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접동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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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솜같은 함박눈이 밤사이에 많이 내렸다. 대궐의 높은 지붕도 하얗게 변하고 서울장안거리와 마을 그 어디나 눈천지를 이루었다.

숙이는 새벽일찍 일어나 객사의 눈을 부지런히 쓸어내고 그달음으로 발목이 빠지는 숫눈길을 헤치며 청계천기슭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의 람색치마자락이 꽃나비처럼 눈우에 펄럭이고 사내처럼 어깨에 둘러멘 눈가래가 걸싼 발걸음에 맞추어 오르내리였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잎새우에 흰눈꽃이 탐스럽게 피여나고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처럼 잎이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도 눈꽃이 곱게 피였다. 눈은 큰 나무, 작은 나무, 잎이 있거나 없는 나무들을 가림없이 골고루 아름답게 치장해주었다.

슴슴하고도 청신한 눈향기가 가슴깊이 흘러들었다.

(나리님도 이 숫눈향기를 맡고계실가? 지금은 무엇을 하고있을가?)

숙이는 저도모르게 떠오르는 장영실을 그려보니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그는 눈에 묻혀 호젓이 비여있을 장영실의 집으로 가서 눈을 쓸어내려고 하였다.

장영실을 본지도 어언 스무날이 되여왔다. 혹시나 집에 들어와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감이 소리없이 가슴을 설레이게 하였다. 걸음발을 다그쳐 마침내 정다운 마당가로 들어섰다. 달덩이같은 환한 얼굴, 어글어글 빛나는 눈을 들고 집오래를 한참이나 둘러보았다. 그 누구의 발자국자리도 나지 않은 복스러운 눈이 포근한 이불처럼 마당가득 덮였다. 집은 비여있어도 장영실의 티없이 깨끗하고 따스한 마음이 흰눈이 되여 내린것처럼 안겨오기도 하고 장영실을 사모하는 자기의 마음이 소복소복 쌓인것처럼 애틋한 정을 불러내기도 하였다.

숙이는 어깨에 멨던 눈가래를 내려세워 잡고 한동안 그린듯이 서있었다. 왜그런지 이 눈을 쳐내기가 아까왔다. 허지만 어떻게 쳐내지 않으랴. 장영실이 집에 들어오면 외롭고 쓸쓸한 집이 아니라 살틀한 녀인의 손길이 닿아있는 보금자리라는것을 느끼게 해야 하루라도 마음편히 잘수 있을것이였다.

그의 남모르는 이 마음은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하루도 변함이 없었다. 어느때 집에 들어올지 모르는 장영실을 생각하며 부엌아궁이에 군불이라도 지펴서 방안을 덥혀놓군 하였다. 어떤 날에는 땀에 절고 숯검댕이때가 오른 옷을 입은채로 쓰러져 자는 장영실을 보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깨여날세라 발끝을 세워가며 깨끗이 빨아 다린 옷을 머리맡에 놓아주고 부엌으로 나와 밥을 지어놓고 가만히 돌아가군 하였다. 객사주부가 무슨 일로 자기를 찾다가 없으면 상투끝까지 독이 올라 이년, 저년 쌍욕을 퍼붓는것이 두려웠던것이다.

숙이가 다음날 짬을 내서 장영실의 집에 나와보면 옷을 갈아입고 벗어놓은 빨래감이 차곡차곡 포개져있었다.

(아이, 얼마나 고생하시누―)

숙이는 이 아침도 빨아놓은 옷과 밥이랑 지어가지고 장영실을 찾아갈수만 있다면 작히나 좋으랴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그는 한숨을 《호―》 내긋고 분수없는 생각을 털어버리듯 걸싸게 눈을 쳐나갔다. 그의 눈가래질에 눈가루가 펄펄일었다.

눈은 군기감의 야장간지붕에도 두텁게 쌓였다. 허나 시꺼먼 돌굴뚝이 솟아오른 가녁엔 눈이 녹아서 둥그렇게 맨 기와장이 드러나있었다. 굴뚝에서는 빨간 불티가 섞인 뜨거운 열기가 치솟아올랐다.

야장간은 열두엇채의 살림집을 합친것보다 더 컸다. 너렁청한 통간들이방에 한쪽으로 화포를 붓는 쇠물가마가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갖가지 창과 칼을 벼리기 위해 쇠를 달구는 풍로들이 있었다. 풍로들과 쇠물가마사이 드넓은 공간에서 100여명의 장공인들이 일한다. 그러나 아직은 이른아침이여서 일하러 나온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쇠물가마에서만이 쇠물이 끓고있었다. 흡사 작은 흙집과 같은 쇠물가마좌우에는 농짝같은 풀무통이 붙어있었다. 거기에는 각기 힘꼴이나 쓰는 장정 셋이 굵은 풀무채를 함께 잡고 힘을 합쳐 세괃게 풀무질을 해대고있었다. 그들의 얼굴과 목덜미에서 땀이 철철 흘러내렸다.

 

               어여차 미세 당기세

               어여차 풀무 풀무야

               우리네 쇠물가마

               잘도나 끓는고나

 

한쪽의 풀무패들이 흥취나게 한곡조 넘기면 다른 한쪽의 풀무패들이 신나게 받아넘기였다.

 

               지여차 미세 당기세

               지여차 풀무 풀무야

               바람만 먹고도

               시우쇠만 낳는구나

 

쇠물가마 아궁이짬으로 적황색불길이 들숨날숨을 쉬듯이 들락날락하였다.

장영실은 쇠갈구리로 아궁이문을 열어젖히고 쇠물이 끓는 가마안을 유심히 살피였다. 불길이 확확 뿜어나왔다. 한손을 들어 뜨거운 열기를 막으며 바라보는 눈에는 쇠물화광이 어려들어서인지 영채로이 빛났다.

가슴과 허리, 무릎을 가리우는 노루가죽앞치마를 걸치고 맨 상투머리에 무명수건을 동인 그 모양은 일반쇠부리쟁인바치들과 다름이 없었다. 노루가죽앞치마는 새까맣게 어지러워진데다가 쇠물방울이 뚫러놓은 구멍이 숭숭 나있어서 볼품이 없었다. 그러나 그안에 입고있는 바지저고리는 다른 장공인들의 옷보다는 덞지 않았다. 옷이 어지러우면 량반들이나 장공인들까지도 다같이 숙보기 쉽다고 덞을세라 빨아준 숙이의 덕이다.

《여보게 이 사람, 쇠물이 백토를 달라네. 세삽만 먹이게.》

장영실이 여전히 끓는 쇠물을 가늠해보면서 옆에 있는 쇠부리장공인에게 말하였다.

《알았소이다.》

젊은 쇠부리는 백토(석회석)를 삽으로 듬뿍듬뿍 떠서 날파람있게 뿌려던졌다. 그때마다 쇠물은 시뻘건 혀바닥같은 불길을 널름널름 내밀어보이며 넙적넙적 받아먹었다.

《그만하면 되겠네.》

장영실은 빙긋 웃으며 쇠물가마 아궁이를 닫았다. 그리고 머리수건을 벗어서 탁탁 털며 《그 땀을 좀 씻게.》 하고 젊은 쇠부리장공인에게 내밀었다.

《아니웨다. 소인도 머리수건이 있나이다.》

젊은이는 황황히 자기의 머리수건을 얼른 벗어 땀을 씻었다.

《하하하… 땀을 씻는다는게 외려 검둥이칠을 해놓았네그려. 탈바가지를 쓴것처럼. 원참, 그게 뭔가. 자, 내 수건이 자네것보다 덞지 않았네. 그래서 주는건데… 이걸루 다시 씻게. 가만, 보아하니 내가 씻어주어야 되겠네. 제 손으로 씻다가는 또 광대칠을 할테니깐. 하하하.》

장영실은 황송히 물러서는 젊은이를 붙잡고 이마와 관자노리며를 하나하나 닦아주었다. 끼끗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것을 띄여본 풀무군들은 저희들끼리 가만가만 말을 주고받았다.

《참말 나리님은 보기 드문 사람일세. 상호군이지만 행세 않거든. 노비에게 제 머리수건을 벗어서 땀을 씻어주는 량반이 어디 쉬운가.》

《내내 저러신다니깐.》

《본색이 우리와 같은 관노였으니까 그러겠지.》

《허, 이 사람 보게. 가난뱅이 부자되면 더 깍쟁이가 되고 상놈이 량반되면 더 악착스럽다지 않나.》

《아닐세. 간혹 그런 놈이 있기는 해두 다는 그렇지 않아. 자네가 량반이 된다면 나를 천시하겠나. 같은 노비출신끼리― 응?》

《하긴 그래. 원체 사람이 돼먹기탓이야. 천성이 악한 놈은 악한 종자를 타구난다니.》

《자넨 무슨 종자인가?》

《나말인가? 내가 저분처럼 상호군벼슬에 높이 오르면 자네같은 쟁인바치를 눈아래 굽어보면서 〈여봐라, 너희들의 풀무질이 왜 이리도 죽은 아이 코김같이 쇠하느냐? 에끼, 무지렁이같은 놈들, 곤장맛을 봐야 알겠냐?〉 하고 호령하겠네. 이렇게 배를 쑥 내밀고 말이야.》

풀무군 하나가 우뚝 일어나 배를 내밀고 삿대질을 해보이는 시늉을 하였다.

《아하하하…》

《어이구, 배야. 하하하.》

《꿈같은 소리로다. 와하하…》

《그러기 너같은 놈 량반 안시킨다. 하하…》

풀무군들이 이렇게 한마디씩 하느라고 잠간 풀무질이 숙어졌다. 이것을 본 장영실이 그들한테로 다가갔다. 쇠물이 숙성되는 이런 때야말로 바람을 더 많이 먹여야 하였다.

《모두들 웃으니 쇠물도 웃으며 끓소. 허나 풀무질은 아니하고 웃기만 하면 쇠물은 운다오. 자, 웃으면서 풀무질을 합시다.》

장영실은 풀무군들과 함께 웃으며 멈춰선 풀무채를 잡고 밀었다.

《아참, 이런 정신을 좀봐. … 우리가 그만…》

풀무군들은 잠시 멈추었던것을 봉창이라도 하듯이 힘을 합쳐 힘차게 풀무질을 해댔다.

《우리가 웃으면 시우쇠도 웃으며 나온다, 그참 귀맛이 도는 말씀이오이다.》

《고맙소이다. 같은 일을 시켜두 우리를 신바람나게 말씀해주시니 힘든줄 모르겠소이다.》

풀무군들이 이구동성으로 치사하였다. 장영실은 빙그레 웃었다.

《힘든 일을 힘들지 않다 하니 고맙기는 내가 고맙수다.》

장공인들은 장영실을 좋아하였다. 만약 장영실이 아니고 다른 량반이 일을 부린다면 이렇게두 호령 한번 들어보지 않고 흥겹게 일해볼수 없을것이였다. 그와 함께 일하면 먼저 마음이 편해 좋았고 기술을 배워서 좋았다. 그래서 일손에 성수가 나고 그만큼 일자리가 푹푹 났다.

《나리님, 이제 이 시우쇠물로 화포를 얇게 부어도 정말 일없을가요?》

《그렇수. 허나 화포를 다 만든 다음에 두고봐야지.》

장영실은 화포를 사람이 가지고 다닐수 있도록 가볍게 하고 화약을 적게 쓰면서도 화살이나 포알이 더 멀리 날아가 적을 쓸어눕힐수 있도록 만들라는 임금의 하교를 받은 때부터 지금껏 온갖 지혜와 지성을 다해왔다.

화포는 시우쇠로 부어야 했다. 그래야 화포를 쏠 때 화약의 폭발력을 견디여낼수 있다. 시우쇠라도 더 굳고 더 튐성이 있는 시우쇠일수록 좋은것이다. (시우쇠란 정철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강철이다)

장영실은 뼈를 깎아내고 진혈을 짜내는 연구를 거쳐 오늘에 비로소 그 쇠물을 바라보게 된것이다.

한식경이 지났다. 장영실은 서둘러 쇠물가마 아궁이를 열고 또 쇠물빛을 가늠해보았다. 쇠물은 마치도 가마속에 해가 들어가앉은듯이 황백색빛을 눈부시게 내뿜고있었다. 쇠물빛을 받은 그의 얼굴은 숨가쁜 환희로 붉게 물들여졌다. 자신을 잊고 바라보는 그 눈길은 한없이 소중하고 귀중한 그 뉘를 반갑게 만난것처럼 사랑으로 불타고 열정으로 빛났다. 숙이를 바라보던 그 눈빛처럼.

장영실은 문득 아이와 같이 기쁨에 겨워 소리치고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허나 그것을 애써 누르고 풀무군들을 돌아보았다.

《풀무를 그치우. 정말 수고들 했수. 잠간 땀을 들이우. 그사이 우리는 쇠물받을 차비를 하겠수다.》

장영실은 곁에 있는 쇠부리장공인들을 신칙해서 불가마앞을 잽싸게 오가면서 치울건 치우고 날라올것은 날라왔다.

바로 그때 밤을 자고 아침을 먹은 장공인들이 추위에 몸을 옹송그리며 하나씩 혹은 둘셋씩 야장간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화포를 만드는 사람, 창과 칼을 벼리는 사람들로서 각기 맡은 소임이 서로 달랐다. 허리가 활등같은 꺼꺼부정한 늙은이도 있고 때이르게 수염이 텁수룩한 젊은이도 있고 아직 애어린 소년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같은것은 입고있는 옷들이 람루한것이다. 그들이 제가 일하는 곳으로 흩어져가고 그중에 더러는 새 화포를 만드는데 호기심을 가지고 땀을 들이고있는 풀무군들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만복이는 그들속에 끼워 풀무군들을 찾아갔다.

《아니, 이 풀무쟁이들 좀 보게. 이렇게 추운 날에 땀을 다 흘리구… 허, 그참 좋겠다.》

어느 중년배장공인이 뜬김같은 입김을 허옇게 날리며 부러워하는지 조롱하는지 모를 소리를 하자 풀무군 하나가 빙긋이 웃으며 맞받았다.

《자네 춥거들랑 이리 와서 풀무질을 해보게. 잠간이면 삼복더위를 먹지 않으리.》

중년배가 《에쿠, 난 삼복철이 더 싫다.》하고 달아났다.

《아저씨, 제가 한번 해보겠소이다.》

만복이가 풀무군앞으로 나서며 싱긋 웃었다.

《허, 이 젊은 총각이 또 왔네그려. 풀무질은 조금있다가 해보게. 지금은 쉬여야 하니깐. 그래 여긴 왜 또 왔나, 주자소쟁이가―》

《우리 나리님이 끼식도 제대로 못하시는것 같아서 무얼 좀…》

《그참, 장하웨. 헌데 우리 나리님이라는건 누군가?》

《장영실상호군님이지 누구이겠소이까.》

《아따, 이 총각 보게, 그분은 우리 나리님이지 주자소 나리님인가.》

《거기 나리님도 되시구 우리 나리님도 되시오이다.》

만복이 이렇게 말하고 벙글거리자 풀무군이 껄껄 마주웃었다.

《그래, 그래. 그분이야 다 우리 나리님이지. … 저기 나리님이 계시네. 우리는 쉬우구 자기는 잠시도 쉬지 않으셔.》

만복이가 풀무군이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과연 장영실이 큰 두꺼비집같은 화포주형을 돌아보기도 하고 또 무엇인가 손질하기도 하였다.

《참말 우리 나리님같은 량반만 있으면 세상살이가 수월하겠는데… 량반상놈 할것없이 한가마밥 먹구 함께 일하구 함께 자고 깨구…》

만복이는 늘 품고있던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터놓았다.

《그랬으면야 오죽이나 좋겠나.》

풀무군이 탄식하듯 《후유―》 하고 긴 한숨을 내쉬였다.

《누가 듣겠다. 종작없는 소리 그만 지껄이라구.》

나이지숙한 풀무군이 악의없이 눈을 찔끔 빨았다.

《누구를 곤욕시키지 못해 그따위 소린가.》

주형에 쇠물을 부어도 일없겠는가를 따져본 장영실은 쇠물가마앞으로 다가가면서 명랑쾌활하게 웨치듯 소리쳤다.

《여러분네들!― 쇠물을 부읍시다.》

《예잇―》

기다렸던듯이 풀무군들이 우정 유쾌히 길게 대답하며 일제히 일어섰다.

《가만, 게들 섰거라. 이놈들.》

별안간 난데없는 불호령이 째지게 울렸다. 풀무군들과 구경왔던 장공인들이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호사스러운 여우털중치막을 입은 량반이 퉁방울같은 눈알을 잔뜩 부라리고있었다. 이 량반은 군기감의 판관 리사균이다.

《네놈들이 일은 하지 않구 혀바닥을 마음대로 나불대는고나. 이놈들, 무엇이 어쨌다구? 량반세상이 못살 세상이라고? 량반, 상놈 한가마밥 먹으면 어쨌다고?

량반이 노비들과 한가마밥을 어찌 먹는단 말이냐. 이놈들, 다시한번 말해봐라.》

리사균은 처음부터 그들의 말을 다 엿들었던지 금시라도 잡아먹을듯이 덤비였다. 그는 장영실을 괘씸히 여겨왔었다. 자기들이 지금껏 만들어낸 화포보다 월등한 새로운 화포를 만드는것은 자기의 얼굴을 심히 깎아내리는것과 다름이 없었다. 더구나 괘씸한것은 장영실이 노비들과 한가마밥을 먹고 함께 자고깨며 궂은일, 마른일을 함께 하면서 상하의 구별을 깨뜨리고있는것이였다.

이것이야말로 량반세상을 깨뜨리는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그래서 무지렁이같은 노비들까지도 아무말이나 망탕하는 지경에 이른것이 아닌가. 장본인은 장영실이다. 저 천한 노비출신을 어쩌면 좋을고. 허나 어쩔수 없었다. 귀신같은 재간을 가진데다가 자기보다 두 등급이나 벼슬이 높은 상호군이였다.

리사균은 장영실에게 퍼부어야 할 쌍욕을 장공인들에게 벼락같이 터뜨리였다.

《죽일놈들, 입이 꿰졌느냐. 다시 지껄여봐라.》

장공인들은 《이크, 경치게 됐구나. 코걸이라면 코걸이, 귀걸이라면 귀걸인데 말을 조심치 않구.》 하고 얼굴들을 수그리였다.

장영실은 리사균이 사람들을 붙잡아놓고 죄인을 다스리듯 하는것이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었지만 쇠물적기를 놓칠것 같아서 그가 몹시 밉살스러웠다. 그는 사균을 본체도 하지 않고 장공인들에게 우정 큰소리를 쳤다.

《너희들은 거기서 왜 꾸물거리느냐. 쇠물을 제때에 못받으면 쇠물이 쇠여서 새 화포를 못붓고 그러면 어명을 그르치게 된다는것을 모른단 말이냐? 어서 이리 오지 못할가.》

장공인들은 장영실이 자기들에게 한번도 해보지 못한 《너희들》이란 말을 써가며 장히 거드름스럽게 량반관리들의 언성으로 호령하는것은 자기들을 빼내려고 그러는것임을 알고 속으로는 우스웠지만 겉으로는 크게 혼겁을 먹은듯이 황망히 《네, 네.》하고 우르르 달려갔다.

리사균은 닭을 쫓다가 지붕을 쳐다보는 개신세가 되였다. 그는 장영실이가 《어명을 그르치게 된다는것을 모른단 말이냐?》하고 쟁인바치들을 욕하였지만 그것이 자기를 에둘러 치는 소리라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만약 어명소리만 나오지 않았대도 이렇게까지 창피스럽게 제가 다스리던 쟁인바치들을 면전에서 빼앗기지 않았을것이였다. 어명은 법이라 그것을 그르치다가는 어떤 재변을 당할지 몰랐다.

리사균은 분이 굴뚝같이 뻗쳐올랐지만 참을수밖에 없었다.

(두고보자. 본색이 노비란 놈이 상호군이랍시구 안하무인이로다. 아이고, 분통이 터지는고나. )

그는 똥바가지를 뒤집어쓴것처럼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해서 무슨 걸터구나 잡아볼가 하여 노리는중에 마침 만복이가 눈에 띄였다.

(으흠, 저놈이였다. 저놈이 불온한 말을 먼저 내였겠다. 헌데 보아하니 여기 놈이 아니고나. 음, 알겠다. 불온한 말을 하자고 슴새든게 적실하고나. 저놈의 죄를 다스려도 아무 일 없으렷다. )

이렇게 생각한 리사균은 만복을 쫓아가서 목덜미를 우악스럽게 덮쳐쥐고 자기앞으로 돌려세웠다.

《이놈, 어디를 도망하느냐? 네놈이 도망하면 지은 죄도 도망할줄 알았느냐.》

그리고는 따귀를 세차게 울렸다. 만복은 비칠거리다가 요행 넘어지지는 않고 몸을 바로 세웠다.

《아니 이 웬일이오이까? 무죄한 사람을 귀쌈친 까닭이 무엇이니까?》

만복은 갑작변을 당한것이 무슨 일인지 몰라하였다.

《이놈 봐라, 까닭이라고? 네놈이 여기에 들어온 까닭이다. 여기엔 어떤 잡놈도 못들어오는데 네놈은 슴새들었다. 불온한 말을 퍼뜨리자구 왔지. 이놈, 어서 이실직고해라.》

여기 야장간은 병쟁기를 만드는 곳이라 비밀이 샐가봐 외인은 절대 엄금하는 곳이다.

《그건 너무하오이다.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주야로 장창 일하시는 우리 나리님께 무엇이라도 좀 대접하자구 왔나이다. 자, 이걸 보시오이다.》

만복은 들고있는 꾸레미를 쳐들어보였으나 들어갈수 없는 곳에 왔고 제가 한 말도 있어서 한풀 꺾이였다.

《무엇이 어째? 누가 그따위짓을 하라더냐. 누가 불온한 말을 하랬느냐. 네놈이 어느 놈과 작당했느냐? 네놈이 수상쩍다. 여봐라, 게 누가 없느냐.》

그러자 어데서 나타났는지 군기감 라졸 두엇이 달려나왔다.

《이놈을 묶어라.》

리사균은 만복을 달구면 장영실의 허물이 껴묻어나오리라고 쾌재를 불렀다. 라졸들은 눈깜박할 사이에 만복을 묶었다. 일하던 장공인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모여들었다.

장영실은 자기를 위해 찾아온 만복이가 자기앞에서 잡혀가게 되자 가만히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저 총각은 나를 찾아온 사람이요. 죄가 있다면 본관이 치죄함이 정리거든 그대는 상관치 않음이 좋으리오. 내 당장 쇠물을 부어야 할 때라 그대와 길게 말할 짬이 없소. 그대는 그리 알고 물러가도록 하오.》

장영실은 임금이 준 상호군의 높은 벼슬을 많은 사람들앞에서 엄엄히 떨치였다. 상감마마께서 이런 경우를 미리 내다보고 나에게 상호군을 내렸구나 하는 생각이 불시에 가슴을 울려주었다. 그러자 마음이 든든해지고 드센 배짱이 생겼다.

언제나 착해보이고 마음씨 또한 고와 쟁인바치노비들과 다름없이 일하던 장영실이 뜻밖에도 강단을 보이니 장공인들은 입을 하― 벌리고 경탄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데 리사균은 자기앞에 상호군이 있음을 비로소 깨달은듯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상전앞에서 유구무언이라 그는 별도리가 없었다. 그런즉 두번씩이나 망신을 당한셈이였다.

(오냐, 내 네놈을 가만두면 사람이 아니다. 국법을 어기고 불온한 말을 한 놈을 두둔해주었거니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겠는가. )

리사균은 내심 이렇게 독을 내뿜고 꼬리를 사리였다. 라졸들도 만복을 풀어주고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 모양을 보고 체했던 속이 시원히 내려간듯 싱글벙글 웃었다. 만복이는 장영실앞에 죄스러워 어쩔줄 몰라했다.

《나리님, 이건 숙이누나가…》

만복이 두손으로 닭곰을 내밀었다.

《내가 네 마음을 안다. 하지만 여기 오면 안돼. 그건 만복이나 가지고가서 먹으렴.》

장영실은 만복이를 타일러 보내고 드디여 쇠물을 부었다.

그 이튿날 화포의 주형을 털어냈다. 주조된 화포는 겉면도 씻은듯, 닦은듯 매끌스럽고 안면도 쇠거울처럼 흠집 하나없이 부신듯 가신듯 하였다.

화약실에 화승심지가 들어가는 구멍조차 쬐꼬만 콩새눈깔만 한것이 또렷이 뚫러져있고 각종 홈이며 돌출돌기며 갖가지 구조물들이 마치 도장으로 찍어낸듯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찌나 정교하고 단아하던지 너무나 희한하여 장공인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일제히 《히야!―》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쇠물도 쇠물이지만 주형이 어떻게 빚어지는가에 따라 화포의 우렬이 분명해지는것이였다. 장영실이 여기에 쏟아부은 심혼을 누가 다 헤아리겠는가. 그것은 오직 쇠물만이 알고 주형속에 고이 흘러들어 그가 바라는대로 곱게 굳어진것이다.

장영실의 재간이 아니면 이런 화포를 부어낼 사람이 없었다. 한생 장공인으로 살아온 늙은이도 혀를 내둘렀다.

장영실은 큰 쇠메를 들고 화포앞에 다가서서 《자네 이 쇠메루 한번 내려쳐보게. 화포가 깨지나 안깨지나 시험해봐야 하니깐.》하고 건장한 풀무군에게 스물닷근 쇠메를 넘겨주었다.

《아니 이러지 마시오이다. 그러다가 깨지면 어찌하리까. 소인은 손이 떨려서 못하겠소이다.》

풀무군은 뒤걸음을 쳤다.

《나리님, 이 화포는 아무리 시우쇠로 부었다 해도 지금 화포보다 두께가 절반으로 줄어들어서 깨지기 쉽소이다.》

다른 풀무군이 하는 말이였다.

《쉽게 깨지는 화포를 무엇에 쓰겠소. 너 죽고 나 죽는 싸움판에서 달려드는 적을 쏘다가 화포가 터지면 우리 군사들이 죽을것이요. 열번이고 백번이고 다시 부어서라도 온전한 화포를 만들어야 하우.》

장영실은 자신이 직접 쇠메를 머리우에 높이 들어올렸다가 있는 힘을 다하여 내리쳤다. 장공인들은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았다.

《쩡―》하는 여무진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여나고 쇠메가 퉁겨났다.

《헛― 어허허, 잘한다. 탕탕 맞서는구나!―》

좀전에 손이 떨려서 쇠메를 들지 못하겠다던 젊은이가 저도모르게 무릎을 치며 좋아하였다.

《참말 바람이나 맞은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네그려.》

《닭알로 바위치는 격일세.》

《원, 세상에 이런 시우쇠도 있나.》

《없었지만 나리님이 만들어냈거든.》

장공인들이 너도나도 감탄해서 화포를 쓸어보기도 하고 뒤집어놓고 보기도 하였다.

《가만, 좀 비켜서우. 눈에 보이지 않는 실금이 났는지 어찌 알겠소. 몇번 더 쇠메질을 해봐야 알겠수.》

장영실은 건장한 젊은이에게 쇠메를 넘겨주었다. 젊은이가 이번에는 서슴없이 받았다.

《허, 아까는 손이 떨려 못받겠다더니 웬일인가? 천연스레 쇠메를 받으니…》

《저 사람이 본래 이랬다저랬다 하는게야.》

《하하하.》

장공인들은 새 화포가 다시 쇠메로 내리쳐도 깨지지 않으리라는것을 알고서 이같이 즐거운 롱담을 하였다.

《내가 이랬다저랬다 하는게 아니요. 백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지만 우리네 새 화포는 백번, 천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을테니깐 넘겨받은거야.》

젊은이는 어깨춤을 추듯이 쇠메를 휘둘러 한바퀴 빙그르르 돌아서 보기 좋게 내리쳤다.

《쩌어엉―》

화포는 또다시 불꽃을 날리면서 쇠메를 껑충 퉁겨올렸다.

사람들은 처음엔 제발 깨지지 마소서 하고 속으로 빌던 때와는 다르게 배심든든히 내려다보다가 자기들의 생각대로 끄떡없는 화포를 보고는 《와야!―》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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