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등문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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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백성들을 먹여살리는데는 농사를 잘 지어야 하고 농사를 잘 짓자면 농학을 발전시키는것과 함께 천체의 운행에 따르는 일년열두달 절기의 변화를 손금같이 알아야 할 필요로 우리 나라실정에 맞는 력서도 만들게 하였으며 정확한 시간을 재는 시계를 만들게 하였다.
오랜 옛날부터 해시계도 있었고 물시계도 있었지만 그것은 다 세밀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세종은 장영실이를 불러 말하기를 《해와 별, 달과 같이 정확히 운행하는 천체들처럼 날마다 시간마다 촌각도 틀림없이 종을 치는 시계를 만들어야 하겠노라.》 하고 루루이 일렀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였다.
그러나 세종은 장영실의 천재같은 두뇌와 귀신같은 재간을 믿었으며 한번 붙들면 미치다싶이 파고드는 완강한 노력과 꾸준한 인내력, 발명가의 천품을 신임했다.
장영실은 임금의 지시를 받고 자격루를 만들기 시작한 때로부터 달을 넘기고 해를 넘기면서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되기를 기다렸던 조정의 관리들은 《그것 봐라, 한갖 관노출신이 무엇을 만든다고 밤낮 지랄인고.》 하며 입을 삐죽거리였다.
허나 세종만은 《새것이 태여나기는 그처럼 어렵도다.》 라는 말로 재상들을 엄히 누르고 장영실을 고무하였다.
장영실은 집현전과 서운관(천기를 관측하는 부서)에 소속된 쟁인바치들과 노비들을 통솔하고 일을 내밀었다.
그들속에는 참으로 지혜있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영실은 그들과 의논도 하고 의견을 귀담아들으면서 밤낮으로 머리를 짜내였다. 날과 달을 이어 실패가 뒤따라서 열번이고 백번이고 다시 만드는데 그만큼 쇠도 숯도 필요한 모든것이 딸리였다.
세종은 자격루를 만드는데 써야 할것들을 사재감(궁중에서 소비하는 고기, 소금, 땔나무, 숯, 홰불 등을 맡은 관청)에서 뒤받침해주라고 명했으나 사재감의 관리인 부정(벼슬이름, 종3품)은 《장영실이 밑빠진 독이로다. 해놓은 일도 없이 나라의 록만 축낼뿐만아니라 사재감의 창고란 창고는 모두 텅 비게 만들었도다. 앞에서는 무엇을 만든답시고 하면서 뒤에서는 사사로이 물자를 소비하지 않는다면 웬 숯을 그리도 냠냠이 먹어치우는거냐. 홰(소기름, 돼지기름 등으로 만든다. )는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줄 아느냐. 어떻게 밤마다 열댓자루나 태워버리느냐. 장영실이 막된 관노출신이라 홰 아까운줄 모르니 매를 쳐서 정신이 들게 할가부다.》 하고 홰도 숯도 내주지 않게 하였다.
그런데 장영실은 자기를 천시하고 훼방하는자들을 임금에게 고소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수모에는 귀머거리가 된듯 가슴아파하지도 않았다. 가슴아픈것은 임금의 뜻을 제때에 받들지 못하는것이다. 또 자기곁에 있는 쟁인바치들이 슬금슬금 떠나는것이였다. 해놓은 일이 없다고 그들에게 료미를 내주지 않아서 굶주리게 된탓이였다.
장영실
그렇다고 세종이 이런 일을 알수 없었다.
세종이 관리들에게 이따금 장영실의 형편을 물어볼 때마다 듣는 대답이 다 원만하다는것이여서 그렇거니만 여기였었다.
장영실에게는 자기앞에 겹치는 곤난을 보는 눈이 없었고 자기를 험구하는 소리를 듣는 귀가 없었다.
그에게 눈이 있다면 자격루를 기다리는 임금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눈만 있었고 귀가 있다면 자격루를 빨리 만들라는 임금의 목소리만을 듣는 귀가 있을뿐이였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을 피우고 효성이 지극하면 죽었던 부모도 살려낸다고 그는 끝내 완성된 자격루를 임금에게 내놓을수 있었다.
장영실은 해시계가 시간을 제일 잘 알려주는 정오에 임금을 모시였다.
세종은 문무신하들의 옹위속에 보루각에 나와 자격루를 흐뭇이 바라보았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해시계를 지키고있던 서운관의 관리가 조용히 북을 울려 정오임을 알릴것이고 자격루는 자격루대로 정오를 알리는 북을 칠것이다.
드디여 정오가 되여서 해시계를 지켜보던 서운관의 관리와 자격루의 깜찍스러운 고인(북을 치는 인형)이 참말로 같은 시간에 북을 울리였다.
쬐꼬만 고인이 서운관의 관리옷차림을 하고 쬐꼬만 북채를 들고 쬐꼬만 북을 열두번 치는데 북소리는 제법 둥둥 울리였다. 그다음엔 자기할 일은 다했다는듯이 자랑스럽게 오똑이 서있는 모양이 참으로 신기스럽고 재미나서 세종은 만시름을 잊고 크게 웃었다.
《자격루의 꼬마고인이 신통한지고. 저 고인은 해시계도 안보고 정오를 알리는고나! 그옆에 또 하나 정인(징을 들고있는 인형)이 있고나! 정인에겐 무슨 소임을 맡겨주었느냐?》
임금이 웃음을 머금은채 저만큼 떨어져 량수거지를 하고있는 장영실에게 물었다.
《북을 치는 시간과 시간사이의 점(두시간사이를 다섯점으로 나누어진 시간)을 징을 쳐서 알려주는 정인이옵나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두시간(120분)을 다섯점으로 나누어볼 때 한점은 24분이다.
옛날에는 낮시간을 진시라든가 오시 또는 유시라 하고 그사이에 진시 몇점 혹은 오시 몇점이라는 식으로 시간을 재였고 밤에는 몇경 몇점이라고 시간을 재였다.
지금 장영실이 임금에게 품하는것이 바로 그것이였다.
《참말 희한도 하고나. 저 정인이 징을 치는것도 보아야 하겠노라. 그동안 자격루가 어떤 원리로 이런 일을 하는지 그 리치를 과인에게 말해다오.》
세종은 자리에서 일어나 장영실의 안내를 받으며 자격루를 돌아보았다.
세종은 장영실의 설명을 쉽게 알아들었고 그 기묘한 기구장치들의 운동원리, 그 가치를 누구보다도 먼저 리해하였다.
《보시는것처럼 이 자동물시계는 저렇게 높은 곳에 물단지 4개를 놓고 그밑에 물받는 단지 2개를 놓았는데 이 물단지에 고이는 물이 높아짐에 따라 우로 떠오르는 모형거부기가 작은 쇠공알을 받쳐든 주걱을 떠밀어올리도록 하였사오이다. 이때에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쇠공알이 그밑에 있는 철판을 치면서 밑으로 누르면 철판의 다른 한쪽이 우로 들리우면서 시간을 알리는 인형의 팔을 움직여 북을 치게 되옵나이다. …》
장영실은 자격루의 물단지속에 설치된 모형거부기와 주걱이며 철판들을 일일이 가리켜 하나하나 해설하였다.
《고인과 정인이 꼭 제 시간에 북과 징을 치게 하자면 물단지에 흘러내리는 물의 량을 언제나 고르롭게 해야 하리라.》
《그것이 바로 이 자격루의 요점중의 요점이옵니다. 대궐후원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언제나 량이 같사와 나무통을 무어 땅에 묻어서 물단지로 흘러들게 하였사옵니다.》
장영실의 눈에는 영특하고 지혜있는 사람만이 뿌리는 슬기로운 영채가 어려돌았다.
《음, 그래, 그렇지, 착상이 그야말로 뛰여나도다!》
세종이 만족한 웃음을 지을 때 자격루의 꼬마정인이 별안간 《챙―》 하고 징을 쳤다.
그리고 나를 좀 보소 하듯 들고있던 꼬마징을 들었다놓았다 하였다.
징소리도 어찌나 맑고 챙챙한지 보루각밖에서도 넉넉히 들을수 있었다.
징을 치는 꼬마정인도 서운관의 주부(종6품관리벼슬)의 옷차림을 하였는데 마치 살아있는 사람같았다. 무슨 말이라도 시켜보면 금시라도 또릿또릿 말할것 같았다.
《허허허… 장영실은 북을 치는 고인과 징을 치는 정인에게 관직과 벼슬을 주었고나. 과인은 앞으로 무슨 관직과 벼슬을 더 줄고. 그대가 쬐꼬만 인형들에게 종6품의 벼슬을 주었는데 과인은 그대에게 그보다 높은 벼슬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세종은 장영실을 대견히 굽어보았다.
세종은 이날 웃는 소리로 말하였지만 다음날에 정4품의 호군벼슬을 제수하였다.
그때가 장영실이 동래현에 마을돌이를 갔다가 김을지를 알게 되고 인연을 맺던 때이다.
장영실은 그후 자격루에다가 하루에 뜨고지는 해와 달의 운행까지도 일목료연히 볼수 있도록 새롭게 발전시켜나갈수 있지 않겠는가를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이를 위해 천문과 책력, 산수에 밝은 서운관의 지사 리순지와도 의논을 많이 하였다.
그렇게 하자면 계절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 해뜨는 위치와 시간, 해지는 위치와 시간, 해가 떠서가는 자리길, 운동속도를 정확히 표시하는 공간―궤도가 있어야 했다.
결국 이러한 물시계는 천문관측도 집안에 앉아 할수 있게 하자는것이였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말이 쉽지 시간에 따라 변하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낮과 밤의 길이를 타산하여 해와 달을 운행시키기란 여간만 어렵지 않은것이다. 이것은 방안에 축소한 온 세상과 그 세월을 다 잡아넣는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관노출신의 장영실은 이 자동물시계, 온 우주를 만들어내였다.
세종은 이 물시계의 이름을 《옥루기륜》이라고 달아주었다.
옥루기륜의 구조는 자격루보다 더 복잡하고 기묘하였다.
여기서는 물의 힘을 리용하여 종과 북, 징을 치는 장치가 자격루와 같았으나 12개의 인형이 각각 자기가 맡은 시간동안 패쪽을 들고 서있다가 자기 시간이 지나면 여닫는 문을 열고 들어가 숨어버리는 장치가 있었다.
그 장치들은 서울장안을 둘러싸고 솟아있는 동쪽의 락타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목멱산, 북쪽의 북악산과 꼭같이 만든 사판속에 감추어져있다.
이 사판의 산들은 크기와 생긴 모양이 어찌나 방불한지 또 이 자연계에 뜨고지는 해와 달이 어찌나 신통한지 보는 사람치고 경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옥루기륜을 흠경각이라는 집을 짓고 그안에 설치하였다.
장영실은 해를 금판대기로 공을 만들어 띄웠다.
자연의 해가 락타산에 얼굴을 반쯤 내미는 때에 흠경각의 해도 그와 같은 시각에 락타산에 얼굴을 반쯤 내민다.
인왕산너머로 해가 꼴깍 넘어갈 때 흠경각의 해도 인왕산너머로 숨어버린다. 흠경각안의 옥루기륜은 자연계를 그대로 비껴담은 거울과도 같았다.
이것은 물의 힘에 의하여 돌아가는 하나의 커다란 수차에 작은 치차들이 맞물려 진행되는 운동이였다.
이러한 옥루기륜을 앞에 놓고 세종이 기쁨을 금치 못해하던 모습은 이미 우에서 말한대로였다.
《호군 장영실은 귀신같은 재간을 가졌도다. 이같은 인재는 고금에 없었노라. 과시 나라의 보배로다! 과인이 지인지감(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으로 그대를 얻었더니 공짜로 하늘과 해와 달을 얻었도다!》
세종이 이렇게 기뻐하기는 한번에 12개의 불화살이 날아가는 화전포를 만들었을 때를 동반하여 지금까지 여러차례나 된다. 그러나 하늘과 해까지 얻었다는 말은 이번이 처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