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3 장

7

 

그날 밤 풍덕등판에 세찬 비바람이 들이닥쳤다. 이해에 들어와서 처음 보는 폭풍과 폭우였다. 강한 비바람이 광란적으로 덕을 휩쓸었다. 한창 독을 쓰며 자라던 방목지의 풀들이 거대한 칼날에 잘리운듯 순식간에 쓰러졌고 여기저기서 생나무 부러지는 소리들이 쉴새없이 울려왔다. 순간에 개울이 되고 폭포가 되여 흐르는 걸죽한 흙탕물에 밀려 뿌리채 뽑히운 나무들과 지어는 돌들까지 와당탕 굴러내렸다. 멀고 가까운 산발들과 골짜기의 무성한 나무숲이 마구 뒤채기며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비명을 내질렀다.

청년염소작업반의 전투원들은 새로 건설한 건물들을 지켜내기 위해 긴장한 전투를 벌리고있었다. 그들은 한쪽에서는 벽체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비닐박막을 씌우고 그우에 판자, 각자를 지질러놓느라 법석이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통나무들로 버팀목을 세우거나 물도랑을 치는 등 가능한껏 피해를 적게 하기 위해 뛰여다녔다.

순미는 신종선에게 무질서하게 급한 대목마다 몰려다니지 말고 몇명씩 조를 뭇고 일정한 구역들을 분담하여 지키도록 지시했다. 염소우리호동들, 합숙건물, 콤퓨터조종실, 젖가공실 등 건물구역들과 야외천막, 식당들에 인원들이 재빨리 배치되였다.

《사람들이 상하지 않게 매사에 주의해야겠어요.》

《알겠소.》

신종선이 어둠속에서 전지불을 비치며 각 초소마다 주의를 주며 꽥 소리치기도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순미도 호동구역들을 바람개비처럼 돌면서 건물들의 벽체를 살펴보고 그우에 씌운 비닐박막들의 안전상태를 확인했다. 건물쪽으로 흐르는 물곬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한 전투가 제일 치렬했다. 비바람은 점점 더 세차졌다. 풍덕이라는 이름값이라도 하려는듯 강한 돌풍이 일시에 방목지를 덮치고 와당탕 들부시기 시작했다.

순미는 눈앞이 아뜩해졌다. 이러다 지금껏 아글타글 일떠세운 모든것들이 다 풍지박산이 되는게 아닐가.

(아니, 이렇게 주저앉을수는 없어. 어떻게 하나 위기를 극복해야 해. )

순미는 저도 모르게 두손을 가슴우에 얹었다. 안주머니에 깊숙이 간직한 아버지의 수첩이 느껴졌다. 이발을 사려물었다. 이밤의 횡포한 자연의 광란을 맞받아나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자각과 결심이 솟구쳐올랐다.

(아버지! 이 딸을 믿어주세요. )

순미의 심정을 알기라도 한듯 비와 바람과 어둠과 사람이 한데 뒤엉켜 돌아가는 속에 별안간 횡포한 자연의 굉음을 누르며 기세찬 노래소리가 울렸다. 각기 맡은 구역마다에서 배수로를 파며 전투원들이 부르는 노래소리였다.

 

          무릉도원 꽃펴가니 흥이로다 아리랑

          제힘으로 세워가니 멋이로다 아리랑

          장군님의 손길따라 주체강국 나래친다

          아리아리 아리랑 스리스리 스리랑

          강성부흥 아리랑

          …

알수 없는 힘이 용솟음쳐올랐다.

(동무들, 고마워요. 난 동무들의 그 모습에서 힘과 용기를 얻고있어요. )

눈굽이 뜨거워졌다. 힘찬 그 노래소리에 자기의 목소리를 합치면서 능금골 방목지의 염소들을 생각했다. 걱정이 컸으나 김태식과 방목공들을 믿었다.

며칠전 콤퓨터조종실설계때문에 도에 올라간 안홍진의 모습도 불쑥 떠오른다.

홍진동무, 동문 지금 무엇을 하고있나요? 자연의 광풍을 맞받아나가는 우리 동무들의 장한 모습을 좀 보세요. 그들처럼 홍진동무도 자기가 맡은 과업을 꼭 훌륭히 수행하고 돌아오기를 믿고싶어요. …

누군가 하늘에 대고 《오, 너 광란하는 바람아, 불테면 불어라.》 하고 시읊듯 웨치는 소리가 비바람의 굉음을 누르며 터져올랐다. 사방에서 와하와하 웃음사태가 일었다. 순미도 소리내여 웃으면서 곁에서 삽질을 하는 청년에게 누군가고 물었다.

《허허참… 그야 리경칠이지 누구겠소.》

청년은 통쾌하게 웃고나서 웨쳤다.

《여 경칠이, 그 시가 참 멋있어. 합격이야, 합격. …》

순미는 가슴이 후련했다. 그 어떤 횡포한 바람이 닥친대도 두렵지 않을것 같았다. 투지와 랑만이 넘치는 청춘들의 힘이란 얼마나 강한것인가. 고향을 빛내일 열망을 안고 두려움없이 난관을 맞받아 돌진하는 아름답고 억센 청춘들!

순미의 눈앞에는 하나의 거대한 염소생산기지로 전변된 풍덕등판이 보였고 각종 젖가공품을 받아안으며 기뻐할 고향사람들의 행복넘친 모습들이 보였다.

잠시후 어떻게 피웠는지 쏟아지는 폭우속에서도 합숙건물앞 공지에 삼단같은 우등불이 피여올랐다.

라순미는 비속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교대별로 몸을 덥히게 하려고 우등불을 더 크게 피우도록 하고는 호동건물쪽으로 달려갔다.

이때 별안간 우지끈 탁 하는 소음과 함께 《벽체가 무너진다.》 하는 웨침이 들려왔다. 온몸에 얼음물을 뒤쓰는듯 한 전률을 느꼈다. 사방에서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리경칠이 한 청년의 등에 업혀 발버둥치며 벽체에 깔린 다른 동무들을 빨리 구원하라고 소리쳤다.

《빨리 불무지곁으로 업고 가요.》

순미는 경칠을 업은 청년에게 소리치고 왁짝 떠들며 블로크장을 걷어내는 청년들한테로 급히 달려갔다. 좀전에 배수로를 판 세개 호동의 벽체가 형체도 없이 무너졌다. 경칠이네들이 있던 호동벽체에 세명의 청년들이 깔린것이다. 리경칠은 다행히 한쪽옆에 서있다가 다리에 타박을 받았다. 나머지 두명의 청년은 신종선이며 여러 청년들의 부축임을 받으며 우등불곁으로 옮겨갔다. 우등불곁에 이르자 두명의 청년이 리경칠의 다리를 주물러주는데 그는 금시 죽어가는 소리를 친다.

《이 친군 역시 아이라니까.》

그 소리에 죽는다고 소리치던 리경칠이 《흥, 자긴 어른이 돼서 좋겠어요.》 하고 제 할소릴 다하는 바람에 사람들을 놀래웠다. 다행히 두 청년은 어깨부위에만 타박상을 입었을뿐 다른 사고는 없었다. 그러나 전투장의 분위기는 한결 긴장해졌다.

순미는 무너질 위험성이 있는 벽체들의 상태를 잘 살피면서 어떻게 하나 건물들을 지켜내자는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녀동무들은 기술원동무와 함께 부상입은 동무들을 돌보면서 천막과 식당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해야겠어요. 자, 각기 자기 위치로!》

그때 수많은 전지불들이 이쪽으로 비쳐왔다. 맨앞에서 《가만, 흩어지지 말고 모이시오.》 하는 권봉석의 웨침이 날아왔다. 관리위원회와 리당일군들, 리병원 의사들이였다.

권봉석은 비옷을 활활 벗어 순미의 어깨에 걸쳐주고나서 불무지옆의 청년들이 많이 다쳤는가고 물었다.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순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권봉석은 방목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철수시키라고 지시했다.

《철수라니요?》

순미는 깜짝 놀라 관리위원장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비바람이 더 세차질것이 예견되오. 여기서 어물거리다간 무슨 사고가 또 날지 몰라. 빨리 철수시켜라.》

그는 자기의 결심을 고집하며 손을 획 내저었다.

순미는 비속에 모여서있는 반원들을 둘러보았다. 불빛에 번쩍이는 눈빛들이 무엇인가를 애타게 갈망하고있었다.

(아니, 우린 절대로 물러설수 없어. 이제 여기를 떠나면 영원히 다시 일어설수 없을거야. 그러면 우리가 결의하고 건설해놓은 모든 창조물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

순미는 아버지의 수첩우에 다시 손을 얹었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웨쳤다.

《동무들, 우리 기어이 건설현장을 지켜내자요.》

그 웨침을 기다리기라도 한듯 청년들이 우르르 순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동무들, 지금 능금골에서는 방목소대원들이 염소들을 폭우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매우 힘겨운 전투를 벌리고 먹이소대에서는 후보염소들과 석회로를 지키기 위한 전투를 벌리면서 우리를 지켜보고있습니다. 건설소대는 지금까지 피땀흘려 일떠세운 건물들을 끝까지 안전하게 지켜야 하겠습니다. 이쯤한 난관앞에 주저앉을수는 없습니다.》

《옳소, 지켜내기요.》

누군가 웨쳤다.

《끝까지 지킵시다!》

《지키자!》

순미는 얼굴에 흘러내리는 비물을 손으로 훔쳐내며 지시를 주었다.

《건설소대 전투원들은 각기 자기 위치롯!》

《알았습니다.》

청년들은 자기들이 지켜섰던 호동구역과 건물들쪽으로 달려갔다. 그찰나 젖가공실벽체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옆건물의 벽체를 들이받았다. 마치 그것이 신호이기라도 한듯 여기저기서 건물벽들이 주저앉거나 무너지는 소리가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허볐다.

순미는 그만 리성을 잃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돌아서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전혀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손에 든 전지불빛은 희미해지고 후려치는 비바람에 온몸이 휘청거렸다. 무작정 내닫는중에 돌부리에 걸채여 푹 꼬꾸라졌다. 도랑처럼 흘러내리는 물이 얼굴에 들씌워졌다.

순미는 자기가 물우에 둥둥 떠실려 어디론가 정처없이 흘러가는것만 같았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누워있고만싶었다. 채찍처럼 후려치는 비방울에 뺨이 얼얼해졌다.

어느 벽체에서 블로크장이 또 떨어져내리는지 철벅 하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그때마다 자기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듯 한 고통에 숨이 꺽 막혔다.

(아, 이대로 주저앉아야 한단 말인가. …)

앙다문 이새로 신음소리가 절로 새여나왔다. 어디선가 다정하면서도 엄한 목소리가 우뢰소리를 짓누르며 울려왔다.

《순미야, 어서 일어나거라!》

누구의 목소리일가. 무척 귀에 익고 듣고싶었던 목소리…

아, 아버지, 잊지 못할 나의 아버지!

그랬다. 그것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언제나 마음속에 그려보며 늘 심중의 대화를 나누던 정다운 목소리였다.

《순미야, 그렇게 쓰러지면 안된다. 일어나거라.》

아버지의 엄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래, 아버지의 말이 옳아. 쓰러지면 안돼. 일어나야 해. 내가 쓰러지면 우리 동무들은… 사랑하는 나의 고향땅은…

몸을 일으키려고 모지름을 쓰던 순미는 균형을 잃고 다시 쓰러졌다.

쏟아지는 폭우에 온몸을 내맡기고 체념한듯 누워있는 그의 눈앞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것은 불빛이였다. 최전연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별처럼 흐르던 불빛이였다. 깊은 밤 초소의 병사들을 찾아 높고 험한 산발을 한치두치 넘으시던 장군님야전차의 불빛이였다.

아, 사랑의 불빛. 나의 희망도 행복도 미래도 오로지 거기에만 얹고있는 내 삶의 등대…

순미는 끙 하고 힘을 주며 일어섰다. 눈앞에서 별찌가 춤을 추고 다리가 휘청거렸으나 이를 사려물고 앞을 노려보았다.

바람아, 불테면 불어라. 폭우야, 쏟아질테면 쏟아져라. 난 쓰러지지 않을테다.

우린 무릎꿇지 않을테다.

저벅저벅 물을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순미의 팔을 억세게 틀어잡았다.

《반장, 정신차리라구. 그쪽은 위험해.》

권봉석이였다.

《순미동무, 지금은 위험하니 일단 철수했다가 날이 밝은 다음에 대책을 세우기요.》

리당비서 박성복이였다.

순미는 애타는 눈길로 그 두 일군을 쳐다보았다. 비물인지, 눈물인지 알수 없는것이 그의 꺼칠해진 얼굴로 줄줄 흘러내렸다.

《용서하십시오. 위원장동지, 비서동지, 우린… 달리할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고향땅을 위해서 우린 순간도 물러설수 없단 말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우리들을 막지 말아주십시오.》

어느새 두 일군의 뒤를 따라온 녀의사와 정윤심이까지도 그의 호소에 감동됐는지 눈물을 머금었다.

순미는 반원들이 있는 호동건물구역으로 뛰여갔다.

권봉석은 입을 꾹 다물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한방망이 얻어맞은듯 가슴이 얼얼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너무도 엄혹했다.

벽체를 쌓아올렸던 숱한 건물들이 무너지고 부상자들까지 나지 않았는가.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밤과 같은 세찬 비바람이 년중 그칠새없이 들이닥치겠는데 여기 넓은 덕에 어떻게 현대적인 염소생산기지를 일떠세운다는것인가.

동요가 엄습해왔다.

박성복이 곁에 다가왔다. 그는 의미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관리위원회와 리당일군들에게 청년들과 힘을 합쳐 방목덕을 구원하자고 소리쳤다.

저마다 전지불을 번쩍이며 달려갔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덕으로 올라왔다. 농장청년들, 염소반원들의 부모형제들, 늙은이, 젊은이 할것없이 모두가 방목덕이 걱정되여 올라온것이였다.

그들은 들고온 비닐박막들을 건물들의 벽체들에 덮었고 무너진 벽체의 블로크장들을 모아놓기도 했으며 한몸이 그대로 버팀목이 되여 벽체를 지지하기도 했다.

비바람은 새벽녘에야 좀 잦아들었다. 덕에 올라왔던 사람들도 더러는 내려가고 여전히 타오르는 우등불둘레엔 건설조청년들과 농장청년들이 빙 둘러서서 옷을 말리우며 법석 떠들어댔다.

《동무들, 내 옛말 하나 들려줄가.》

박성복이 청년들을 둘러보며 말꼭지를 뗐다.

《다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바로 여기에 왜놈들의 군마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동무네 할아버지세대들은 왜놈들의 채찍아래 쓰러지면서 말방목공으로 고역을 치르었소. 여기서 살찌운 말들은 물론 숱한 청장년들과 녀성들까지 전쟁터로 끌려갔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고역장에서 무주고혼이 되였겠소. 관리위원장동지의 아버님도 그래, 신종선동무네 할아버지도 그래 모두가 여기 군마장에서 고역을 당하던 끝에 징병에 끌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소.

해방이 돼서야 풍덕땅사람들은 비로소 마소와 같은 운명에서 벗어나 사람대접을 받으며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되였소. 토지개혁의 혜택을 받았고 전쟁때는 그 행복한 생활을 지키자고 총을 잡고 전선으로 달려나갔소.

전후에는 협동조합을 뭇고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사회주의건설에 한몸 바쳤지.

동무네 아버지들세대는 70년대부터 오늘까지 축산전문농장의 주인으로 이 땅을 지키고 가꾸어왔소. 헌데 이제는 동무들이 고향땅의 당당한 주인으로 자라났소. 우리는 마땅히 자기 세대의 몫을 자기 힘으로 해제끼는 투쟁정신을 지녀야 하오.

오늘과 같은 자연의 광란은 앞으로도 계속 될것이요. 하지만 투쟁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한마음한뜻이 되여 뚫고 나갈 때 극복 못할 난관이란 없을것입니다.》

불무지둘레에 서있던 청년들은 와― 하고 호응해나섰다. 순미는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강렬한 지향과 맹세의 불길이 가슴에서 타올랐다.

그는 용암마냥 솟구쳐오르는 심장의 메아리, 그토록 사랑하고 즐겨부르는 고향의 노래를 듣고있었다.

 

          뻐꾹새가 노래하는 곳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로동으로 행복을 열고

          로동으로 꽃이 피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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