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7
아침일찍 읍에 나갔던 리경심은 날이 어두울무렵 마을에 들어섰다. 다행히 군산림경영소 화물차를 만나 배등령을 쉽게 넘을수 있었다.
날이 어두웠으나 그는 집이 아니라 작업반으로 향했다. 눈길은 저도 모르게 염소작업반쪽을 더듬고있었다. 지형상으로 볼 때 마을아래쪽 야산기슭에 위치하고있는 토끼작업반에서 마을웃쪽에 자리잡은 염소작업반은 빤히 바라보였다.
며칠전에 있은 농장초급일군모임에서 권봉석관리위원장은 청년염소작업반을 풍덕땅의 본보기작업반으로 꾸린다는것을 선포했다.
리경심의 가슴은 쿵―쿵― 세차게 높뛰였다. 관리위원회와 리당에서는 순미의 제의를 접수했던것이다.
경심은 사실 순미가 전국축산부문일군열성자회의에 다녀올 때까지만 해도 지금껏 자기가 해놓은 일에 대해 긍지롭고 떳떳하게 생각하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풍덕리 토끼작업반은 군적으로도 제일 괜찮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생산문화, 생활문화는 물론 고기생산, 가죽생산에서도 높은 기록을 내고있었던것이다. 그만하면 청춘시절을 값있고 보람있게 보냈다고 자부할만도 했다. 그래서 요즘에 와서는 스물다섯살이라는 자기의 나이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였고 이제 당장 처녀시절을 끝낸다 해도 그 누구도 탓할 사람이 없을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만족병에 걸렸다고 할가. …
순미가 평양에서 안고온 열풍은 경심의 심장뿐이 아니라 자존심에까지도 불을 달아주었다. 왜냐면 그들은 지금껏 동창생으로서, 같은 작업반장으로서 말없는 경쟁을 해왔기때문이였다.
경심은 마음을 한껏 도사려먹었다.
이제부터는 우리 토끼반도 전투다. 만족과 제자리걸음은 우리와 인연이 없다. 순미가 일단 기치를 든 이상 우리 토끼작업반을 염소작업반보다 더 훌륭하게, 더 현대적으로 꾸릴테다.
리경심, 주저하지 말고 오직 앞으로!
그는
순미는 도식과 틀을 깨고 할바에는 새롭고 특색있게 현대적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래야 뒤떨어지지 않고 계속 앞장에서 달릴수 있다는것이였다. 경심은 끓어오르는 흥분과 경쟁심을 누를길 없었다.
그날 회의를 마치고 작업반에 올라온 리경심은 즉시 반원들을 비상소집시켰다. 집에 퇴근해갔던 반원들은 무슨 사고라도 생긴줄 알고 부랴부랴 달려나왔다.
《동무들, 급히 비상소집을 하게 된것은 오늘 저녁 농장초급일군모임에서 토론된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리경심은 청년염소작업반을 농장적인 본보기작업반으로 꾸리고 그것을 일반화하는 문제가 토론되였다는것을 알려주었다.
《본보기작업반?…》
《그럼 우리 토끼반은?…》
《염소반을 다 꾸리면 그 모범을 본받아 차차 꾸리라는거겠지 뭐.》
반원들이 웅성거렸다. 리경심은 그들의 수군거림을 일축해버리며 맵짜게 말했다.
《아니예요. 동무들, 염소반이 다 꾸려진 다음에 하겠다는 견해는 잘못된것이예요. 그래서 전 청년염소반이 들고일어났을 때 우리 작업반도 새롭게 일떠세우자는거예요. 말하자면 경쟁을 하자는거예요.》
그것은 토끼반도 청년들로 무어진것만큼 같은 청년으로서 염소작업반처럼 새롭고 대담하게 작전하고 실천해나가는것은 너무도 응당하다는것이였다.
《반장동무의 말이 옳아요.》
《우리라고 뭐 가만있겠소.》
경심은 반원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화제는 자연히 작업반을 어떻게 혁신하겠는가 하는 방향으로 번져졌다.
《그러니 염소작업반은 방목까지 콤퓨터화하자는거군요.》
《꿈같은 일인데…》
고개를 기웃거리는 축들이 많았다.
《하자고 결심만 하면 못해낼 일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 토끼반은 실내에서 사육하기때문에 오히려 염소반보다 더 유리하다고 할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염소반에서 현대화설계안과 계획을 제출할 때 우리 토끼반도 동시에 내놓자는것입니다.》
리경심은 순미가 은송목장에서 가져온 토끼우리호동 외부형태와 내부구조를 반원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제가 명성목장에 가서 배워온 굴식형태와 순미반장이 가져온 굴식 및 반굴식토끼우리형태 그리고 먹이가공과 사양관리방법을 참작하면서 모든 동무들이 건설적인 의견들을 내놓아야 하겠습니다.》
경심은 앞으로 작업반에서 벌어지는 일을 일체 비밀에 붙일것을 특별히 강조했다. 반원들은 저마다 흥분하여 토끼우리형태며 현재토끼반을 어떻게 변혁시키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떠들썩 론쟁을 하다가 흩어져갔다.
경심은 작업반 먹이분조장인 박승완을 따로 불렀다. 바투 깎은 머리에 얼굴이 희여멀끔하게 생긴 그는 앉은뱅이책상을 마주하고 방금전 경심이가 내놓았던 수첩장을 뒤적거리고있었다. 규모가 그닥 크지 않아 먹이분조와 관리분조로 되여있는 토끼작업반에서 박승완은 작업반의 기둥이나 다름이 없었다. 경심이보다 상급생인 그는 학생때부터 머리가 좋기로 소문이 났었다. 일하면서도 공부하겠다는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고향에 진출한 그는 현재 농업대학 통신졸업반이였다. 경심에게는 큰 힘이 되여주는 성실한 청년이였다.
그는 몇명밖에 안되는 처녀들로 몇정보나 되는 먹이포전에 생산성이 높은 먹이작물을 심고 가꾸면서도 수백마리나 되는 토끼들의 자연먹이도 어김없이 보장하군 하였다.
《분조장동무, 오늘 저녁 작업반 비상소집이 어때요?》
《아주 잘됐소. 염소반을 본보기로 내세울 때야 농장의 모든 작업반들을 다 그처럼 꾸린다는것인데 그때까지 기다릴수야 없지 않소.》
《옳아요. 우린 누가 구령을 칠 때까지 기다릴수 없어요. 스스로 결심하고 스스로 구령을 내려야 해요.》
박승완은 머리를 올리쓸고 내리쓸면서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마치 누이동생의 결심을 너그럽게 지지해주는 다심한 오빠처럼 보였다.
리경심은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러니까 할바에는 염소반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거지?》
《그야 더 말할게 있어요. 우린 무조건 염소반을 압도해야 해요. 순미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단 말이예요. 우린 서로 말없는 경쟁을 걸었기때문에 무조건 이겨야 해요.》
박승완은 허허 웃었다.
《거 동창생들의 승벽심이 대단한데. 하긴 승벽이 없이야 무슨 청춘이겠소. 그러니 우리도 본때있게 돌격해보기요.》
박승완도 어느덧 흥분이 되였는지 주먹을 내흔들었다. 그의 말에 경심의 가슴은 한껏 달아올랐다.
《전 현대화계획과 설계도 그렇고 모든 측면에서 분조장동물 믿어요.》
그날부터 토끼작업반에서는 매일 저녁 모여앉아 토론과 론쟁을 거듭했다.
경심은 반원들의 토론내용을 종합하여 박승완이와 함께 새롭게 꾸릴 작업반현대화전경도를 그렸고 계획도 세웠다.
리경심은 밤새워 그린 전경도와 현대화추진계획안을 가지고 아침일찍 군으로 향했다. 사업상 자주 련계가 있는 군토끼종축장 지배인의 의견을 받아보고싶었다. 경험있는 오랜 일군인 지배인은 경심이 내놓는 설계안과 그의 설명을 주의깊게 듣고나서 매우 기뻐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토끼우리가 아주 특색이 있소. 그저 길다란 건물형식이 아니라 층층다락을 이루면서 길게 뽑아주니 참 좋구만. 더구나 량쪽에서 층을 이루면서 맞물려주니까 넓은 부지를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토끼를 기를수 있고 작업을 기계화하기도 좋겠소. … 사양관리 전반을 콤퓨터조종으로?… 좋소. … 먹이를 100% 가공해서 먹인다는것도 아주 실리가 있는거요. 이렇게만 되면 전국적으로도 손꼽히겠소.》
지배인은 딸의 소행이기라도 한듯 대견한 눈길로 경심을 바라보았다.
그는 도움이 되겠는지 모르겠다면서 최근에 출판된 우량품종토끼들의 사양관리기술을 서술한 기술서적을 두권이나 안겨주었다.
《고맙습니다, 지배인동지!》
리경심은 날것 같은 기분으로 풍덕에 돌아왔다. 토끼작업반도 능히 현대적인 수준에 올려세울수 있다는 신심이 생겼다.
지배인동진 이 설계대로 하면 전국적으로도 손꼽힐거라고 하셨지. 그러면 우리 풍덕땅은 온 나라에 소문이 나고 이 리경심이 결코 순미보다 못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거야. 아무렴, 내가 그 애한테 질수야 없지. …
그는 입속으로 최근에 나온 서정가요를 부르며 걸음을 다그쳤다. 이제 박승완이에게 군에 갔다온 이야기를 하면 무척 기뻐할것이다. 토끼호동들의 형식을 그렇듯 기발하게 착상해낸 사람이 바로 그였던것이다.
어제 저녁 리경심은 자기가 군에 다녀오는 사이에 어떻게든 짬을 내서 염소작업반의 현대화계획과 설계안을 구체적으로 알아볼 임무를 박승완에게 주었었다.
《반장동무,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혹시 이 박승완이를 렴탐군으로 만들자는게 아니요? 난 그런 일은 정말 못하겠소.》
그가 너무 펄펄 뛰는통에 리경심은 그만 소리내여 웃었다.
《동무두 참… 렴탐군이 아니라 정찰병이지요. 우리 토끼반이 염소반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정찰이 필요해요. 전투에서도 항상 정찰을 앞세우지 않나요?》
《반장동무의 의도는 알만한데 이 박승완이한테 너무 많은 짐을 지운다는 생각은 없소?》
《그건 사실이예요. 하지만 누굴 믿고 그런 임무를 주겠나요. 분조장동무가 모든 면에서 막히는게 없고 또 나와 손발이 딱딱 맞으니 믿고 부탁하는거지요.》
박승완은 할수 없다는듯 허허 웃더니 생뚱같은 말을 꺼냈다.
《참, 반장동무가 군에 있는 총각한테서 청혼을 받았다던데… 어떻소? 진척이 되오?》
《청혼이요?》
경심은 깜짝 놀랐다. 어느새 그 소식이 이 사람 귀에까지 흘러들었나? 원, 귀가 넓기도 하지. …
《그건 왜 물어요. 혹시 분조장동문 이 경심이가 빨리 사라지길 바라는게 아니예요?》
《아, 오해하지 마오. 사실 그런건 아니구…》
《똑똑히 알아두세요. 난 어디에도 안가요. 영원히 토끼반장이란 말이예요.》
짐짓 깔끔한 목소리로 엄포를 놓은 경심은 그만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리고말았다.
박승완의 바빠하는 거동이 깨고소했던것이다.
경심은 웃으면서도 이상한 생각을 버릴수 없었다.
이 동무가 왜 갑자기 청혼소리를 꺼냈을가. 혹시… 아이참, 내가 무슨 생각을… 큰일을 앞에 놓고…
순미와 옥련이랑 하던 약속이 떠올랐다. 시집을 가도 풍덕총각한테 가서 이 땅에 영원히 뿌리를 내리고 고향을 꽃피우자던 그 약속…
그렇지만 난 지금껏 이 동무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한번도 없었지. 그것은 참 이상한 일이였다.
리경심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발깃하게 달아올랐다.
《왜 그러오, 반장동무?》
경심이의 침묵이 이상했는지 박승완이 지꿎게 쳐다보았다. 경심의 눈길이 꼿꼿해졌다.
《동문 뚱딴지같이 청혼자 소린 왜 해요? 큰일을 앞에 둔 사람같지 않군요. …》
그는 혀를 깨물었다. 자기가 한 말이 총각의 가슴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알겠소.》
박승완의 표정은 여전히 태연하였다.
《반장동무가 바란다면 정찰병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일이라도 하겠소. 우리 한번 라순미반장과 겨루어보기요.》
《고마워요, 승완동무!》…
지금쯤 그가 선전실에서 기다리고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무조건 기다릴것이다. 그가 정말 염소반에 가봤을가. … 이제라도 우리 토끼반의 계획을 놓고 순미와 토론하는게 어떨가.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아무래두 관리위원회에 제출하면 알게 될텐데… 불쑥 한가지 걱정되는것이 있었다.
관리위원회에 토끼작업반현대화전경도와 계획을 제출하면 위원장동지랑 뭐라고 하실가. 토끼반에 언제 그런 과업을 주었는가고 물으면… 아니, 일없어. 염소반이 본보기작업반을 꾸리는 과업을 받을 때 우리도 꼭같은 전투명령으로 받아안았다면 나무라지 않으실거야. …
불빛 환한 정문이 바라보였다.
경비실에서 밤근무를 나온 처녀들이 경심을 알아보고 달려나왔다.
《반장동무, 수고했어요. 야, 얼마나 힘들었을가?… 먹이분조장동무가 얼마나 걱정했게요.》
《몇번이나 정문에 나왔댔는지 몰라요.》
《흠, 그렇게 걱정스러우면 마중나올 생각은 왜 못했대요?》
《어마나, 정말!…》
처녀들은 너무나 뻔한 사실앞에 입을 딱 벌렸다.
경심은 그들의 표정이 하도 우스워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됐어요. 어서 일을 보세요.》
선전실에서는 무엇인가 뒤적거리던 박승완이 경심을 맞아주었다.
《아니, 래일 떠날게지 왜 밤길을 걷소?》
그는 경심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주며 놀라와했다.
《마침 령을 오르다가 산림경영소 차를 만나 타고왔어요. 내가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어요?》
박승완은 껄껄 웃었다.
《반장동무, 숨이나 좀 돌리오.》
《언제 숨돌릴새가 있어요. 오늘 군에 가서 토끼종축장 지배인동지한테 좋은 의견을 받아왔는데 그걸 참작해서 수정보충해야지요.》
《그렇소?》
박승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염소작업반을 정찰한 이야기를 했다.
《염소작업반의 믿음직한 동무들을 만나 알아봤는데 거긴 아직 확고한 안을 락착짓지 못했다고 하오.》
《그럼 어떤 방향에서 내용과 형식을 탐구하고있는지 그걸 알아봤어야지요.》
《그야 물론 알아봤지.》
박승완은 염소반에서는 염소우리호동들을 비롯한 각종 건물들을 현대감이 나게 새로 짓고 방목지를 과학적인 방목을 할수 있게 꾸리며 그 모든 운영을 콤퓨터화할 안을 세웠다고 설명을 했다.
《염소우리호동들의 형식은요?》
《완전히 새롭더구만.》
현재의 단층형식이 아니라 2층으로 된 조선식건물모양인데 겉으로 보면 건물우에 또 다른 건물이 올라앉은것처럼 보인다고 박승완은 종이장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했다.
《그런 형식을 취한건 염소의 실내사양과 겨울철사양때 영양을 올리고 자동흐름식사양관리를 하기 위해서라더군.》
박승완은 매 건물들과 방목지의 요소요소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정찰을 아주 잘했구만요.》
리경심은 마음이 흥그러워져서 호호 웃었다.
(그사이 순미의 노력이 컸구나. 하긴 그 애가 누구라고…)
박승완은 슬며시 반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사실 염소반청년들이 아니라 직접 라순미를 만나 알아보았던것이다.
그는 두 처녀의 사이가 보통 가깝지 않은데 남몰래 하는 정찰이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순미한테 솔직히 터놓고 방조를 받는 편이 오히려 좋을것 같았다.
그의 부탁을 듣고난 순미는 토끼반에서도 분발하여 일떠선것을 매우 기뻐하며 염소반의 현대화계획과 구상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박승완은 이제부터 라순미가 제공해주는 자료를 고스란히 리경심이에게 전해주기로 그와 약속하였다. 말하자면 류다른 정찰이였다.
박승완의 이야기가 끝나자 경심은 밤을 새워서라도 전경도와 계획을 마저 완성하자고 말했다.
《반장동무, 일은 일이고 식사부터 해야지 않소. 내 이럴것 같아서 우리 분조처녀들한테 저녁식사를 준비하도록 했소.》
박승완은 웃목에 놓여있는 원탁우에서 음식꾸레미를 가져왔다.
경심은 놀랐다. 자기가 좋아하는 당콩밥이며 두부장국, 콩나물반찬, 햇김치 그리고 감자농마송편도 있었던것이다.
그는 묵묵히 음식만 들여다볼뿐 머리를 쳐들지 못했다. 이 인정많은 총각앞에서 그만 눈물을 보일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