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접동새

2

 

눈은 양녕대군의 령지에도 내렸다.

깊은 수림에도 내리고 그와 이어진 새초밭에도 내리였다. 인간세상과 멀리 떨어진 이 수림과 이 새초밭가에 단 한채밖에 없는 집도 눈에 묻히였다. 함박눈은 무엇인가 끝없이 속삭이며 내려서 지붕이며 뜨락이며를 포근히 덮어주고있건만 집주인들은 다 모르고 꿀같은 새벽잠을 자고있었다.

아래목도 따스하고 남편의 품도 따스하다.

영아는 문득 눈을 떴다. 동창이 훤해진걸 보니 날이 밝아오는것 같다.

그는 남편이 깨여날세라 살그머니 이불속에서 빠져나와 머리맡에 벗어놓았던 옷을 입었다. 그리고 가만히 부엌으로 나가 부지깽이로 아궁이속에서 살아있는 불씨를 찾아냈다. 바싹 마른 솔가래기로 불씨를 감싸서 조심조심 불어 살리였다. 인차 불길이 일어났다. 이 불길과 함께 행복한 새날이 일어서는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날이 밝을 때도, 날이 저물 때도, 일할 때도, 잠들 때도 즐겁기만한 이 삶! 관비의 설음이 사라진 하늘가 어데선가 기쁨이 마중오는 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부뚜막의 작은 솥도 동래현에서 끓던 때와는 달리 정겹게 노래하는듯 김을 뿜어올렸다. 그곁에는 큰 가마가 걸려있다. 아마도 양녕대군과 함께 사냥나오던 노비들이 이 집에서 쉴 때마다 사냥한 짐승을 튀해 먹느라고 쓰이던 가마인지 모른다.

영아는 큰 가마에도 불을 지폈다. 거기서는 말먹이여물을 끓였다. 콩깍지와 조짚, 좁쌀겨, 수수겨, 보리도 조금 넣고 가마가득 푹푹 삶았다.

동래현에서 천리나 되는 이곳까지 타고온 새매를 애지중지 돌보는 영아였다. 그는 혼자서라도 제법 말을 잘 탔다. 남편과 함께 타기도 하였었다.

양녕대군이 말을 타고 사냥할 때면 남편도 이 새매를 타고 새초밭을 달리면서 대군을 도왔다.

작은 솥에서 밥잦는 소리가 살틀히 들리며 구수한 밥내가 났다. 영아는 부지깽이로 불달린 나무가지를 끌어내였다.

날이 환히 밝아왔다.

그는 아궁이앞에서 일어나 부엌문을 열었다. 밖은 온통 눈세계를 이루었다. 온 누리가 백설천지다.

《아이, 눈이 왔네!―》

영아는 반가운 손님을 맞은듯 아직 깨여나지 않은 남편을 불렀다.

《여보, 어서 일어나세요― 눈이 왔어요!―》

그리고는 부엌문곁에 세워놓았던 싸리비를 집어들었다. 하더니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방그레 웃으며 짚신자국을 또렷또렷 내면서 뜨락 한가운데로 몇걸음 나아가 눈덩이를 둥그렇게 빚었다. 하고는 그것을 눈우에 굴리였다. 눈덩이가 둥근 박만큼 커지고 또 오지단지만큼 커졌다.

영아는 방긋이 웃더니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뜨락가에 서있는 다박솔에 다가가 푸른 솔잎이랑 솔방울을 따가지고 왔다. 잠시후에 그는 아기눈사람을 만들어놓고 일어섰다. 눈아기는 입가에 보조개를 지으며 웃고있었다.

영아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자기가 만들어놓은 《아기》가 너무 귀여워 《아이참, 요것보지, 걸음마를 뗄것 같네.》 하고 속삭이였다.

마구간에서 새매가 두귀를 쭝깃 세우고 영아와 눈아기를 보더니 《푸르릉―》 하고 코투레질을 하였다. 새매는 물기어린 눈을 둥그렇게 뜨고 목을 길게 내뽑았다. 마치 자기의 녀주인이 옥동자를 낳았나 하고 물어보기라도 할것처럼.

잠자리에서 일어난 대산이 밖으로 나왔다.

《어― 눈이 왔구나!》

그는 숱진 눈섭을 새의 날개처럼 활짝 펴고 눈덮인 산천을 반갑게 바라보았다.

영아는 대산을 돌아보며 밝게 웃었다.

《여보, 어서 이리 오셔요. 하늘에서 우리 아기를 내려보냈어요.》

《응? 우리 아기를?!》

대산이는 벙긋이 웃으면서 영아곁으로 나아가 하늘에서 내려보냈다는 눈아기를 보았다.

《어이쿠나, 신통도 하구나, 응? 하하하!》

대산이는 눈아기앞에 쪼그리고앉아서 두팔을 《아기》앞으로 내밀어보이였다.

《자, 여기를 좀 보아라. 내가 너의 아버지다. 어서 이리 오너라. 하하하―》

영아는 대산이 《아기》를 방금이라도 안아줄듯 하는것을 보고 행복하게 웃었다. 그는 요즈음 태기가 있었다. 그래서 아기를 낳으면 남편이 저렇게 기뻐하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영아, 〈아기〉가 참말 곱네그려.》

대산이는 일어나면서 영아의 두어깨를 잡아 자기앞으로 돌려세웠다.

《우리에게도 고운 아기가 태여날가? 응?》

영아의 얼굴에는 수집음이 홍시처럼 빨갛게 물들여졌다.

《우리 아기도 머지않아 태여나오이다.》

《하, 이런 경사라구야!》

그들은 태여날 어린애를 그려보았다. 그애는 노비로가 아니라 량인으로 당당하게 태여날것이였다.

지난날 대산이와 영아는 자기들사이에 태여날 아기가 노비의 멍에를 쓰고 태여날것이 두려워 혼례를 한해두해 미루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려울것이 없었다. 영아가 노비에서 해방되였다. 이제 태여날 우리 아기도 비참한 운명을 물려받지 않을것이다.

두사람의 머리와 어깨에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뜨거운 얼굴에 내린 눈은 봄눈처럼 녹아서 이슬처럼 맺혔다가 진주구슬처럼 떨어졌다.

《거긴 눈서방이 되겠구요.》

《임자는 눈각시가 되였구만. 눈각시와 함께 눈우에 딩굴고싶네.》

《여기선 안돼요. 누가 보면 어쩔려구… 어디 날 좀 잡아봐요.》

영아는 문득 날래게 몸을 피해 달아났다. 예닐곱살 소녀처럼 터뜨리는 웃음소리를 등뒤에 남기며 달음박질을 하였다. 대산은 씽긋 웃더니 《내가 못잡을줄 알구, 하하하.》 하고 영아의 뒤를 쫓아갔다.

발목을 덮는 눈이 영아의 발부리밑에서 펄펄 일어났다. 부엌앞을 지나고 마구간을 지나서 이내 집뒤로 그의 람색치마자락이 고운 새의 날개처럼 펄럭이다가 사라졌다. 그들은 아이들의 술래잡기놀음처럼 집오래를 두어바퀴 돌았다. 영아는 뜨락 한가운데서 드디여 붙잡히였다.

《아이, 숨차라. 난 더 못뛰겠어요.》

영아는 숨을 할싹이며 대산의 품에 몸을 맡겼다. 그의 적삼밑에서 둥실하게 솟은 젖가슴이 들숨날숨에 탐스럽게 오르내리였다.

《인젠 내 마음대로지… 하하하.》

대산이는 저도 숨이 차서 영아를 그러안고 눈우에 털썩 주저앉더니 네활개를 쭉 펴고 누웠다. 영아도 그의 팔을 베고 누웠다. 두사람은 한동안 눈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내리는 함박눈이 꽃보라처럼 그들을 축복해주는것만 같았다.

내리는 눈은 깨끗하고 순결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깨끗하고 순결한것은 그들의 사랑이였다.

《여보, 이 눈은 한성에도 오겠지요? 난 이 눈을 홀로 바라보고계실 오빠가 떠올라요.》

오빠를 생각하는 영아의 마음은 끝없이 내리는 눈처럼 끝이 없었다. 오빠가 대궐객사의 관비로 있는 숙이를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랑하고있지만 가정을 이룰길이 없는것이 애통스러웠다. 그는 자기가 관비의 처지로 마음을 썩이는 사랑을 겪어보았기에 오빠와 숙이의 사랑이 얼마나 눈물겨운 사랑인가를 잘 알고있었다.

《형님은 우리처럼 눈오는 하늘을 바라볼 짬이 없는분이네. 상감마마의 뜻을 받드시구 또 무엇을 만드시느라고 바깥구경도 못하실테지. … 여보 영아, 우리 대군마님께 말미를 얻어서 형님을 뵈오러 서울에 한번 다녀올가?》

대산의 말에 영아의 얼굴이 환히 밝아졌다가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러다가 의금부도사와 라졸들을 만나면 어쩔려구…》

영아가 한숨을 내그으며 일어났다. 대산이도 성큼 일어나서 영아의 눈을 털어주었다.

마구간에서 새매가 코투레질하는 소리가 났다.

《새매가 배고프겠어요. 어서 여물을 주자요.》

잠시후에 그들은 김이 무럭무럭 피여오르는 여물을 커다란 함지박에 들고 나와 말구유에 듬뿍이 쏟아주었다. 누르끼레한 물은 여물속에 잦아들고 빨깃빨깃한 수수겨와 노릿노릿한 좁쌀겨가 먹음직스럽게 남았다. 새매는 입술로 호물호물 여물을 끌어당겨 잘도 먹었다. 소는 혀를 입밖으로 내밀어 먹이를 감아당겨 먹지만 말은 그와 달랐다.

《어서 많이 먹어라. 이제 눈이 멎으면 래일엔 대군마님이 사냥을 나오실게다.》

대산이는 새매와 이야기를 나누듯 대견히 말을 바라보았다. 새매는 대산이와 영아에게 또 하나의 식솔과도 같은 귀중한 존재였다. 이 새매를 타고 동래현에서 떠나 여기까지 천리길을 온것은 말할것도 없고 양녕대군의 노비들과 함께 가을한 곡식을 실어나르기도 했고 이 새매를 타고 대군과 함께 사냥도 하였으며 영아에게 말타는 묘리도 배워주었다.

몸을 숨기고 살아가고있는 형편에서 무슨 일에 부딪칠지 알수 없어 영아는 말타기와 칼쓰기를 짬짬이 익히였다.

그는 하루에 세번 새매에게 여물을 줄 때마다 최서방의 헌걸찬 모습이 저절로 눈앞에 떠오르군 하였다. 찬눈이 오면 마당도 쓸어주고 집이 추워오면 산에 올라 나무도 해다주고 오빠가 보고싶어 울면 울지 말라고, 이제는 오빠가 올 때가 되였다고 달래주던 최오석아저씨, 노비의 멍에를 벗어던진 나를 보고 기뻐하며 집에 하나밖에 없는 말을 주면서 타고가라고 고삐를 넘겨준 아저씨. 지금은 말도 없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언제면 새매를 돌려줄 날이 오겠는지…

최서방도 고향사람들도 여기서 함께 산다면 얼마나 좋으랴. 량반상놈 차별없이 한집안식솔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던 고향사람들이 못내 그리워지군 하였다.

새매가 여물을 먹는 사이에 그들은 아침식사를 치르고 뜨락의 눈도 쓸고 양녕대군의 집으로 가는 오솔길의 눈도 멀리까지 쓸어놓았다. 이 길로 대군이 사냥하러 나올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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