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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포를 고지우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엄혹한 위기가 가로놓일 때마다 새로운 전략전술과 작전적방침을 제시하시고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전쟁의 결정적승리를 마련해오시였다.

주체40(1951)년 9월말부터 미제는 모험적인 《추기공세》를 감행하려고 미친듯이 발악하고있었다.

1211고지는 《하기공세》때와 마찬가지로 《추기공세》에서도 적들이 노리는 초점이였다.

조성된 정황과 적의 기도를 과학적으로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전선에서 방어를 강화하면서 특히 1211고지일대의 유리한 산악지형조건을 리용하여 진지방어를 조직하고 력량과 기재를 집중함으로써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미제의 《추기공세》를 완전히 격파분쇄하도록 하시였다.

뿐만아니라 몸소 화선천리길을 헤치시며 1211고지를 찾으시여 현지에서 작전방침을 성과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우리 포병들이 지침으로 삼아야 할 강령적인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산이 많고 평지가 적은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조선식포화력조직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각종 포들을 결정적으로 전연에 접근배치하며 직사포들을 고지에 더 많이 끌어올려다 배치하여야 합니다.》

당시 적들은 《최대의 폭격》, 《최대의 포격》을 떠벌이면서 1211고지에 하루평균 3만~4만발의 폭탄과 포탄을 퍼붓고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직사포를 고지우로 끌어올려 적의 포를 우리의 포로 제압하고 아군보병들의 전투행동을 포화력으로 지원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직사포를 고지우로!

그것은 오직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주체적인 군사전법이였다.

조선인민군 근위 강건제2보병사단 반땅크포대대에 직사포들을 운반해올데 대한 명령이 하달되였다.

대대당위원장이였던 나는 전사들과 함께 주야로 강행군을 진행하여 목적지인 양덕에 도착하였다. 우리앞에는 빠른 시일안에 직사포에 정통하고 기동수단인 말에 익숙해야 할 과업이 나서고있었다. 우리는 낮에는 말들에 굴레를 씌우고 길들이였으며 밤에는 직사포와 관련한 학습을 진행하군 하였다.

며칠후 우리는 말 4필당 포 한문씩 메워가지고 양덕을 출발하였다.

우리는 적의 폭격을 피하여 밤에만 행군하였다. 우리가 마식령고개밑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선두마차가 뚝 멈추어서는것이였다. 대렬의 중간에서 말을 끌던 나는 급히 앞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채찍을 휘둘러도 말들은 푸푸- 투레질만 할뿐 도무지 고개를 오를념을 하지 않았다. 다른 마차들을 앞세워보았지만 그 말들도 마찬가지였다. 먼길을 오느라 말들도 맥이 진한것이였다. 우리는 토의끝에 주변마을로 달려갔다.

한밤중이였지만 사연을 들은 마을인민들은 앞을 다투어 집에서 부리던 소들을 끌고나왔다. 소가 없는 사람들은 길량식들을 가져다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그들은 우리를 도와 마식령고개마루까지 소를 함께 몰았다. 우리가 고개를 내리는것을 보고서야 그들은 마을로 되돌아섰다. 우리는 이렇게 가는 곳마다에서 인민들의 지성어린 원호를 받으며 어느덧 직동령에 이르게 되였다. 직동령을 넘어서자 우리는 사단에 도착정형을 보고하였다.

부대에서는 우리에게 즉시 포를 고지우로 끌어올릴데 대한 명령을 주었다.

적들이 매일과 같이 수만발의 포탄과 폭탄을 퍼붓고있었지만 1211고지의 뒤쪽기슭에서 중턱까지는 그때까지도 참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울창하였다.

그 수림속으로 포를 끌어올리자면 부득불 낮에 기동하여야 하였다.

우리는 숲속에서 칡넝쿨, 다래넝쿨 등을 걷어다 끌바를 만들었고 참나무가지들을 쳐서 목도채를 만들었다.

천연수림속은 빈몸으로 빠져나가기도 힘들었다. 그속으로 포를 끌어올리자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더우기 적들과 대치하고있는 곳이여서 언제 어떤 정황이 조성될지 모르는 상태였다.

우리는 한치한치 고지를 톺아올랐다. 오르다가는 미끄러지고 또 오르다가는 미끄러지고…

얼마쯤 지나 휴식구령이 내렸다. 나의 눈에 곁에 앉은 한 전사의 어깨에 벌겋게 피가 내배인것이 보였다. 다른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성한것은 오직 나 혼자뿐이였다. 한 전사가 나에게 함께 포를 끌었는데 어떻게 어깨가 그렇게 성한가고 물었다. 나는 말없이 군복앞섶을 헤치고 떡살이 진 어깨를 보여주었다. 전사들의 눈은 휘둥그래졌다.

그들에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해방전 나의 아버지는 림산로동을 하였다. 늘 칠성판을 등에 지고 사는 사람들이 처서군들이였지만 수입은 그야말로 보잘것이 없었다. 아무리 뼈빠지게 일을 해도 가족들은 하루에 죽 한그릇조차 변변히 먹지 못하였다. 집안의 맏이였던 나는 하는수없이 14살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산판에 올랐다. 밤이면 우리 집에서는 울음소리가 울리군 하였다. 나는 벗겨진 어깨가 아파 울었고 부모는 철부지 어린 자식에게 책가방이 아니라 통나무를 메우는것이 가슴아파 눈물짓군 하였다. …

《그것이 어찌 당위원장동무의 과거뿐이겠습니까. 나라가 없었던탓에 우리모두가 그렇게 살았지요.》

《옳습니다.》

전사들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포는 다시 고지를 향해 치닫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수림속을 벗어났을 때에는 중낮이였다. 고지의 정점까지는 불과 몇백m…

그러나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고지의 상공에서는 항시적으로 적포지휘기가 맴돌고있었던것이였다.

나는 공개당총회를 가질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1211고지의 수림속에서 10여명의 당원들과 민청원들의 참가밑에 공개당총회가 열리였다.

전사들은 앞을 다투어 토론에 참가하였다. 그들은 마지막한사람이 남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이 직사포를 고지우에 끌어올려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하자고 하였다. 결사의 각오를 안고 나선 사람들의 힘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다. 우리는 끝끝내 포를 1211고지우로 끌어올리였다.

그날 밤 우리의 직사포가 적의 진지들을 향하여 첫 불소나기를 퍼부었다.

해발 1 000m가 넘는 고지우에서 울리는 직사포의 포성, 그 장쾌한 뢰성에서 보병들이 승리의 신심을 더욱 굳게 가다듬을 때 우리 포병들은 인류전쟁사에 처음으로 직사포를 고지우에 끌어올린 전설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기쁨과 함께 우리를 위훈의 무대에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정으로 가슴이 한껏 달아올랐다.

                                                                                                 전쟁로병  최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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