있음을 속삭여주는것만 같았다.
승용차는 인적이 그친 초상령의 가파로운 령길을 위태롭게 달리였다. 눈앞에 다가드는 급한 구배길과 그 아래의 깎아지른듯 한 천길단애… 저 멀리 어둠속에서 불빛반점들이 희미하게 반짝이였다.
주민부락의 등잔불빛들이였다. 그나마 얼마후엔 그 꺼벅꺼벅 조는듯 한 미미한 불빛마저 꺼져버리고 사위는 아주 캄캄해지고말았다.
어둠, 어둠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대지우에 톱날모양의 들쑹날쑹한 산발들에 잘리운 하늘만이 희붐히 드리워있었다.
요즘 여기 산골마을들만 아니라 도시들에서도 전력부족으로 등잔불을 켜고있는 광경을 한두번만 목격하지 않으시였다.
밤의 두터운 장막을 가르며 질주하는 승용차의 전조등불빛이 이따금 산굽이의 깎아세운듯 한 절벽에 부딪쳐 차안으로 흘러들며
한손으로 흩날리는 머리칼을 눌러잡은 문성태는 낮게 드리운 하늘을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였다.
문성태의 우려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하루에도 몇차례씩 변덕을 부리는 고산지대의 밤하늘에서는 검은 떼구름장들이 을씨년스럽게 몰려다니였다.
갈 길을 재촉하는 문성태의 마음에 대해선 개의치 않고
《문성태동무, 우리 저 집에 잠간 들려보고 갑시다.》
《…》
문성태가 인차 대답을 못하자
《지금 전국적으로 자강도 인민들이 제일 혹심한 식량난을 겪고있지 않소. 들려봅시다.》
문성태가 비로소 자기의 실책을 깨달은 사람처럼
《됐습니다. 어서 가서 주인이나 찾아보시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