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2 장
1
이른새벽 방목등판에 짙은 안개가 흐르고있었다. 아직은 기상전이여서 사위는 쥐죽은듯 고요하다. 조용히 합숙을 나선 순미는 안개흐르는 무연한 방목지를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울려왔다.
뻐꾹새가 노래하는 곳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로동으로 행복을 열고
로동으로 꽃이 피는 곳
…
맑고 청아하면서도 그윽한 노래소리…
옥련이였다. 이른새벽 샘터에 나가 발성련습을 하는 모양이였다.
(저 애도 지난밤 잠을 자지 못한게로구나. 하긴 그럴수밖에 없을거야. …)
순미 역시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궁싯거리다가 이른새벽에 밖으로 나온것이였다.
오늘부터 청년염소반은 정식 전투에 진입하게 된다. 그사이 순미는 전투에 들어갈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었다. 작업공구도 넉넉히 마련하였고 자재보장준비도 차근차근 해놓았다.
그는 어제 저녁 관리위원회의 부름을 받고 마을에 다녀왔다. 농장꾸리기계획안을 가지고 군에 갔던 관리위원장이 도착했던것이다.
권봉석은 아주 기분좋은 인상이였다. 리당비서도 함께 있었다. 무엇인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순미를 반겨맞았다.
《군에서 우리 계획을 적극 찬성했다. 군당책임비서동지도 우리 농장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야, 정말이예요?》
순미는 너무 기뻐 어린애처럼 콩당콩당 뛰였다.
박성복이 말했다.
《반장동무, 이젠 본때있게 내밀어보자구.》
《알겠습니다, 비서동지!》
권봉석은 단단히 오금을 박듯 강조했다.
《우선 염소우리호동들부터 때벗일 해야겠다.》
《예.》
순미는 지체없이 작업반으로 올라왔다. 곧 전투시작을 알리는 모임을 열었다. 두가지 문제가 토의되였다. 하나는 건설전투를 벌리는 조건에서 염소방목과 생산조직을 더욱 짜고드는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이제부터 염소방목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야 건설을 성과적으로 진행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기탄없이 의견들을 제기해보세요.》
제일먼저 자리에서 일어선것은 류옥련이였다.
그는 노래부를 때처럼 꼭 모아잡은 두손을 가슴노리에 붙이고 부드러우면서도 발음이 정확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했다.
《저는 먼저 우리들의 이번 전투가 보다 아름다운 래일을 앞당겨오기 위한 가슴벅찬 투쟁임을 말하고싶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작업반의 전투를 성과적으로 보장하자면 한사람이 두몫, 세몫을 맡아안고 뛰여야 한다고 봅니다. 염소들을 두무리, 세무리씩 맡아서 방목한다는것이 결코 쉽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꼭 해내겠습니다. 그 과정에 노래도 더욱 세련시켜서 전국근로자들의 노래경연에서 꼭 입선하겠다는것을 결의합니다.》
처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김태식이 벌떡 일어났다.
《저는 먼저…》
그는 류옥련의 식을 본따서 말꼭지를 뗐다.
《…류옥련동무의 토론을 전적으로 지지찬성합니다.》
그의 어조는 어딘가 모르게 지어낸듯 한감도 없지 않았다. 그것을 제꺽 간파한 옥련은 깔끔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흰제비》사건이 있은 후 그들사이는 더욱 어성버성해졌다. 하지만 태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접근해왔다. 지금도 옥련이 토론을 마치자마자 일어선걸 보니 과연 무슨 말로 기분을 흐려놓으려는지…
저 동문 쩍하면 류옥련이 타령이라니까. 누가 저보고 지지토론을 해달라고 한것처럼…
한동안 어이없어하는데 김태식이 불쑥 옥련이쪽으로 돌아섰다.
《옥련동무, 난 내 염소무리를 동무에게 맡기고싶소.》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옥련은 애써 자제하며 조용하나 맵짜게 대꾸했다.
《동문 갑자기 반장이나 분조장이 됐는가요?》
《왜 그러오. 옥련동무, 사실 동무에게 염소무리를 부탁하는건 이 김태식이를 부탁하는것과 같단 말이요. 왜냐면…》
태식은 말끝을 맺을수가 없었다. 옥련이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총알처럼 날아들었던것이다.
《동무가 염소라면 얼마든지 맡겠어요.》
《호호호…》
《하하하…》
하지만 태식은 시치미를 떼고 제 할 소리만 했다.
《저는 이동염소방목지로 능금골을 정하자는것을 제기합니다. …
그곳은 지형상 염소방목에 유리하고 또 덕중심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조건에서 방목공들이 여가시간에 건설전투에 참가하기에도 유리하기때문입니다.》
그의 토론이 신호이기라도 한듯 저마다 일어나 의견을 말하였다. 이동방목지를 능금골로 정하는것이 좋겠다는 의견, 자기들을 무조건 기본건설조에 넣어달라는 의견 등 많은 의견들과 좋은 안들이 쏟아져나왔다.
《남자들이야 응당 건설조에 들어가겠는데 새삼스럽게 뭘 그래요.》
리경칠이 장내를 둘러보며 희떱게 말했다.
순간 처녀들이 반발했다.
《동문 도대체 뭐예요? 남자, 남자하면서…》
《글쎄말이야. 제가 뭐 남자발뒤축에나 가나?…》
《동문 앉기나 하라요. 아직 방목도 채 배우지 못한 주제에…》
아마 철가면을 썼다 해도 그 입심에는 견디지 못할것이다.
아니나다를가 리경칠은 《아이쿠, 혈압이야!》 하면서 까투리처럼 머리를 구겨박았다.
라순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많은 동무들이 좋은 토론들을 하였다고 긍정한 후 이미 작업반 초급일군들과 토론하고 합의한대로 전투조직을 했다.
우선 작업반을 중대로, 각 분조는 소대로 편성했다. 그리고 먹이분조와 방목분조에서 인원들을 선발하여 건설소대를 내왔다. 건설소대는 주야간 기본건설을 밀고나가고 방목소대와 먹이소대는 본신임무를 수행하면서 조기작업과 야간작업으로 건설전투를 지원하자는것이였다.
건설소대장으로는 신종선이, 방목소대장으로는 김태식, 후방사업 및 식사보장책임자로는 류옥련이 임명되였다. 건설기술지도는 안홍진이 맡아하기로 하였다. 건설소대에 의례히 들어갈것으로 여겼던 리경칠은 건설소대명단에 자기 이름이 없자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듯 엉치를 들썩거렸다.
그의 심리를 건너짚은 순미는 리경칠동무가 방목소대에서 두몫, 세몫 맡아해주기를 바란다고 꼭 찍어서 말했다. 이어 작업반호동들에 떨구는 후보염소들의 방목과 사양관리를 먹이소대에서 책임질것을 지시했다. 모임이 끝나고 반원들이 흩어져간 후에도 류옥련이만은 선전실에 남았다.
그는 순미앞에 다가오더니 무작정 따지고들었다.
《순미야, 난 두몫, 세몫의 방목을 자진했는데 후방사업과 식사보장이라는건 또 뭐니?》
《옥련아, 이제 건설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면 하루 세끼 식사보장이 간단치 않아. 여러모로 깊이 생각한 끝에 너에게 맡긴거니 리해해주렴. 그래야 마음이 놓여서 그래.》
사정하다싶이 하는 순미의 말에 옥련이도 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순미는 옥련이의 노래소리에 귀기울이며 전경도앞에 마주섰다. 오늘 아침 전투의 첫시작으로 방목덕 중턱에 올려다세울 전경도였다.
며칠동안 안홍진이와 함께 그 전경도를 완성하던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순미가 자기의 설계안을 완성할 때까지도 안홍진은 현상모집에 응하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인가 끝없이 사색하는 표정으로 작업반구내와 염소우리, 방목지를 돌아볼뿐이였다.
순미는 아무래도 자기가 먼저 설계안을 내놓고 그와 토론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설계안을 받아보는 홍진의 눈빛은 진지했다. 순미는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염소우리호동들을 돌아보고 오니 안홍진은 선전실 앞마당을 거닐고있었다. 속보판앞까지 천천히 걸어갔다가는 되돌아서군 하였다.
왜 그럴가? 혹시 나의 설계안에 불만이 있어서 그러는게 아닐가. 그렇다면 대담하게 의견을 주면 될텐데… 그야 원래 직통배기가 아닌가.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그에게 다가갔다.
《왜 밖에 나와있어요?》
안홍진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뭔가 고심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기탄없는 의견을 주세요.》
《아무래도 내 좀더 생각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반장동무, 요즘 너무 무리하는것 같은데 오늘 저녁은 푹 쉬시오.》
안홍진은 안으로 들어가더니 라순미의 설계안을 걷어가지고 밖으로 나와 합숙쪽으로 걸어갔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그는 순미에게 이렇다할 말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럴가? 혹시 전면부정이 아닐가? 헌데 그 동문 왜 아직까지 자기의 안을 내놓지 않고있을가?
사실 안홍진은 라순미의 설계안을 본 그 저녁부터 자기를 랭정하게 돌이켜보고있었다.
그는 지금껏 아버지를 통하여 심장에 새긴 풍덕땅을 여기 사람들 못지 않게 잘 알고 깊이 사랑하고있다고 자부해왔었다. 그래서 어린시절부터 신비한 이 땅은 꿈속에서도 자주 보였고 군사복무기간에는 마치 떠나온 고향처럼 그리웠었다. 대학시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순미의 설계안을 보면서 풍덕땅에 대한 자기의 사랑과 정이 뜨겁지 못할뿐더러 어느 정도 실무적이고 의무적이 아니였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처녀처럼 고향을 가슴에 안고 운명을 함께 하려는 모대김과 열정이 없었다.
처녀는 향토애로 불타는 심장으로 점을 찍고 선을 그은것이였다.
떠나올 때 아버지가 하던 말이 귀전을 울렸다.
《난 너를 믿는다. 풍덕땅을 위해 너의 지혜와 정열을 아낌없이 바쳐다오.》
수십년전에 떠나온 고향, 그 땅에 사는 사람들앞에 무엇인가 떳떳치 못해 괴로와하시던 아버지, 깊은 고뇌와 모대김이 엿보이는 그 눈빛에는 자기가 못다한 일을 아들이 끝까지 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와 소원이 깃들어있었다.
그랬다. 자기에게는 아직도 무엇인가 부족한것이 있었다. 이 땅에 대한 애착과 동경을 뛰여넘어 무엇인가 꼭 있어야 할, 순미의 가슴속에는 꽉 차있는듯 한 열렬하고 뜨거운, 그러면서도 대담한 그 무엇이 없었다. 처녀의 정열과 사랑, 헌신과 분투의 일념에 비해볼 때 홍진의 설계는 너무 협소하고 실무적이였다.
부끄러웠다. 처녀앞에 아니, 풍덕땅과 이곳에 태를 묻은 사람들앞에, 아버지세대앞에 더없이 부끄러웠다.
안홍진의 그런 심정을 알리 없는 라순미는 자기의 설계안에 미흡한 점이 없는가를 다시한번 따져보기 시작했다.
안홍진이 저녁녘에야 순미를 찾아왔다.
《반장동무!》
라순미를 마주한 안홍진은 선뜻 뒤말을 잇지 못하고 한동안 말없이 처녀를 바라보았다. 열정적으로 빛나는 청년의 눈가에 불현듯 심중한 빛이 어리는것을 순미는 보았다.
《…전 사실 어제 저녁부터 반장동무가 그린 설계안을 보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나에 대해 심중히 돌이켜보았습니다. 이 땅을 위해 나의 적은 지식과 재능이나마 깡그리 바치자고 결심했는데 그런 결심 하나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것을 통절하게 느꼈습니다.》
안홍진은 석양이 쇠물빛으로 끓는 먼 하늘가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순미는 그의 심정을 집체적인 설계안합평회때에야 알게 되였다. 그가 제출한 설계안은 확실히 달랐다. 새롭게 탐구한 건물들의 외부형식, 내부구조… 안홍진은 지금의 염소작업반 터전을 배로 넓히고 각종 건물들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콤퓨터조종으로 생산공정을 움직이도록 설계하였다.
《역시 배운 사람이 다르지요? 반장동무.》
정윤심의 말이였다.
《작업반 생산건물들과 운영에 대해서는 정말 놀라운 탐구를 하였군요. 건물들의 내부구조가 쌍통식이면서도 염소사양관리를 현대화할수 있게 설계를 하고 외부형식을 조선식건물로 한것이 마음에 들어요.》
결국 합평회에서는 라순미의 안과 안홍진의 안을 합쳐 보다 현대적이고 실리적인 설계안을 작성하기로 토의되였다. 라순미의 안을 그대로 살리면서 반원들의 찬성을 받은 안홍진의 안에 반영된 작업반의 기본건물들을 방목등판 중심으로 옮겨 방대한 구간의 현대적인 염소생산기지를 형성하기로 했던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설계안과 전경도였다.
순미는 여러군데 미흡한 점이 눈에 띄우자 색감통과 붓을 들고나와 전경도를 마저 완성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왔는지 안홍진이도 다가와 붓을 잡았다. 붓질을 하다가는 뒤로 몇걸음 나서서 전경도를 바라보고 그러다가는 다시 다가서서 붓질을 하군 했다.
바로 그때 여러명의 녀인들이 왁작 떠들며 정문에 들어섰다. 소랭이를 이기도 하고 바께쯔를 들기도 한 그들은 농장탁아소와 유치원의 교양원, 보육원들이였다. 그들이 무슨 일로 그처럼 빨리 올라왔는지 알수 없었다. 여느때는 아침식사시간이 지나서야 염소젖을 가지러 오군 했었다.
제일 앞에서 걸어오던 뚱보녀인이 전경도를 보자 입을 딱 벌렸다.
《아이구, 희한하기도 하다. 앞으로 이렇게 된다는건가?》
순미는 말없이 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빨리 올라왔는가고 물었더니 그는 바께쯔와 버치들을 가리키며 수선을 떨었다.
《이보라구 반장, 지금 마을에선 염소작업반이 풍덕등판을 온통 염소판으로 만들 큰 전투를 벌린다구 소문이 짜해. 그래서 우리가 두부를 좀 앗아왔네. 제일 덕을 크게 볼게 우리 탁아소, 유치원인데 남들보다 먼저 기여하는게 있어야지 않겠나.》
《고마워요, 어머니. 앞으로는 힘들게 올라오시지 않아도 될거예요. 염소반이 현대화되면 탁아소, 유치원들에서는 앉은 자리에서 우유를 받게 될거예요. 우유공급차가 나를수도 있고 삭도로 운반할수도 있구요.》
《아유, 정말 꿈같은 일이구만. 고맙네, 고마워.》
보육원들과 교양원들은 너무 기뻐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 다른날보다 일찍 기상하여 일과를 집행한 청년작업반원들은 마당에 질서있게 정렬했다. 그들앞에는 완성된 전경도가 서있었다.
라순미는 대렬앞에 나서 첫날 전투과제를 제시했다. 과제는 방대했다. 전경도를 전투장 한가운데 올려다 세우고 새로 짓게 될 합숙건물과 열여섯개 염소우리호동 기초파기공사를 30프로계선까지 돌파하는것이였다.
드디여 출발구령이 내렸다. 건설소대의 끌끌한 청년들이 전경도의 앞뒤좌우에 댄 든든한 가름대를 어깨에 메고 방목덕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큰 대형전경도사판이 공중으로 높이 떠올랐다. 마치 고향 풍덕땅이 청년들의 어깨에 떠받들려 더 높은 곳으로 치달아오르는것만 같았다.
그 순간 순미는 한장의 그림을 생각하고있었다. 《풍덕》이라는 땅덩어리를 소중히 받들어든 한 처녀가 힘차게 걸어가는 그림이였다. 정초에 외삼촌이 편지와 함께 총각사진을 보내왔을 때 그 대답으로 그려본것이였다. 그것이 과연 이 땅을 쉽게 떠날수 없는 그 마음뿐이였던가. 아니, 청춘시절의 귀중한 모든것을 다 바쳐 고향을 빛내여갈 처녀의 맹세였고 신념이였다.
청년들은 기세좋게 덕을 향해 오르며 노래를 불렀다. 염소무리를 몰고 올라오며 방목을 하던 처녀, 총각들이 부러운 눈길로 건설소대전투원들을 바라보았다. 별안간 리경칠이 전경도를 메고 올라가는 대렬속으로 무작정 달려들더니 자기도 어깨를 들이미는것이였다.
《여, 경칠이. 방목공들은 자기 위치를 지키라.》
전경도를 떠멘 청년들이 한마디씩 하자 그는 하는수없이 쫓겨나오더니 불쑥 대렬앞으로 나섰다. 이어 그는 늘 꽁무니에 찌르고 다니던 수의축산기술문답집을 꺼내여 마치 마이크처럼 말아쥐더니 한껏 목청을 돋구었다.
《고향 풍덕땅을 소중히 떠받들고 전투장으로 오르는 청년염소작업반의 전투원들이여!》
《경칠이가 제법인데…》
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그의 사기는 한층 고조되였다.
《오늘의 전투는 고향땅을 위해 심장을 내대는 그대들의 장한 첫걸음으로부터 시작되거니 더 힘차게 오르자, 더 빨리 달리자, 고향사람들이 지켜본다, 조국이 지켜본다. …》
리경칠은 앞으로 풍덕땅은 청춘들의 불타는 정열에 떠받들려 빛날것이라느니, 방목소대의 방목공들은 건설소대의 전투원들 못지 않게 자기가 맡은 염소들의 방목을 책임적으로 할것이라느니, 비록 자기는 아쉽게도 건설소대전투원명단에 오르지 못했지만 송순애동무의 권고로 방목공의 위치를 튼튼히 지키고있다느니 하며 별소리를 다 하였다. 짜장 선동연설을 하는척 하면서 실은 제 속심의 소리를 하자는것이였다.
(엉큼하기란 참. …)
순미는 속으로 웃었다. 어쩐지 그의 얼치기연설이 싫지 않았다.
드디여 전투장 한복판에 대형전경도가 우뚝 솟아올랐다. 노래소리, 북소리가 요란스레 울리기 시작했다. 작업반청년들의 한결같은 요구에 의해 건설착공식의 시작을 라순미가 하게 되였다.
그는 삽을 비껴잡은채 잠시 동무들과 풍덕등판을 감동어린 눈으로 둘러보았다.
(그래, 이제부터 전투는 시작이다. 앞날의 우리 고향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무릉도원으로 우뚝 일떠설것이다. )
순미는 삽날을 힘있게 박았다.
그가 삽을 뜨는 순간 요란한 박수소리가 온 방목등판을 들었다놓았다.
그것은 이 땅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헌신을 가슴에 새긴 청춘들이 터치는 심장의 메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