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제 5 장

6

 

아침녘부터 도에서 손님이 청년염소작업반에 찾아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건물들의 내부공사에 쓸 블로크를 운반하는 청년들속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떤 청년들은 기자가 청년염소반을 취재하러 왔다고도 했고 누군가는 도에서 온 간부가 방목지건설을 료해하러 왔다고 하면서 제나름의 추측들을 했다. 하지만 순미는 거기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다.

블로크를 싣고 작업장에 올라온 청년의 말이 김희문아바이가 몹시 앓고있다는것이였다.

순미는 나이많은분을 잘 돌보지 못한 자책감을 안은채 석회로를 향해 달려내려갔다. 기와로쪽에서 은은한 하모니카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시뻘건 불길이 이글거리는 기와로앞에 앉아 하모니카를 부는 사람은 뜻밖에도 희문아바이였다. 그는 량손으로 하모니카를 감아쥐고 서서히 그리움의 선률을 뽑아내고있었다.

 

          노을이 피여나는 이른아침에

          인자하신 그 미소를 생각합니다

          …

 

순미는 한동안 다가갈념을 못했다. 절절한 그리움의 세계를 방해할것 같아서였다. 저도 모르게 하모니카의 선률에 목소리를 합쳤다.

 

          지금은 그 어디에 계시옵니까

          북변의 공장길을 걸으십니까

          …

 

김희문이 머리를 돌렸다.

《아, 반장인가?… 나도 작업반사람인데 3대혁명붉은기작업반 판정을 받으려면 하모니카를 잘 불어야지.》

《아바이, 몸이 편치 않다던데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어요?》

김희문이 끌끌 혀를 찼다.

《원, 신경통이 조금 도진걸 가지구… 어느 녀석이 벌써 고자질을 했노?》

《아바인 어쩌면… 태식동무도 그러더니…》

순미는 눈굽이 확 달아올라 더듬거리며 말했다.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린가?…》

김희문이 놀라와했다.

순미는 일전에 받아보았던 편지내용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아바이는 알만 하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일이 있긴 있었네. 절대로 누구한테도 말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하더군. 견딜만 하다면서… 자기는 집단과 동무들속에 어울려 일을 해야 병을 고칠수 있다던지… 사내녀석이 제 몸 걱정을 해서야 무슨 일을 치겠나. 너무 걱정말라구.》

그는 자기 역시 아무 일도 없으니 걱정 놓으라고 거듭 말했다.

《내 이래뵈두 70년대 제대군인이야. 나이는 들었지만 자기 맡은 초소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것쯤은 아네.

수십년전 총을 잡았던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하나뿐이야. 그래서 군사복무시절에 자주 부르던 노래를 불러보는중일세. 이 노래만 부르면 왜 그런지 큰 힘이 용솟음쳐오르거던.》

순미는 아버지세대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금할수 없었다.

김희문은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고 반장이 해야 할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라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순미는 석회로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그를 잘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하고 덕으로 올라왔다. 오전에 염소우리호동 내부시설을 꾸리는 문제를 두고 좀더 토론을 하자고 신종선과 약속을 했던것이다.

덕으로 올라온 순미는 신종선이와 함께 염소우리호동을 돌아보면서 먹이주는 장치를 현재 칸칸마다 붙여놓은 살창식만이 아니라 염소들의 생리적특성을 리용한 다른 방법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였다.

《반장동문 어떤 방법을 적용했으면 좋겠소?》

순미는 그사이 여러모로 연구해본것을 기탄없이 터놓았다. 현재 정방형으로 된 개별칸 또는 여러마리씩 들어가게 된 칸에 붙여만든 살창식먹이통에는 배합먹이나 풀먹이를 넣어주게 되여있었다. 염소는 산에서는 물론 우리에 들어와서도 부단한 운동을 하고싶어한다. 례하면 높은 곳에 매달린 나무잎사귀나 다래순, 머루순 같은것을 뜯어먹는데 습관되였다. 그런 생리적특성을 고려하여 앞다리를 높이 쳐들면서 먹이를 뜯어먹을수 있게 염소우리우에 먹이를 드리워주는 방법을 더 도입하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신종선은 순미의 의견에 공감했다. 그렇게 하자면 개별칸들의 네면을 둘러친 살창의 높이를 높여주고 천정에 먹이덕대를 만들며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먹이를 드리워주는 장치를 수차식으로 설치하는게 좋겠다는 자기의 의견을 첨부했다. 그래야 앞으로의 콤퓨터화도 가능할것이였다.

《지금 꾸리는 호동부터 그렇게 꾸리고 시험사양을 해보자요.》

순미는 앞으로 콤퓨터조종에 의한 실내사양을 완성하자면 방목공들모두의 실력을 한계단 높여야 하는만큼 대학통신학부에 입학하는 문제와 작업반에 있는 콤퓨터를 가지고 매일 저녁 기술학습도 실천과 결부하여 진행하자는 의견도 내놓았다. 할일은 끝없이 많았다. 어느 한가지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일들이였다. 날에날마다 세상사람들을 깜짝 놀래우며 내달리는 오늘의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어느사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순미가 점심식사를 끝내고 염소우리호동 내부꾸리기공사장에 나가려는데 정윤심이 청년염소반을 찾아왔다는 도농촌경리위원회 축산처 부원과 함께 덕으로 올라왔다.

아침부터 청년들이 제나름의 추측을 하던 그 사람이였다.

미츨한 몸매에 서글서글한 눈빛, 굽실굽실한 머리, 미남자형의 청년이였다.

《반장동무, 삼포군의 풀먹는 집짐승기르기정형을 료해하러 왔는데 군경영위원회에서 여기 풍덕청년염소반을 소개해주더군요.》

《아직 할일이 많습니다. 토끼작업반에 가보셨습니까?》

《오전에 갔댔습니다. 참 일을 많이 했더군요. 토끼마리수도 많고 반장동무가 얼마나 이악하게 일을 했는지 난 감탄했습니다. 그 동문 또 그 동무대로 염소반이 일을 더 많이 했다고 말하더군요.

반장동무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되여 염소방목기지건설을 시작하게 되였고 그 과정에 제기되는 난관들을 어떻게 뚫고나갔는가를…》

순미는 얼굴을 붉혔다. 얼마전 박승완을 통하여 경심이의 일을 다 알게 되였다. 순미는 무척 기뻤다. 그는 박승완이에게 경심이를 진심으로 도와주어 고맙다는 말을 했었다.

《나야 순미동무가 하라는대로 했을뿐인데 뭘…》

《아니예요. 승완동무가 작업반 청년동맹비서로서 잘 이끌어주었다고 전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 그래주세요. 그리고 사랑해주세요.》

《헛참, 그 동무가 나같은걸 생각이나 한다오?》

《고향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처녀라면 누구나 승완동물 사랑하게 될거예요. 내 보기엔 사랑은 벌써 시작된것 같군요.》

박승완은 순미의 말에 손을 내저으면서도 기분이 좋은듯 껄껄 웃었다.

(경심아, 난 너를 믿었어. …)

순미는 경심이와 마음속으로 끝없이 속삭이며 도농부원을 안내하여 건설현장 곳곳을 돌아보았고 염소기르기정형과 최근 새끼생산조직정형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었다.

부원은 깊은 감동을 느낀듯 했다.

순미는 고향에 영원히 뿌리를 내린 신종선, 정윤심부부며 김태식, 류옥련을 비롯한 풍덕땅청년들의 투쟁과 안홍진에 대하여, 김희문아바이와 같은 로세대에 대하여 크나큰 자랑과 긍지를 가지고 이야기하였다.

《반장동무 역시 영원히 이 땅에 뿌리를 내렸겠군요.》

순미는 그 말에 소리없이 웃었다.

《부원동진 마치 기자같군요.》

《난 오히려 내가 기자였으면 합니다. 여기 청년염소반원들과 반장동무에 대해 글을 쓰고싶군요. 앞으로 풍덕땅이 소문이 나면 기자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올것입니다.》

부원은 심중에 끓어오르는 감동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순미의 외삼촌이 여기 조카에 대한 말을 이미전에 많이 하였다는데 대해서는 본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림송철에게서 처녀에 대한 소개를 받아서라기보다 언젠가 한번은 처녀를 꼭 만나고싶었던것이다. 도대체 어떤 처녀이길래 그렇듯 통이 크고 진취적인지, 그를 추동하는 힘이 어디에서 시작된것인지 알고싶었다. 그러던중에 처녀를 만나볼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생긴것이다. 청년은 림송철소장이 과연 조카딸을 자랑할만 하다고 생각하였다.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처녀였다.

그는 순미가 결코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보금자리를 정할 그런 처녀가 아님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이 땅에 든든히 뻗어내린 뿌리는 그 어떤 힘으로도 뽑아낼수 없는것이다. 그 억센 뿌리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창조의 숲이 자라 향기짙은 꽃이 피여 알찬 열매가 주렁질것인가.

청년은 순미의 모습에서 풍덕땅의 미래를 보았다. 또한 그가 고향을 가꾸는 보람찬 투쟁속에서 사랑을 찾고 가꾸리라는것을 믿어마지 않았다.

그는 덕을 떠나면서 딸의 일을 도와 청년반원들의 식당일을 하는 림송심을 만나 림송철의 인사를 전한 다음 훌륭한 딸을 키운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되는 인사를 했다.

그가 떠난 후 염소반원들에게 메밀국수를 먹이겠다고 농장정미소에 내려갔던 림송심은 덕으로 올라오자마자 순미를 찾아왔다.

《도농부원이라는 사람이 너에게 다른 말은 하지 않더냐?》

순미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어리둥절해졌다.

《아니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어머니?…》

《실은 그 사람이 바로 외삼촌이 늘 말하던 젊은이란다, 너와 짝을 무어주겠다던. …

마을에 내려갔다가 네 외삼촌이 걸어오는 전화를 받았는데 그러더구나.》

《어마나, 그래요?》

순미는 명랑하게 웃었다.

《글쎄 어쩐지…》

《그 젊은이가 풍덕땅을 떠나면서 너에 대한 칭찬을 끔찍이 했다누나.》

《그러니 제가 그 동무한테 합격이 된셈이군요.》

《글쎄, 합격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너야말로 여기 풍덕땅에 꼭 있어야 할 처녀라고 했다던지. …》

림송심은 이모저모로 딸이 대견스러운 모양이였다.

《그러니 결국 외삼촌의 작전은 실패했군요.》

순미는 웃었다. 림송심은 그러는 딸을 생각깊은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러니 넌 장차 어떻게 할 결심이냐? 처녀로 늙을수야 없지 않느냐.》

《어머니, 이 딸이 고향의 품에 안겨있는데 무엇이 걱정인가요? 사랑도 행복도 다 그 품에 있는데…》

순미는 활짝 웃었다. 딸을 어루쓸어보는 어머니의 눈가에는 맑은것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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