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접동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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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산은 임금이 밭을 갈 때 제가 대신 밭을 마음껏 갈아드리고싶었지만 그렇게도 할수 없었고 지금은 밭을 다 간 임금에게 자기도 제손으로 술을 부어드리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것 같았지만 그렇게도 할길 없음을 한탄하였다. 그는 조정관리들의 반렬쪽으로 눈길을 들어 장영실을 바라보았다. 이 엄숙한 자리가 아니라면 이제라도 그에게 달려가 자기의 마음을 터놓고싶었다. 형님은 상감마마를 가까이 모시고 상감께서 바라시는 큰 공을 세우고있는데 나는 변성명으로 임금의 눈을 피해 살고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고 죽겠는가. 그는 이것을 장영실형님에게 묻고싶었다. 아니, 임금에게 묻고싶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다시 지난해 봄처럼 임금앞에 부복하여 하고싶은 이야기를 아뢰일 날이 있겠는가. 며칠전에 양지현 부모님들의 산소에서 라졸들을 없애버린것도 죽지 않고 살아서 임금가까이 가기 위함이 아니였던가.
그는 오직 임금만이 보이고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바로 이 시각 자기를 삼킬듯이 노려보는 이전 의금부도사의 눈길도 알수 없었다.
전 의금부도사 리창배는 임금이 밭갈이하는것을 보자고 모여든 사람들속에 끼여들어 그들의 어깨너머로 양녕대군곁에 서있는 김을지를 헛눈 한번 팔지 않고 바라보았다.
(흥, 저놈 보아라. 지난해엔 양지현감을 죽이고 엊그제는 의금부라졸들을 죽이고도 뻐젓이 임금앞에까지 나타났구나. 어디 보자.) 하고 리창배는 어떻게 하면 감쪽같이 김을지를 산채로 잡아낼것인가를 깊이 궁리하였다. 김을지는 그물에 걸린 고기, 뭍에 오른 물고기와 다름이 없다 해도 양녕대군의 견마잡이로 따라다니는것만 보아도 례사놈이 아니다. 저놈하고 충청도 막고개에서 맞붙어보았지만 말도 잘 타고 칼도 잘 쓰고 종당에는 압송해가던 죄인까지도 빼앗기고말았었다. 저놈을 놓치면 내 어이 얼굴을 들고다니랴. 그러되 저놈을 식은 죽먹기로 다루다가는 오히려 저놈한테 죽기 쉽다.
임금앞에서 사람을 덮치거나 그와 같은 무례한짓을 해도 안될 일이다. 밭갈이의식을 파한 뒤에 임금이 대궐로 돌아가면 그때에 의금부라졸들을 불러 일을 행하여야 한다.
지금은 김을지를 눈여겨 보는수밖에 없다. 혹시 그놈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저놈을 잡아바치는것으로 장공속죄하고 임금으로부터 의금부도사의 벼슬을 다시 받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리창배는 제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것을 느끼였다.
양지현 고을원을 산채로 압송해오지 못하고 죽은 놈을 싣고가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때를 생각하면 절로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저 김을지때문에 평생토록 씻지 못할 수치를 당하였다. 어제는 죽은 양지현감을 싣고 갔었지만 오늘은 산 김을지를 싣고 가리라.
리창배는 파직되여있는 동안 자나깨나 김을지를 잡아바칠 생각으로 몸살을 앓았었다.
그는 자기대신에 새로 발탁된 신임의금부도사도 김을지를 잡아보려고 여러가지 계교를 꾸미고있을뿐아니라 용모파기와 방을 내다붙인다, 끄나불들을 거미줄처럼 늘인다, 어쩐다 하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구관이 명관이라고 김을지를 내가 잡지 네가 잡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김을지를 추적하여왔었다.
어느날 리창배는 좋은 수가 떠올랐다. 그것은 청명날 김을지의 죽은 부모의 산소를 지키고있다가 김을지가 나타나면 잡아보자는 계교였다.
허지만 신임의금부도사 역시 양지현관가도 모르게 비밀리에 의금부라졸들을 파하여 청명날 며칠전부터 묘지를 지키게 하였다.
부모의 원쑤를 갚으려 제 한몸을 돌보지 않는 김을지의 천성을 리용해보려고 한것은 신관이나 구관이나 다 마찬가지였었다. 이를 알길 없었던 리창배는 자기만이 신통한 꾀를 얻은듯 불원천리 양지현을 찾아 떠나왔고 청명당일 아침에는 양지관가의 라졸들을 데리고 김을지부모의 묘지에 올라갔었다. 허나 행차뒤 나발이 되고말았다. 방금 떼장을 떠입힌 묘지가 보란듯이 솟아있었다.
(아뿔싸, 한발 늦었고나. 이놈이 벌써…)
이때 어데선가 인기척이 들리였다. 리창배는 허리에 감추었던 칼을 급히 뽑아들고 귀를 바싹 강구었다. 때마침 모기소리와 같이 가느다란 사람의 목소리가 신음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여―보―시오― 사람…살리우― 아이…고―》
리창배는 그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몇걸음 나아갔다. 보니 의금부라졸 하나가 가슴을 싸쥐고 누워있었다. 금시라도 죽어버릴듯 입귀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김…을지를 잡…으…러 왔다…가 다…죽고 나만 살았… 김을지는…계…집까…지 데리…고 왔댔는데…》
《무엇이? 계집년까지?》
라졸은 리창배의 물음에 미처 대답을 못하고 피덩이를 왈칵 뱉더니 그대로 절명하였다.
《김을지와 계집이라… 아차, 그 놈년들이 아닌가?》
리창배는 양지현초입에 들어설 때 남녀가 각기 말을 타고 오는것을 보았었다. 남자는 백마를 타고 앞서오고 녀자는 가라말을 타고 가는것이였다. 리창배는 백마가 낯이 익어 그것만을 보느라고 말탄 사람에게는 주의를 돌리지 못하였다.
백마! 백마… 주홍빛 말굴레에 싯누런 말고삐며 검은 털이 보기 좋게 섞인 말갈기… 어데서 보았던가?… 백마가 눈에 익지만 누구의 말이였던지 알듯말듯 하기만 하고 정작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었다. 말탄 남녀를 지나쳐보낸 썩 후에야 문득 생각났었다. 그것은 양녕대군의 백마였다!
세종대왕이 양녕대군에게 준 백마를 몰라보다니 원참, 이런 정신봤나하고 뒤를 돌아보니 사내와 계집이 탄 말들은 벌써 산굽이를 돌아가고있었다.
리창배는 양녕대군이 백마를 타고 이따금 대궐에 오는것을 여러번 보아왔었다. … 그런데 어떻게 되여 대군이 타지 않고 다른 사람이 타고갈가, 대군이 또 기생을 데리러 사람을 보낸것인가?
그때는 이런 토막생각들이 얼핏얼핏 떠오르는것을 오래 붙잡고있을 경황이 아니였다. 빨리 김을지 부모의 묘지에 가서 그 주변에 몸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것이 급선무였던것이다. …
그런데 이 무슨 소리냐. 김을지가 계집을 데리고 관졸들을 다 죽인 후에 산소는 산소대로 돌보고 유유히 말을 타고 갔다. 그렇다면 그 년놈들이 양녕대군의 말까지도 도적질을?… 양녕대군이 그 백마를 일후에도 그냥 타느냐, 아니면 다른 말을 타고 다니느냐 이것만 알면 모든것은 손금보는것처럼 환해질것이다! 만약 대군이 그 백마를 그냥 여전히 타고 다니면 김을지는 양녕대군의 령지에 정체를 숨기고있는것이렷다.
(흥, 사향노루가 제 냄새를 감추지 못하듯 너는 네 냄새를 감추지 못한다. )
리창배는 이렇게 쾌재를 올리고 친경전으로 가는 외통길에서 수많은 구경군들속에 끼여 양녕대군의 행차를 눈여겨 보았었다. 아니나다를가 양녕대군은 여전히 그 낯익은 백마를 타고왔었다.
이건 참말 호박이 넝쿨채로 떨어진 격이로다! 온 나라가 《중죄인》으로 찾고있는 김을지 당자가 양녕대군의 견마잡이로 보란듯이 길을 잡아오고있었다.
(에크, 옳긴 옳구나. 네놈이 백가지 둔갑수를 쓴다 해도 나를 속일수 없다. 천우신조라더니 하늘이 나를 도와주는고나. )
리창배는 빨리 김을지를 붙잡고싶었지만 양녕대군이 두려워 당장은 어쩌지 못하였다. …
흥겨운 풍악속에 해는 반공중에 떠올라 벙글벙글 웃고 임금은 종친들과 문무재상들이 밭가는것을 흐뭇이 바라보고있다.
저 멀리 밭이랑이 끝나는 지경에서는 나이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꽹과리, 장고들을 두들기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임금이 밭을 가는 이날은 명절날이라 사람들의 가슴에 너울치는 기쁨은 새싹이 움트는 산야에 넘나들었다.
이해는 온 나라가 힘써 풍년을 안아오리라, 백사람이면 백사람이 다 이같은 생각으로 기분이 둥둥 떠올랐다.
허나 이 경사스러운 만장중에 유독 두사람만이 긴장한 눈초리를 번쩍이며 촌각을 보내고있었다. 한사람은 박대산을 노려보는 전 의금부도사 리창배이고 또 한사람은 바로 리창배의 뒤통수를, 그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있는 갓을 쓰고 량반차림을 한 어떤 사나이이다.
해가 중천에 높이 떠오른 정오에 임금은 밭갈이의식을 끝마치고 대궐로 떠났다. 임금의 종친들과 조정관리들도 반렬을 헤쳐 각기 자기들의 관청으로 돌아가려고 서둘렀다.
친경전부근에는 숱한 종친들과 문무관리들과 그들을 따라다니는 반당들, 하인들, 구경왔던 백성들로 붐비였다.
장영실은 양녕대군과 박대산을 만나보려고 사람들속을 헤쳐나갔다. 헌데 중년배 하나가 자기의 어깨를 떠밀치며 급히 앞서나갔다. 이어 그뒤를 갓쟁이 젊은 량반이 또 자기앞을 바람처럼 앞서내닫듯 하면서 그 중년배의 팔을 덥석 잡았다.
《여게, 좀 서게. 자네 전 의금부도사가 아닌가? 응? 리창배나리님이 아닌가 말일세.》
자기의 이름을 반말로 불리운 리창배는 약이 올라 흘깃 돌아보고 《난 잘 모르겠는데… 나를 볼려거든 조금 있다 보게. 난 한시가 급해.》 하고 그대로 가려고 하였다.
《허, 이 사람 보게. 저만 바쁜가. 나도 바쁜 사람일세.》
젊은 갓쟁이량반이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장영실은 바로 자기앞에서 벌어지는 말을 들으면서 저으기 놀랐다. 보니 중년배는 과연 전 의금부도사 리창배고 갓쟁이 젊은 량반은 충청도 막고개에서 자기를 숲속에 끌고갔던 김을지의 동료 억쇠였다.
《야, 이 손을 놓지 못할가. 룡이 하늘로 오르다가 떨어지면 개미새끼가 달려든다더니… 이게 어디서 온 난데놈이야.》
리창배는 비로소 왈칵 짜증을 내며 붙잡힌 손을 나꿔채 뽑았다. 그리고는 양녕대군과 박대산이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는 몇걸음 못가서 억쇠의 손에 뒤덜미를 덮치웠다.
불의에 목덜미를 잡히운 리창배는 어떻게 했는지 몸을 날래게 뒤틀어 억쇠의 손에서 빠져나와 그와 마주섰다. 억쇠는 리창배를 무섭게 노려보며 한걸음 다가섰다.
《리창배, 네놈이 누구를 잡아보자고… 내가 양지현 백성 김을지다. 어서 잡아보아라.》 하고 억쇠는 도포자락에서 장칼을 빼들었다.
《어, 이놈 봐라. 실성했나. 김을지는 저기… 어서 비켜서지 못하겠느냐.》
《옛다 받아라. 내가 김을지다!》
억쇠는 그놈의 목을 향해 시퍼런 칼을 번쩍이였다. 이때 어데서 나타났는지 말탄 의금부라장이 마상에서 억쇠를 수리개처럼 덮쳐내렸다. 억쇠는 옆으로 몸을 피하는 일변 라장을 칼로 쳐버리였다. 라장은 목이 떨어졌다.
억쇠는 라장의 말안장우에 힝― 날아올라 《양지현 백성 김을지는 여기에 있다. 어서 나를 잡아보아라!―》 하고 웨치더니 말배때기에 박차를 가하였다. 말은 갑자기 닁큼 놀라서 무작정 앞으로 내달렸다. 눈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여서 주위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있다가 사람이 둘씩이나 죽은것을 보고는 소스라쳐 놀랐다.
그러나 다음순간 《김을지는 여기에 있다. 어서 나를 잡아보아라!》 하는 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리였다. 작금년간에 김을지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 웬간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백성들은 먼지를 뽀얗게 피워올리며 질풍같이 내달리는 억쇠의 뒤모습을 경탄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백성들은 가까이에 죽어쓰러진 사람들이 있건만 거기에는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김을지란 사람의 손에 죽었으니 그까짓놈들 응당 죽을 놈이 죽었겠지 하는것 같았다.
백성들은 임금에게 걱정을 끼치는 간악한 양지현 고을원같은 놈들을 골라 처단해버리는 김을지라는 《죄인》이 얼마나 장하고 고마운지 몰라하였다.
장영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억쇠가 어떻게 친경전에 나타났는지, 또 미리부터 리창배의 뒤를 밟아오다가 거사를 치르었는지는 몰라도 어려운 때 잠간 사귄 동료를 위해 뛰여드는 그 의리에 탄복하였다.
한편 양녕대군이 탄 백마의 고삐를 이끌어가던 박대산은 누구인가 웨치는 그 목소리 마디마디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었다. 무엇인가 불뭉치같은것이 치밀어올랐다.
(누구일가? 누가 내대신 제 목숨을 돌보지 않는가?)
그는 당장이라도 저 사람이 김을지가 아니라 내가 김을지다 하고 그 알지 못할 사람의 《죄》를 막아주고싶었다.
양녕대군은 말우에 앉아서 자기를 김을지라고 웨치며 도망치는 사람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며 《허, 듣던바 그대로다. 여하간 김을지란 죄인의 화근을 없애야 하리라. 허참, 망할놈같으니―》 하고 매우 못마땅히 머리를 저으며 박대산을 독촉하여 대궐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임금에게 리천으로 가겠다고 품해야 했기때문이였다.
박대산은 머리를 짓수그리고 땅만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종친들중에 누가 한마디 하였다.
《죽은 사람이 리창배라누만.》
《뭐, 그 량반이? 원래 그도 무술이 용하다던데…》
《김을지란 놈이 칼쓰기를 귀신같이 하니 맞아죽을수밖에―》
이렇게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박대산은 그때에야 자기가 떠나온 웅거지 사람들을 생각하였다. 최천복두령과 패장들, 억쇠… 사생동고를 맹약했던 그들이 아니라면 누가 나를 위해 생명을 내대겠는가? 리창배를 죽였다면 바로 그 리창배가 나를 붙잡자고 하는것을 보고 그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였구나.
가슴은 서서히 진정되고 그대신 웬일인지 억센 힘이 자기도 모르게 솟구치는것을 느끼였다.
만약 대군마님이 자기의 말을 견마하는 사람이 김을지임을 알면 얼마나 놀라실가. 그다음엔 어떻게 하실가. 나를 남몰래 용서해주실가. 용서해주는 대신에 영아와 함께 자기 령지에서 떠나라고 권하시면… 내가 갈곳이 어데인가? 갈 곳은 다시 웅거지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장영실은 양녕대군과 함께 돌아가는 박대산이 무사한것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친경전을 떠났다.
집에서는 사랑하는 숙이가 기다리고있었다. 그가 객사에서 장영실의 녀종으로 들어온 날 그는 밝게 웃으며 말하였다.
《소비는 나리님의 종이예요. 나에겐 안해라는 말보다 그것이 더 좋아요. 정식으로 안해가 된다 해도 녀종으로 살겠어요. 안해든 종이든 나리님을 위해 살면 그만이예요.》
그 녀종, 그 안해가 기다리는것이다. 이 귀중한 사랑을 임금이 주었다. 그래서 또 장영실의 마음은 임금에게로 줄달음쳤다.
(상감께서 《김을지》의 소동을 이내 아시겠구나. 뭐라고 하실가? 상기도 김을지란 놈을 잡아들이지 못하고 뭣들 하고있느냐 하고 의금부 당상관들에게 분노를 터뜨리실가. 상감께서야 그럴수밖에 없을테지. 방금 리창배를 처단하고 달아난 김을지를 조야가 다 보지 않았던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양녕대군의 반당 박대산이 진짜김을지임을 누가 알수 있을텐가.
오늘은 참으로 경사스럽고 다행스러운 날이다. 임금께선 밭갈이의식을 거행하고 박대산에겐 위험이 가셔지고 나에겐 바로 박대산과 영아에 대한 근심걱정없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리익이 되는 일에 전념할수 있게 된 기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