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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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당전원회의에 참가하라는 통지를 받고 하루 먼저 배등령을 넘어온 권봉석은 군경영위원회에 들려 일을 본 후 저녁무렵 려관으로 갔다.

려관에서는 오늘 오후에 도착한 박성복이 기다리고있었다.

두사람은 호실창문을 활 열어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권봉석은 경영위원회에서 배정받게 된 자재명세와 다른 농장들의 실태에 대해 말하였다. 박성복은 어제 권봉석이 떠난 뒤 올라가본 염소작업반의 실태에 대해 알려주었다. 염소반에서는 그사이 염소우리호동들과 젖가공실, 콤퓨터조종실, 합숙 등 여러 건물들의 지붕공사를 끝내고 내부공사에 들어갔다.

콤퓨터조종실내부공사는 안홍진이 책임지고 호동내부는 신종선이 책임지고있었다. 반장은 처녀들과 함께 새로 지은 합숙방들에 장판을 하고 도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반원들의 어머니들까지 올라와 법석이며 그 일을 도와나섰다. 박성복은 리당과 관리위원회에서 이미 마련해놓았던 장판지, 도배지, 여러가지 색갈의 타일들을 관리위원회일군들이 직접 가지고올라가 순미네들의 일을 돕도록 했다.

《어제 하루동안에 호실들의 장판과 도배를 다 끝냈습니다. 인차 집들이를 해야 할가봅니다.》

《집들이요?… 하긴 집들이지요.》

권봉석은 의미있게 말했다. 염소작업반건설이 그처럼 빠른 속도로 진척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였다.

그들이 내세운 리상과 목표는 너무나 높고 아름찬것이였다. 더구나 권봉석의 눈으로 보기에는 거의 공상에 가까운것이였다. 그 높이에 도달하자면 실로 헤아리기 어려운 땀과 노력과 시간을 바쳐야 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주저앉거나 락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방목지건설이 한계단 한계단 추진되여 어느덧 현대화된 작업반, 염소방목기지가 완공을 눈앞에 둔것이다. 물론 순미가 품고있는 리상에 비하면 이제 첫걸음을 뗀데 불과하지만 그처럼 꿈만 같고 환상적으로만 여겨지던 그 모든것이 가까운 앞날에 현실로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권봉석을 놀라게 했다.

리상과 실천!

리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한갖 리상으로만 남아있는것들이 오죽 많은가.

그러나 풍덕청년들의 꿈과 리상은 현실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고있었다.

이 모든것을 과연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위원장동지, 류옥련이 말입니다. 방목지에 다시 올라온 이후에 우량종염소들의 영양상태를 두배로 올리겠다면서 보통열성이 아니랍니다. 영양물질이 많은 풀들을 찾아 온 방목지를 헤매기도 하고 밤이면 밤대로 염소우리에서 살다싶이 한답니다.》

《그런 처녀를 하마트면 돼지종축반에 보낼번 했지. 정보배로친이 끈덕지게 사정하는걸 내가 잘라버렸으니 망정이지 순미한테 코를 떼울번 했소.》

권봉석은 껄껄 웃었다.

그는 세멘트공장과 벽돌공장에 다녀온 순미가 몇톤의 세멘트보다 더 큰것을 안고왔다고, 지금껏 자력갱생이라는 말을 많이 외우면서도 아직 그 참뜻을 모르고 살았다고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며칠전에는 김희문이 기와로에서 시험적으로 구워낸 빨간 블로크까지 들고 권봉석의 앞에 나타났었다.

《위원장동지, 우리가 만든 블로크가 얼마나 굳은지 한번 시험해보시오.》

《좋다, 어디 한번 보자.》

권봉석은 블로크장들을 관리위원회앞마당에 힘껏 메쳐보게 했다. 끄떡이 없었다.

《이 블로크가 신통히 널 닮았구나.》

순미는 호호 웃었다.

(순미 그 애는 정말 우리 풍덕땅의 진짜주인이고 보배덩이야. 고향을 사랑할줄 알고 그 고향의 사랑을 받는 처녀지. )

깊은 생각에 잠겼던 권봉석은 가방안에서 토론원고를 꺼냈다.

《비서동무, 내 아무래도 전원회의에서 해야 할 토론준비를 다시 해야 할가봅니다.》

《그래요?…》

박성복은 그의 내심을 읽은듯 찬성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군당전원회의는 다음날에 열렸다. 풀먹는 집짐승을 많이 기를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는 회의에서는 풍덕축산전문농장이 크게 소개되였다. 특히 농장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일신시킬 목표를 내세우고 청년염소작업반을 본보기작업반으로 꾸리고있는것은 모든 농장들이 따라배워야 할 큰 성과라고 지적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것은 풍덕농장이 단순한 꾸리기에 머무는것이 아니라 청년염소반이 차지한 염소방목등판을 혁신적인 안목으로 새롭고 특색있는 하나의 현대적인 염소방목기지로 전변시키고있다는것입니다.》

권봉석은 그러한 성과의 비결이 다름아닌 순미네 청년염소반원들의 과감한 투쟁의 결과이라고 생각했다. 통이 큰 작전, 남들보다 높이 올라서려는 숭고한 리상, 다른 곳의 성과를 답습할것이 아니라 자기 고향의 특성에 맞게 받아들이려는 시대적인 감각… 그들에 비하면 난 아직 멀었어. 과연 무엇이 부족했던가. 단순히 세대가 다른데서 오는 차이점일가. …

보고가 끝나고 토론이 시작되자 권봉석은 제일먼저 연단으로 나갔다.

그는 풍덕농장의 성과는 전적으로 청년염소반원들의 투쟁에 의한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여 투쟁의 불이 지펴졌고 현재 그 불길이 어떻게 활활 타번지고있는가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한편으로는 자기의 마음속 자책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다른 모든 사업과 마찬가지로 풀먹는 집짐승기르기를 힘있게 내미는 문제는 우리 일군들의 사고관점, 지칠줄 모르는 정열과 투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양, 염소떼가 골짜기마다 가득차흐르는 풍요하고 아름다운 땅, 행복의 무릉도원은 저절로 꾸려지지 않습니다. 특히 자기가 태여난 고향을 사랑하고 그 땅을 세상 보란듯이 일떠세우기 위해 투쟁하는 새 세대 청년들과 리상과 포부를 함께 하고 발을 맞추는것이야말로 선군시대 우리 일군들의 자세이고 본분이라고 확신합니다.》

회의참가자들은 그의 토론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회의가 끝난 후 권봉석과 박성복은 군내 책임일군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청년염소작업반이 발기한 풍덕등판의 염소방목기지 현대화문제를 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렸다. 나이지숙한 군당책임비서는 풍덕농장을 군적으로 힘있게 밀어줄데 대하여 강조했다.

《풀먹는 집짐승을 기르라는것은 수령님의 유훈이고 우리 장군님의 변함없는 의지입니다.

우리 인민들을 세상에 부럼없이 내세우려는 장군님의 그 뜻이 하도 높아 〈하늘이 준 선물〉이라는 일화까지 생겨난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일화를 되새겨보는 권봉석의 가슴은 뜨거워올랐다.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나라에 1년에 젖 한톤을 짤수 있는 우량종염소가 있다는것을 아시고 암것 백마리와 수것 세마리를 구입할 과업을 일군들에게 주시였었다. 마침내 염소들을 실은 대형화물수송기가 그 나라 비행장에서 리륙하였다. 그런데 떠날 때 103마리였던 염소가 우리 나라에 와보니 106마리가 되였다고 한다. 오는 도중 3마리의 새끼를 낳았던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에 감동되여 하늘이 3마리의 염소를 선물로 보내왔다고 전설처럼 이야기했었다.

《우리 인민들에 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뜻이 얼마나 높으면 그런 일화까지 생겼겠습니까. 하지만 우린 장군님의 높은 뜻을 잘 받들지 못하고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이 아직 풀먹는 집짐승덕을 크게 보지 못하고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놓고볼 때 풍덕청년염소반원들의 투쟁은 얼마나 많은것을 우리에게 시사해주고있습니까. 아까 회의과정에도 거듭 이야기했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최근에도 풀먹는 집짐승기르기를 잘할데 대하여 여러차례 강조하셨고 우리 삼포군같은 산골군들은 조건이 아주 유리하다고 가르쳐주시였습니다. 풍덕청년염소반원들의 투쟁을 강건너 불보듯만 하지 말고 잘 밀어주어야 하겠습니다.》

젊고 날파람있어보이는 군인민위원장이 풍덕청년반을 적극 밀어줄데 대한 군당위원회의 결정이 옳다고 하면서 실무적인 문제토의에 넘어가자고 했다.

《세멘트가 없이도 풍덕땅에 흔한 자재들을 가지고 견고하고 맵시있는 건물들을 능히 건설할수 있다는 청년반원들의 주장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가 높고 방대한만큼 필요한 강재와 세멘트를 보장해주자는것입니다. 군안의 자재형편을 따져보고 현장까지 실어다주는 조직사업을 군경영위원회와 합동해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군인민위원장은 풍덕청년염소반에서 콤퓨터조종실, 젖가공실을 꾸리고 염소방목까지 콤퓨터화하겠다고 하는만큼 귀중한 최신식설비들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인민위원장동무의 결심은 어떻습니까?》

책임비서의 물음이였다.

《제 생각은 우리 군내 공장, 기업소들에 호소하자는겁니다. 풍덕농장이 대규모염소생산기지로 전변되면 그 덕을 제일먼저 볼건 우리 군내 인민들이 아닙니까.》

《좋습니다. 그 문제는 좀더 토론을 해봅시다.

…명백한것은 우리 일군들이 구실을 잘해야 새 세대 청년들이 대를 이어 당에 충실하고 강성국가건설에서 선봉대, 돌격대의 영예를 빛내일수 있다는것입니다.

우리모두 이것을 명심합시다.》

권봉석은 크나큰 충격으로 하여 가슴이 울렁거렸다. 책임비서는 순미와 같은 핵심청년들과의 사업에 힘을 넣어야 청년염소반건설이 더잘 될수 있다는 고무의 말도 하였다. 권봉석, 박성복은 회의가 끝나는 길로 풍덕을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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