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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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옥련은 사뭇 기분이 둥 떠서 풍덕으로 돌아왔다. 도예선경연에 참가할 인원을 선발하는 군적인 노래합평회에서 크게 평가를 받은것이다.

그가 마을입구에 들어섰을 때 날이 어두워졌다.

창문들마다 불빛이 환한 집들이 정답게 안겨온다. 농장자체의 힘으로 건설한 소형발전소가 은을 내고있는것이다.

하늘의 별들도 부러워 할 산촌의 불야경앞에서 절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춤추듯 마을로 들어선 그는 군에 다녀온 정형을 보고하려고 리당사무실에 들렸다. 거기에는 마침 박성복과 권봉석이 함께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난 두사람은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옥련이야말로 풍덕땅의 큰 자랑이라고, 역시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류옥련의 어머니 정보배는 오래전 농촌부문 예술경연무대에서 노래를 잘 불러 1등을 한 전적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이윽고 리당을 나선 옥련은 집으로 가는 길에 작업반쪽을 올려다보았다. 전투장에는 온통 우등불천지였다.

동무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가.

그는 비록 이틀에 불과하지만 건설전투장을 떠나있은것이 미안했다. 그러나 이번에 군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도예선에 올라가게 되였으니 동무들앞에 떳떳이 나설수 있게 되였다.

순미가 무척 기뻐할거야. 동무들은 또 얼마나…

기쁨과 행복으로 한껏 달아올랐던 옥련의 얼굴은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느닷없이 김태식이의 퉁투무레한 얼굴이 떠올랐던것이다. 참 어이가 없었다.

하필 이런 때 그가 떠오를건 뭐람. …

저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갔다.

이제 옥련이가 나타나면 보나마나 시치미를 뻑 따고 이렇게 말할것이다.

《난 동무가 군노래합평에서 당선된걸 진심으로 기뻐하오.》

어딘가 시까스르는듯 한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다.

입에 침바른 소리!… 옥련은 고개를 저었다.

군으로 떠나던 날 아침이 떠올랐다.

작업반의 모든 동무들은 저마다 꼭 당선되라고 고무격려하는데 유독 그만은 당선되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가지 않는것이 어떤가고 중뿔나게 말했었다. 그 말은 가뜩이나 앵돌아졌던 옥련의 가슴에 옹이처럼 박혔다. 그래서 더 부지런히 련습을 했고 김태식의 그 빈정에 반박하는 심정으로 무대에 나섰다. 옥련은 리경칠의 말을 긍정하며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대던 그의 괘씸한 행동이 돌이켜졌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이 치밀었지만 머지않아 도예선경연에 당당하게 나서게 된 옥련이로서는 그라는 존재가 안중에도 없었다.

류옥련이 집에 들어서니 다 자란 딸을 둔 어머니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쭉 빠진 몸매에 최근에 보기 힘든 트레머리를 한 정보배가 설레발을 치며 딸을 맞아주었다. 군에 가서 밥을 제대로 먹었는가, 잠자리가 어떠했는가, 노래합평심사원들은 어떤 사람들이 나왔던가, 하여튼 별의별것을 다 물었다. 농장수리작업반장을 하는 아버지가 끌끌 혀를 차며 핀잔했다.

《여보, 딸이 귀하거든 그렇게 그냥 붙들고있지 말고 빨리 저녁밥부터 들여오구려.》

《아이구, 내 정신 좀 봐. 너 배고프겠구나.》

딸로 하여 마음이 즐거워진 정보배는 노죽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엌으로 나갔다.

류옥련이 옷을 갈아입고 손발을 씻고나니 어느새 저녁상이 다 차려졌다. 감자농마송편이며 갖가지 산나물들이 푸짐하게 오른 상이였다. 딸이 돌아올것을 생각해서 정보배가 성의껏 준비한 음식들이였다.

상앞에 나앉은 옥련은 그간에 있은 일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두 내외는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그들도 젊어 한때는 전국적인 농촌부문 예술소조경연에까지 나가 이름을 날린 예술소조원들이였던것이다. 그 나날에 인연을 맺어 낳은 딸이 오늘은 전국근로자들의 노래경연에 참가하게 되였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옥련은 새라새로운 이야기를 자꾸만 퍼올렸다.

그들이 한창 즐거운 분위기에 잠겨있을 때 권봉석은 천천히 마을앞길을 걸어 집으로 가고있었다. 그는 라순미가 방목등판 한가운데에 일판을 벌려놓은것이 미타하였다. 그의 의도는 사실 현재 염소작업반터전에 염소우리호동들과 필요한 건물들을 새로 짓고 현대적으로 꾸리자는것이였다. 그런데 순미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방목덕 중심에도 염소작업반건물들을 건설하겠다는것이였다. 벌써 기초공사를 거의다 해제낀 판이다. 예상외로 일판이 점점 커지기만 하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권봉석은 박성복에게 자기의 심정을 툭 터놓았다.

《리당비서동무, 내 나이 60이 넘도록 살아도 순미처럼 어벌뚝지가 큰 처녀는 첨 보우다. 무작정 일판을 크게 벌려놓기만 하는데…내 참, 이 일을 어떻게 수습했으면 좋겠소?》

《어떻게 하다니요? 우리가 힘껏 밀어주어야지요. 위원장동지도 농장을 꾸리자는 립장에서야 그들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박성복의 말에 권봉석은 이제 그 많은 자재와 설비는 어떻게 보장하며 로력문제 역시 생산을 함께 내밀면서 보장하기가 조련치 않다는 등 여러가지 난점들을 렬거했다. 하지만 리당비서는 청년들의 정열과 투지를 믿어야 한다고 오히려 권봉석을 설복했다.

정말 난사는 난사다. 이끝저끝 근심에 잠겨 옥련이네 집앞을 지나는데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려나왔다.

군노래합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니 기뻐할만 하지. 혹시 이번 기회에 저 애를 떼우게 되는게 아닐가?

권봉석은 옥련이네 집안분위기를 중떠보고싶어 발걸음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의 심정을 알리 없는 그 집 식구들은 뜨락으로 들어서는 권봉석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위원장동지, 마침 오셨어요.》

딸의 일로 하여 기분이 흥뜬 정보배는 밥상으로 그를 이끌며 설레발을 쳤다.

《하, 이거 내가 먹을 복이 있다. …》

《위원장동지, 우리 옥련이가 오지 않았나요. 그래서 이렇게…》

정보배는 부엌에 나가 떡이며 두부국, 반찬들을 크고작은 접시에 무득무득 담아들고 들어왔다.

《옥련이 어머니가 언제 보나 부엌농사를 잘한단 말이요.》

권봉석이 칭찬했다. 그가 말하는 《부엌농사》란 아무리 농사를 잘 짓고 염소젖 많이 짜고 양털을 많이 깎아도 녀성들이 부엌세간살이를 잘 못하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같다는 뜻이였다.

권봉석은 옥련이가 군적인 합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기쁘겠다고 정보배의 흥을 돋구어주었다. 이래저래 기분이 한껏 좋아진 그는 일전에 말하던 옥련이 대상자문제는 어떻게 됐는가고 권봉석을 든장질했다. 깜짝 놀란 옥련이가 어머니의 무릎을 꼬집으며 얼굴을 붉혔다.

권봉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덕흐덕 웃었다.

《내가 언제부터 맘에 두고있는 총각이 있는데 옥련이와 한번 맞세워볼가?…》

《위원장동지가 소개하는 총각이라면야…》

《옥련이 아버지 생각은 어떻소?》

옥련의 아버지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옥련은 끝내 부엌으로 달려나가고말았다.

(아이 어쩌나. 빨리 작업반에 올라가야 할텐데…)

그러면서도 방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권봉석의 걸걸한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거 희문령감 아들이 어떻소?》

《희문령감 아들이요?》

《염소반에서 일하는 김태식이 말이요.》

《어마나.》 하는 비명소리는 부엌에서 먼저 울렸다. 빈 그릇이라도 떨구었는지 쨍그랑소리까지 났다. 정보배가 풀기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위원장동진 그게 진담인가요? 아무렴 그 총각을…》

《왜 그러오, 정동무?》

권봉석이 제편에서 놀랍다는듯 반문했다.

《정동무나 나나 그리구 옥련이 아버지나 다 이 풍덕땅에서 한생을 살아오는 사람들이 아니요. 이젠 우리도 늙었지. 옥련이네 세대들이 어느덧 고향의 주인이 되였단 말이요. 난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놓고 참 생각이 많소. 그들이 벌려놓은 일도 일이지만 그들의 사랑을 놓고봐도 그렇지. 부모들세대인 우리가 그들의 사랑을 아껴주고 귀중히 여겨주어야 하지 않겠소. 어떻소, 정동무생각은?…》

정보배가 끙끙 갑자르며 대답을 못하는데 권봉석이 옥련이와 태식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야기를 꺼냈다.

옥련은 까무라치듯 놀랐다.

사진이라니? 도대체 무슨 사진이란 말인가. 내가 그 동무와 단둘이 사진을 찍다니?… 권봉석은 옥련이 못지 않게 놀라는 두 내외에게 훈시조로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옥련이한테 물어보면 다 알거요. 내 보기엔 그들사이가 례사가 아닌것 같은데 빨리 국수나 먹기요. 허허허…》

권봉석이 집을 나서기 바쁘게 사색이 된 정보배는 딸을 다불러대기 시작했다.

《얘, 너 바른대로 말해봐라. 네가 정말 태식이와 사진까지 찍었단 말이냐?》

류옥련은 억이 막혀 대답을 못하다가 까르륵 웃음을 터쳤다.

《얘, 웃을 일이 아니야. 너 혹시…부모들을 속이면 못쓴다.》

류옥련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어머닌 어쩌면… 이 딸을 그렇게도 믿지 못하겠으면 저와 함께 작업반에 올라가 순미한테랑 알아보자요.》

옥련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옷을 입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정보배가 덤벼치며 뒤따라 나왔다.

《얘야, 그만해라. 이런 일은 소동을 피워야 녀자쪽이 손해야. 이 맹꽁아.》

《도대체 손해는 무슨 손해란 말이예요. 난 아무것도 꺼릴것이 없어요.》

이때 방안문이 벌컥 열리더니 옥련이 아버지가 소리쳤다.

《여보, 둬두오. 애들 일에 참견말고…》

류옥련은 어머니가 더 말릴새없이 급히 집뜨락을 벗어났다.

뭐 사진까지 찍었다구?… 정말 억이 막힐노릇이지. 관리위원장아저씬 도대체 어디서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들었을가? 순미한테 알아봐야겠어.

작업반 정문에 들어서니 선전실안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는 급히 선전실로 다가갔다. 출입문을 열려던 옥련은 문득 손을 멈추었다. 안에서 웃음소리가 났던것이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순미와 분조장들, 정윤심, 안홍진, 김태식이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으며 웃고있었다.

저 동문 안 삐치는데가 없다니까.

한동안 김태식이 노는 양을 주시하던 옥련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웬일인지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그들속에서 껄껄대는 태식을 보자 옥련은 대번에 속이 발끈해졌다.

《옥련동무, 수고했소.》

그래도 태식이가 제일먼저 옥련을 반기며 일어선다.

옥련은 온몸의 피가 얼굴에 확 몰리는감을 느꼈다.

《옥련아, 지금 오는 길이니?》

순미가 반갑게 손을 잡아주었다.

《우린 지금 전투현장에 숙소를 옮기는 문제를 토론하댔어. 그런데 태식동무가 너를 대신해서 야외식당을 짓고 가마를 걸고 하는 일은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하지 않겠니. 자기밖에 그 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거야. 그런데 네가 불쑥 나타났구나. 범이 제 소리에 나타나듯 말이야.》

류옥련은 대꾸를 안했다.

그는 태식이를 외면한채 군에 갔던 일을 간단히 말했다. 모두 박수를 치며 풍덕땅의 큰 경사라고 환성을 올렸다.

옥련은 얼굴을 붉히며 합숙으로 돌아왔다.

잠시후 모임을 끝낸 순미가 방으로 들어섰다.

《옥련아, 무슨 일이 있었니? 인상이 좋지 않구나.》

옥련은 순미한테 좀전에 있은 불쾌한 일을 그대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혹시 그게 태식동무의 진정이 아닐가?》

순미는 조용히 웃었다. 그러나 옥련은 웃지 않았다.

《뭐 진정? 순미야,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옥련아, 내 말이 불쾌하게 들렸다면 취소하자. 위원장동지가 하셨다는 말에 대해선 내가 알아볼게. 어쨌든 태식동무에 대해 무작정 나쁘게만 생각지 말어. 좋은 점도 생각해보렴.》

옥련은 대답을 안했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좀처럼 잠을 이룰수 없었다.

다음날 건설조는 전투현장에 야외식당을 설치하고 천막을 치면서 젖가공실, 먹이적재장, 콤퓨터조종실 등 여러 건물들의 기초공사를 하느라 부글부글 끓었다. 시간은 사정이 없었다.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 알수 없었다.

저녁식사후 작업반은 기술학습을 진행했다. 넓은 공지에 반원들이 줄지어 앉고 안홍진이 앞에 나섰다.

원래 기술학습은 정윤심이 할 일이였으나 요즘 후보염소들과 먹이분조의 일이 바빠 짬을 못 내고있었다.

오늘학습은 계절에 따르는 염소의 사양관리에 대해 강의하겠다는 홍진의 말에 기술학습장을 펼치던 옥련의 손이 전류에 닿은듯 흠칫 굳어졌다. 뜻밖에도 책갈피에 한장의 사진이 끼워있었던것이다.

얼핏 사진을 들여다본 그는 책장을 황급히 덮어버렸다. 그 사진속에는 분명 자기와 김태식이 나란히 앉아 활짝 웃고있었다. 가슴이 쿵쿵 방아를 찧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사진이 생겨났을가. 그러니 관리위원장아저씨의 말이 빈말이 아니였구나.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눈여겨보니 지난 여름 휴식날에 작업반에서 집체적으로 찍은 사진과 모상이 꼭같았다. 그때 김태식이 슬그머니 곁에 다가섰던 일도 생생히 떠올랐다.

옳지, 그랬구나. 옥련은 눈을 꼭 감았다. 분명 그 사진을 가지고 장난을 부렸구나.

그날 사진사아바이가 샤타를 누르려는 순간에 누군가가 웃기는 말을 하여 모두 소리를 내며 활짝 웃었었다.

틀림없는 그 사진이야. 옥련은 앞에 앉은 태식의 번번한 잔등을 쏘아보았다.

저 동문 도대체 왜 그럴가? 꼭 철부지아이처럼 동에 닿지 않는 생각만 하고 또 엉터리말만 꾸며대고…

문득 김태식이 가지고있는 노래수첩이 생각났다. 언젠가 태식은 노래를 좋아하는 옥련이한테 보여준다면서 노래수첩을 구경하라고 선심을 쓴적이 있었다. 호기심에 받아들었다. 무심히 그것을 펼쳐본 옥련은 너무도 기가 막혀 한참이나 웃어댔다. 매 노래마다 그것을 적어준 처녀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란희, 옥주, 영순, 선실, 춘매, 영숙, 명옥, 용녀, 영실… 하여튼 없는 이름이 없었다. 아마 녀자이름이라고 생겨먹은것은 다 있는것 같았다. 옥련은 태식의 잔꾀에 쓰겁게 웃었다. 그런 식으로 자기의 몸값을 올리려는 그가 가소로왔다.

그러니 그가 돌격대생활을 얼마나 잘했을텐가. 골기없이 녀자들한테 시부렁거리기나 잘하고…

이번기회에 따끔히 침을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옥련은 기술학습이 끝난 다음 태식의 앞을 막아나섰다. 옥련은 낮으나 맵짠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김태식은 능글맞게 아부재기를 떨었다.

《어이쿠, 그 소리가 얼마나 여무진지 간떨어지겠군. 같은 값이면 노래부르던 그 고운 목소리로 살뜰하게 불러주지 못하겠소? 물론 이렇게 불러준건 고마운 일이지만…》

흥, 뻔뻔스럽기란! 하고 옥련은 생각했다. 깔끔한 눈초리로 쏘아보던 그는 청년의 눈앞에 그 사진을 내댔다. 갑자기 어리둥절해진 태식이 전지불로 비쳐보았다.

《아니, 이 사진이 어떻게?…》

순간 어디 숨어있었는지 리경칠이 불쑥 나타나 옥련이의 손에서 사진을 휙 나꿔챘다.

《동문 뭐예요?》

옥련이 야무진 목소리로 내쏘았다. 경칠은 폭탄이라도 맞은듯 흠칫 놀라더니 재빨리 말을 내뱉았다.

《옥련동무, 태식동무한텐 잘못이 없어요. 사실 이 사진은 내가 끼워넣은거예요.》

《뭐라구요?》

《정말이야요.》

《그럼 그 사진을 동무가 만들었단 말이예요?》

옥련이 한발자국 다가들며 따졌다.

《내가 만들다니요? 그런 까무라칠 소린 하지두 말라요. 나도 이 사진이 어떻게 생긴건진 알지 못해요. 전번날 〈흰제비〉를 찾을 때 산속에서 주었단 말이예요. 혹시 알겠어요? 태식동무와 옥련동무가 좋은 관계를 맺기 바래서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지…》

《듣기 싫어요.》

류옥련이 격해서 소리쳤다. 그 서슬에 리경칠은 꽁무니를 뺐다. 태식은 퍽 당황해하는 표정이였다.

사실 그것은 지난해 어느 휴식날 집체적으로 찍은 사진에서 자기와 옥련이만 확대해서 만든 사진이였다. 그것을 만들어준 농장사진사아바이는 사진이 퍽 잘됐다고 하면서 태식이에게 꼭 성공하라고 고무까지 해주었었다. 그런데 늘 품에 간수하고 다니던 그 사진을 《흰제비》를 찾아다니던 그날 그만 잊어버렸었다. 그날 솔골 골짜기에 모닥불을 피운 다음 사진이 없어진것을 알았을 때 그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그 사진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날에는 큰일이였다.

가뜩이나 코대가 세고 꽁하기 그지없는 옥련이가 그것을 알게 되면…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하지만 사진은 어디에서도 찾을수 없었다.

방목공으로서 남달리 책임성이 높고 노래 잘 부르는 고향의 처녀, 태식은 그 처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싶었다. 태식은 자기가 옥련이를 심장으로 사랑하던 나머지 그 사진이 심장속으로 쑥 들어가버린것이라고 단정해버렸다. 그런데 그 사진이 오늘 나타난것이다. 결국 그렇게 우려하던 일이 끝내 생기고야만것이다.

태식은 아무 말도 못하고 옥련이의 맵짠 선고를 기다리기만 했다.

《동문 비렬하고 어리석어요.》

너무나 맵짜고 무정한 비난이였다. 태식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갑자르기만 하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거 뭐 그렇게까지 성낼 필요야 있소? 사진도 내가 만들었고 또 내 얼굴이 있는 사진이니 내가 건사하면 될게 아니요.》

《동문 어쩌면… 그렇게 단순해서 좋겠군요. 그 사진때문에 어떤 소문이 도는지 알기나 해요? 그래 이걸 동무가 책임질수 있어요? 난 정말 동무같은 사람은 첨 봐요.》

류옥련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울먹해졌다. 가슴이 떨리고 심장이 쿵쿵 뛰여 도무지 진정할수가 없었다.

《동문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사람이란 말이예요.》

《하하하…》

김태식은 별안간 큰소리로 웃어댔다.

《박물관이라… 만약 그렇게 되면 옥련동무가 그 박물관에 자주 찾아와주오.》

류옥련은 획 몸을 돌렸다. 더 상대하고싶지 않았다.

담벽에다 대고 도대체 할소리가 있을가?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았다.

그는 야외식당쪽으로 달려갔다. 찔광이나무가 서있는 박우물가에 쪼그리고앉아 얼굴을 싸쥐고 소리없이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쩌면 저 동문…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순미였다. 아마 건설장을 돌아보는것 같았다.

《옥련아, 무슨 일이니?》

그는 옥련의 어깨를 조심히 흔들었다.

《태식동무와 무슨 일이 있었니?》

옥련은 눈물을 머금고 방금 있은 일을 그대로 말했다.

순미는 옥련의 손을 끄당겨 꼭 잡았다.

《옥련아, 내 보기엔…》

순미는 조용히 웃었다.

《태식동무가 널 사랑하는것 같구나.》

《뭐 사랑? 그런 까무라칠 소리는 하지도 말아.》

옥련은 순미의 손을 탁 쳐버렸다.

《옥련아, 난 그게 태식동무의 진심이라고 믿고싶구나. 얼마나 너에 대한 생각이 지극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다 해냈겠니?》

순간 류옥련은 두눈을 똑바로 뜨고 순미를 쳐다보았다.

이 애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걸가. 그게 진심이라고? 뭐 사랑이라고?…

그는 눈을 꼭 감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야. 진심이 어떻게 그런걸수 있단 말인가.

만약 순미자신한테도 그런 일이 닥쳤다면 지금처럼 쉽게 말할수 있겠는지 옥련은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는 발딱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외식당 부엌으로 들어갔다. 칼도마소리라도 요란스럽게 울려야 마음이 가라앉을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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