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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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도 설레임을 삼가하는듯 했다.
그날 사령관동지께서는 총을 바치고 고향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대원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시였으나 한명도 없었다.
《내 죽으면 죽었지 사령관동지와 동지들을 버리고 집으로 갈수 없소.》
《쫄라병이 심해져 정 운신하지 못하면… 짐이 되면 그땐 날 쏴주시오. 총탄 한알이면 간단히 해결될텐데…》
《정위, 이거 무슨 롱말을 이렇게 하슈. 내가 뭐 림가놈의 십륙촌쯤이나 된다고 보는게 아니우? 허허허…》
한편
…길림의 노조에《토벌》사령부와 신경의 관동군사령부는 림수산의 변절투항으로 우리 혁명군안에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의기저상과 패배의식, 호상불신의 기운이 창궐하리라 타산할것이다. 그리고 림가가 넘겨준 정보에 따라 작전방안들을 재검토, 새로운 지침을 세우고 대대적인 공세로 나올것이다. 우선 우리 주력군에서 멀리 떨어진 저 장백산줄기의 계곡들에 산재한 밀영들에 대한 소탕작전이 곧 벌어질것이다. …
사령부천막곁에서
경위중대장은 주변에 부대들이 배치되여있기때문에 별일이 없을것이라고 안심시키며 그러나 위장은 인차 더 하겠노라고 했다. 박포리는 심중한 얼굴로 의견을 듣고는 저 변절자놈때문에 이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빨리 옮기면 옮길수록 좋다고 하며 좋은 자리를 봐두었느냐고 물었다.
박포리는 거기가 제일 안전하다고 선뜻 동의해나섰다. 그는 다 꾸려놓은 다음 사령관동지께 보고하자고 하며 경위중대의 대원 두명을 데리고 자연동굴속으로 들어가 작업을 시작하였다.
허약자들이 잠자리밑에 깔았던 락엽들이며 마른풀가지들과 새초들을 쓸어내고 밖에 나가 퍼담아온 마른 흙을 그 자리에 펴고 발로 다지였다. 박포리는 어느새 벌써 통나무걸상과 탁자를 만들어가지고 들어와 동굴벽에 붙여놓았다.
그때였다. 어딘가 멀고 가까운데서 총소리들이 울려왔다.
《정숙이, 〈토벌〉이다. -》
그 다음에는 무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동굴속에서 뛰여나왔으며 어떻게 사령부쪽으로 달려가는지 아실수 없었다. 그저 온몸이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날아가는듯싶고
(아, 아-
저 웃쪽에서 끓어번지는 총소리들이 먼 우뢰소리처럼 들리고 번개불처럼 펑끗거리는 섬광에 사령부천막의 희누런 지붕이 언뜻거렸다.
(아, 어째… 어째… 좀더 일찌기… 낮에 옮기지 못했는가. 다 내 불찰이다. 내탓이다. 아- 아-)
사령부에 도착한
진대통과 바위돌뒤에 엎드려 맞총질하는 경위대원이나 경위중대장한테 물어봐도 몰랐다. 놈들은 오른쪽 산비탈중턱에서 내리쏘고 경위대원들은 골바닥에서 올리쏘고있었다.
갑자기 사격이 뜨음해지는것 같더니 오른쪽 산비탈중턱에서 웬자의 째지는듯 한 웨침소리가 울렸다.
《여- 쏘지 말라.- 내가- 왔다.- 참모장이-다.- 너희들을 데려가자구- 왔-다. 혁명군은 다 망했- 다.- 쏘련과- 일본이- 손을 잡았-다. 귀순하라.-》
(아, 저놈이… 림가놈이… 《토벌대》를 끌구왔구나!)
바로 그때 왼쪽 산비탈중턱에서 모든 소음을 제압하며 오백룡이 내지르는 무서운 노성이 터져올랐다.
《숨어서 소리만 치지 말구 내앞으로- 여기로 오라. 못 오겠으면- 거기- 서있으라.- 내가- 간다.-》
그런데 적들쪽에서는 총소리 한방 울리지 않았다. 잡관목들이 와슬렁대는 소리, 돌이 굴러내리는 소리… 그러다 정적… 뚝 멎어서 뒤를 돌아보시는데 골짜기와 산비탈… 온 누리가 획 돌아가는 환각과 함께 귀안에서 윙- 하는 소리가 울렸다.
《경위중대- 추격하라 -》
그날 놈들은 범인의 상상이 미칠수 없는
저녁식사후
녀전사는 구리주전자를 탁자우에 얼른 놓고 도로 뛰여나가시여 여벌로 간수해두었던 새 군복상의를 안고들어와
경위대원 두세명이 놀라서 달려왔다.
적탄이 사령관동지의 군복을 뚫었다.… 그 소식은 대원들의 입과 입을 거쳐 순식간에 부대들에 퍼져 열화같은 분노가 터져오르게 했다. 복수하자, 천배만배로, 변절자에게 죽음을!… 어느 부대들에서나 사람들의 분노가 용암처럼 끓어번지다가 처단, 처단조라는 하나의 곬을 따라 불길처럼 내뻗쳐 지휘관들로 하여금 사령부로 달려가게 하였다.
×
길게 늘어선 행군종대가 울창한 밀림속을 묵묵히 누벼나갔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사령관동지께서는 행군종대의 앞장에서 상반신을 앞으로 숙일사 하고 억척스럽게 걸어나가시였다.
회암산밀영에로의 주력부대진출이 좌절된 조건에서 금후 어느 방향으로 나가 어떤 작전을 펼칠것인가를 시급히 결심하셔야 했고 그에 앞서 《토벌》이 미칠수 없는 안전처로 빠져나가 며칠 묵으면서 림가의 변절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지며 그 견해를 일치시키고 각자가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을 철석같이 다지도록 정치토론을 벌려야 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환하였다. 그 희푸르스름한 달빛이 거목들의 가지들사이로 각광처럼 뻗쳐내려 지나가는 대원들의 얼굴을 언뜻언뜻 비쳤다. 울분에 찬 얼굴, 비장한 얼굴, 저주와 원한, 처절한 감정이 서린 얼굴, 끌날같이 번뜩이는 눈, 우수에 젖은듯 한 눈… 거치른 숨소리가 수림속에 흘렀다. 한마디 말도 없는 대오가 움직여갔다.
갑자기 8련대 행군종대의 후미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가슴을 찢는 신음소리, 떠들어대는 소리, 그쪽으로 달려가는 발자욱소리… 수림도 경악한듯 와스스… 설레였다.
정치위원 박덕산이 헐떡거리며 황황히 다가가보니 평소에 말이 없고 삐여진데라고는 전혀 없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수 없던 존재 마영복이라는 대원이 길가에 웅크리고앉아 무섭게 딸꾹질을 하며 열물을 토하고있었다.
한명찬소대장을 비롯한 대원 서너명이 그를 둘러싸고 배낭을 벗기고 잔등을 두드린다, 배를 문질러준다 야단법석을 떨었다.
《에익, 음식에 체했단 말이야. 체했어!》
《넨장, 급하게 먹으니까 그렇지!》
《아유- 아유-》
《다 토하라. 다 토해야 시원해. -》
《여, 여- 손가락을 입안에 들이밀어! 어서- 목젖밑에까지 쑤시란 말이야!》
마영복은 왈칵하고 두번 더 토하더니 《아유-》 하고 울음섞인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모재비로 쓰러졌다.
《야, 누우면 안돼. 자, 자, 일어나자구!》
《아유-》
《말몰이를 했다면서 그것두 몰라? 말이 체하면 냅다 뛰게 하지 않는가. 그럼 쑥 내려가!》
《영복이, 영복이, 일어나 걷자. 걸어야 쑥 내려가!》
그리고는 모두 달라붙어 그를 안아일으키고 부축하였다. 마영복은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그들을 와락 뿌리쳐버리고는 나무그루를 붙안고 애원하였다.
《아유- 아유- 난… 난… 못 걷겠소, 걷지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쏴주시유, 잔등에 철알 한두발만 박아주시유. -》
《뭐라구?-》 하고 박덕산이 발을 탁 구르고는 달려들어 우격다짐으로 그를 닁큼 업었다. 그리고는 억척스럽게 걸어나갔다.
행군종대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 그냥 묵묵히 움직여갔다.
대오의 앞장에서 걸어가던 사령관동지께서는 뒤쪽에서 분명히 무슨 일인가 있은것 같아 옆으로 비켜서서 그쪽을 돌아보시였다.
행군종대는 잔파도가 일다가 잦아든 강물처럼 유유한 흐름으로 움직여오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속에서 누구보다도 얼굴빛이 심각한 박주호소대장을 띄여보고 그와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해보시였다.
《힘들지 않소?》
《괜찮습니다. …》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소?》
《기막힌 생각만 들었습니다.》
《기막히다?!…》
《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혁명군을 하늘처럼 믿구 지원해온 인민들이… 특히 국내인민들이 이 일을 알면 얼마나 상심하구 손맥이랑 풀리겠습니까.》
《그렇소. 그렇단 말이요. 그래,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글쎄말입니다. 저두 속에서 불이 이는것 같습니다.》
《주호동무, 한번 세상을 들었다놓을만 한… 보천보를 들이친것만 한 싸움을 벌리면 어떻겠소?》
《사
《그렇소. 그게 주호동무 생각만 아닐테지?》
《그렇습니다. 모두가 그걸 바랄겁니다.》
그러다가 박주호는 말을 이었다.
《사
《그건 왜?》
《참모장의 그림자나 같았지요. … 망원초에서 사지를 빠져 찾아온걸 보니 그럴 생각이 싹 없어졌습니다. …》
《음…》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밤 박주호뿐만아니라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끓어번지는 가슴을 안고 행군하고있다는것을 온몸으로 느끼시였다.
그날 밤의 행군은 주력부대의 기계적인 위치이동이 아니였다. 그것은 분노와 저주, 뼈아픈 반성과 번민, 분발심과 복수심… 열화와 같은 심혼의 줄기찬 흐름이였다.
거목들의 가지들사이로 각광처럼 뻗쳐내리는 희푸르스름한 달빛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얼굴들, 끌날같이 번뜩이는 눈, 우수에 젖은듯 한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