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3 장
1
라순미는 아침 일찍 덕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먹이소대원들이 주야간전투를 벌려 닦은 도로가 덕중심까지 곧추 뻗어있었다.
그는 걸으면서도 덕을 중심으로 펼쳐진 구릉진 방목지들과 저 멀리 산골짜기들 그리고 덕아래 펼쳐진 마을과 염소작업반전경을 한참이나 바라보군 하였다. 볼수록 더없이 귀중하게만 생각되는 고향땅이였다.
정답고 소중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땅! 여기보다 더 살기 좋고 아름다운 땅이 또 어디 있으랴!
순미는 한없이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방목등판의 전경을 다시한번 둘러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키를 솟구는 염소우리호동들과 젖가공실, 콤퓨터조종실들… 주변경치에 어울리게 둥글기도 하고 모나기도 한 방목지구획들, 그 구획들마다에 영양가높은 먹이풀을 심고 한무리의 염소떼가 7~10일주기로 자기의 순환구간을 따라 자동적으로 옮겨가게 될것이다. 다른 구획으로 넘어갈 때마다 방목공들은 조립식울타리를 쳐놓고 콤퓨터앞에 앉아 자기의 염소무리를 마음먹은대로 조종하며 방목하게 될것이다. 덕아래쪽 수십정보 방목지가 정리되여가고있는 모습은 더욱 볼만 했다. 구획사이에 시원하게 뽑은 소도로들이 선명하게 안겨온다.
먹이소대에서는 가을에 방목지에 뿌릴 질좋은 먹이풀씨를 지금부터 장만하고있다. 지금 한창 진행중인 방목덕건설만 끝나면 후보염소기지로 정한 현재 염소우리호동들과 생산건물들을 개조하고 콤퓨터화 하는 일은 문제로도 되지 않을것이다.
순미는 온 풍덕등판을 종합적인 염소방목기지로 전변시키는 아름차고 보람찬 일을 다름아닌 청년염소반원들자체의 힘으로 해나가고있는것이 긍지스러웠다. 노래라도 한곡 부르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는 지금 건설속도가 빨라지면서 강도높은 석회를 많이 보장하자면 현재 희문아바이가 맡아보는 석회로 하나만으로 부족하다는것을 느끼고 그 문제를 토론하러 내려가는 길이다. 신종선, 안홍진이들도 지난밤에 그 문제를 화제에 올렸었다.
순미가 석회로쪽으로 걸어가는데 로앞의 공지에 쌓아놓은 석회돌무지에서 요란스러운 망치질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석회보장조청년들이 큼직큼직한 돌을 함마로 까고있었다. 뜻밖에 태식의 어머니 최명후가 그속에 끼여있다.
녀인은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손에 든 망치로 그리 크지 않은 돌들을 깨고있었다. 이따금 팔소매로 이마를 문댄다. 땀을 씻는지, 아니면 눈굽을 훔치는지 알수 없다. 저 어머니가 어떻게?…
최명후는 순미를 띄여보자 웬일인지 머리수건을 벗어 털며 얼굴을 문대는것이였다.
《어머니,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어떻게 오긴, 저 알량한 령감때문이지…》
최명후는 둥실한 얼굴에 노여움이 한껏 실렸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최명후는 망치를 탕 내려놓으며 김희문이쪽을 흘끔 건너다본다.
《이보게 반장, 난 저 령감 구박에 요즘 살이 내리는것 같다니까. 글쎄 아들네 작업반일을 돕겠다는건 나도 좋게 생각하네. 하지만 제 몸도 돌봐야 할게 아닌가. 그래서 내 별식을 해이고 우정 걸음을 했는데 본체도 안하지 않나.》
김희문이 헛기침을 했다.
《그래요?》
《벙어리속은 제 에미도 모른다는데 말은 안하고 그저 우락푸락하니 원…》
《어머니가 물어보면 될게 아니예요?》
라순미는 최명후의 성난 인상이 우스워 호호 웃었다.
《실은 물어볼 필요가 없는 일이라우. …》
최명후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 령감은 내가 집에서 맹탕 놀기만 하는가 해서 저러지. 작업반에서는 큰 전투를 하고있는데 로친은 대체 뭘 기여할 작정인가구 몰아대지 않겠나. 그 기상이 얼마나 무섭던지 원. 제가 일이나 좀 한다고 그러는거지 뭐. 그래서 내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가 안 떠올라 며칠 밥을 해서 날라왔더니 왼눈으로두 보지 않는구만. 청년반합숙에서 뭐 자기를 대감모시듯 한다나…》
라순미는 리해가 되였다.
《어머니, 태식동무 아버님이 공연히 트집을 거는구만요. 제가 따끔히 비판을 할테니 걱정말고 어서 내려가세요.》
《아니야, 반장. 내 로력적으로라도 지원을 해야 저 령감 속통이 풀릴것 같다니까.》
최명후는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어쩌면 아바이두 참…)
순미는 깊은 생각을 안은채 김희문의 앞으로 다가섰다.
《반장이 내려왔구만. … 이거 면목이 없네. 자재보장책임자가 구실을 못해서…》
《아바이, 무슨 말씀을…》
김희문은 통나무를 잘라만든 의자를 라순미한테 내놓았다.
《건설현장에 지금 석회가 모자라 공사속도가 지연되고있는데 속수무책으로 가만 앉아있자니 반장앞에 얼굴이 뜨겁다는걸세. 그래 내 지금 속을 앓던중일세. 필경 반장이 그 일때문에 내려왔을건 뻔하구…》
《아바이!》
라순미는 목이 메였다. 얼마나 솔직하고 성실하고 진실한 아바인가. 우리 아버지세대 사람들은 다 이렇게 훌륭한분들이지. 관리위원장동지도 그래, 어머니와 태식동무네 아버지, 어머니들도…
《그런데 아바이, 어머니한테 너무하지 않았어요?》
《저 로친은 그렇게 달구어야 하네.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대답질 한다네.》
김희문은 허허 웃었다.
《우리 청년반이 큰 일판을 벌려놨는데 누구라없이 모두 떨쳐나서야 할게 아닌가. …
이보게 반장, 석회보장은 하루이틀만 참아달라구. 내가 젊은이들을 데리고 로 한개를 더 쌓겠네. 그럼 되지?》
《아바이에게 다 생각이 계시는걸 전 공연히 걱정한것 같아요.》
《지휘관이야 응당 걱정이 많아야지.
여기 일은 걱정말고 공사를 꽝꽝 밀어달라구. …》
《알겠어요.》
순미는 최명후에게 어서 내려가라고 다시 권고하고나서 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후보염소무리를 맡은 방목공들을 만났다. 그들은 방목을 하면서도 방목지의 구획을 나누고 구획과 구획사이의 소도로까지 닦느라 바삐 지내고있었다.
순미는 작업반모임에서 토론한대로 구획범위를 평수를 기준으로 하지 말고 등성이와 야산, 곬바닥의 먹이풀상태, 방목조건을 잘 타산해서 정해야 한다는것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먹이분조원들과 함께 한겻이나 땀을 흘리고서야 점심무렵 덕으로 올라왔다.
축조가 한창인 건물앞의 돌배나무밑에 안홍진이 서있었다.
그는 나무에 기대서서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팔락팔락 귀맛좋은 소리를 내는 나무잎사귀들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무성한 나무가지사이로 흘러내리는 해빛이 그의 몸에 어룽어룽 숲그늘을 지우고있었다.
(무슨 일일가?)
순미는 선뜻 다가설념을 못했다. 그의 사색을 방해할것만 같아서였다.
안홍진은 방금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를 받았다. 석회운반조청년이 전해준 편지를 그냥 주머니에 넣고있다가 작업이 끝나자바람으로 읽었던것이다.
어머니의 체취가 슴배인듯 한 편지의 글줄들이 그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 소학교 교원인 어머니는 아들이 어른이 된 오늘에도 그가 어릴 때처럼 그렇게 다심했다.
《…자나깨나 먼곳에 가있는 네 생각뿐이다. 너를 믿기때문에 기대도 크고 걱정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너는 제대군인이고 대학졸업생인것만큼 현실체험기간 염소방목공으로 일을 해도 전문지식을 배운 사람답게 과학기술적으로 해서 다른 방목공들의 모범이 돼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고있겠지만…
정해진 현실체험기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거다. 그 기간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사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군사복무때처럼 일하고 생활하거라. 그러면 네가 앞으로 그 땅을 떠나온 후에도 사람들은 두고두고 너를 추억할거다. 조국의 찬란한 미래가 더 활짝 열리고있는 오늘과 같은 시기에 군사복무를 하고 대학공부를 한 사람이 다르다고 말이다. 이 어머니는 군사복무까지 한 네가 대바르고 정열적인 인간으로, 높은 과학기술지식으로 그 땅의 사랑을 받는 청년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아버지도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요즘도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목장확장공사를 다그치느라 몹시 바쁘시다.
전화로 너에게서 소식이 오지 않았느냐고 물으시더라.
이제는 네가 그곳에 간지도 몇달이 되지 않았느냐. 아무쪼록 성실하게 일하거라. 그곳 날씨가 다른 지방보다 류별나다는데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거라. 너의 현실체험이 끝나면 맞춤한 처녀를 골라 결혼식을 하자고 아버지와 토론이 있었다. 아직은 바쁜 일이 아니지만 인간에 대한 파악이 한순간에 되는 일이 아니여서 부모들도 마음을 쓰는것이니 그리 알거라. 너의 의향은 어떠한지 회답편지를 하거라.》
편지의 내용을 되새겨보며 안홍진은 어머니와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자기의 마음속 속삭임을 마치 어머니에게 보내는 회답편지처럼 생각하며 사색을 이어나갔다.
순미는 그것을 알리 없었다.
혹시 힘이 들어 그런건 아닐가. 그에게 힘들더라도 저녁마다 반원들에게 과학기술지식강의를 한시간씩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지나친 부탁을 한것이 아닌지.
홍진은 나무잎사이로 올려다보이는 푸른 하늘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마음속 울림을 라순미가 들었더라면 얼마나 놀랐으랴.
그는 그 순간 어머니에게 여기 풍덕땅에 대하여, 그 땅을 끝없이 사랑하는 한 처녀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어머니, 여기 풍덕은 정말 아름다운 산촌입니다. 맑은 공기와 드넓은 언덕들, 푸른 주단처럼 펼쳐진 염소방목기지가 있고 숲이 무성한 골짜기들이 있고… 그렇다고 하여 내가 어렸을적에 아버지가 들려준 동화세계 같은 그런 광경은 볼수 없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처럼 황홀하게 변모될 이 땅의 앞날을 그리며 또 제가 이 땅을 위해 지식과 정열을 다 바치기 바라서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래서 현실체험지를 여기로 정했을 때 선뜻 찬성해주셨는지…
어머니, 여기 풍덕땅은 사람들이 참 좋습니다. 인정이 많으면서도 열정적인 성품을 지닌것이 이곳 사람들입니다. …
저는 한 처녀를 어머니앞에 자랑하고싶습니다. 처녀자랑을 한다고 어머니가 별스럽게 생각하실수도 있는데 어쩐지 자랑하고싶습니다.
그는 제가 현실체험을 하고있는 풍덕청년염소반 반장인 라순미동뭅니다. 지금 염소작업반은 풍덕땅의 본보기작업반으로 꾸리는 건설전투를 벌리고있는데 그 발기자가 다름아닌 그 처녀입니다.
전투목표는 방대하고 아름찹니다. 하지만 그 동문 드높은 신심과 투지에 넘쳐있습니다. 그 동무의 열정은 고향에 대한 남다른 사랑에 뿌리를 두고있습니다. 그렇게 크게 결심하고 대담하게 달라붙는다는것은 누구나 쉽게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웬만한 남자들도 엄두를 내기 힘듭니다. 바로 그래서 저는 감동이 큽니다.
염소작업반을 전국의 모범단위들보다 더 훌륭하게 꾸리고 모든 작업반들이 그 모범을 따르게 하고 집들과 마을들을 알뜰하게 꾸려 자기 고향을 온 세상에 자랑하자는것이 그 처녀의 리상입니다.
그 고상하고 숭고한 리상은 그 처녀의 끓어오르는 심장의 분출이고 그것을 떠나서는 살수 없는 그의 생명과도 같은 리상으로서 만사람을 공감시키고 불러일으키고있습니다. 정말 돋보이는 처녀입니다.
어머니, 언젠가 저는 달밤에 마을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그 동무와 함께 염소작업반으로 올라온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는 저에게 어찌된 일인지 제가 풍덕땅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풍덕땅청년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잘 부르고 여기와서 농장알깨우기실도 개조했고 또 염소작업반현대화설계안을 내놓은것을 보아도 그렇게 느껴진다는것입니다. 이 땅과 잘 어울린다는 그 처녀의 말이 왜 그런지 싫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만큼 내가 진정으로 이 땅에 발을 든든히 붙였는가를 돌이켜보게 되였습니다.
처녀가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싶었습니다. 어머니도 아시겠지만 제가 이 풍덕땅에 대하여 잘 알고 고향처럼 사랑하게 된것은 다 어려서부터 아버지한테서 받아안은 이 땅에 대한 소중한 감정이 간직되였기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는 마치 성실한 농사군이 터전에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심정으로 저의 가슴에 풍덕땅에 대한 애정의 씨앗을 심어주고 아름답게 가꾸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심어주고 가꾸어준 푸르고 무성한 그 귀중한것이 가슴에 꽉 차있었기에 저는 군사복무의 나날 한치 땅의 소중함을 더 깊이 알게 되였고 대학을 졸업하고 여기로 달려온것이 아니겠습니까.
처녀는 나의 그런 심중을 너무도 빨리 들여다보았고 귀중한 평가를 주었습니다. 오직 자기 고향에 대한 사랑이 체질화되고 그것이 항상 맑은 샘처럼 가슴에 넘쳐나는 인간만이 그렇게 감수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의 말도 그렇게 할수 있다고 봅니다.
어머니, 저는 여기서 생활하는 나날 언제나 이 땅과 호흡을 함께 하며 진정을 바치는 시대의 참된 청년, 이 땅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대지에 한줄기의 빛이라도 더 보태주는 성실한 인간으로 살겠습니다.》
점심식사시간을 알리는 랑랑한 나팔소리가 울려서야 안홍진은 야외식당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순미는 저도 모르게 그가 서있던 돌배나무밑으로 다가갔다. 안홍진이 그렇게 했듯이 팔락이는 나무잎사이로 올려다보이는 파란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하면 청년의 심중에서 울린 마음속 말을 다 알것만 같았다.
하루작업을 끝내고 식사를 한 반원들이 전경도앞에 모여들었다.
오늘 저녁부터 안홍진이 콤퓨터조종실운영과 젖가공실운영 등 앞으로 새로 일떠설 현대화된 작업반을 반원들자체의 힘으로 운영해나갈수 있는 과학기술강의를 한시간씩 하기로 계획을 한것이였다.
촉수높은 전등불아래 어느 짬에 그렸는지 콤퓨터조종체계에 대해 알기 쉽게 해설한 걸그림이 걸려있었다. 지시봉을 든 안홍진이 앞에 나섰다.
그는 조리있고 침착하게 이야기를 해나갔다. 오묘한 학문의 세계를 알기 쉽게, 리해하기 편리하게 펼쳐보이는 그의 강의를 들으며 요긴한 대목들을 쓰기도 하는 반원들의 눈빛은 놀라움과 황홀함으로 빛나고있었다. 안홍진은 주로 콤퓨터조종실에 대한 설명을 많이 했다.
《…앞으로는 일정하게 구획을 나눈 순환식방목지를 돌면서 염소방목을 하게 될것입니다. 모든 방목공들은 자기가 맡은 염소무리들을 콤퓨터화면으로 관찰하면서 송상카메라에서 보내오는 수감신호에 따라 염소들을 방목하게 됩니다. 물론 야간이나 날씨가 불리한 경우 내부에서 사양관리를 할 때 먹이를 주고 물을 주고 청소를 하는 장치를 콤퓨터본체에 고정시키는 방법으로도 할수 있지만 그런 방법은 프로그람을 짜서 콤퓨터에 기억시키고 조종하는 방법에 비해 원가가 많이 듭니다. 때문에 우리는 건설을 하고 염소방목을 하는 경우에도 철저히 원가를 적게 들이고 리익을 많이 얻는 원칙에서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각자가 자기의 실력을 부단히 결정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반원들은 그의 강의에 심취되여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쳐댔다.
반원들이 야간작업을 하기 위해 모두 흩어져가자 순미는 홍진이와 함께 앞으로 해나갈 과학기술학습요강을 놓고 토론을 했다. 월별, 주별계획이 빈틈없이 짜있었다. 그 내용의 방대함과 깊이에 순미는 내심 놀랐다. 홍진의 높은 실력에 탄복하게 되였다. 이 모든것을 생각하고 설계하느라 얼마나 많은 사색과 탐구를 거듭했을가?…
《고마워요, 홍진동무. 힘든속에서도 반원들을 위해 그렇게 많은 강의안을 준비하려니 얼마나 남모르게 품을 많이 들였겠나요.》
《반장동무두 참, 그거야 내가 맡은 당적분공이 아니요.》
그의 목소리는 유쾌하였다.
《저 역시 뒤떨어지지 않게 잘 이끌어주기를 바래요.》
안홍진은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홍진동무, 우리도 빨리 작업장으로 가자요.》
순미는 재촉했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울렸다. 뜻밖에도 리경심이였다. 순미는 홍진에게 먼저 가보라고 이르고는 그를 향해 달려갔다.
《경심아, 어떻게 된 일이야, 날이 어두웠는데…》
《네가 막 보구싶어서…》
《뭐?》
경심은 명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순미를 빤히 쳐다보며 장난궂은 표정을 지었다.
《너 요새 더 아름다와지는구나. 막 눈이 부시다얘. 책에서 보니 처녀가 제일 아름다운 때는 사랑에 빠졌을 때라나…》
《네 말이 옳아. 난 지금처럼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불타오른적은 없었어.》
《요 깜찍한것, 딴전 피우지 말아.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그게 아니라 저 현실체험나온 총각을 두고 하는 소리야.》
《뭐?… 넌 참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순미는 경심의 잔등을 마구 두드려댔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면서도 얼굴이 달아오르는것만은 어쩔수 없었다.
《얘, 롱담은 그만두고 이 밤중에 나타난 리유가 뭔지나 말하렴. 혹시 박승완동무가 미덥지 않아 네가 직접 정찰병이 된건 아니겠지?》
《아니, 네가 옳게 봤어. 사실은 미덥지 않아서라기보다 정찰자료가 너무 놀라와서 달려온거야. 방목지도 멋있게 정리되여간다지, 덕 한복판에 건설하는 숱한 건물들의 벽체가 쑥쑥 오른다지. 그런데 이젠 최신과학기술학습까지 진행하고있으니 내가 놀라지 않을수 있니? 막 시샘이 난다니까.》
두 처녀는 손을 맞잡고 천진한 소녀들처럼 깔깔 웃었다.
《순미야, 난 승완동무가 하는 말들이 너무 놀랍고 믿어지지 않아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싶어 왔어. 올라오면서 보니 도로두 희한하게 내고 조립식울타리를 두를수 있게 말뚝들을 다 박아놓았더구나. 정말 굉장하더라. 어쩌면 그렇게 번쩍번쩍하니?》
경심의 말은 진심이였다. 그는 박승완의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한달음으로 달려온것이였다.
순미는 경심이와 함께 한창 벽체가 올라가는 건물들을 돌아보며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그러느라니 밤이 퍽 깊었다.
순미는 경심이가 한사코 만류했으나 마을이 보이는 둔덕까지 바래주었다.
헤여지기에 앞서 경심은 순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순미야, 내 보기엔 네 일욕심이 지나친것 같아. 하루아침에 일이 다되는건 아니지 않니. 힘들 땐 휴식도 할줄 알라는거야.》
《걱정말어, 네 말을 명심할테니…》
《순미야, 내가 좀전에 한 말… 사실 그건 롱담이 아니란다.》
《무슨 말?…》
《애두 참. 난 네가 그 누구와 사랑하든 관계치 않겠어. 다만 우리 서로 고향의 영원한 딸이 되자고 한 약속에 충실하자는거다. …》
《원, 별걱정을 다하는구나.》
《글쎄 나도 믿지는 않았지만 마을에서 돌아가는 말이 네가 장차 그 총각을 따라 도시로 날아갈거라나. 하지만 난 무작정 부정했어, 절대로 그럴수 없다고…》
《고맙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활짝 웃었다.
그가 내려간 뒤에도 순미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안홍진이와의 관계에 대한 말이 벌써 두번째다.
어머니와 경심이한테서…
오늘 경심이의 충고는 어머니의 충고보다 더 가슴을 흔들어주었다. 비단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고향에 대한 자기의 사랑과 헌신에 대한 문제였다. 고향에 대한 진정한 사랑속에 청춘의 사랑도 행복도 있다는것이 순미의 견해였다.
그는 그 어떤 경우에도 고향에 대한 자기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을것이라는것을 다시한번 다짐했다.
경심아, 우리 영원히 고향의 참된 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