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등문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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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한생에는 행복과 불행이 반반이라고 했지만 박대산이는 그렇게만 생각되지 않았다.

자기는 모두 행복만 안고 살아온것처럼 여겨지고 지금껏 겪어온 불행은 오늘의 행복을 고여온 주추돌처럼 생각되였다.

마치 왕가물에 쪼들렸던 곡식그루가 단비를 머금고 다시 푸르게 되살아오르는 줄기처럼 삶의 푸른 즙이 제 몸을 물들이는것처럼 느껴졌다. 임금이 하사한 상을 뜻밖에 받게 된 박대산부부는 장영실형님이 혼례를 치른것까지 보게 되여 꿈인지 생시인지 알수 없어 며칠동안 얼치운 사람처럼 밤에도 낮에도 자지 못하였었다.

날에 날마다 기쁨과 웃음속에 해가 뜨고 별이 솟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그들에게는 어린애까지 태여났다.

어린애는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새싹과도 같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커서 두살을 넘기니 쉬운 말을 곧잘 하였다.

《아빠… 큰절 빨리―》

아버지와 함께 샘우물에서 세면하고 돌아오는 어린애가 또랑또랑한 소리로 박대산의 손을 잡아끈다.

《오냐, 우리 성덕이 용타. 어서 큰절을 드려야지. 엄마에게 여쭈어라. 〈큰절을 드리자요. 〉 하구.》

성덕이는 아직 걸음발이 익지 않아서 부엌쪽으로 엎어질듯이 뛰여갔다.

대산은 즐거이 웃으며 어린것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성덕이는 용케 넘어지지 않고 부엌문앞에 가서 방긋거리였다.

《엄마, 큰절…드리…자…요…》

아직 말을 번지기가 어려워 발음이 순탄치 않았지만 그것이 더 귀염성스러웠다.

《네, 큰절을 드리자요.》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던 영아가 아들애의 말을 고쳐주며 밝게 웃었다.

성덕이는 엄마의 발음대로 《큰절을 드리자요.》 하고는 제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것이 장한듯 대산의 품에 와락 안겼다.

대산은 껄껄 웃으며 아이를 안아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박대산부부와 어린 아들, 세식구가 큰절을 드리자는것은 아침밥을 들기 전에 대궐이 있는 방향인 북쪽벽에 절을 드리자는것이였다.

그 벽밑에는 엄나무궤가 놓여있는데 그속에는 임금이 하사한 옷 두벌이 들어있었다.

하나는 대산의 흰비단겹바지저고리 한벌과 영아의 꽃무늬비단치마저고리 한벌이였다.

그들은 이 옷을 해마다 임금이 하사한 날이 돌아오면 한번씩 입어보고는 소중히 함에 넣어 보관해두군 하였다.

그들은 임금의 성덕을 잊지 않으려고 아이의 이름도 성덕이라고 지었다.

성덕이는 노비의 몸에서 태여난것이 아니라 임금이 속량해준 량인의 몸에서 떳떳이 태여났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번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임금의 성덕을 생각하였다.

《자, 이리 오너라. 머리 빗고 큰절을 드리자요.》

영아는 얼레빗으로 성덕이의 머리를 곱게 빗어주고 자기도 머리를 빗었다.

대산이는 벌써 무명고의적삼을 입었다.

이윽고 그들은 엄나무궤앞에 나란히 섰다.

어린 성덕이를 가운데 세우고 대산이와 영아는 량쪽에 갈라서서 무릎을 꿇고 세번 절하였다.

세살잡이 성덕이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서 곧잘 하였다.

새까만 제비초리처럼 땋아내린 머리를 꼬박꼬박 숙여가며 절하는것이 기특하였다.

그들은 이제 더는 숨어살지 않아도 되였다.

김을지가 아니라 박대산의 이름으로는 세상에 소리치며 살아도 아무 탈이 없었다.

임금의 상을 받은 사람이며 상호군 장영실의 누이동생과 함께 양녕대군의 령지에서 사는 사람을 누가 감히 《죄인》 김을지라고 하겠는가.

또 임금이 밭갈이의식을 하던 날 량반복색을 한 어떤 사나이가 전의금부도사 리창배를 처단하고 《내가 김을지다.》 하고 달아났으니 지금에 와서 김을지를 알아낼자가 없는것이다.

영아는 엄나무궤앞에 절을 드릴 때마다 임금과 양녕대군이 고마와 눈물을 흘리였다.

그들이 식전례를 마치고 아침밥까지도 치른 뒤였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였다.

《성덕이 아버지 계시우?》

《예, 누구시오?》

대산이 방문을 열어보니 양녕대군의 하인이 공순히 절을 하였다.

《대군마님께서 대궐에 올라갈 준비를 갖추고 오라는 분부오이다.》

《대궐로?! 이 아침으로 행차하시겠다는건가?》

《래일이 상감마마의 즉위 23돐을 맞으시는 날이여서 오늘 일찌기 떠나셔야 한다는가보옵나이다.》

《그래?! 그럼 잠간 기다리게.》

대산이는 급히 양녕대군의 반당으로 나설 때 입는 옷을 제꺽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흰무명바지저고리에 주홍띠를 두르고 목화(목이 긴 가죽신)를 신고 정갱이에 푸른 각반을 쳤다. 머리엔 망건우에 말총감투를 썼다.

《성덕이 아버지, 저두 서울에 따라가고싶소이다. 오빠랑 형님이랑 보고싶어요.》

영아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직이 속삭이듯 말하였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번 대군마님의 행차는 사사로운 려행길이 아니네. 후날 우리끼리 가세나. 대군마님의 허락도 받구 무엇을 준비해가지구. 응?》

영아는 아쉬운대로 그렇게밖에 할수 없음을 알았다.

박대산이 대군의 집에 가니 벌써 대문밖에 금수안장(비단안장)을 얹은 백마가 매여져있고 그뒤로 부담마(짐을 싣는 말) 한필이 이리저리 꼬리를 저으며 등에를 쫓고있었다.

이내 옷갓을 갖춘 양녕대군이 나왔다.

《래일은 임금의 즉위 23주기가 되는 날이라 축하연이 있니라. 그리알고 일찍 떠나도록 하자.》

《네, 참말 경사로운 일이옵나이다.》

그는 불현듯 송구한 마음이 갈마들었다. 아무런 준비없이 빈손으로 왔다는 생각이 떠오른것이다.

임금의 은총을 입고사는 사람이 이런 날에 호랑이를 잡아서라도 호피를 진상할수 있었을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것이다.

그는 얼굴이 뜨거웠다.

《그대는 부담마를 타고가라. 짐이 가벼우니라.》

양녕대군이 이런 분부를 내려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였다.

《아니옵니다. 견마를 잡아야 하옵니다.》

《념려말아. 한양성밖까지는 내 자견하고 궁궐가까이 가서는 견마를 해라. 거기는 사람이 많은데라 종반지체(임금의 집안사람의 체면)가 있지 않느냐. 처음부터 힘들게 견마할 일이 무엇이냐.》

박대산은 대군이 행차할 때마다 늘 자기를 위해주는것이 송구스러웠다. 또 대군이 따라다니는 반당과 말구종을 없애고 자기 하나를 여러 하인 대신으로 써주는 믿음에 더구나 감격스러웠다.

그들은 한양을 향해 말을 달리였다.

목멱산마루에 올랐을 때에는 아직 해가 인왕산산줄기에 장바 한기장만큼 남아있었다.

선들바람이 불어와 땀난 얼굴을 시원히 식혀주었다. 그들은 말에서 내려 잠시 쉬였다.

양녕대군은 새삼스럽게 서울을 넓게 둘러싸고있는 산봉우리들과 장안을 감돌아흐르는 한강을 이윽토록 부감하였다.

《과시 한양은 거룩한 도읍지로다. 그대는 저 북악산과 인왕산의 장엄하고 존엄스런 기개를 보느냐.》

박대산은 대군의 시선을 따라 북악산과 인왕산을 바라보았다.

저녁해가 인왕산에 걸터앉으려는듯 가까이하였는데 바위많은 인왕산은 해빛속에 찬란히 빛나고 북악산은 불붙는 구름을 떠이고 웅건한 모습으로 높이 솟아있었다.

《네, 참말 장한 기상이옵나이다.》

박대산은 감탄하며 대답하였다.

《그러되 우리가 서있는 이 목멱산과 저기 동쪽 락타산은 지세가 낮지 않느냐.》

양녕대군이 가리키는 손길따라 바라보니 확실히 서북쪽 산들에 비하여 동남쪽 산들이 퍽 낮았다.

《서울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으므로 맏아들이 경하고 지차아들이 중한편으로 된다는것을 의미함이니라. 이것은 왕위를 계승하는데서 지차아들이 나서야 함을 말하는것이로다. 풍수설이 주장하는 뜻이 이럴진대 임금이야말로 하늘땅의 의사에 따라 태여난 군왕이라… 허허허…》

양녕대군이 흔연히 웃었다.

그것은 맏아들인 자기가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것을 숙명론에 귀착시켜 위안을 받으려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동생 세종을 높여주려는 진심에서 나온 말이였다.

박대산은 서울의 풍수설을 처음으로 들었다.

그때문인지 몰라도 서울의 지세가 신비롭게 바라보였다. 아울러 임금이 더욱 신령스럽게 생각되였다.

그는 지금 그런 임금가까이 간다는것으로 하여 가슴이 설레였다.

《이제는 소인이 대군마마를 견마해야 하오리다.》

《오냐, 그리해라. 부담마는 내 말안장에 매서 뒤따라오도록 하고…》

양녕대군은 아침결에 리천을 떠나서 이렇게 일찌기 해떨어지기 전에 당도하여 입궐하게 된것이 기쁜듯이 말에 올랐다.

그들은 말에 올라 부지런히 남산재를 내려서 광화문이 바라보이는 거리에 나섰다.

여기서부터 박대산은 《물러까라, 쉬이― 저리까라!》 하고 자주 벽제(높은 량반이 행차할 때 행인들을 물리치는 소리)소리를 울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웬일인지 숱한 사람들이 몰켜다니기도 하고 광화문쪽을 넋없이 바라보고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박대산은 이런 사람들을 개개이 물리치면서 길을 잡아나가다가 걸음을 뚝 멈추었다.

앞에는 한눈에 다 볼수 없는 사람들의 떼무리가 하나같이 대궐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있었다.

얼마나 사람들이 모여왔는지 마치 눈덮인 벌과 같았다.

길가운데와 길섶, 공지란 공지는 부복한 백성들로 꽉 차있었다. 어떤 사람은 거적을 깔고 어떤 사람은 멍석을 깔고 어떤 사람은 맨 땅에 그대로 부복하였다.

갓쓴 가난한 량반과 수건을 동인 사람, 초립을 썼거나 베감투를 쓴 백성들이 혹은 두루마기를 입고 혹은 큰 저고리를 입고 그것도 못입은 백성들은 베잠뱅이를 입었다. 구부린 등허리와 겨드랑이에는 땀들이 꺼멓게 내보였다. 오래동안 엎드려 있은탓에 땀들을 뺄대로 뺀 모양이였다.

그들의 등뒤로 얼마만큼 떨어져있는 곳에 웅기중기 모여서서 저희들끼리 수군수군 말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도 이들은 구경군들인것 같았다.

《허, 갈길이 막혔고나. 무슨 일인지 알아보도록 해라.》

양녕대군은 숱한 백성들이 부복해있는 광경과 만장에 흐르는 엄숙한 공기에 약간 놀랐는지 조용히 분부하였다.

《예, 알았사옵나이다.》

대산이는 얼른 말고삐를 말목에 얹어놓고 길가의 구경군곁으로 갔다.

구경군들은 름름한 체구에 억센 기품이 내배인 대산이와 백마우에 앉아있는 풍신좋은 량반이 누구인가를 알고싶은듯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인가 여쭈어보고싶은듯한 눈빛으로 대산이를 맞이하였다.

《안녕들 하시니까? 소생은 양녕대군마님을 모시는 반당이옵니다.》

《양녕대군마님이시라고?!》

여럿이 한결같이 놀랐다.

《그렇소이다. 헌데 무슨 일로 숱한 백성들이 죄를 청하듯 하오니까?》

《지금 이 사람들은 경상도에서 온 가난한 선비들과 백성들이온데 등문고를 치고 하회를 기다리고있소이다.》

여럿중에 그중 나이들어보이는 사람이 대답하자 또 다른 구경군이 《저 사람들이 해뜨기 전부터 저러구있소이다.》 하고 뒤를 달았다.

등문고라는것은 임금의 정사라든가, 조정과 감영, 고을에서 량반관리들이 백성들을 억압략취하여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을 임금에게 알리게 하는 북을 말한다.

이 북은 궁성밖에 매달아둔다.

신소를 받아들여 관리들의 온갖 비행을 엄히 다스리고 저지하여 나라의 정사가 공정한 법으로 시행되도록 한다는것이다.

대산이는 등문고의 이런 사명을 알고있었다.

4년전 무엄하게도 임금의 행차를 멈춰세우던 일, 굶어죽는 부모님들을 살려달라고 청하던 김을지― 자기의 모습이 떠오르고 상감마마께서 《너는 일후에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등문고를 치거나 글을 써서 과인에게 알려라.》 하던 말이 귀에 쟁쟁해왔다.

허나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 등문고를 치는것은 본 일도 없었고 들어보지도 못하였다.

《등문고는 무슨 일로 쳤소이까?》

대산이는 그저 놀라와 구경군에게 다시 물었다.

《나라에서 실시하는 공법(밭에 나는 수확물을 공물로 바치는 법)의 부당성을 상소하려는것이나이다.》

《공법의 부당성을?》

《아침 진시에 등문고를 쳤는데 오시에 다들 흩어져가라는 어지가 내렸다 하오이다.

하오나 공법을 고친다는 임금의 어지를 받기 전에는 안돌아간다고 등문고를 다시 울렸더니 그 즉시로 사헌부, 의금부관리들이 라졸들을 거느리고 나와서 생원 한사람과 진사 한사람, 백성 두셋을 잡아들이면서 하는 말이 헤쳐가지 않고 등문고를 다시 치는자는 이같이 잡아들여 형장을 치겠다고 했나보웨다.

사람들이 공법을 고친다는 상감마마의 어지가 내릴줄 알고 기다렸는데 오히려 사람들을 잡아가고 형장으로 다스리겠다는 말이 나오자 이는 우리 임금의 뜻이 분명치 않다, 등문고의 북소리가 내전(임금이 일상적으로 거처하는 곳)까지 미치지 못하여 상감마마께서 알지 못한것이 확실하오니 재차 등문고를 울리자 하고 신시에 세번째로 북을 둥둥 울리고 저렇게 천여사람이 하나같이 엎드려 하회를 기다리고있는중이오다. 양녕대군마님이 때마침 행차하시여 이 일을 알게 되였은즉 참으로 다행이오이다.

대군마님이 어서 입궐하여 상감마마께 말씀올려 경상도 백성들의 하정을 굽어살피사 부디 살길을 열어주시도록 힘써주셨으면 하오이다.》

《네, 여쭈어보리다.》

대산은 양녕대군앞으로 돌아가 사연을 아뢰였다.

《허나 그렇다고 무리를 모아 등문고를 칠 까닭이 뭐냐. 백성들은 고을원에게, 고을원은 관찰사에게, 관찰사는 임금께 상주하면 안된다더냐. 못된놈들같으니―》

양녕대군은 머리를 설레설레 가로 흔들었다.

대산이는 대군이 백성들을 놓고 못된놈들이라고 차마 욕하지 않았을것이라고 여겼다.

아마도 백성들이 이렇게까지 무리지어 올라오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고을원들과 관찰사를 두고 하는 소리로 알았다.

그는 구름같이 모여든 사람들을 이끝에서 저끝까지 새삼스럽게 살피기도 하고 등문고를 매단 북각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북각은 두어자높이로 단을 만들고 그우에 붉은 기둥을 세웠는데 지붕은 양산모양에 청기와를 씌웠다.

북각안에 매달아놓은 북은 장정 세사람이 팔을 벌려 안을만큼 엄청나게 큰 북이였다. 처마밑에 커다랗게 《등문고》라고 쓴 현판이 멀리에서도 보였다.

북각의 왼쪽 기둥에는 《북을 울려 정사를 바로 잡다.》 라는 글이 씌여있으나 멀리서는 무슨 글인지 잘 가려볼수 없었다.

대산이는 숨쉬기조차 답답해왔다.

등문고를 설치한 본뜻이야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대궐에서는 이렇듯 많은 백성들이 무릎마디가 저려오는것을 참고 해종일 엎드려있는데 무슨 일로 죄인취급을 하는가.

《영추문(대궐서쪽문)으로 돌아가야 할가보다. 고얀놈들… 어서 가자.》

양녕대군이 독촉하였다.

대산은 대군이 빨리 임금을 만나 대궐밖의 사정을 아뢰이게 하려면 급히 서둘러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조급해났다.

그는 즉위년축하연이 래일로 박두한 이날에 백성들이 굶어죽게 되였다고 등문고를 친 사실을 임금이 안다면 얼마나 괴로우랴 하고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임금이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주고 공법을 고치라는 어지를 내리면 또 얼마나 어진 임금의 덕이 오늘의 경사우에 더욱 빛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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