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1
폭우가 멎은 대지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연회색의 흐린 하늘에서는 아직도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고있었다.
오늘 낮부터 갑자기 세괃게 퍼붓기 시작한 소낙비, 사나운 비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심술궂게 남겨놓은 흔적이였다.
머나먼 전선동부의 최전연군부대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우에서
지난해의 장마철피해상에 대비할수 없는 엄청난 손실이 한순간
1996년에 전국을 휩쓴 기아와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나라가 달라붙어 피타게 가꾼 농작물들을 이해 여름도 횡포무도한 자연이
무자비하게 짓뭉개여버리는 일이 생각할수록 분하시였다. 원쑤들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이 점점 더 우심해지고있는 때에 또다시 이런 혹심한
자연피해를 입었으니 래년에도 우리 인민은 각박한 생활난에서 헤여나지 못하고 근근히 살아야 하는가.
그러느라 날이 어둑어둑해서야 수도에 이르신
(지금쯤 수해지역인민들은 어떤 참혹한 일을 당하고있을것인가?)
(그런데 함흥지구에 내려가 있는 문성태비서한테서는 왜 다른 소식이 없는가?)
당중앙위원회비서 문성태에게서 이번의 폭우에 함흥지구가 가장 혹심하게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를 받으셨던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아무튼 무슨 기별이 오겠지.) 하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한초한초 긴박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을 옥죄이시였다.
마침 키가 꺽두룩한 웬 사람이 충성의 다리입구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달려오는 모습이 전조등불빛에 얼핏 드러났다.
《가만, 저게 문성태비서가 아니요?》
《그렇습니다.
운전사가 제꺽 대답올렸다.
저 사람이 무슨 일로 저 길목에서 나를 기다렸는가? 혹시 시간을 다투는 긴급한 일이라도 생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시여 승용차가 멎어서기 바쁘게 차문을 여시였다.
《어떻게 된 일이요?》
문성태가 정중히 인사하고나서 말씀올렸다.
《사람두… 그런걸 난 가슴이 덜컥했댔소. 어서 차에 타오.》
《그래, 함흥지구의 형편은 어떻소?》
문성태의 행색도 여간 볼성사납지 않았다. 소낙비에 젖어 쭈글쭈글 구겨진 옷과 중병을 치르고난것 같은 꺼칠한 얼굴, 벌겋게 피발이 선 두 눈망울…
《인명피해는 없었습니까?》
《다행히 사람은 별로 상하지 않았습니다. 성천강제방 꼭대기까지 차오른 강물이 까딱하면 함흥지구의 5개공장을 몽땅 밀어버릴번 했습니다. 그 아슬아슬한 광경을 목격한 인민들은 군부대 장령을 에워싸고 가슴을 치며 공장이 저렇게 위험에 처했는데 뭘 주저하는가, 당장 포사격을 하여 자기네 농장쪽의 제방을 터쳐달라고 졸라댔습니다.》
《그래 포사격을 하였습니까?》
《몇분후에 농장쪽의 제방이 터져 포사격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홍수가 여섯개의 농장을 쓸었습니다. 그대신 공장은 구원되였습니다. 전 이번의 수해를 통해 인민들이 자기의 생명재산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것이 무엇인가를 눈물겹게 목격하였습니다.》
문성태가 두눈에 뜨거운 물기를 듬뿍 머금고 격정을 터뜨렸다.
이 땅에는 적들의 무분별한 도발로 임의의 순간에 전쟁이 터질수 있는 정세가 항시적으로 존재한다. 전쟁이 재발할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하지만 적아간의 대병력이 기동하며 총포성이 울부짖는 류혈전만이 전쟁인가? 세계적인 판도에서 사회주의나라들이 련이어 무너지자 극도로 오만해진 미제국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강력한 보루인 조선의 붕괴를 노리며 어리석게 미쳐날뛴다. 지구우의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하는가 마는가 하는 준엄한 시각에 우리 인민은 하나의 적이 아니라 제국주의이리떼와 맞서 총포성이 없는 전쟁을 치르고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평화시기에 공장들의 숨결이 멎고 생때같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쓰러지는 참상이 이 신성한 땅에서 어떻게 벌어질수 있는가!
《차라리 공개적인 전쟁이면 나의 마음도 이렇게는 고통스럽지 않을것이요. 하지만 나는 전쟁으로 인한 조선반도의 초토화를 철저히 막자는 사람이요. 조국애로 불타는 공산주의자들을 리해하지 못하는 무지막지한 놈들과 총포성없는 전쟁을 하자니 몇곱절로 힘이 들거든. 추위에 떨고 배고픔도 참고 견디며 때로는 가슴아픈 희생에 눈물도 흘려야 한단 말이요.》
사위는 온통 캄캄했다.
저 멀리 중구역의 일부 주택지구와 평양역사, 주체사상탑의 상공에만 불그스름히 화광이 어려있을뿐 어둠은 평양시의 전역에 짙게 뒤덮여있었다.
밤마다 목격하시는 광경이였지만
《우리가 최근년간 평양시에 현대적인 살림집들을 수많이 건설했지만 수도시민들도 몇해 락을 보지 못하고 고생을 합니다. 나라가 시련을 겪다보니 좋은 주택을 지어놓고 조명용전기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오늘 밤은 우리 함께 평양시를 돌아봅시다.》
안개비 내리는 밤거리… 이따금 궤도전차들이 어둠을 헤가르면서 달려와 정류소마다에 멈춰설 때면 한무리씩 와르르 쏟아져내린 사람들이 제가끔 뿔뿔이 흩어져가는 모양이 어슴푸레 바라보였다. 통일거리주택들에서 살고있는 주민들이였다. 그들이 어둠에 익숙된 걸음으로 재빨리 찾아가는 고층건물들에서는 등잔불빛이 조을듯이 가물거리고있었다.
우리 인민이 고난의 행군을 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수도의 창문들에도 등잔불이 놓이기 시작했지, 자기가 살고있는 아빠트층계의 계단이 몇개인지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 여덟개라는것도 알게 되구. 저녁이면 그 어느 고층아빠트에서나 시민들은 어두운 층계의 란간을 짚고 하나, 둘, 셋… 속셈을 하면서 계단을 조심조심 오르내린다. 간혹 성미가 꼼꼼치 못한 젊은 친구들이 덤볐다치며 계단을 잘못 밟고 발목을 상해 직장에 출근하지 못하는 난사까지 생긴다지 않는가. 그 바람에 송신과 동대원시장에서 회중전지와 가스라이타가 인기상품으로 불이 펄 나게 팔리고 젊은 녀성들이 사치스럽게 들고다니는 납작한 손가방안에도 그러루한 물건들이 들어있다니 참말로 기막힌 일이였다.
대동강너머의 문수지구에 뒤덮였던 어둠을 날려보내며 갑자기 불야경이 펼쳐지는것을 보고 문성태가 환성을 질렀다.
문성태는 앞의자의 등받이를 눌러잡고 소경이 눈뜬것만치나 기뻐했다.
통일거리의 긴 구간을 벗어나 선교구역을 통과한 승용차는 옥류교를 건너 모란봉구역쪽으로 달리였다. 그때 다시 보니 문수거리는 벌써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고작 15분이로군. 전력공업부에서 교차생산조직을 하지만 그 이상은 견디여내지 못하고있소.》
승용차는 어느덧 천리마동상앞 언덕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 40층건물도 어둠속에 묻혀있구만.》
승용차안에는 한동안 정숙이 깃들었다.
《그래도 40층주택엔 밤마다 불이 환히 켜있어 평양시의 등대아빠트라고들 합니다.》
문생태가 마침내 위안조로 조용히 말씀올리였다.
《그거야 다른데보다 좀 나으니 하는 말이겠지.… 난 지금도 평양에서 13차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리던 때가 눈에 선하오. 그때 새로 웅장화려하게 건설한 광복거리의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왔소. 서방사람들도 입을 딱 벌리며 평양시를 요지경속같은 환락의 도시라고들 했지. 밤거리에 나가보느라면 수천수만의 창문들에서 반짝이는 형광등불빛은 행복한 수도시민들의 눈동자와도 같았소. 그 누구나 유족한 생활을 향유하던 때였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저 40층주택에도 불빛이 없소. 나많은 원사, 박사, 교수들이 살고있는 고층아빠트인데 말이요. 저녁이면 승강기가 뛰지 못해 학자들이 몇차례씩 층계에 앉아 다리쉼을 한다는데 얼마나 불편스럽겠소. 내 그래서 저기에만은 전기를 꼭 보장해주라고 강조했는데 요즘은 저기도 자주 정전이 되군 하오. 오죽하면 25층에서 살고있는 한 시인은 퇴근시간만 되면 집에다 전화를 걸어 불이 왔는가를 알아보겠소. 그는 정전이라고 하면 난 또 딸네 집에 갑네다 하고는 가까운 곳의 소층아빠트로 찾아간다오.》
《저 어둠속에서도 피아노소리는 뢰성처럼 울리고있소. 난관에 쉽사리 굴복할 우리 인민이 아니요!》
그 격앙된 심정을 안고 집무실로 돌아오신 후에도
송수화기를 들고 각 지방의 큰물피해수습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여보시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자연재해로 갈팡질팡하던 사람들의 혼란은 멎었다. 그러나 홍수에 집과 가산을 잃은 사람들의 생활을 한시바삐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을 취하시느라
마침 문기척소리와 함께 나타난 서기실장이 문건을 조심스럽게 내밀면서 말씀올렸다.
《자강도당에서 올라온 문건입니다.》
《됐소, 돌아가보오.》
공작기계가 꽝꽝 쏟아져나오던 희천공작기계공장의 월생산실적이 전력부족때문에 급격히 떨어진 사실이 보고되여온것이였다. 공장은 돌아간다고 할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멈춰서있으나 다름없다.
게다가 거기에서 생산된 공작기계를 가지고 활발히 진행하던 무역의 중단으로 도안의 식량사정까지 곤난해져 며칠전엔 희천공작기계공장의 오랜 기능공이 굶어죽었다니 억이 막히시였다.
(
너무도 억울하고 비통한 마음을 억제할길 없어 책상모서리를 움켜잡으시는
전후에
장두칠은 하루 두석대밖에 조립하지 못하던 공작기계를 몇십대씩 불이 번쩍나게 조립해제꼈다. 공장옆에 집을 두고도 시간이 아까와 천정기중기가 분주살스레 내지르는 굉음, 망치질소리로 귀멜듯 한 조립장에서 기름매닥질한 새까만 작업복을 입은채 말뚝잠을 자며 무섭게 일했다. 그는 남들이 땀투성이가 되여 갈고 쓸며 몇번씩 뜯었다 맞췄다 하는 공작기계를 단번에 능숙히 조립하군 했다.
모두들 장두칠을 귀신같은 《기계명수》라며 혀를 내둘렀다. 오묘하고 복잡한 기계속을 제 손금처럼 꿰뚫어보는 장두칠의 정확한 눈, 날랜 일솜씨는 참말로 신기할 정도였다.
공장에는 그와 견줄만 한 기능공이 단 한명도 없었다.
장두칠의 뛰여난 재간이 너무도 귀중하여
《희천공작기계공장의 오랜 기능공 장두칠동무가 굶어죽었소.
차안에는 납덩이같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지꿎은 장마비에 씻겨 번들거리는 포장도로를 따라 고속으로 달리는 승용차가 시내를 멀리 벗어난 때에야
《장두칠동무가 적들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면 이렇게는 가슴아프지 않을것이요! 이러다간 희천의 기능공들을 다 잃겠소. 운전사동무, 좀 더 속력을 높이시오. 어둡기 전에 희천에 도착해야 하오.》
문성태는 그제야 비로소
2
(1)
《뭐, 장두칠동무가 죽었다구…》
정녕 죽어서는 안될 귀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통분함에 떨리는 준절하신 음성이였다.
고개를 푹 떨군 두 일군의 얼굴은 질그릇처럼 컴컴하였다.
터질듯 한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한손을 허리에 올려짚으신
땀구멍이 숭숭한 얼굴의 네모진 턱이며 떡 벌어진 어깨, 무쇠덩이 같은 손, 반백의 희끗희끗한 상고머리… 그 억센 기능공의 미더운 모습,
느슨한 웃음을 다시 보실수 없는 허전함이 한순간
오늘은 공장구내에 뿌리박고 수십년 키높이 자란 고목도 그 아까운 기능공을 잃은 애달픔에 흐느끼듯이 수선스럽게 뒤설레이였다.
장두칠이 없으니 공장은 텅 빈것만 같았다.
공장당비서가 자책감에 잠긴 어두운 얼굴로 뒤말을 잇지 못하자
《그래, 정말 아까운 동무를 잃었소. 아까운 동무를…》
가까운 곳의 생산현장에서 때마침 크지 않은 함마질소리가 낡은 시계종소리처럼 기운없이 뗑-뗑- 느리게 울려왔다. 그 맥빠진 음향에 끌려
이 북방땅에 거창하게 일떠선 우리 나라 최초의 공작기계생산기지, 희천의 대공업지구로 찾아오시면 채광이 좋은 드넓은 현장에는 늘쌍 웅장한 자동베트흐름선과 선반기, 후라이스반, 치절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알른거리였다.
그날의 고르롭고 률동적으로 울리던 기대들의 정다운 동음은 들리지 않고 무슨 왕청같은 함마질소리인가?
조금후 썰렁한 기운이 풍기는 현장의 열려진 철문안에 들어서신
《동무들, 수고하오.》
로동자들이 일시에 일손을 멈추며 우뚝 굳어졌다.
막심한 생활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뜻밖에 찾아오신
《장두칠동무가 희생됐다지요. 내가 동무들을 잘 돌봐주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장두칠 기능공과 동년배인 늙수그레한 로동자의 눈에서 걸쭉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여윈 볼을 적시였다. 그 바람에 옆에 섰던 로동자들도 벽밑에 꼬부리고 누워있던 사람들도 간신히 일어나 기름때 묻은 시커먼 작업복팔소매로 젖은 눈굽을 훔치며 소리내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동무들이 도리여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니… 고맙소! 우리 어떻게 하나 이 고난을 뚫고 나갑시다. 그래 지금 모두들 무슨 일을 합니까?》
눈물에 목안이 막혀버린 로동자들은 말을 못하고 지배인이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