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등문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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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과 최서방네 경상도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저녁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 때였다.
마당굽에서 가냘프고도 처량한 소리가 났다.
《주인님, 계시니―까―》
장영실은 숟가락을 들다말고 《예, 뉘시오?》 하고 문을 열었다.
머리는 하얗게 파뿌리같고 허리는 굽은 오이같고 옷은 누더기와 다름없는 나이많은 할머니가 대여섯살 총각애를 데리고 꼬바기 절을 하였다.
《쇤네는 안국방마을에 살던 할미고 이애는 손자이나이다. 지난 봄에 온 동네가 헐리우고 우리 집도 헐리워서 떠돌아다니며 빌어먹고 삽네다. 먹을것이 있사오면 조금이라도…》
할머니는 쪼글쪼글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씻으며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할머니, 어서 방으로 들어갑시다. 방금 저녁을 먹으려던 참인데 함께 하소이다.》
장영실은 할머니와 아이가 너무나 불쌍해서 얼른 마당가에 내려가 그들을 손잡아끌었다.
《아니웨다. 어떻게 어른네와… 몰골이 루추하와…》
《할머니, 들어가소이다. 얘야, 할머니랑 방에 들어가자. 응?》
어느새 부엌에서 나온 숙이가 동정이 한껏 어린 눈길로 총각애의 람루한 옷을 쓰다듬듯 바라보았다.
밖을 내다보던 최서방네 경상도사람들도 저마끔 한마디씩 하였다.
《할머니, 어서 들어오시우.》
《우리도 이 댁에 와서 페를 끼치는 사람들이우. 빨리 들어오시우.》
《우리 집식구들도 할머니네처럼 떠돌아다니는지 모르겠수다. 얘야, 어서 들어오너라.》
마침내 할머니와 총각애가 방에 들어와 모두들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할머니는 자기 밥을 먹다말고 《주인님, 쇤네가 남긴 밥을 싸가지고가게 하시오다. 집에 이애의 에미가 굶어서 일어나지 못하구… 이 할미와 이애에게만 먹이느라 저는 먹지 못하구―》 하고 또 눈물을 머금었다.
장영실은 안국방민가들이 헐리우고 거기에 세종왕의 여덟째 왕자인 영흥대군의 집을 크게 짓고있는것을 이미 알고있어서 할머니네 처지가 가슴이 아프게 안겨들었다.
그는 몇숟가락 뜨지 않은 제 밥을 할머니의 남은 밥에 통채로 담아주었다. 그러자 최서방네 경상도사람들도 자기들의 밥을 내놓으며 어서 싸가지고 가라고들 걱정해주었다.
할머니가 어른네들은 무얼 잡숫겠느냐고 어쩔줄 몰라하자 장영실은 송구해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가셔주느라고 다른 말을 물었다.
《할머니, 집이 헐리웠다는데 웬 집이 있다고 가시려 하오이까?》
《어느 산탁에 움막집을 짓고 거적으로 지붕을 씌웠습네다. 안국방에 있었던 우리 집은…》
할머니는 숨을 한번 돌려쉬고 말 절반, 눈물 절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 안국방(동)은 창덕궁 남쪽의 산기슭에 있는 양지바르고 아늑하고 물좋은 고장이다.
여기에 스물대여섯 민가들이 오붓한 동네를 이루고있는데 그중에 할머니네 집도 있었다.
가난한 초가집이였지만 자그마한 마당가에는 몇그루의 감나무와 복숭아나무도 있는 정든 집이였다.
지난봄 어느날 살진 절따말(털빛이 붉은 말)의 금수안장에 위풍당당히 올라앉은 애젊은 왕자가 량반관리들을 수두룩이 거느리고 왔다.
왕자는 동네를 한바퀴 훑어보고는 동구밖에 말을 멈춰세우고 동네를 이쪽저쪽으로 가리켜보이며 한동안 무슨 말을 하는것 같더니 돌아갔다.
왕자를 따라다니던 량반관리 하나가 남아서 하인 두셋을 데리고 집집을 훑었다.
사흘내로 헐어가든 두고가든 다른 곳으로 이사가라고 통고하였다.
이 안국방일대는 임금이 영흥대군에게 주신 땅이다, 어찌 무엄하게 여기서 그냥 눌러살겠느냐, 사흘후엔 모조리 헐어버릴테다, 여기는 명당자리인데 왕자님이 큰집을 짓고 살아야지 어떻게 게딱지같은 집들이 오구구 붙어있겠느냐, 그리 알구 미리미리 헤쳐들 가라고 기염을 토했다.
동네는 앉은자리에서 생벼락을 맞았다.
사흘째 되는 날엔 사람이 있건말건 가차없이 집들을 허물어버렸다. 할머니의 집에도 사흘전에 왔던 관리가 군사들을 한무리 달고왔다.
《아직도 이사하지 않았느냐. 집을 헐겠다. 밖으로 나오라.》
《내가 왜 내 집을 버리고갈테냐. 나는 죽어도 내 집에서 죽겠다. 헐테면 헐어봐라.》
아이 아버지가 방안에 틀고앉아서 내쏘아주었다.
《옳지, 이놈 봐라. 네놈이 앉아버틴다고 집을 허물지 못할줄 아느냐. 죽고싶거든 안나와도 좋다.》
《할테면 해봐라. 네놈들이 사람을 죽이고 무사할테냐. 나는 나갈수 없다.》
《여봐라, 당장 집을 허물어라―》
무지막지한 놈들이 처마아래 기둥웃턱에 바줄갈구리들을 걸고서 잡아당길 태세를 갖추었다.
《여보, 어서 나오시우.》
아이 어머니가 기겁해서 방으로 달려들어가고 할머니가 《아이 애비야, 이 할머니도 너와 함께 죽자. 이놈들아, 어미, 아비 한방에서 다 죽여봐라.》 하고 방안으로 뛰여들었다.
허지만 우악스런 놈들이 할머니와 아이 어머니를 잡아서 마당가에 내쳤다.
그리고 바줄에 우르르 달라붙어서 힘껏 바줄을 잡아당기였다.
집기둥이 대번에 빠져나오고 지붕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다른 기둥들이 맥을 쓰지 못하고 뿌직뿌직 애처로운 소리를 내더니 이내 풀썩 주저앉았다. …
이렇게 죽은 사람들이 서너집이 되고 집을 허무는 놈들과 사생결단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도 여럿이 된다고 하였다.
할머니와 총각애가 밥을 싸가지고 자기네 움막집이 있다는 어느 산을 찾아간지도 이슥하고 밤도 깊어가지만 장영실과 최서방네들은 할머니의 정상이 남의 일같지 않아서 잠들지 못하였다.
장영실은 이리뒤척, 저리뒤척 한밤을 새웠다.
영흥대군이 군사를 내몰아 백성들의 집을 강제로 허물고 사람들을 죽여도 좋다고 하였을가? 임금은 천인공노할 영흥대군의 만행을 알고도 눈감아주고있는것인가?
내가 마을돌이차로 동래에 오고갈 때 보고온 백성들의 빈집과 류랑걸식하는 비참한 형편을 묻고 들으면서 근심걱정이 크던 임금이 영흥대군의 횡포무도한짓을 모른척 내버려두는것인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우리 글을 만들 문물을 선양시키려고 애쓰는 임금이 그럴수는 없을것이 아닌가. 다만 영흥대군과 임금에게 잘 보이려는 아첨군들이 저지른 지독한 악행이라고 장영실은 굳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자기를 위안하였다.
새벽일찌기 생각깊던 잠자리를 털고일어난 장영실은 최서방네들이 깨여날세라 가만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들리고 날은 푸름푸름 밝아왔다.
청신한 대기가 그의 몸을 휩싸안았다.
허지만 그의 마음은 밝지 못하였다. 간밤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이 저도모르게 다시 살아나는것이였다.
사람들이 집에 있건말건 백성들의 가옥을 강제로 허물고 자기의 집을 짓는 행위는 영흥대군뿐만아니라 임금의 여러 왕자들도 다 마찬가지인것이다.
평원대군 일곱째왕자는 한성부관청과 그 주변의 민가들을 헐어버리고 자기의 집을 웅장하고 화려하고 사치하게 지었고 수양대군, 안평대군, 림영대군, 금성대군들도 50~60간의 자기 집들을 경쟁적으로 지었다.
북악산과 인왕산에서 아름드리나무들을 찍어내고 석재를 캐내고 다듬고 그것을 날라오느라고 숱한 백성들이 개미떼처럼 오구구 달라붙었다가 나무에 치워죽고 석재에 깔리워죽었다.
집을 짓는데 드는 비용은 이루 다 헤아릴수 없었다. 그것은 전수이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것이였다.
어찌 임금이 모를수 있겠는가.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려고 이해의 첫봄에 제일먼저 밭갈이도 하고 근간에는 백성들이 류랑걸식하는 이런 때에 임금이라 하여 어찌 배부르게 먹겠느냐 하면서 수라상의 음식가지수도 줄이고 술도 끊는다는 어지를 내려보낸 임금이 왕자들의 비행폭행을 내버려둘수 있겠는가. 임금에게 상주하면 화를 당할가봐 문무관리들이 이 사실을 감추고있는것인가. …
장영실이 날이 활짝 밝아왔지만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마당가를 서성이는데 마침 주자소의 젊은 장공인이 사립문을 넘어서며 꾸벅 절을 하였다.
《나리님, 어제 저녁에 리천대감께서 나리님을 찾아왔댔나이다. 우리 나라 사람같지 않게 복색한 낯모를 사람을 데리고왔사온데 돌아가며 이르시기를 나리님이 오늘 아침에 곧바로 서운관으로 나오시라 하오이다.》
《리천대감이?! 낯선 사람을? 알았네.》
장영실은 젊은 장공인을 먼저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