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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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미는 신종선과 토론한 끝에 새로 지은 염소우리호동들과 여러 건물들의 내부공사를 진행하면서 조기, 야간작업으로 덕중심부터 골짜기까지의 방목지꾸리기를 내밀었다. 목수재간이 있는 인원들은 주로 염소우리호동들의 내부공사를 맡았다. 습하고 눈비가 많이 오는 풍덕땅의 기후조건을 고려하여 염소우리바닥을 수십센치 올리고 삼합토로 견고하게 다지는 동시에 배설물처리를 손쉽고 간편하게 할수 있도록 시설물들을 설치했다.
염소우리호동 내부공사를 관심하던 순미는 달구지에 석회를 싣고 올라온 청년이 전해주는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아침일찍 통신원이 올라와 주고 갔다고 했다.
《××방직공장 기술준비실 홍영순》. 봉투에 씌여진 발신인주소는 순미에게 생소했다.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한 그 녀자는 몇해전까지 김태식이와 돌격대생활을 함께 한 사연을 이야기하고나서 이렇게 썼다.
《…태식동무의 편지를 통하여 반장동무가 좋은 처녀이며 지금 고향을 꾸기리 위한 전투로 바삐 지내고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습니다.
반장동무, 사실 태식동무는 돌격대에서 제대되기 몇달전 건설용목재로 채벌해놓았던 통나무들이 무너져내리는 위험한 순간에 서슴없이 한몸을 내대여 수많은 동무들을 구원하고 부상을 당한 동무입니다. 그때의 그 정황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저 가슴이 뜨거워오르기만 합니다. …
동무들이 달려올라가 나무에 깔린 그 동무를 끌어냈을 때 온몸은 피투성이였습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저마다 〈태식동무!〉, 〈태식동무!〉 하고 불러서야 간신히 눈을 뜬 그 동문 글쎄 평시처럼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갑자기 울보들이 됐는가고 하면서 오히려 우리를 달래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돌격대원모두가 그의 롱담에 더 울었습니다. 정말이지 그가 아니였더라면 나도 그렇고 많은 동무들이 어떻게 되였겠는가 상상하기도 무섭습니다.
우린 그 동무를 잊지 못합니다. 돌격대에서 여러달동안 치료는 받았지만 완전히 회복되였다고는 말할수 없습니다. 허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지금은 어떠한지 알수가 없군요. 해마다 편지를 보냈으나 이젠 다 나았다는 소리뿐이지…
워낙 쾌활하고 락천적인 성격이니 웃음으로 아픔을 참아가며 무리하지는 않는지 걱정됩니다. 한번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도 가보지 못하고 이렇게 반장동무한테 편지를 하는 우리를 용서해주세요.
한번 꼭 가겠습니다. 절기가 바뀌는 계절에는 상처가 더 심할수 있으니 아무쪼록 관심을 돌려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생활과 건강에 대해서 자주 알려주기 바랍니다. 편지때마다 염소방목이 하나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재미가 있다면서 좋은 소리만 하는데 믿을수가 없구만요. … 몹시 바쁘게 일할 반장동무인줄 알면서도 진실을 알고싶어 편지를 하니 꼭 소식을 알려주기 바랍니다. …》
순미는 편지를 두번, 세번 곱씹어 읽었다.
(태식동무가 이런 사람이였구나. 그런데 난…)
뜨거운 격정이 가슴가득 차올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능금골로 향했다. 발이 땅에 닿는지 마는지 정신없이 걷다가 멈춰섰다. 경황이 없던 나머지 신종선이와 함께 가려던 생각을 잊은것이였다. 어쨌든 올라가 그 동무부터 만나보자.
순미는 그의 몸상태가 어떠한지 직접 알아본 다음 대책을 세우리라 마음먹었다.
(태식동무, 동문 정말 너무하군요. 그 사실을 여태껏 숨겨오다니…)
라순미가 능금골에 이르렀을 때 제일먼저 눈에 띄인것은 골개울가에 나무바자를 촘촘히 둘러치고 전개한 야외식당이였다. 점심준비를 하는지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이제는 다 쇠버린 곰취, 길짱구, 말발굽풀들이 푹신한 주단처럼 깔린 공지를 지나 취사장 가까이로 다가서던 그는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개별의자며 넙적한 돌들을 모양곱게 펴놓은 식탁이 놓인 야외식사칸앞에 활짝 핀 꽃밭을 보았다. 해빛에 유난스레 반짝이는 꽃잎들이 눈길을 끌었다. 빨간색, 연분홍색백일홍이며 분홍색, 흰색바탕에 붉은 반점들이 찍힌 다리아, 숭숭 구멍이 난 뽕뽕다리아, 거기에 산나리며 산국화 같은 들꽃들도 섞여있다. 이곳에 야외방목지를 꾸릴 때 침실앞과 식당앞에 꽃밭을 만들고 씨를 뿌리더니 이렇듯 활짝 피여난것이다. 김태식이 주관하여 만들고 씨를 뿌린 꽃밭이였다. 아름답게 피여나 활짝 웃는 꽃들이 마치 태식이의 쾌활하고 명랑한 모습처럼 여겨졌다.
식당안에서 송순애가 누구와 다투는듯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정신있어요? 그 떡은 태식동지와 옥련동무 몫으로 남긴것인데 그렇게 훔쳐먹으면 어떻게 해요?》
송순애가 무슨 막대기같은것으로 때리는지 비명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리경칠이였다.
《순애동문 내 사정 잘 알지 않아. 난 건설장에서도 곱배기만은 번지지 않았어. 그런데 생산전투를 앞두고 여기 방목지에 지도성원으로 소환된 체면에 어떻게 공개적인 곱배기를 하겠어. 아, 반장동지가 알면 가슴아파하는걸 보자고 그래? 동무가 날 생각해주지 않으면 지도성원이라는게 방목공들앞에서 망신할수 있어.》
《말 말어, 제가 무슨 지도성원이람.》
《동무, 그런 고약한 말버릇이 어디 있어? 오늘 저녁 개별담화대상이 되고싶어? 눈물이 찔끔 나오게 비판을 받고싶은가?》
《아유, 능청스러워라. 그런 말 하기 부끄럽지 않아?》
두손으로 입을 싸쥔채 달려나오던 송순애가 밖에 서있는 순미를 보고 굳어졌다. 뒤따라나오던 경칠이도 눈이 덩둘해졌다.
《지도성원동문 취사장을 돌아보고있는 모양이지요?》
《예, 그… 그건 사실입니다. 후방사업이야 곧 정치사업이 아닙니까? 저, 그리구 태식동무에게 떡을 가져다줄려구…》
《거짓말이예요. 반장동지, 제가 다 훌떡했어요, 태식동지가 먹으랬다면서…》
경칠은 어이없다는듯 순애를 쏘아보았다.
《어쨌든 오늘 저녁은 개별담화야. …》
그는 라순미의 눈에 들키지 않게 주먹을 흔들어대는데 팔에는 부지깽이에 얻어맞은 자리가 헨둥했다.
경칠은 비실비실 눈치를 보다가 한쪽으로 달아뺐다. 생산절기에 들어서면서 방목공들을 일부 능금골로 올려보낼 때 경칠이도 올라왔는데 여전히 순애의 속을 태우고있는 모양이였다.
순미는 취사장안으로 들어가 김치단지도 열어보고 아침에 먹은 반찬가지수도 알아보았다. 송순애가 그앞에 취찰떡을 가득 담은 식기와 김치 한그릇을 내놓았다.
《오늘 아침 특식을 했어요. 맛을 좀 보세요.》
순애는 태식이와 옥련이가 며칠전 집에 내려갔다가 여러가지 부식물과 함께 찹쌀을 지고 올라온 이야기를 했다.
《그 쌀로 오늘 아침 취찰떡을 쳤어요. 요즘 방목공들이 힘들어하길래…》
순미는 순애가 저가락에 꿰여주는 떡을 선뜻 들지 못했다. 뜨거운것이 가슴을 꽉 채웠다.
《그런데 아까 태식동무와 옥련동무 몫이라고 한건 뭐예요?》
순애는 김태식이 떡을 한두개 맛보고는 모두 동무들한테 나누어주었는데 웬일인지 옥련이도 한두개 맛보고는 그만두었다는것이다.
(무슨 일일가?…)
어쩌다 생긴 특식을 마다했다는게 순미의 마음에 걸렸다. 몸이 불편해서 그만둔것이 아닌지 옥련이까지 그랬다니 더욱 걱정되였다.
순미는 깊은 생각을 안은채 염소들이 풀을 뜯는 골안 웃쪽으로 올라갔다.
옥련의 우량종염소무리가 나타났다.
풀과 덩굴이 무성한 릉선에 올라붙었는데 연청색작업복에 창이 넓은 해가림모를 쓴 옥련이가 릉선 아래쪽에서 염소무리를 살피며 서있었다.
《어마나? 소식도 없이 갑자기 올라오다니…》
옥련은 순미의 뜻밖의 출현을 놀라와했다. 순미는 요즘 퍼그나 진중해진 옥련의 얼굴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찬찬히 보니?》
《혹시 앓는게 아니냐?》
그 말에 옥련이 호호 웃었다.
《옥련아, 염소들의 상태가 더 좋아졌구나.》
순미는 우량종염소들중 현재 새끼생산에 참가한 마리수와 나머지마리수를 알아보고 계획적으로 맞물렸다고 그를 칭찬했다.
《말도 말아. 태식동무가 어찌나 다그어대는지 난 막 죽을 지경이라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빛은 여느때없이 반짝거렸다.
《오늘 아침 식사를 다 안했더구나. 어디 아픈데가 있으면 솔직히 말해.》
《아프긴, 그저 먹고싶지 않아서…》
사실 그는 김태식이 한두개 맛보고 동무들한테 다 나누어주는것을 보자 자기도 들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순미한테 그 말을 할수는 없었다.
순미는 옥련이가 혹시 태식의 건강상태를 알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옥련아, 진심으로 대답해봐. 넌 태식동무를 어떻게 생각하니?》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이냐? 내가 그 동물 어떻게 생각한다는거야 너도 알지 않니.》
옥련은 부러 아닌보살을 하며 시치미를 뗐지만 그의 어조에는 류다른것이 비껴있었다. 순미는 그러는 옥련이를 골려줄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 동무가 미워죽겠다. 어쩌면 사람이 그럴수 있니?》
옥련의 눈이 대뜸 커졌다. 아련한 얼굴에 긴장한 빛이 확연했다.
《아니, 왜 그러니? 그 동무가 혹시 잘못한거라도…》
옥련의 목소리는 사뭇 떨리고있었다.
《옥련아!》
순미의 목소리는 갈렸다.
그는 옥련이의 손을 꼭 잡았다.
《너한테 보여줄게 있다.》
그는 편지를 꺼내여 옥련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게 뭐니?》
《돌격대시절에 태식동무와 함께 일한 녀동무가 보내온거다.》
《어마나, 내가 왜 이걸 본단 말이냐?》
순미는 옥련의 심정이 리해되였으나 편지를 꺼내여 펼쳐주었다.
《아니, 네가 꼭 봐야 할 편지야.》
순미의 어조에서 무엇인가 짐작했는지 옥련은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졌다. 그 고운 눈에서 불쑥 솟구친 맑은것이 편지종이에 툭툭 떨어졌다.
순미가 곁에 있다는것조차 잊은듯 공지에 두그루의 소나무가 서있는쪽으로 비척비척 걸어가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순미야, 어쩌면 사람이… 이럴수가 있니. 지금껏 그런 내색 한번 안하고… 사람이 덜퉁스럽다는건 정말…》
《그게 덜퉁스러워서일가? 아니야. 자기의 아픈 몸이 동무들의 일에 지장을 줄가봐 그랬을거야.》
《그게 그 소리지 뭐냐? 그러고도 뭐 진정이요, 사랑이요 하면서… 다 입에 침발린 소리지. …》
순미는 옥련이의 그 눈물어린 투정질이 고마왔다.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말할수가 없는것이다.
《옥련아, 네가 곁에서 그 동물 잘 돌봐줘. 저녁에 신종선동무를 올려보내서 구체적으로 알아본 다음 대책을 세우자. 난 네가 곁에 있어 마음이 놓인다.》
《걱정하지 말아. 내 할수 있는껏 그 동무를 돌보겠으니…》
《고마워.》
두 처녀는 서로가 뜨겁게 젖은 볼을 비비며 정답게 속삭였다.
옥련이와 헤여진 순미는 김태식이 염소무리를 끌고 올라갔다는 골짜기 안쪽으로 향했다.
그는 순미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그동안의 정형을 빠짐없이 이야기하였다. 수첩에 적어넣은 수자를 불러주기도 하고 뜬금으로 외우기도 하였다.
순미는 그러는 태식을 세세히 뜯어보았다. 그의 몸가짐이며 인상이며… 하지만 그는 제 흥에 겨워 사업이야기에만 열을 올렸다.
《반장동무, 난 말이요 현재까지 계획대로 일을 내미느라 했지만 아직 부족한게 많소. 다음달부터는 꼭 백프로 새끼생산에 진입시키겠소.》
태식은 그 리유를 지금까지의 날씨변동과 기후조건을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설명을 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온도의 상승과 저하, 바람부는 속도가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타산한것이였다. 그의 과학적인 판단과 타산에 순미도 공감을 표시했다.
《좋아요. 작업반 초급일군모임에서 토의하자요.》
라순미는 지금 당장은 그에게 편지사연을 이야기할수 없음을 깨달았다. 보나마나 펄쩍 뛸것이 뻔했던것이다.
그는 빨리 내려가서 신종선을 올려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남자들끼리야 쉽게 속을 터놓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