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접동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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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새벽문을 열면 오복이 들어온다는 말과 같이 장영실의 집에는 오복이 들어왔다. 장영실이 첫 새벽에 문을 열고 일터에 나가 남다른 총명과 재능으로 부지런히 일하여 나라에 훌륭한 기물을 바친 덕에 숙이가 자기 집 사람이 되였고 이번에는 또 임금이 내리는 어주와 옷 한벌을 하사받았을뿐아니라 리천에 있는 누이동생 영아와 박대산이까지도 상을 받은것이다. 이는 오복이 아니라 만복이 들어온것이다.
더구나 더없이 경사가 난것은 이 자그마한 단칸방에서 장영실과 숙이가 드디여 혼례를 치르는것이였다.
장영실은 임금의 큰 은총을 받은 이런 때에 혼례를 치르지 않으면 어느때 가도 가정을 이루어보지 못하고 로총각, 로처녀로 늙어버릴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장영실이 나라와 백성들이 덕을 입을 훌륭한 기물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임금에게 청원하여 숙이가 노비신세를 면한 다음 혼례를 치른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그들은 가정을 뭇기로 의논하였다. 조정의 량반관리들이 자기의 녀종과 혼례를 치른다고 뒤시비질을 하겠지만 법에 위반되는것은 아니였다. 다만 자기들사이에 어린애가 태여나면 노비인 숙이켠을 따라 노비로 되는것인데 아이를 낳지 않으면 되였다.
장영실이 혼례날을 다그쳐 정한것은 자기를 시기질투하는 리사균과 같은 벼슬아치들이 시시한 여론을 돌리는것을 막기 위한데도 있었다.
장영실은 녀종과 한지붕밑에서 단둘이 살면서 재미를 보고있다, 임금이 알면 례의도덕을 그르친다고 가만두지 않을것이다 하고 소문을 퍼뜨리고있었기때문이였다.
장영실은 숙이와 서로 사랑하고있는것이 잘못될게 무엇이길래 감추겠는가, 세상에 대고 소리치며 사랑하리라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 박대산이도 서울에 와있으니 좋았다. 장영실
손님으로는 주자소와 군기감, 선공감의 장공인들 몇사람들이 호젓이 왔고 숙이와 함께 객사의 부엌에서 함께 일하던 어멈이 왔을뿐이다. 많은 사람을 청하고싶어도 대접할 음식이 없거니와 백성들이 굶어죽는 이런 때에 잔치를 크게 차릴수도 없는것이다.
장영실은 옥루기륜을 만들 때 자기와 함께 해의 자리길, 해뜨는 시각과 그 위치 등을 의논하던 서운관의 리순지를 청하였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몸이 편치 않아서 못간다고 하인을 보내여 량해를 구해왔다. 그도 량반인 까닭에 노비출신 상호군이 자기의 녀종과 혼례를 치르는 곳에 체면상 갈수 없어서 구실을 내대고있음을 장영실은 리해하였다. 굴욕감과 같은 수치를 느끼였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청하였던 장공인들은 몇사람이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다 왔기때문이다. 만약 군기감과 주자소의 장공인들을 다 청하였다면 그들은 모두 왔을것이다.
자그마한 잔치상에는 파아란 빛갈이 그대로 살아있는 두릅나물과 고사리, 콩나물접시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소박하다기보다 너무나 빈약하였다. 그러나 온갖 산해진미로 그들먹이 차린것보다 잔치상을 돋보이게 하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임금이 내린 어주였다.
물론 잔치상에 놓으라고 준것은 아니고 밭갈이의식이 끝난 뒤에 상으로 내린 어주다. 은근한 하늘색바탕에 백학이 그려지고 배가 길둥글게 부른 점잖고 위엄있고 멋들어진 청자기병이 상우에 여봐란듯이 놓여있었다.
손님으로 온 장공인들이 감탄스러운 눈길로 어주를 바라보는데 신랑신부들인 장영실과 숙이가 나와 상을 사이에 두고 서서 맞절을 하였다.
그들은 《신랑신부 듭신다.》, 《신랑신부 맞절을 합신다.》 혹은 《신랑신부 교배잔을 듭신다.》 하고 례식을 주관하는 사람도 없이 례식을 소략히 마치였다. 그러나 그들은 뜨거운 눈물을 머금었다.
장영실과 숙이는 장공인들에게 어주를 잔이 넘치게 부어주었다. 난생처음 향기롭고 감미로운 어주를 마신 장공인들은 그 한잔 술이 백잔의 술을 대신한것처럼 기분들이 좋아서 신랑신부에게 아들딸 주런이 낳되 상호군나리님과 같은 재인명사로 키워가며 오래오래 살라고 축수하였다. …
잔치가 끝난 뒤에도 장영실의 몸에 흘러든 어주는 임금에 대한 고마움과 숙이에 대한 사랑으로 온몸을 불태워주었다.
《여보, 숙이― 내가 오늘 임자와 한가정이 된것은 다 상감마마의 덕일세. 또 나를 지성껏 돌봐준 임자의 덕이구―》
숙이는 수집게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였다.
《나리님, 이 천비는 나리님밖에 모르나이다. 이 녀종을 안해로 삼아주니 고맙…》
그는 자기의 심정을 다 기울이자니 목이 메여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허, 하하하, 고맙기는… 나도 본색이 관노여― 내가 처음에 동래관가 관노로 대궐에 올라왔을 때 임자가 나를 보고 코방귀를 내불지 않았던가. 하하하…》
《아이참, 그때는 어려서 그랬지만 그후엔 죽을 때까지 옷을 빨아드리겠다고 약속하였나이다. 호호…》
숙이는 어느새 활달한 성미가 살그머니 살아나 첫날 새색시인줄도 잊은듯이 웃었다.
《어, 이런 변 봤나.》
장영실은 곁에 있는 박대산을 돌아보며 눈을 끔벅해보였다.
《어쩌면 좋을가? 이 사람이 첫날색시로서 얌전치 못해서 파혼을 해야 할가부네. 하하하―》
《아, 하하하.》
《호호호…》
셋이 모두 즐겁게 웃었다. 박대산은 어주를 몇잔 들고 얼근히 취하였다. 그는 지난날 동래 오두막 영아의 집에서 장영실형님이 자기와 영아에게 혼례를 치르어주던 때가 생각나고 형님보다 먼저 장가든것이 언제나 마음에 걸리였었는데 오늘은 거뜬해졌다.
《형님, 형님과 아주머님사이에 재미나는 이야기가 많은가본데 한번 들려주시오이다. 그래야 리천에 돌아가 영아에게도 재미나게 말해줄것 있을게 아니오이까.》
《그래야지. … 여보 숙이, 우리 함께 지난날의 잊지 못할 추억을 더듬어보자구.》
《호호… 그건 안되오이다. 우리 두사람만이 고이 간직하고있는 지난날을 어떻게 함부루…》
숙이의 자랑스러움이 그 목소리와 웃음에 어려들었다. 그들 셋은 또 한바탕 웃었다.
이리하여 장영실은 동래현 관노의 몸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숙이와 처음으로 만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시중을 받아온 자초지종을 다 말하였다.
박대산은 도중도중 《하, 그참…》 하고 재미있게 들었다. 임금이 숙이를 장영실의 녀종으로 주게 된 사연과 장영실이 숙이를 데려오던 이야기대목에 가서는 더 자주 벙그레 웃으며 들었다.
그는 자기도 영아와의 눈물겨운 사랑을 겪어보았기에 그 한마디한마디를 눈물속에 들었다.
사랑하는 숙이를 제 집으로 데려가게 된 장영실의 기쁨은 하늘의 별을 따온대도 비기지 못할 행복이였다. 아니, 아니다. 숙이는 사랑하는 별, 희망의 별, 행복의 별, 땅우에 내려와 사는 별이였다. 그 소중한 별을 장영실이 따온것이다.
장영실은 그지없이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객사로 갔다.
인왕산하늘가에 저녁노을이 곱게 어리고 객사의 수양버들가지는 갓 돋아나는 잎사귀들을 파랗게 꿰여 줄을 늘인듯이 휘늘어지고 살구나무아지에는 옥구슬같은 꽃봉오리들이 무수히 부풀어오르는 봄날이다.
숙이는 우물가에서 저녁물을 긷고있었다. 흰 머리수건을 가볍게 쓰고 흰 적삼에 깜장치마를 받쳐입고 허리에 노끈을 잘쑥하게 동인 그 모습은 봄날의 경치와 더불어 한폭의 미인도와 같았다.
드레박줄을 스르르 풀어놓았다가 그것을 다시 두손으로 엇바꾸어가면서 힘차게 감아올릴 때마다 탐스러운 처녀의 머리태가 자기도 물을 길어올리고싶은듯이 우물안으로 흘러내리군 하였다.
장영실은 쿵쿵 뛰는 가슴을 어쩔수 없어서 우물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짐짓 모른체 하고 목청을 우렁우렁 가다듬었다.
《지나가던 나그네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았더니 물긷는 아가씨가 탐나서 물생각이 없어졌도다.》
《그 나그네 싱거우니 장이나 한말 잡숫고 물이나 마시오.》
숙이는 《나그네》를 보지도 않고서 얼른 물동이를 이고 황황히 우물가를 떠났다.
《아하하…》
장영실은 명랑하고 쾌활하게 웃었다. 숙이는 귀에 익은 그 웃음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나리님이?!―》
그리고는 반갑게 활짝 웃으며 물동이를 내려놓고 서둘러 앉은절을 하였다.
《나리님, 그동안 편히 지내셨나이까.》
장영실은 그동안 새 화포를 만드노라고 근 한달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하였던것이다.
《원, 무슨 소릴… 임자가 곁에 없으니 편히 지낼수가 있나? 자, 어서 일어나게.》
장영실은 숙이를 손잡아 일으켜주었다.
《참, 나리님 목이 마르다고 하셨지.》
숙이는 드레박을 우물에 던져 물을 재빨리 길어올렸다.
《나리님, 물도 마시고 저를 탐내셨으니 저도 잡수시오이다. 호호…》
장영실은 드레박귀를 입에 대고 맑고도 찬물을 꿀꺽꿀꺽 탐스럽게 마시였다.
《어, 시원하군. … 숙이, 임자 날 사랑하지?》
《아이참, 이 천비는 나보다 더 나리님을 사랑하나이다. 호호…》
숙이는 본래 서글서글하고 활달한 성미인데다가 우물가에 아무도 없어서 제 속을 다 말하였다.
《그걸 어떻게 아나?》
《나리님이 절 버리면 이 천비는 죽고말테니까. 호호, 리치는 간단하오이다.》
《그래서 오늘 저녁부터 숙이를 우리 집에 데려다가 살도록 하였네. 그래 좋은가?》
《아이구나. …》
숙이는 너무나 좋아서 두손을 모아 《짝―》소리가 나게 손벽을 쳤다.
《그게 정말이오이까. 나를 중떠보자는게 아니나이까? 예? 나리님.》
숙이의 어글어글한 눈에 맑은 눈물이 고여올랐다.
《임자는 안해가 아니라 녀종으로 들어와도 좋은가?》
《아이참, 안해이든 녀종이든 나리님을 모시고 한집에서 살면 그만이지 가릴것 있나이까.》
《내 그러리라고 믿었네. 그러면 이 물동이를 객사에 빨리 가져다놓고 나와 함께 객사주부를 만나자구. 그다음엔 우리 집으로―》
《응, 우리 집으로…》
그날 저녁 장영실과 숙이는 어둡기 전으로 집에 나란히 들어갔다. 갑자기 작은 단칸집이 한없이 정다와졌다. 나지막한 추녀가 마치 봉황의 쌍나래가 되여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듯 하였다.
그들은 신랑신부가 첫날밤 꽃초불을 켜듯이 방등을 켜놓고 한밤을 지새웠다.
《나리님, 이 처녀를 어떻게 데려왔나이까?》
《내가 새 화포시험사격에 성공하자 상감께서 대희하시여 나에게 물으시였네. 무엇이 소원인가구. 그래서 내가 대답올렸네. 자네가 소원이라구, 녀종으로 달라구. 그랬더니 상감께서 자네를 주시였네. 임자와 혼례를 치르도록 아뢰이려다가 그건 끝내 여쭙지 못하였네. 그러다가 다른 처녀를 고르라면 어쩌겠나. 임자가 내 집에 들어와 녀종으로 살고 내가 다른 녀자를 안해로 데려다가 살면 임자가 아까 말한것처럼 죽을게 아닌가.》
《나리님, 상감마마께 말씀을 잘 올렸나이다. 이 몸은 나리님의 몸종이나이다. 앞으로 정식 안해가 된다 해도 몸종으로 살고 몸종으로 영원히 산다 해도 안해처럼 살겠나이다.》
숙이의 눈에 또 구슬같은 눈물이 반짝이였다.
장영실은 숙이의 손을 덥석 잡아쥐였다. 뜨거운 숨결이 숙이의 얼굴을 감쌌다.
《내 숙이의 옷고름을 풀어주고 숙이는 내 옷고름을 이밤에 풀어주게.》
숙이는 손을 내맡긴채로 속삭이였다.
《네, 그렇게 하겠사와요. 그렇지만 한잠자리엔 못들겠나이다. 지금은 안되오이다. 나리님이 녀종과 여사모사한다고 소문이 나면…》
《하하하, 그러면 임자는 어데서 자겠나?》
《웃목에서 따로 자겠나이다.》
《허참, 명색이 사내인 내가 녀자와 한방에서 자면서 가만히 놔둘리가 있나. 한밤중에 임자를 덮치면 어쩔려구.》
《그러면 이 천비가 일어나 앉아서 나리님을 아이처럼 달래면서 타이르지요. 그러면 안된다고… 밖에서 량반관리들이 창호지를 뚫러놓구 들여다본다고…》
《아하하하…》
장영실은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 되도록 허리를 꼬부리고 웃었다.
《내가 아이취급을 당하기 전에 난 웃목에서 따로 자야겠네. 임자는 아래목에서 자게. 그렇다고 사람들이 우리가 따로따로 청백하게 자는줄 알아주겠나. 한방에서 자니 한이불속에 동침하는줄로 알지. … 그렇지 않으면 나를 고자로 알고 소문을 내돌릴게야. 하하하… 그러면 사내명색이 뭐가 되나. 그럴바 하고는 방 한칸을 늘구세. 임자가 자는 방말일세.》
《네, 그러자요. 래일 당장…》
숙이는 두눈을 빛내이며 방긋이 웃었다.
그들은 며칠만에 엇걸이 방 한칸을 늘구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방에서 자고 깼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랑은 더욱 깊어갔다.
장영실은 이런 숙이의 헌신적인 보살핌속에서 아무런 불편도 없이 자기 일에 전념할수 있었고 세상에 자랑할만한 나라에 귀중한 기물들을 만들어냈다. 자격루와 옥루기륜도 그렇게 만들었고 우리 글 금속활자도 정교하게 부어낼수 있는 기틀도 마련해놓았을뿐만아니라 새 화포도 더 많이 만들어 보냈으며 이번에 임금이 밭갈이의식에 리용한 보탑도 그렇게 만들어냈다.
숙이는 이야기도중에 부끄러운 대목이 나오자 고운 노을처럼 발그스레 피는 얼굴을 숙이고 살그머니 부엌으로 내려갔다.
박대산은 장영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는 저절로 눈물이 그득히 고인 큰 눈을 슴벅이였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지난날의 즐거운 이야기도 임금의 덕으로 꽃피여났다는 생각이 끓어번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