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접동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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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양녕대군의 새초밭에 쌓였던 눈이 어느 사이 다 녹아버리고 드문드문 흰곰이 엎드려있는것 같은 눈무지들이 남아있었는데 요즈음은 그나마 녹아서 작은 새끼곰처럼 보이더니 그것마저 없어졌다.

봄! 봄이 왔다. 박대산과 영아는 이 봄이 어떻게 왔는지 몰랐다. 겨울은 잠간 왔다가 간것처럼 생각되였다. 겨울은 그들에게 행복한 길동무처럼 되여주었다. 사냥터에서 양녕대군과 함께 말을 달리면서 세차게 일으킨 눈보라는 그들의 슬기와 용맹을 북돋아주었다.

이번 겨울에 박대산과 양녕대군은 많은 짐승을 사냥하였다. 메돼지와 노루, 승냥이와 여우도 잡았다. 박대산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창을 던져 잡은것도 많고 양녕대군의 화살에 맞아죽은 짐승도 많았다. 양녕대군의 화살은 뛰는 놈에 나는 놈을 가리지 않고 영낙없이 명중시켰다.

양녕대군을 세자의 자리에서 페한 부왕 태종도 양녕의 모든것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으나 활재주 하나만은 궁중에서 으뜸으로 여겨주었었다.

한번은 태종이 대궐후원에 심어가꾸는 감나무에 까마귀들이 날아들어 해마다 감을 쪼아먹는지라 저놈을 어쩔고 생각한적이 있었다. 내시들과 궁녀들에게 일러 까마귀를 쫓으라 했지만 돌팔매질이나 소래기를 질러서는 그때뿐이고 잠간 날아갔다가는 다시 날아들군 하였다. 쫓으면 흉물스럽게 《까욱, 까욱》 듣기 싫은 소리를 질러 궁궐을 소란케 하고 사람들의 기분을 잡칠 때가 많았었다. 어떤 때는 임금이 정사를 보는 근정전지붕우에 렴치없이 앉아서 대가리를 꾸벅이며 불길한 소리를 내지르군 하니 이놈의 까마귀야말로 온갖 화를 대궐에 불러들이는것 같았다.

태종은 화가 동해 무관들과 갑사패들에게 쏘아잡으라고 했었다. 허나 화살을 날리면 훌쩍 날아올라 다른 나무에 옮겨앉기도 하고 활을 든 사람이 오면 쌍욕을 하듯이 《까욱, 까욱》소리를 내지르며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훨훨 날아가 앉아서 묵묵히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살피군 하였었다.

어느날 세자궁 서연관리 하나가 태종에게 여쭙기를 까마귀를 쏘아잡을 사람은 세자(양녕)밖에 없다고 하였다.

태종은 양녕을 불렀다. 양녕은 씩 웃고 태종의 부아를 돋구어주는 까마귀를 겨누듯마는듯한 화살을 날려 한놈을 떨구고 다른 화살로는 감나무가지에 방금 날아오른 한놈마저 재차 쏘아잡았다.

태종이 세자앞에서 머리를 끄덕이며 웃어보인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

이런 활쏘기재주를 가진 양녕대군과 칼을 잘 쓰고 창던지기에 능한 박대산이 한데 어울려 사냥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었다.

박대산에게 있어서 사냥은 그 하나의 목적에서가 아니라 무술을 닦는 훈련으로 삼아서 언제나 진지하고 용맹스러웠다.

양지현 《죄인》 김을지를 잡아바치면 상금을 내린다는 조정의 지시도 내려가고 각 도, 각 고을에 용모파기를 내다붙이였건만 양녕대군의 령지에서는 알지도 못하였다. 마치 세찬 회오리바람이 스쳐가지 못하는 아늑한 골짜기처럼.

세종은 지난해 섣달그믐날 자기에게 호랑이가죽을 세찬(새해선물)으로 가지고왔던 양녕을 만났을 때 호랑이가죽이 매우 크고 털이 좋다고, 이 호랑이를 잡는데 어떤 젊은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쩔번하였는가고 거듭 혈육의 정을 나누었었다.

양녕은 그때 그 젊은이가 바로 장영실의 누이동생과 혼례를 치르고 서울로 올라가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 반연으로 자기의 령지에 아주 눌러살게 되였다고 숨김없이 말하였었다.

《허허… 과인도 이미 그 일을 알고있소이다.

전에 장영실이 마을돌이를 갔다와서 그 사연을 과인에게 알려주었소이다.》

《허, 이것 봐라. 그 장영실이 나하고는 비밀에 붙여두자고 하고는 고지식하게 다 아뢰였군요. 허허…》

《그참… 지내보니 박대산은 어질고 착하고 성근한 사내대장부이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호환을 당했다 해도 구원해낼 사람이오이다.》

《형님곁에 그런 사람이 있으니 앞으로 사냥나갔다가 호환을 당할 념려는 없겠소이다. 하하…》

세종과 양녕은 한동안 즐겁게 웃었다. …

박대산과 영아는 행복과 기쁨, 희망속에서 이 봄을 맞았다.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죄인 김을지》라는 이름도 세상에서 잊혀질것이고 그러느라면 사람답게 살 날이 올것이였다.

박대산의 마음속에 시름이 있다면 지난해 봄에 굶어죽은 아버지, 어머니, 아지묘에 떼장을 입혀주지 못하고 여직껏 숨어다닌것이였다. 이 봄 청명에는 부모의 묘소를 찾아서 흙이라도 더 올리고 잔디를 입히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마음은 눈과 얼음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가 이 봄에 다시 뾰족뾰족 굳은 땅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과도 같이 억제할수 없는 힘으로 가슴에 살아올랐다.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수 없었다. 하루밤 자고나면 전날보다 더 푸르러지고 더 커지는 초목과도 같았다.

양지현에 가는것은 위험한 일이다. 더구나 청명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상의 산소를 돌보려고 산에 오른다. 어찌 얼굴 아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겠는가. 그러나 그 위험도 박대산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없었다. 부모의 산소를 돌보다가 죽으면 그것은 효자로서 죽는것이니 무엇이 한스럽겠는가.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서 해마다 부모의 묘를 돋구어올리는것은 더 큰 효도이다.

그러자면 이번 길에 실수가 없어야 하였다. 제일 좋기는 청명전날 날이 밝기 전에 묘소에 가닿는것이다. 동네사람들이 산에 오르기 전에 묘를 돌보고 감쪽같이 돌아오면 뒤탈이 없을것 같았다.

박대산은 영아에게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영아는 다소곳이 남편의 말을 끝까지 듣고있다가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나직이 말하였다.

《저도 함께 가겠소이다.》

《뭐라고?!》

박대산은 놀라듯 큰 눈을 번쩍이였다. 위험한 일은 혼자서 해야 남의 눈을 피하기 쉬웠다. 헌데 남자도 아닌 녀자를 데리고서는 기동이 쉬울리 없었다.

《예, 랑군님과 함께라면 못갈 곳이 없소이다. 제가 살아계신 시부모님께 효도 한번 못한것도 원통하온데 청명날에도 시부모산소에 며느리로서 절 한번 못드리고야 어찌…》

영아의 눈에는 맑은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돌았다. 박대산은 영아의 손을 꼭 잡아쥐고 《고맙네.》 하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다음날 박대산은 자기들의 생각을 양녕대군에게 여쭈어올렸다.

《오, 그래야지. 그러나 고향이 동래현이라고 하지 않았던고. 그 먼길을 아녀자와 함께 어찌 가겠느냐.》

양녕대군은 제일처럼 념려해주었다. 하더니 점차로 추연한 빛을 얼굴에 그리며 혼자소리처럼 나직이 말하였다.

《청명이 벌써 며칠로 림박했고나. 내 20년가까이 부왕과 모후(어머니)의 헌릉(묘이름)에 맏자식으로서 향을 사르지 못했고나. 자식이 부모를 찾아보지 못하니 이 무슨 죄인고―》

양녕은 세자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부모의 산소를 찾지 못하였다. 조정의 문무재상들이 이를 극력 반대하였던것이다. 태종과 왕후의 제사날이라던가 청명, 추석에 왕묘에 제사를 받든다는것은 곧 맏자식으로서 부모의 대를 잇는다는것이며 이것은 또 왕대를 잇는것으로 되는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양녕이 왕릉을 찾게 내버려두겠는가.

양녕대군이 지금 한숨을 길게 내쉬는것은 임금이 되고싶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식으로서 부모의 산소를 찾을길 없는것이 한탄스러워서였다.

부왕 태종이 자기를 세자의 자리에서 페위시켰지만 골육을 나누어준 부모이다. 병신으로 자기를 낳아주었다 해도 부모를 탓하면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양녕대군은 부모의 산소를 보러 먼길을 가겠다는 박대산에게 지극한 념려를 베풀어주었다.

《내 언젠가 한번 보았으되 그대의 안해도 말을 잘 달리도다. 내말을 내줄터이니 그대는 내 말을 타고 안해는 제 집 말을 타고 가도록 해라.》

박대산은 양녕대군의 이런 은총에 어쩔줄 몰랐다.

《아니옵나이다. 미천한 우리들이 어찌 대군마마의 애마를 감히 탈수 있으리까. 그것은 례의에 어긋나는 일이옵나이다.》

《효자에겐 못해줄것이 없노라. 속히 일을 보고 돌아오도록 해라.》

《저희들의 말을 타고도 능히 며칠내로 다녀올수 있사오니 그대로 떠나도록 허락해주시옵소서.》

《사람이 타는 말을 사람이 타는데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그대는 사양치 말라.》

양녕대군의 음성은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나무람기가 어려들어 대산이는 어쩔수없이 한량없는 은총을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었다. …

그날 저녁노을이 산발에 비껴들 때 박대산이와 영아는 각기 말을 타고 화살같이 양지현을 향해 달리였다. 이렇게 밤새껏 달리면 새벽에는 묘소를 돌보고 돌아올수 있었다.

그들은 만약을 생각하여 삽과 낫외에 대산의 칼을 감추어가지고 갔다.

양녕대군에게는 동래현으로 간다고 했지만 실지 가는 곳은 양지현이여서 한없이 죄스러웠다. 앞으로 기회가 오면 막부득이한 오늘의 거짓말을 아뢰고 죄를 청하리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영아는 말을 잘 탔다. 지난해 겨울과 이 봄에도 새초밭이며 산길에서 말타는것을 익힌것이라 거칠매 없는 행길에서는 퍼그나 수월하였다.

그들은 날샐녘에 양지현초입에 들어섰다. 대산이는 눈을 감고도 걸을수 있는 고향산천길로 영아를 소리없이 이끌어갔다. 부모님들이 누워있는 산줄기가 어슴푸레 보여왔다.

산천은 아직 굳잠에 취해 한없는 고요가 흘렀다. 가까이에 서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가려볼수 있도록 날은 차츰차츰 밝아왔다.

그들은 조용히 산으로 올라가다가 으슥한 숲속에 말들을 매놓았다. 워낙 숲이 깊어서 지척에 있는 사람도 가려보기 힘들었다. 여기서 얼마 멀지 않게 묘소가 있었다.

그들은 삽과 낫을 가지고 묘지로 갔다. 칼은 영아의 치마속에 감추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 어려웠기때문이였다.

맨 흙을 그대로 들쓰고있는 봉분은 지난 겨울에 얼었다가 녹은 흙이 흘러내렸는데 군데군데 애처로이 자라나는 파아란 풀이 무심히 불어오는 바람에 소리없이 흔들리였다.

박대산은 너무나 비통하여 무너지듯 오금을 꺾고 봉분을 쓸어안으며 《아버님, 어머님… 불초한 아들이 왔나이다.》 하고 굵은 눈물을 흘리였다. 영아도 그옆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였다.

바로 이때였다. 어데선가 갑자기 창을 꼬나든 놈들이 일시에 화닥닥 달려들어 두사람을 에워쌌다.

《김을지 이놈, 네놈이 아무리 둔갑장신을 한다 해도 오늘은 올코에 걸렸고나.》

바로 등에 칼을 대고 라장이 하는 말이였다.

이놈들은 의금부의 라장, 라졸들이다. 효성이 지극한 김을지가 청명날에 부모의 묘지를 반드시 찾으리라고 생각한 놈들은 며칠전부터 묘지를 지키고있었는데 과연 《죄인》이 걸려든것이다.

박대산은 저도모르게 봉분의 흙을 꽉 그러쥐였다. 꼼짝없이 붙잡혔고나. 이놈들이 나를 잡자고 부모님들의 산소를 지키고있을줄 몰랐구나. 다른 곳도 아닌 부모님들앞에서 잡히다니 이 무슨 꼴인가. 땅속에서 《아들아, 내 아들아―》 하고 아버지, 어머니가 무덤을 헤치고 나올것만 같고 《오빠―》 하고 아지가 울부짖을것만 같았다.

박대산은 피가 끓어올랐다. 그는 묘지앞에 부복한 그대로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나직이 말했다.

《너희들도 사람이거든 부모의 산소를 돌보는 아들에게 칼을 내댈수 있느냐. 인륜을 깨뜨리고 례의를 그르치는 곳에 천벌이 내리는줄 모르느냐. 나를 잡아가려거든 부모앞에 절이나 한 다음 잡아가거라.》

《이놈봐라, 혀바닥을 잘라야 할가부다. 얘들아, 이놈을 묶어라.》

라졸 두놈이 꽁무니에 찼던 오라줄을 떼내여가지고 저벅저벅 다가왔다.

《어서 일어나 오라를 곱게 받아라.》

박대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우며 영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라졸들에게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래야 돼. 반항불복하면 죄가 더 커지니깐.》

라졸들이 다 먹어놓은 엿처럼 여기고 오라줄을 내댔다. 그 순간 박대산은 수리개의 날개처럼 억센 두팔을 벌려 두놈의 멱살을 덮쳐쥐고 《지끈, 지끈》 대갈통들을 세괃게 맞쪼아주다가 칼을 들고 맞받아나오는 라장에게 휘뿌려던졌다.

라장은 날래게 몸을 빼면서 김을지에게 칼을 내리쳤다. 허나 그 칼은 허공에서 영아의 칼에 맞부딪쳤다. 칼만이 아니라 서로의 눈길이 맞부딪쳤다.

영아의 두눈에서 서리발같은 빛발이 뿜어져나왔다. 라장은 깜짝 놀랐다. 아니 계집이? 저게 귀신이 아니라면야 어찌 벼락같이 내리치는 칼을 막아내랴. 그는 소름이 쭉 끼쳤다.

라장은 전신의 힘을 다 모아 껑충 뛰여올라서 칼을 번쩍 내려치다가 박대산의 삽에 목줄띠가 끊어져 나딩굴었다. 대갈통이 맞쪼여 얼쳤던 라졸 두놈이 급기야 벌떡벌떡 일어나 달려들고 나머지놈들도 《악, 악》소리치며 덤벼들었다. 허나 놈들은 몇합 치르지 못하고 김을지와 영아의 칼에 맞아죽었다.

새벽이 훤히 밝아왔다. 멀리 마을에서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숲속에는 고요한 정적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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