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2 장

3

 

관절염이 있어 바깥출입이 불편한 림송심의 귀에도 그냥 지나치는 소문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외동딸에 대한 말은 더욱 그러했다. 누군가는 순미가 현실체험을 나온 총각과 여사여사한 사이같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순미가 하늘높은줄 모르고 일판을 크게만 벌려놓았다고 했다. 어느것이나 다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말들이였다. 그래서 그는 오늘 품을 놓고 딸을 만나러 떠났다.

방목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걷느라니 어제 저녁 길가에서 정보배를 만나던 일이 떠올랐다. 머리우에 커다란 국수자루를 이고도 가뿐히 걸어오던 그는 송심을 만나자마자 무작정 푸념을 늘어놓았다.

《순미 엄마, 난 정말 속이 상해 죽겠어.》

《왜? 무슨 일이 생겼나?》

《글쎄 말하기 부끄럽지만 우리 애가 희문령감네 아들과 어쩌구저쩌구 한다구 소문이 나지 않았나. 둘이 나란히 사진까지 찍었다는 말까지 나니 참… 희문령감 아들 알지? 김태식이라구…》

림송심은 생각깊은 어조로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사진을 함께 찍을수도 있지 뭘 그래요.》

정보배의 얼굴이 활딱 붉어졌다.

《아유, 큰일날 소리. 그저 우리 애가 욕심나니까 그런 소문을 돌렸겠지. 역시 순미가 똑똑하다니까요. 홍진이라는 총각을 꼭 붙들었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림송심은 놀랐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총각과 순미가 서로 마주서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눈다구. 그게 다 연분이지요.》

림송심은 선뜻 대꾸를 못했다. 엊그제 만났던 소재지마을 뚱보보육원도 그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때는 그저 웃어넘겼는데 이제보니 영 빈소리는 아닌것 같았다.

《작업반 일때문에 마주설 일이 많겠지요 뭐. 처녀총각이 마주선다고 다 그런 일이겠나요. 아마 재간이 있고 배운 청년이니 도움을 받느라고 그랬을거예요.》

《글쎄 그렇긴 하겠지만…》

정보배는 그러면서도 기연가미연가하는 표정이다.

(우리 순미가 정말 그럴가?… 그 총각이야 어차피 여기를 떠나갈 사람인데…)

언젠가 외삼촌이 대상자소리를 했을 때 순미가 그 대답으로 그렸던 한장의 그림이 떠올랐다.

풍덕이라는 땅덩어리를 두손으로 정중히 받들고 서있는 처녀…

그것은 바로 딸애 자기의 모습이였다. 그런 순미가 현실체험을 온 총각과 눈이 맞았다니 선뜻 믿을수가 없었다.

영원히 고향의 딸로 살겠다는 그 애가 설마?… 하긴 순미 아버지 경우를 놓고봐도 인생사에 별일이 다 있지만…

어쨌든 순미가 사업상 관계로 그 청년과 마주서더라도 처신만은 잘 하도록 단단히 신칙해야겠다고 림송심은 마음먹었다. 처녀가 좋지 않은 소문을 등에 지고 다니는것을 어머니인 그로서도 묵과할수 없었다. 사실 딸의 일이 걱정되여 늘 마음을 못 놓는 그였다.

언젠가 권봉석관리위원장도 뜨락에서 닭모이를 주고있는 림송심을 울바자너머로 건너다보면서 칭찬인지 욕인지 알수 없는 말을 했었다.

《순미 그 애가 얼마나 어벌이 큰지 60을 넘긴 이 권봉석이도 미처 따라서지 못하겠다니까. 정말 숨이 차오. 내 머리칼이 다 세는것 같소.》

그 말에 림송심은 슬그머니 얼굴을 붉혔다.

얘가 대체 일을 어떻게 하기에 아버지나 다름없는 위원장이 그런 소리를 할가.

마을에서는 지금 순미가 벌려놓은 일을 놓고 이러저러하게 말이 많았다. 관리일군모임에서 청년염소반전경도라는것을 내놓아 반장, 기술원들을 깜짝 놀래웠다는 등 전경도를 방목덕 한가운데 세워놓고 그 설계에 따르는 건물들의 기초파기공사에 들어갔다는 등 역시 젊은이들은 타산이 없이 욱욱하기만 한다는 등…

림송심은 짜장 근심이 앞섰다. 말을 들어보니 염소작업반에서는 방목덕의 넓은 등판들은 물론이고 지어 수많은 골짜기들까지 다 염소판을 만들겠다고 접어들었다고 한다.

생각은 기특하지만 그 애가 오지랖이 넓어도 분수가 있지 소리나 치고 목표나 정한다고 그게 수월히 될 일인가?… 새록새록 갈마드는 이 근심, 저 근심에 지쳐버린 림송심은 배낭을 진 어깨를 툭툭 쳤다.

등성이에 올라서자 해빛은 더 뜨겁게 내려쪼였다. 발밑에서는 생긋한 풀냄새, 구수한 흙냄새가 뜬김처럼 떠오른다. 바람결에 염소들의 노릿한 체취가 풍겨온다. 방목지특유의 향기이다. 이제는 몸에 푹 배고 너무나 익숙되여있는 그 향기를 호흡하자 옛 방목공시절이 되돌아온듯 몸이 붕 뜨는것만 같다.

그는 부드럽고 정깊은 눈길로 방금 올라온 등성이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넓고 평평한 부지에 자리잡은 염소작업반의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규모있게 빙 두른 정방형의 방역울타리, 풀먹는 집짐승을 많이 기를데 대한 글발이 높이 걸린 시원한 정문, 마당 한가운데 덩실하게 앉은 과학기술지식선전실담장을 따라 줄느런히 자리잡은 수의치료실, 먹이가공실, 인공수정실, 실험실, 그뒤쪽으로 길게 늘어선 염소우리호동들…

하얗게 회칠을 하여 더욱 산뜻하게 안겨오는 그 전경은 볼수록 깨끗하고 정다움을 불러일으킨다.

오래전 림송심이 애인을 찾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있던 면양반이 이제는 옛 흔적을 찾아볼수 없게 변하였다. 그때는 초가이영을 인 몇채의 양우리가 전부였었다. 양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로 이곳에 왔던 남편의 노력으로 오랜 세월 선대들이 물려준 락후한 흔적을 털어버리고 블로크로 벽체를 쌓고 지붕에 기와를 올린 양, 염소우리호동들이 번듯하게 일떠섰었다. 작업반정문에 소독터가 생기고 방역체계가 갖추어졌다. 방목공들의 탈의실, 목욕탕도 건설하였다.

그때로부터 어느덧 30년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부모들의 피와 땀이 스민 그 터전을 이제는 새 세대들이 물려받았다. 풍덕땅에 청년염소작업반이 조직되고 순미가 첫 반장이 되였다. 청년들의 보금자리인 합숙이 덩실하게 일떠서고 그곳에서 청년들의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쏟아져나왔다. 그들의 일솜씨 또한 그전하고는 전혀 달랐다. 년대와 년대를 넘어오면서 낡을대로 낡은 건물들을 보수하기도 하고 일부는 헐고 다시 지었으며 인공수정실, 실험실같이 이전에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건물들이 하나둘 건설되여 전 세대가 물려준 터전을 완전히 일신시켰다. 어찌 그뿐이랴. 풍덕등판의 방목지마다 염소방목쉼터들을 꾸려놓고 해마다 풀판을 몇정보씩 늘구어나갔다. 그 모범을 본받아 면양반, 젖소반들에서도 말끔히 때벗이를 하였다. 순미의 드세찬 일솜씨를 두고 풍덕사람들은 너나없이 입을 모아 칭찬을 하였다. 그런데 또 지금에 와서 무엇이 모자라 방목덕 한복판에 건설판을 벌려놓은것인가. 그 애가 하는 일이 뭔가 잘못된것이 있기에 관리위원장이 그런 말을 했을게 아닌가.

림송심은 멀고가까운 등성이들과 후미진 바닥에서 풀을 뜯는 염소무리들을 바라보며 덕중심의 건설장을 향해 걸어올라갔다. 밋밋한 등성이를 또 하나 넘어서니 드넓은 방목지가 확 안겨왔다. 그 한복판에서는 경쾌한 록음기소리, 삽질소리, 곡괭이소리, 웃음소리가 방목덕전체를 뒤흔들어놓고있었다. 어느덧 전경도앞에 선 림송심은 입을 크게 벌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영사막처럼 큼직하게 그려진 전경도는 그야말로 희한하기 그지없다. 현재의 염소작업반은 물론 온 방목등판이 개변된 전경이였다. 방목덕중심에 질서있게 늘어선 염소우리호동들은 그 모양이 꼭 휴양각을 방불케 했고 젖가공실, 콤퓨터조종실이라는 건물은 그로서도 리해할수 없는 내용과 형식미를 갖추었다. 마치 바둑판처럼 구획을 나눈 염소방목지사이로는 시원한 도로들이 쭉 빠지고 구획마다 방목쉼터며 유개를 씌운 야외우리, 마치 가로등 비슷한 기둥들이 여러군데나 서있었다. 잘 모르는 소견에도 순미네가 벌려놓은 일판이 방목등판 전구간을 새롭게 일신시키는 방대한 건설이라는것이 알렸다.

(원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엄청난 일을…)

가슴이 후두둑 뛴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오죽하면 관리위원장까지도 그런 말을 했을텐가. 그만큼 딸이 장해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만졌다. 순미 아버지가 오늘의 이 현실을 보았다면… 명백한것은 그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딸의 지향을 두말없이 지지해주었을것이라는 그것이였다.

(아, 순미 아버지, 이럴 땐 어쩌면 좋아요?)

절로 터질듯 한 그리움이 가느다란 한숨소리와 함께 튀여나왔다.

《뭐 어쩔게 있소. 딸의 행동이 장하다고 생각했으면야 주저하지 말고 뛰여들어야지. 난 순미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오.》

(순미 아버지!)

크나큰 충격과 흥분이 조수처럼 밀려들었다. 림송심은 딸의 모습처럼 여겨지는 전경도앞에서 쉬이 발걸음을 뗄수 없었다.

(그 앤 꼭 아버지를 닮았어. …)

어찌보면 아버지보다 일욕심이 더한것 같았다. 림송심은 이상스레 자기의 심장조차 커지는것 같은 느낌을 안고 작업장쪽으로 걸어갔다. 아지가 무성한 느티나무앞 넓은 공지는 삽질소리, 괭이소리, 웨침소리, 노래소리로 가득찼다. 드문드문 서있는 살구나무, 돌배나무사이를 지나 그곳으로 다가서던 림송심은 렬차방통 세네개만큼이나 긴 건물의 기초를 파는 젊은이들을 놀라운 눈길로 지켜보았다. 울뚝불뚝 근육이 두드러진 팔을 휘두르며 곡괭이질을 하는가 하면 기초구뎅이에 들어가 삽으로 흙을 푹푹 퍼서 내던지는 축들도 있다. 또 한편 기초작업을 하는 앞뒤에서는 여러명의 청년들이 측량기로 재며 말뚝들을 꽂기도 한다. 이미 기초를 판 작업장의 한쪽끝에서 순미와 안홍진이가 도래자로 기초구뎅이의 깊이를 재여보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있는것이 보인다. 동결심도니, 기초벽높이니 하며 주고받는 말이 림송심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온통 사업이야기뿐이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저 애들이 하는 일이라는게 그렇겠지 다른거야 있을라구. 림송심은 딸을 적극 도와주는 안홍진이가 고마왔다. 그렇지 않으면 순미가 제아무리 청년반장이고 일욕심이 많다 해도 무슨 수로 방대한 건설을 해낼수 있겠는가.

이 사람아, 우리 순미를 잘 도와달라구. 당장 그의 손을 잡고 고마운 말을 하고싶은 심정이였다. 안홍진이 어차피 이 고장을 떠나갈 청년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왜 그런지 가슴이 알알해졌다.

하지만 사람이야 모르지. 우리 순미 아버지도 원래야 연구를 끝내면 연구소로 올라갈 사람이였지. 그렇지만 이 풍덕땅에 양떼가 꽉 차게 만들겠다는 그 마음으로 해서 선뜻 뜨지를 못했지. 그래서 나도 그이를 따라 이 땅에 뿌리를 내린거구. 하지만 저 총각이야…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나? 그렇잖아도 우리 순미와 저 총각이 어쩐다고 소문이 나는 판인데…

림송심은 저 혼자생각에 얼굴을 붉혔다. 공연히 일하는 애들을 방해할 필요는 없었다. 슬그머니 물러났다.

문득 맑고 청높은 처녀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옥련의 노래소리였다. 그쪽에서 연기가 피여올랐다.

저기가 식당인가보군. …

림송심은 그때에야 비로소 등에 진 배낭을 생각했다. 전혀 무거움을 느끼지 못한것이 이상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고추장이며 터밭의 풋마늘을 한배낭 넣어서 졌던것이다.

(뭐든지 좀더 많이 가져왔더라면 좋았을걸…)

야외식당에서는 옥련이가 한 처녀와 노래를 부르며 쌀을 일다가 림송심을 반겨맞았다.

《어머니, 힘들게 올라오셨네.》

배낭안에 든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도 너무 기뻐 손벽까지 짝 쳐댔다.

《야, 그러지 않아도 고추장이 떨어져가댔는데 어머닌 어쩌면…》

(정보배가 딸을 잘 키웠어… 태식이가 눈독을 들일만 하지. …)

《힘들지? 하루 세끼 식사보장을 할라니…》

《일없어요. 어머니, 순미랑 밤낮없이 일하는걸 생각하면…》

《일하는 사람들은 뭐니뭐니해두 배가 불쑥해야지…》

벌렁벌렁 끓어대는 무쇠가마에서 구수한 토장국냄새가 풍겼다.

《산나물국인가?… 어디 맛 좀 볼가?…》

가마뚜껑을 열고 끓는 국 국물을 한숟가락 떠먹어보니 국맛이 제법이였다.

《어머니랑 모두 토장을 담글 때 관심해주셔서 장맛이 좋아 그런거예요.》

류옥련이 국맛이 좋다는 칭찬에 웃으며 말했다.

림송심은 올해 눈석이때 정보배, 최명후들과 함께 염소반합숙의 메주된장을 담그어주자고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순미가 기어코 저희들 힘으로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고추가루를 봏아 몇키로 올려보내주었던것이다.

한동안 식당일을 거들어주고난 림송심은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흰 방수천을 씌운 반토굴식천막 두개가 나란히 서있었다. 그앞에 철봉대, 평행봉대가 세워져있고 옆에는 활짝 핀 철쭉꽃나무가 자라고있었다. 식당아래쪽에는 맑은 샘이 솟구쳐오르는 샘터가 있었다. 동글동글한 하얀 차돌을 둘레에 꼭꼭 박아놓은것이 여간만 정갈해보이지 않았다. 그옆에는 판자로 만든 여러개의 함통들이 놓여있었는데 그곳에서 노랗게 머리를 내민 콩나물이 자라고있었다.

(잡도리들이 보통이 아니구나. …)

림송심은 속으로 연방 감탄하며 방목지를 빙 둘러보았다. 수십년세월 방목공으로 일하면서 끝없이 오르내렸지만 여기가 이처럼 안침지고 좋은 자리라는것을 처음 느끼는것만 같았다.

(자리는 참 잘 잡았어. 어떻게 이런 궁냥들을 해냈을가?…)

림송심이 샘터에 띄워놓은 쪽박으로 물을 떠마시고 일어서는데 순미가 불쑥 나타났다. 옥련이가 어느새 알린 모양이였다.

《어머니, 어떻게 기별도 없이 올라오셨어요?》

《너희들이 일하는걸 구경하러 왔지.》

《정말?》

《그럼.》

록색수건으로 머리를 꽁지고 미색작업복을 입은 순미의 온몸에서는 싱싱한 젊음과 약동하는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말투와 행동이 무척 어리광스럽다.

《엄마가 막 보고싶었댔는데 이렇게 불쑥 나타나셨네. 그새 앓지 않으셨어요?》

《앓긴… 일이 힘들지? 그래 너희들이 정말 저 전경도에 그려놓은것처럼 해낼수 있겠니?》

림송심은 마음속 감탄과 놀라움은 표현하지 않고 자못 근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무조건 해낼테니까요.》

순미의 두눈이 고집스럽게 반짝거렸다.

《지금 기초를 파는 곳이 염소우리호동들이겠지?》

《예, 종전보다 두배나 되는 호동들을 량옆에 열두개씩 들여앉힐 계획이예요.》

《그렇게 많이?… 엄청나구나. …》

림송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이 힘겨울수록 반원들을 잘 보살피고 마음을 합치는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거 현실체험을 한다는 대학생총각이 어떠냐? 배운 사람이 다르겠지?》

《예, 그 동무의 방조를 많이 받아요.》

림송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샘터뒤쪽의 풀밭으로 딸을 이끌며 조용히 물었다.

《얘 순미야, 너한테 하나 묻고싶은게 있는데…》

《뭔데요?》

《너 혹시… 그 현실체험을 온 총각을 맘에 둔건 아니냐?》

《예?!》

순미는 깜짝 놀랐다. 마치 물음의 뜻을 리해하지 못한듯 어머니를 쳐다보더니 까르르 웃었다.

《이젠 알만 해요. 어머니가 왜 갑자기 걸음을 하셨는지…》

순미의 얼굴에서는 조금도 색다른 표정을 읽을수 없었다.

(글쎄 그렇겠지. 아무러면… 내가 공연히 일하는 애의 가슴을 휘저어놓은가봐. …)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웬일인지 속은 허전하다.

《순미야. 내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자고 했다만…》

림송심은 마을에서 떠도는 말을 그대로 다 이야기했다. 순미의 표정이 점차 진지해졌다.

《그러니 이 딸이 걱정돼서 올라오셨다 그거지요?》

《아무렴, 난 네가 일밖에 모른다는걸 다 안다. 하지만 본의아니게 당치않은 소문이 나는건 좋지 않아.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지어 몸가짐까지두 처녀다와야 하고 항상 자신을 들여다볼줄 알아야 한다.》

《알겠어요 어머니, 어떤 의미로 하시는 말씀인지…》

《그건 그렇구. 네가 벌려놓은 일판이 너무 지나치지 않는지 모르겠다. 관리위원장이랑 걱정이 큰것 같더라.》

《어머니, 관리위원장동지도 이제 우리를 리해하실거예요. 걱정마세요.》

《어쨌든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 이런저런 일이 생기더라도 어른들과 차근차근 토론을 해서 말썽이 없어야 한다. 그분들이 어떤분들이냐? 너희들한테 살기 좋은 고향을 넘겨주자고 한생을 바쳐온 사람들이 아니냐?》

《말씀을 명심하겠어요, 어머니.》

림송심은 젊은이들의 점심식사까지 거들어주고서야 그곳을 떠났다.

순미가 전경도앞에서 오래도록 손저어 바래주고있었다. 송심에게는 어쩐지 그 모습이 먼저 간 남편의 모습처럼 안겨왔다.

(여보, 기뻐하세요. 우리 순미가 이젠 다 컸어요. )

마음속으로 뜨겁게 부르짖는 그의 생각은 어느덧 흘러간 옛시절을 더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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