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이룰수 없는 꿈
3
도적쥐처럼 기여들었던 왜놈들은 자기들의 배가 삼단같은 불을 안고 가라앉는것을 보자 살아갈 길이 막힌것을 알고 사생결단 달려들었다. 놈들은 수적으로 아직 최천복두령의 《산당》패보다 많았다.
바다가에서 마지막백병전이 벌어졌다. 왜놈들을 마지막 한놈까지 다 족쳐버렸을 때는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산당》사람들도 많이 희생되였다. 김을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최천복두령의 머리를 무릎에 베우고 그의 가슴에 입은 상처를 싸매였다.
《잘들 싸웠네. … 이제는… 어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이자리를 뜨게. … 린접고을군사들이 올 때가 되였네. 우리가 목숨을 두려워… 하지 않구 왜놈… 들… 과 피흘려… 싸…웠…지만 관군이 오면 오히려… 우리를 붙잡… 으려… 들걸세. … 빨리 새 웅거지루…》
최천복두령은 이렇게 당부하고 숨을 거두었다.
김을지는 《으흐흐―》 하고 오열을 터뜨리였다. 사람들이 풀썩풀썩 오금을 꺾으며 최천복두령을 겹싸안았다. 그 피눈물이 어린듯 새벽노을이 피빛으로 타올랐다.
바로 이때였다. 별안간 말을 탄 영아가 소나무숲을 질풍처럼 꿰질러나오면서 소리쳤다.
《여―보― 관군이 달려들어요!― 어서 칼을 드세요!―》
다급하고도 담차고 그러면서도 저주에 찬 목소리가 피비린 대기를 뚫고 화살처럼 날아왔다.
김을지는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났다. 최천복두령의 말이 옳았다. 관군이 포위환을 치고 달려들고있었다.
《여보―오―》
김을지는 안해의 부름에 맞받아 웨치면서 칼을 들었다. 엎드려 울던 사람들도 일제히 창과 칼을 들고 우뚝우뚝 일어섰다.
그러나 스물서넛밖에 남지 않았다.
또 때가 너무 늦었다.
벌써 관군의 메뚜기날개같은 더그레자락이며 산수털벙거지들이 풀숲에 까맣게 보이고 창과 칼을 든 놈들의 이지러진 이목구비를 알아볼수 있게 되였다.
《여―보―》
영아는 목청껏 남편을 불러 찾으며 포위환의 뒤로 말을 몰아 관군을 족쳐대며 김을지네를 향해 달려왔다.
《오―야―》
이번에는 《산당》사람들이 목소리를 합쳐 대답하며 관군을 맞받아 짓쳐나갔다.
영아는 사지판에 한몸을 내대는 김을지의 안해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누이였고 아주머니였으며 어머니와도 같았다. 그의 목소리는 정다운 누이의 목소리였고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때문에 그의 피타는 부름에 피가 끓어 우렁차게 호응하였으며 죽더라도 저 녀인 하나만은 살려내야 한다는 사나이들의 의기로 창과 칼을 휘둘렀다.
우뢰가 우는 그들의 칼은 관군을 삼대베듯 하였다. 피가 터지고 비명이 터지고 살점이 날았다.
김을지의 칼은 번개와 같았다. 향방을 알길없는 칼끝에서 관군의 목이 락엽처럼 무수히 떨어졌다.
싸움터는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일어난것처럼 보였다.
영아는 어떻게나 말을 잘 다루는지 앞발을 공중거리고 일으켰다가 관군을 내려찧기도 하고 이리저리 짓쳐몰아 놈들을 닭무리 쫓듯 하면서 전후좌우로 칼을 휘둘렀다.
말도 주인의 뜻을 아는지 뒤로 달려드는 놈들을 뒤발로 차버리였다.
영아는 날이 밝아오기전까지도 고을고개마루에서 성덕이를 데리고 돌아오지 않는 《산당》사람들을 일각이 천추처럼 기다리고있었다.
필경 싸움이 어렵게 되여 지체되는것 같아서 매우 불안스러웠다.
아아― 제발 무사했으면, 누구도 상하지 않고 죽지 않고 돌아왔으면… 그는 이같은 열망으로 가슴이 다 타버리는것 같았다.
날이 샐무렵 웬 녀인 하나가 고개마루에서 허둥지둥 올라오는것이 보였다.
숲속에서 내다보니 녀인의 치마저고리는 여기저기에 감탕이 묻어져있고 저고리고름은 떨어져나갔다. 녀인은 불타는 고을에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쳐나온것 같았다.
영아는 거기소식을 알고싶었던차에 마침 잘되였다고 생각하였다.
《여보세요, 어서 이리로 와요.》
장영아가 한발 나서서 자기도 피난민이라고 하자 녀인은 《고마와요.》 하고 안심하듯 숲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무데나 풀썩 주저앉았다.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듯이 한동안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난 고을기생이예요. 간밤에 왜놈들이 조정에서 내려온 안무사와 나를 잡아다가 왜선밑창에 가두고 안무사가 보는 앞에서 내 몸을… 그 지랄을 해보자고 덤벼치는데 난데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린것처럼 한 젊은이가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주었어요. 그 사람이 나랑 안무사랑 닁큼닁큼 들어서 갑판우에 집어던지겠지요. 힘꼴이 항우같았어요. 배우엔 왜놈들의 시체가 너저분했어요. 그 거인같은 사나이는 왜놈의 배를 불지르고 배를 내려 뭍에 오른 왜놈들과 싸우러 갔어요. 우리도 그사람을 따라 내리는데 글쎄… 아이, 끔찍해라. …》
녀인은 제가 겪은 무섭고 치떨리는 일을 아무한테나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썩어 문드러질것 같은지 말을 이어나갔다.
《안무사라는 놈이 붙잡혔을 땐 왜장에게 한번만 살려달라고 빌더니 젊은이한테 구원된 다음엔 죽은 왜장의 대가리를 보물처럼 싸가지고 내려요. 그 안무사가 사람같지 않더군요. 그에 비하면 우리를 살려준 박대산이라는 사람은 참말 영웅호걸이라니까요. 지금은 김을지라구 부른댔어요.》
《뭐 박대산? 그가 김을지라는것을 어떻게 알아요?》
《그 사람들이 서로 말하는것을 듣구 또 안무사가 그러더군요.》
녀인은 제가 보고들은것을 다 이야기하였다.
《안무사와 나는 제 목숨들이 두려워 소나무숲에 숨어서 그 사람들이 왜놈들을 족치는것을 보았어요. 나도 그들을 도와 왜놈들과 싸우고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래, 그다음엔 어떻게 되였어요?》
영아는 가슴이 활랑거리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숱한 왜놈들이 부지기수루 죽구 우리 사람들도 많이 상했나봐요. 싸움이 끝날무렵에 안무사란 놈은 능글능글 웃으면서 말했어요. 〈저 김을지패당이 왜놈들을 쳐이긴다. 이제는 우리 관군이 김을지패당을 쳐버릴차례다. 김을지만 잡으면 복이 쌍으로 들어온다. 〉 하고요. 그런 다음 나를 강제로 끌고 고개길을 향해 오다가 고개아래 갈림길에서 린접고을 군사들을 만났어요. 안무사는 관군을 데리고 고을로 되돌아갔어요. … 그 씩씩하고 의로운 사나이들이 왜놈을 치면서 피를 흘리고 힘이 빠지고 약해진 틈을 타서… 관군이 그들을 쉽게 칠거예요.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살려준 은혜를 원쑤로 갚는 안무사란 놈을…》
기생은 자기를 구원해준 고마운 사람들이 원통히 죽게 된 일이 가슴아파 눈물을 흘리였다.
《뭐요? 그게 정말이예요? 아니… 그럼 그것을 빨리 알려줘야 할텐데…》
영아는 급급히 녀인에게 말하였다.
《여보세요, 부탁해요. 그 김을지란 사람은 이애의 아버지예요. 내가 그 사람들에게 갔다가 올 동안 아이를…》
《그러면 아주머니는 그 사람의 안해인가요?》
《네.》
《아이구나! 내가 나를 구원해준 사람에게 조금이나 은혜갚음을 하게 되였네요. 어서 가봐요. … 아이는 걱정말구. 어서!》
《고마와요.》
영아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말안장에 훌쩍 뛰여올랐다.
새매는 껑충 놀라 주인이 이끄는대로 고개아래로 질풍처럼 내달렸다.
《엄마!―》
성덕이는 애처롭게 엄마를 부르며 발을 굴렀다. 영아는 이렇게 아들애의 목소리를 등뒤에 들으면서 생사를 판가리하는 이 싸움터에 왔던것이다.
《산당》사람들이 관군의 포위환을 한겹 쓸어눕히면 또 한겹이 달려들고 또 쓸어눕히면 뒤의 놈들이 겹겹이 덤벼들었다.
《악―》, 《악―》 찌르고 막는 소리가 반공중에 가득찼다.
김을지와 《산당》사람들은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싸우면서 하나, 둘 쓰러졌다.
나중엔 김을지와 영아만이 남았다. 마지막끝까지 싸우던 억쇠와 최서방도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문득 어떤 놈의 세모창끝이 새매의 목에 면바로 꽂혀들었다. 새매가 꼬꾸라졌다.
영아는 말과 함께 땅에 딩굴었다.
김을지는 《여―보―오―》 하고 목놓아 웨치면서 귀중한 안해를 안아 흔들었다.
《사로잡아라.》
리사균이 악청을 뽑았다. 이때라 관군들이 벌떼처럼 덮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