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등문고(1)

14

 

세종의 총애속에 상호군의 높은 벼슬에 올랐던 장영실이 왜 하루아침에 옥에 갇혔는지 그 뜻밖의 사건을 좀더 자상히 이야기하자.

… 세종은 장영실이 만든 련을 타고 한번은 온양온천을 다녀왔고 또 한번은 한성밖 교외에 다녀왔었다. 련은 타면 탈수록 세종의 마음에 들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그 어느 거치른 길을 가도 련이 편안하여 피로를 덜 느끼였다.

세종은 종묘(력대 임금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 참배할 준비를 갖추도록 례조에 지시하였다. 타고갈 련을 강령전뜨락에 가져왔다. 호종하는 군사들과 내시들이 행사때마다 매번 그랬던것처럼 이번에도 련이 안전한가를 검열하였다.

세종은 문무백관들을 거느리고 련앞으로 나왔다. 련이 볼수록 훌륭한듯 잠간 서서 돋을무늬로 룡을 형상한 황갈색의 멜채며를 흐뭇이 바라보았다.

세종이 무엇보다도 값있게 본것은 련이 가볍고도 탄탄하게 만들어진것이였다. 다음은 때에 따라 4인교 또는 8인교 혹은 16인교로도 될수 있도록 설계되고 제작된것이다. 그와 함께 가는 길이 평탄치 않아도 좌석의 수평이 보장되게 하여 임금의 몸이 좌우로 기울지 않도록 하고 고개길을 오를 때나 내릴 때 몸이 뒤로 제껴지거나 앞으로 숙여지는 일이 없도록 만든것이다.

3정승이하 모든 재상들이 장영실의 발명품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드디여 세종이 기쁜 마음으로 련에 올랐다.

련이 경회루련못가를 에돌아갈 때까지도 아무렇지 않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련이 대궐문턱을 넘어서려는 그 순간에 돌연 큰 돌개바람이 일었다. 행차를 멈춰세우고 련을 안전하게 하려고 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삽시에 흙먼지와 모래를 뽀얗게 말아올리며 돌개바람은 더욱 세차졌다. 교군들은 눈을 뜰수 없었고 숨을 쉴수 없었다. 지어는 호종군사의 전립과 따라나섰던 관리들의 갓이 돌개바람에 말려 하늘공중에 까마득히 날아나고 어느 처마에서 기와장이 날아떨어졌다.

련의 비단풍막이 풍랑을 만난 배의 돛폭처럼 금시 찢어질듯 팽팽히 불어나 교군들을 사정없이 이리저리 떠밀어버렸다. 교군들이 비칠거리였다. 어느 한 교군이 멜채를 놓쳐버리고 쓰러졌다. 그 순간에 멜채가 문턱에 세차게 부딪쳐 부러졌다.

임금이 련밖으로 굴러날번 하였다. 무서운 사고였다. 다행히도 세종이 다친데는 없었지만 이런 변괴는 고금에 없는 일이였다.

임금의 행차는 끝내 되돌아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처음에는 모두가 임금의 련이 파손된것은 뜻밖에 큰 돌개바람을 만난탓이라고 하였다. 돌개바람이 아니였다면 교군이 어찌 멜채를 놓치고 쓰러졌겠는가 하였고 행차전에 련의 안전을 검열한 호종군사들과 내시들조차 련이 파손될 념려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여론은 장영실에게로 쏠리였다.

《련이 파손되여 상감마마를 크게 놀래웠으니 이 일을 어찌할고.》

《장영실이 무사치 못하리로다. 임금의 련을 허술히 만드는 법이 어데 있노…》

아침까지만 해도 련을 돌아보면서 임금의 비위를 맞추어 함께 기뻐하던 대신들중에도 태도를 돌변해서 자기들만이 충신인체 하는자들도 있었다.

대궐안팎으로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다음날 아침부터 삼사대간들이 때를 만난듯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장영실이를 심문할것을 청하였다. 사헌부, 사간원은 공동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임금을 안전히 모시는것은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는 계책중에서도 첫째가는 계책이옵니다. 이번에 장영실은 상감마마께서 자기를 알아준다고 극도로 교만해진 까닭에 임금의 련까지도 허수히 만들어 임금과 신하, 백성들을 크게 놀래웠습니다. 천우신조(하늘과 신의 도움)가 없었던들 상감마마의 신상에 어떤 재변이 생겨날지 예상치 못할줄로 아옵니다.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가슴이 떨리옵니다. 이같은 사고는 이전 고려왕조에서도 있어본적이 없었고 다른 나라에도 없었습니다.

이번 재변에 온 나라 백성들과 신하들이 치를 떨고 장영실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조야에 사무쳐있습니다. 계족(조상이나 부형의 재주 또는 업적을 이은 사람)도 아닌 관노출신이 성은을 입어 상호군의 높은 벼슬에 올랐으면 언제나 행동을 조심하고 충의를 다해야 하나 임금의 련까지도 한두번 행차에 부러지게 만들었으니 장영실은 죽어도 제가 저지른 죄를 씻지 못할것이옵니다. 장영실을 가두고 심문하기를 바랍니다.》

그 이튿날 의금부에서 글을 올렸다.

《…관노출신 장영실은 본래 자그마한 재기가 있다고 하여 행동이 경솔하고 천품이 경박하옵니다. 이런자를 높은 벼슬에 그대로 두고 이러니저러니 할수 없는줄로 아옵니다. 장영실은 임금을 해칠 역적죄를 제스스로 만들었으니 그 본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자백하지 않을수 없도록 고문과 심문을 하기를 바랍니다.

장영실을 먼저 벼슬에서 내쫓고 본래의 관노신분으로 내친 후에 참형하오며 그와 련좌하여 리천 양녕대군의 령지에 사는 그의 누이동생 장영아도 본래의 관비로 되돌려보내야 할것입니다. 장영아의 남편 박대산이는 양녕대군의 생명을 구원해준 공적을 고려하여 그대로 두고 볼것입니다.》

이와 같은 글들은 며칠간 련이어 올라왔다.

세종은 딱한 처지에 놓였다. 임금의 어지를 받들고 나라의 문물발전에 혼신을 다 바쳐온 장영실을 처벌하기는 차마 못할노릇이였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것중에 어느 하나도 임금의 기쁨이 되지 않은것은 없었다.

얼마전에 만든 측우기는 또 얼마나 훌륭한것인가. 해시계, 혼천의, 자격루, 옥루기륜… 나라의 천문학에도 후세에 길이 빛날 공적을 쌓았고 20만자나 되는 갑인자를 제조하여 인쇄기술을 발전시키였고 화포를 비롯하여 정교한 무기를 만들어 군사기술발전에서도 큰몫을 담당하였었다. 또 박연과 더불어 여러가지 악기를 창안제작하여 나라의 음악을 갖추는데서도 그의 공적은 누가 대신할수 없는것이다. 다재다능한 기술자, 발명가, 과학자는 백년에 하나도 나올지말지한 귀중한 나라의 보배다.

세종은 대간들이 올린 글을 앞에 놓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이하여 이 장영실에게는 형벌을 받지 않으면 안될 《죄》가 따라다니는고. 과인이 벌써 두번이나 그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았더냐.

장영실! 이 사람에게 이러히도 가혹한 벌을 내릴수 있단 말인가. 과인의 정사를 빛내주는 이 사람을…

이번에 련이 파손된것은 그가 잘 만들지 못해서가 아니라 일진광풍이 일어나 어쩔수없이 초래된 사고이다. 임금인 과인도 련을 돌아보면서 얼마나 만족히 여겼던가. 허지만 련이 파손되고 임금자신이 련밖으로 굴러날번 했으니 어찌하겠는가.

세종의 인간심리로서는 장영실을 용서해주고싶었다. 련을 만드는데 쏟아부은 장영실의 충효지성을 모르지 않았기때문이다.

세종은 왕명으로 대간들의 글을 무시하고 무죄를 선포하고도싶었다. 임금이 대간들의 제의에 동의치 않으면 장영실을 구원할수 있다. 임금의 말 한마디는 곧 국법으로 되는것이다.

(아, 어이할고…)

장영실에게 죄를 준다면 그를 직접 발탁하고 높은 벼슬을 주면서 이날이때까지 스무해 가깝도록 돌봐준 자신의 노력이 졸지에 물거품처럼 사라질것도 가슴에 걸렸다.

그는 오랜 정승 황희와 이 문제를 의논해보고싶어졌다. 황희라면 죄를 면제해주고싶은 자기의 마음을 리해하고 지지해줄것만 같았다. 황정승도 인재를 아끼는 사람이다.

처음에 장영실을 발탁할 때에도 조정관리들이 다 반대하였지만 황정승만은 임금의 의사를 존중하였다. 그랬더니 그후에 장영실이 얼마나 많은 발명품을 내놓아 나라의 슬기를 빛내였더냐. … 그를 높이 등용한것은 잘한 일이였다. 허나 나중에 일이 이렇게 번져질줄 누가 알았더냐.

세종의 부름을 받고 황희가 들어와 아뢰였다.

《장영실이 충의가 깊고 재능이 있다 해도 임금을 위험토록 했사오니 죄를 피할수 없는줄 아옵니다. 그를 대신할 인재가 아직은 이 나라에 없으나 국법을 굽힐수 없나이다. 본뜻이야 어떻든 일의 결과가 임금을 해치는 죄를 빚어냈사옵니다. 아까운 사람을 잃게 되여 저희들의 마음도 그지없이 괴롭나이다. 그를 죽이되 우대하여 사약을 내리면 인재를 귀히 여기는 임금의 도량을 널리 보여주고 그가 아무리 공로가 있다해도 임금의 신변에 사소한 위험이라도 끼친 죄에 대해서는 누구나 용서할수 없다는 절대의 의지를 보여주게 될것이옵니다.》

황희가 물러간 다음에도 세종은 장영실의 형벌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의 의견대로 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지꿎은 대간들과 관리들의 제의에 답변해야 하였다. 그는 비로소 붓을 들었다.

《너희들이 말하는것처럼 장영실에게 형벌을 심히 할수 없다. 련이 마사진것은 교군들이 큰 돌개바람에 넘어진탓이다. 그를 심문하되 고문은 불허하노라. 형벌은 그의 말을 들어본 다음에 적용해도 늦지 않다.》

이리하여 장영실이 의금부 옥에 갇히워 련 사흘 심문을 받게 되였다. 고문은 받지 않았으나 그보다 더 심한 모욕을 받았다. 천한 노비신분출신이 감히 임금을 어찌하려고 했느냐? 겉으로는 련을 잘 만든것처럼 사람의 눈을 속이고 안으로는 사고를 내도록 계교를 꾸미지 않았단말이냐? 이실직고하라. 련이 마사진것은 바람탓이 아니라 너의 교활한 심보탓이다. 어서 바른대로 직언하라. 무슨 심보로 련을 허수히 만들었느냐?

이런 심문에 장영실은 언제나 하나같이 잘못을 자기자신에게서 찾아 대답하였다.

《소신의 죄는 죽어 마땅한 죄오이다. 온 세상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임금의 련은 끄떡없어야 하옵니다. 련이 마사지고 상감마마께서 굴러떨어진것은 련을 드팀없이 만들지 못한탓이오이다. 제가 천벌을 받아야 하오이다. 상감마마의 성은에 이렇게 보답했으니 죽음으로 속죄하겠나이다. 이번에 저의 죽음이 일후에 임금을 잘 모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징계할수 있다면 다른 여한이 없나이다.》

의금부관리들이 며칠을 두고 심문해도 장영실의 대답은 꼭같았다. 그는 자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였다. 용서를 바라지도 않았으며 련을 만드는데 함께 참가하였던 선공감의 관리들과 장공인들에게도 죄를 조금도 넘겨씌우지 않았다. 그는 자기자신이 자기를 마음속으로 심판하였다. 끝까지 죽음으로 죄를 씻고싶었다.

세종은 장영실을 심문한 글을 읽으며 장영실이 죄지을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다시 깨닫게 되였다. 그러나 세종의 뇌리에는 그가 아무리 공로가 크다 해도 임금의 신변에 위험을 끼쳤을 때에는 누구도 용서할수 없다고 한 황정승의 말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처형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다. 장영실은 앞으로 더 많은것을 만들어 과인의 덕망을 빛내줄 사람이 아닌가.

문득 장영실이 련을 만들고있는 일터를 찾았던 일이 떠올랐다.

그곳은 임금이 다닐만 한 장소가 못되였다. 허지만 그것을 개의치 않고 작업장에 이르러 열려져있는 문안을 슬며시 들여다보았었다.

장영실은 뙤창앞에 놓인 탁상우에 종이를 펼치고 무엇인가를 쓰고 지우기도 하더니 《옳지, 이렇게… 옳지, 인젠 됐다.》 하고 저 홀로 중얼거리면서 잽싸게 붓을 들어 무엇인가를 그리였다. 그는 문밖에서 누가 자기를 보고있는지도 몰랐다. 임금을 보좌하여 함께 간 리천은 장영실이 고개를 들기를 기다리다가 문턱을 넘어서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상감마마께서 오시였다는것을 가만히 알리였다.

그때에야 장영실은 갑자기 나타난 리천을 보고 반갑게 절을 하였다. 리천은 절을 받을념을 못하고 그에게 재삼 상감마마께서 친림하셨다고 귀띔하였다.

《예? 대감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니까?》

장영실은 잠을 못자서 붉게 충혈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어리둥절해하였다.

《상감마마께서 오셨네. 어서 의관을 갖추고 상감마마께 문안드리게.》

장영실은 비로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문쪽을 바라보았다. 참말 거기에 임금이 서있었다.

그는 황급히 옷깃을 바로 잡고 말코지에 걸려있는 갓을 쓰고 급급히 문앞으로 나아가 임금의 발치에 엎드리며 《상감마마, 상호군 장영실이 문안드리옵나이다.》하고 감격을 이기지 못해하였다.

《오냐, 그동안 잘 있었느냐?》

세종은 빙그레 웃으며 일밖에 모르는 장영실의 체소한 몸을 굽어보았다.

《상감마마께옵서 어이 이런데까지 래림하셨나이까. 황감하오이다.》

《허허, 그대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왔니라. 그래 련은 잘되여가느냐?》

《네, 다 완성되였나이다. 지금 장공인 두사람이 마감색칠을 하고있사온데 지금은 다 끝냈을것이옵나이다.》

장영실은 임금의 련이 훌륭하게 완성되여가는것을 기쁘게 그려보면서 대답을 드리였다.

《그런데 그대는 또 무엇을 하느라고 사람이 곁에 와도 모르느냐?》

《네, 나라에 긴요한것을 또 하나 만들어내게 되였사와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만사부지였던가 보옵나이다. 상감마마, 화포알이 나가서 목표물에 떨어지면 그 화포알이 터지도록 할수 있나이다.》

《오, 그참 훌륭하도다. 그러면야 북방오랑캐들을 더 많이 잡을수 있으리라.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발견이로다. 영실이밖에 생각 못할 일이다. 그래 자신있느냐?》

세종은 흥분하여 장영실을 손잡아 일으켜주고 그앞을 왔다갔다하였다.

《네, 좀더 연구하면 반드시 성공할줄로 알고있나이다.》

장영실은 임금이 크게 만족해하는것을 보자 기어이 만들어낼 신심이 생기고 힘이 솟았다.

《상감마마, 장영실이 꼭 만들어낼것이오이다.》

리천도 기뻐서 이렇게 한마디 하고 벙글벙글 웃었다. 그는 지난봄에 장영실이 만든 새 화포 두문으로 압록강을 건너 침습해왔던 북방의 야인무리들을 모조리 쓸어버렸었다. 그래서 새 화포의 위력도 아뢰이고 그동안에 많이 만들어놓았을 새 화포도 더 가져가고싶어서 상경하였었다. 그런데 이번엔 장영실이 화포알이 나가 터지도록 만들겠다니 이 얼마나 희한한 일이냐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날 세종은 장영실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화포알이 날아가 터지는 날을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었다. …

세종은 장영실이 관노로 떨어져 동래로 간다 해도 새 화포알을 만들어내리라고 생각하였다. 새 화포알을 기다려야 했다.

장영실 하나를 살려두면 달려드는 오랑캐들 열놈, 백놈 전수이 쓸어버릴수 있지만 장영실 하나를 죽이면 침노하는 오랑캐들 열놈, 백놈모두를 살려주는것으로 되는 격이다.

세종은 드디여 어지를 내렸다.

《장영실 참형불허, 형벌적용 3등급으로 낮출것.》

이리하여 장영실은 정3품 상호군의 벼슬에서 파직되였으며 형장 30대를 맞고 제 살던 동래현으로 가게 되였다. 그는 높은 벼슬에서 파직되였어도 크게 놀라거나 슬플것도 없었다. 어느때든지 이런 날이 오리라고 여겨져 노비때 입었던 파립을 간수해두었었다.

벼슬에 있거나 노비로 있거나 나라에 유익한 기물을 만들어내기는 마찬가지다.

동래에 가면 먼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와 우리 백성들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덮쳐가고 마소를 략탈해가는 북방오랑캐와 남쪽왜오랑캐들을 짓쳐버릴 새 화포알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임금이 그것을 기다리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발을 절름거리며 의금부의 옥문을 나서서 아득히 구름너머, 산너머 가고가야 할 경상도 동래현을 그려보듯 목멱산하늘가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장영실의 겉모양이 가엾고 불쌍하나 그의 가슴속에서는 새로운 희망이 부풀어올랐다.

(고향으로 가자. 사랑하는 안해 숙이를 데리고 동래현으로 가자. 안해나 남편이나 다같이 신분차이없이 관노, 관비로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좋으랴. 내곁에 숙이만 있으면 된다. 아, 숙이! 숙이는 울며불며 오죽이나 나를 기다려 애간장을 태울가. )

그는 숙이가 기다리고있을 집으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이제 그에게 힘이 되는것은 숙이의 사랑뿐이다. 그와 함께라면 서울에서보다 못지 않게 새살림을 꾸릴수 있다. 동네 마을사람들에게 농쟁기도 만들어주고 논밭에 물을 퍼올리는 수차도 만들고 상감마마와 약속한 새로운 화포알도 만들고 동래군사들에게 더 좋은 병쟁기들도 만들어주고… 해야 할 좋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또 사람들에게 글도 가르쳐주어 까막눈을 틔워주리라. … 어서 숙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자. 그러면 숙이는 재난의 눈물을 눌러딛고 일어서리라.

장영실은 이같은 생각으로 가슴이 설레이였다.

허지만 그는 너무나 뜻밖의 현실에 부딪쳤다. 이미 저 세상으로 간 숙이의 시신만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숙이의 시신이 있는 방을 지켜주고있던 객사의 늙은 관비가 장영실의 손을 잡고 대성통곡하였다.

《아이고… 나리님… 나리님이 이…렇…게 살아나오실…줄을… 모르고 릉지처참…을… 당했다는 말을 듣구…흑흑… 또 자기가… 객사관비로 다시 끌려가게 되였다는… 말을 듣구… 방금전…에… 비상을 먹…구… 자결…하였…사오…니다. 어흑흑… 애고… 숙이야…》

늙은 관비는 비오듯 하는 눈물을 씻을념을 못하고 숙이가 남긴 말을 전해주었다.

《숙이는 나리님이…돌아가…시니…제가 살아…무엇하겠는가구…하였나이다. 상감마마를…지성껏 받들어…오다가 억…울히…죽으니 충신의 넋이 어이 눈을 감겠냐구 하였소이다. 자기도 죽어서…랑군님곁에 가서…나리님의 혼령을 고이…고이…잠재우겠다구… 하고서는 여기에… 랑군님의…옷이…있으니… 이 옷으로…제 시신에 덮어달라고… 그러면 더 바랄것이…없…다고… 하였소이다. … 으흑… 어이구… 숙이야…》

어멈이 울면서 전해주는 말을 끝까지 들은 장영실은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주먹으로 땅바닥을 내려쳤다.

《아, 하늘도 무심코나. 여보―, 숙이― 그대없이 내 어떻게 살겠소. 숙이… 내가 그대를 죽였고나. 이 못난 놈이 숙이, 임자를 죽였고나. 숙이는 어디에 있나이까?》

장영실은 반정신이 나가서 늙은 관비를 따라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갔다.

숙이는 반듯이 누워있었다. 그 어글어글한 큰 눈을 고이 감고 자는듯하였다. 금시라도 《나리님 지금 오시나이까.》 하고 일어나 반겨줄것만 같았다.

장영실은 《여보―》 하고 오금을 꺾으며 숙이를 그러안았다.

《숙이, 이 어찌된 일이요. 응? 여보―》

장영실은 숙이의 머리를 조심히 들어올려 제 무릎을 베여주고는 《내가 왔네. 여보… 눈을 뜨게…응? 여보―》 하며 제 얼굴을 숙이의 얼굴에 맞대다가는 또 그를 그러안고 절통히 숙이를 부르고부르면서 몸부림쳤다. 숙이의 머리맡에 깨끗이 빨아다린 장영실의 상호군관복이 개여져있었다. 죽어서도 남편의 품에 안겨있고싶은 숙이의 소원이 그 옷에 어려있었다. 장영실은 그 옷을 눈물로 적시며 숙이의 몸에 덮어주었다.

《여보, 당신이 이 옷을…》

그는 또 숙이를 그러안고 목놓아울었다. 그 눈물의 소나기속에 떠오른다. 숙이를 자기 집 녀종으로 데려오던 그해 봄이― 수양버들 휘늘어진 객사의 우물가에서 나는 나리님을 자기자신보다 더 사랑한다고 웃던 숙이의 그 모습이― 그걸 어떻게 알아? 나리님이 저를 버리면 저는 죽겠어요. 리치는 간단하오이다 하고 정차게 대답하던 숙이. 봄날에 웃으며 스쳐보냈던 그 말이 무엇이길래 죽음으로 지키였느냐.

어느 놈이 내가 목이 잘리워 죽었노라고 숙이에게 거짓말을 했느냐. 왜? 왜? 거짓말로 숙이를 죽게 만들었느냐― 아… 아… 숙이― 숙이― 장영실은 숨이 꺽꺽 막혀서 제 가슴을 치고치다가 까무라쳤다.

그 다음날.

…숙이가 마당을 지나 사립문을 나섰다. 장영실은 《여보, 어디로 가우.》 하고 급급히 따라갔다. 숙이가 집앞에 흐르는 시내물을 건너갔다.

숙이는 웬일인지 울며 간다. 장영실은 《숙이, 게 서게.》 하고 첨벙첨벙 시내물을 차면서 건너갔다.

숙이가 어느덧 청계천기슭의 언덕을 넘어선다. 장영실은 《여보, 함께 가자구.》 하고 허둥지둥 뒤따랐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장영실의 눈에는 숙이가 보였다.

《나리님, 어서 오세요.》

숙이는 뒤돌아보며 방긋이 웃는다.

《천천히 걷게. 미처 따라가지 못하겠네.》

장영실은 웃으며 중얼거리며 자꾸만 따라갔다.

《동래현으로 빨리 가야 하리다. 거기에 가서 나리님의 옷이랑 빨아드리겠나이다. 나리님이 베잠뱅이를 입고 대궐에 처음 왔을 때 약속한걸 잊으셨나이까. 죽을 때까지 제가 옷을 빨아드리겠다구 하지 않았나이까.》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숙이의 목소리를 장영실은 듣고있었다.

장영실은 이렇게 가고 또 갔다. 숙이를 찾고부르며 거치른 들을 지나고 인적없는 숲을 헤치면서 사랑하는 안해를 따라잡으려고 새벽에도 가고 밤에도 갔다. 그의 옷은 내물에도 젖고 가시나무가지에 걸려 찢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몸에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상처가 났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그는 정신이 나갔던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까지 갔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다만 앞에서 가는 숙이를 따라 산야를 정처없이 헤매였다.

어느날 저녁 그는 마가을 찬비가 내리는 외딴 기슭에 쓰러졌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몸이 쇠락할대로 쇠락하였다. 정신이 혼미하였다.

《숙이, 춥네그려. 응? 여보, 이불을 덮어주게. … 그래… 인젠 되였네. 이불을 덮으니 몸이 따스해지네. 울지 말게. …》

그에게는 얼굴을 적시는 찬비가 숙이의 눈물방울처럼 느껴진것 같았다.

장영실은 빙그레 웃으며 마침내 의식마저 잃고말았다. 그의 생명이 꺼져가고있었다.

바로 이때 《나리님, 어디에 계시나이까―》 하고 목청껏 부르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쪽저쪽 좌우를 돌아보며 《나리니―임―, 나리니―임―》 찾다가는 말을 멈춰세우고 귀를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는 만복이다. 장영실이 홀로 동래로, 바람앞에 초불과도 같은 몸으로 어떻게 가내랴 하고 집에 가서 말을 가지고오니 장영실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안타까이 찾아 헤매고있었다.

《나―리―니―임―》

만복의 부르짖음은 비오는 길가에, 나무숲에, 어두운 하늘가에 끝없이 메아리쳐갔다.

허지만 무심한 산과 들에서는 비소리만 가득차올뿐 대답이 없었다.

만복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장영실이 그 어느 숲에 쓰러져있는것만 같아서 울음이 북받쳤다. 그는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려나가며 다시, 또다시 장영실을 불러찾았다.

한밤중에 만복이는 끝내 쓰러져 의식을 잃은 장영실을 찾았다. 수많은 장공인들이 여기저기 사방으로 다니며 장영실을 찾아 헤매이다가 만복이 장영실을 말잔등에 태우고 오는것을 보고 《나리님, 나리님.》 하고 저마다 부르며 달려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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