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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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수영포하늘가에 불그스레한 빛이 떠오를듯말듯 하더니 이내 붉은 노을이 넓게 퍼지기 시작하였다.
아침밥을 첫새벽에 치른 장영실과 김을지 그리고 영아는 가슴들이 별나게 두근거리고 꿈을 꾸는듯 하였다. 오늘은 장영실이 대궐로 돌아가는 날이요, 박대산(김을지)과 영아도 그를 따라 함께 가는 날이다.
마당 한가운데는 벌써 짐을 실은 말이 두귀를 쫑깃거리며 서있었다. 짐이래야 헌옷가지를 싼 보따리 하나와 작은 솥 하나와 바가지 한짝, 이빠진 사발 두세개를 넣은 대나무고리짝이 전부여서 말도 홀가분한듯 코투레질만 장히 불어대였다. 내 잔등에 상호군나리님이 올라앉아도 아무일 없을테니 어서 타시오 하듯이―
영아는 마을돌이를 할 때처럼 연두색비단치마에 비단분홍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부엌문을 나섰다. 어느 량반집 규방소저라면 그 예쁜 자태를 따를가싶도록 아릿다왔다.
그는 부엌문가에 세워놓은 비자루를 찾아들고 마지막으로 마당을 가만가만 쓸어나갔다. 떠나더래도 뒤거둠새를 깨끗이 하고싶었다. 관비의 몸으로 어렸을 때부터 고생하며 자라난 집이였다. 그가 열세살때 오빠 장영실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떠나던 날 오빠야, 가지마… 나도 같이 갈래… 하고 울던 마당가다. 다행히도 어머니와 함께 관청에서 노비로 있던 아주머니가 제 딸처럼 돌보아준 덕에 철없던 어린시절을 보낼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피눈물이 이 마당을 적시였던가. 허나 지금은 한량없는 행복의 눈물이 이 마당을 적신다. 마소처럼 부림을 당하던 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고 오빠를 따라 사랑하는 남편 박대산과 함께 이 집을 떠나는것이다. 고생속에 살던 집이 더 정이 깊다는 말과 같이 영아는 이 집을 뒤에 두고 떠나는것이 제 몸의 한쪽을 떼두고 가는것보다 더 큰 아픔과 애수를 자아냈다.
오빠는 청계천기슭의 자기 집에 엇걸이를 하나 덧붙이고 함께 살면 얼마나 좋으랴 하였지만 그것은 을지오빠(영아는 을지를 남편이라고 부르기가 부끄러웠다. ) 박대산에게 너무 불안한 곳이다. 더구나 장영실오빠에게도 큰 위험을 가져올지도 모르는것이다.
신분을 감추고 변성명으로 숨어사는 사람이 의금부라졸들이 무시로 출몰하는 곳으로 간다는것은 마치 호박을 쓰고 돼지우리로 들어가는것과 같은노릇이다. 이 집에 그대로 눌러앉아 산다면 제일 좋으련만 여기도 을지오빠를 잡아들이라는 특지가 와닿은 곳이고 60리안팎에는
오빠와 간밤에 오래도록 의논하던 끝에 가다가 어느 인적드문 산골에 자취를 감추던가 하자는것인데 상기도 명쾌한 락착을 짓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던가 해도 어쨌든 대궐로 돌아가는 오빠와 헤여져야 할것이였다.
영아는 을지오빠가 가는 곳이라면 이 세상 그 어느 막바지라도 좋았다. 마음어지고 대바르고 용력이 굳센 남편이 옆에 있는데야 두려울것이 무엇이랴. 아무러면 관비보다 더한 고역살이가 어디에 있담. 둘이 마음이 맞으면 하늘도 이긴다는데 어디 가서인들 따스한 보금자리 하나 꾸리지 못할가.
영아는 한숨을 《호―》 내쉬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말고삐를 풀어서 마당 한끝에 옮겨매놓고 말이 섰던 자리에도 비자루질을 하였다.
이 마당 어느 구석에라도 지난날 흘렸던 피눈물자국을 모두 흔적없이 쓸어버리고싶었다.
《이 집에선 벌써 길차비를 다 했나보군.》
한 중늙은이가 마을사람들과 함께 말 한필을 끌고들어왔다. 그는 마을끝에 사는 최서방이다.
《아이, 아주버님 오셨군요.》
영아는 최서방을 향해 꼬바기 절을 하였다.
《오빠는 방에 계시냐?》
최서방은 벙글거리며 방문쪽을 바라보았다.
《아니예요. 고을사또께 작별인사를 하려고 가옵신데… 아이, 저기 오시나이다.》
영아는 담모퉁이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거기로는 상호군관복차림을 한 장영실이 앞서오고 그뒤에는 흰 무명바지저고리를 깨끗하게 차려입고 두건을 보기 좋게 눌러쓴 박대산이가 장영실을 호위하듯 성큼성큼 따라왔다. 옷이 날개라더니 그 모습은 그야말로 조정관리의 반당다왔다. 이런 인물 잘난 사람을 반당으로 데리고 다니는 장영실이 더욱 돋보여 동네사람들은 웃으며 굽석굽석 인사를 건늬였다.
최서방은 장영실앞에 넙적 두손을 땅에 짚으면서 큰절을 하였다.
《나리님, 이게 얼마만에 뵈옵게 되였소이까.》
《아니, 최서방이시구려. 이러지 마시오다. 절은 무슨 절… 어서 일어나시오이다.》
장영실이 급히 달려가 최서방의 손을 덥석 잡아 일으켜주었다. 장영실과 최서방은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였다.
박대산은 최서방을 인츰 알아보았다. 4년전에 수영포군정으로 고을군기소에 새로 만든 화살과 칼을 가지러 갔다가 조정의 호군나리가 직접 수영포의 화포를 수리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고맙다는 인사라도 한마디 여쭙자고 군기소의 야장간을 들어가보지 않았던가. 그때 웃동을 벗어붙이고 줄땀을 흘리며 일하던 키작은 사나이와 억대우같은 쌍메질군들이 떠오르고 호군나리님이 어디에 있는가고 묻는 자기를 마주 쳐다보며 셋이 다 껄껄 웃던 모습들이 어제런듯 눈앞에 살아났다.
그리고 빨래하던 영아를 덮쳐간 왜놈들을 치고 구원해낸 영아를 안고 강가에 나와 쓰러진 자기를 업어다가 장영실의 집에 눕혀놓았던 쌍메질군 그 사람! 박대산이 어찌 그를 잊을수 있겠는가. 그가 지금 장영실을 붙들고 덤벙덤벙 눈물을 쏟는것이다.
박대산은 금시라도 《여보, 형님― 날 모르겠수?》 하고 달려가 최서방을 얼싸안고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아니 이게 옛날 수영포군사가 아니요?》 하고 또 와락 부둥켜안을것이였다. 그러면 영낙없이 자기가 드러나게 된다. 그는 인사조차 한마디 할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왔다. 사람이 이렇게도 의리없고 인정도 없이 목석처럼 행동해서야 어찌 인간이라 하겠는가. 그는 최서방을 모르는체 하고있자니 괴로왔다.
그는 최서방에게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면서 양지현감과 같은 놈들이 나를 이 꼴로 만들어놓았구나 하고 주먹을 부르쥐였다. 박대산은 장영실형님도 그리고 영아도 최서방과 자기가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아무말이 없는것을 보고 그들도 자기처럼 마음이 여간만 고통스럽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최서방은 축축히 젖어든 눈가에 웃음을 담으며 영아에게 말고삐를 내밀었다.
《영아는 이 말을 타고가라구. 천리길이나 되는 한양길을 아녀자의 몸으로 걸어갈수 없지. 내 성의로 주는것이니 사양말고 고삐를 받게.》
영아는 펄쩍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이러지 마시라고, 나는 걸어가도 된다고 한사코 사양하였다.
최서방은 영아의 손에 억지다짐으로 말고삐를 끝내 넘겨주었다.
키가 크고 허리가 늘씬한 말은 보기에도 기운이 드센것이 알렸다. 그놈은 이미 짐을 싣고 서있는 장영실의 말을 보더니 두귀를 쫑깃거렸다.
그리고 그것도 무슨 짐이라고 등에 올려놓았느냐고 코방귀를 뀌듯이 《푸르릉―》 하고 코투레질을 하였다.
최서방은 말코등을 정답게 쓰다듬어주었다.
《잘 가거라, 새매야. 이제부터 너는 새 주인을 잘 모시고 다녀라.》
그리고는 장영실의 앞으로 돌아서서 《이 말은 내닫기도 잘해서 〈새매〉라고 이름을 지었소이다.》 하고 시원스럽게 웃었다.
《고맙소이다. 허지만 그 집에선 이 말 하나를 애지중지 믿고 사시는데 우리에게 주시면 가세유지를 무엇으로 하리오. 안될 말이오이다.》
장영실은 영아의 손에서 말고삐를 넘겨받아서 최서방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최서방은 성큼 뒤로 물러서며 장영실의 손을 밀어버리였다.
《원 별말씀을 다 하시는구려. 임금님이 벼슬을 주시고 영아까지도 노비신분을 벗겨주시여 마을에 경사가 났는데 말 한필이 다 무엇이리오. 그것도 우리 마을, 우리 동래현의 자랑인 영아네가 아니오.》
《영아 오빠, 념려마시우. 최서방이 말이 없어 가세유지를 못하겠소. 그대신 동네가 모아붙어 일손을 도울테니 걱정마시우.》
머리에 베수건을 동여맨 늙은이 하나가 이렇게 말하면서 좌우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여러분네들, 어떻수, 내 말이―》
《옳수다. 우리가 그 집일을 도웁세다.》
동네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너도나도 대답을 합치였다.
《허, 그런즉 이 새매는 내 성의만이 아니라 온 동네의 성의로 되였구만. 하하하.》
《일은 그렇게 된셈일세. 영아네는 온 동네의 성의를 받을만 하구말구. 우리 집에서 여태껏 쓰는 수채바퀴는 10년이 넘어 되였는데도 상기도 새것처럼 논밭에 물을 꽝꽝 퍼올리구 귀동이네 보습이랑 수럭이네 물레방아, 언년이네 발방아, 온 마을치고 영아 오빠가 만들어준것을 아니 쓰고 사는 사람이 없지요.》
누가 이렇게 엮어내리자 또 다른 상투쟁이 하나가 맞받았다.
《그 다 이를 말인가. 우리 집만 해두 쇠스랑, 호미, 낫은 또 어떻구요. 한번 갈아놓으면 석삼년이 넘도록 무디는줄 모르고 쓴다오.》
사실말이지 장영실은 관청노비로 있을적에 동네는 물론이요 린근마을 사람들에게도 농기구들과 쟁기, 잡은것들을 쓰기 좋게 만들어주거나 수리하여주었었다.
그의 재기는 타고난 천품이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훌륭한 천품은 동네사람들의 일이라면 열백밤을 새운다 해도 제 몸을 아끼지 않는 그것이였다.
동네사람들과 눈물로 헤여진 장영실이네는 한낮이 되여오도록 말한마디 없이 내처 길을 갔다.
장영실은 이미 타고왔던 만복의 말우에 올라 앞서가고 그뒤로 최서방이 준 새매를 영아가 탔는데 김을지는 영아의 견마를 잡았다.
앞에는 량반관리, 뒤에는 견마잡힌 아가씨, 이들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아무런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견마군이 의금부에서 눈밝혀 찾는 《중죄인》 김을지―박대산임을 아무도 몰랐다.
그의 얼굴 왼쪽관자노리에 팥알만한 기미가 생겨나 그전의 김을지의 인상과는 전혀 달라보였다. 장영실이 어렵지 않게 만들어준 기미다. 어찌나 신통하게 되였는지 영아도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나중엔 두손바닥을 딱 마주치며 웃었다.
여러가지 장공일을 묘하게 할줄 알고 나무활자, 동활자를 만들줄 아는 장영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기미 하나로 사람의 얼굴모양을 변모시킬수 있으랴. 글 한자에 점 하나 더 찍어도 다른 글자가 되듯이 김을지는 기미 하나로 다른 사람이 된셈이였다.
김을지, 아니 박대산이 오륙십리를 걸었지만 씩씩하고 기운찬 걸음발을 잃지 않고 일매지다.
길은 굽이굽이 산굽이를 에돌기도 하고 시누렇게 말라버린 벌가운데를 곧추 꿰여나가기도 하였다.
이따금 산수털벙거지를 쓴 지방고을 라졸들이 두셋씩 짝을 지어 돌아다니는것도 만났으나 한번도 기찰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장영실이네 량반행차앞이라 급급히 고개를 숙이였다.
다른 일반행인들도 장영실이네를 보면 길섶에 내려서서 허리를 굽히고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였다.
지나가는 마을마다 인가들이 있었지만 다섯집중에 두세집은 빈집이였다. 그런 집들은 문짝들이 다 떨어져나가고 썩은 이영밑으로 비가 새여 흘러내린 흙물자리들이 줄기를 이루고있었다.
많은 백성들이 살 곳을 찾아 정처없이 떠나간것이였다.
어떤 마을을 지나며 들으니 어느 한 집에선 날콩을 정신없이 먹은 어린애가 배가 터져 죽고 그 어머니는 굶어죽었다고 한다. 하기는 김을지의 집에서도 온 식구가 굶어죽지 않았던가.
나라에 겹쳐든 이 가난을 구제할 힘이 어디 있는가.
먹고 살기를 바라 어떤 사람들은 《도적》이 되여 패당을 뭇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김을지가 떠나온 웅거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장영실은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듣는 모든것이 몸에 몰려들어 가슴에 란도질을 하는것 같아서 피터지게 입술을 깨물었다.
박대산이도 주먹을 꽉 거머쥐고 걸었다.
나라의 기근을 임금밖에 가셔줄 사람이 없다. 그러나 임금이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알기나 할가. 모를테지… 임금의 걱정을 덜어준다고 하면서 사실을 숨기고 제 리속을 차리는 양지현감과 같은 량반관리들이 어딜 가나 득실득실하다. 그런 놈들을 그대로 두고서야 아무리 어진 임금이라고 해도 선정을 베풀수 없는것이다.
울분이 박대산의 가슴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분한김에 걸음만 빨라졌다.
엿새째 되는 날에 경상도땅을 벗어나 충청도에 들어서고 하루가 더 지나서 김을지가 양지현감을 처단한 막고개를 넘었다.
길은 호젓이 산굽이를 에돌기도 하고 곧추 뻗어가기도 하였다. 리천고을지경에선 행인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갈수록 영아는 남편에게 미안스러웠다. 자기는 호강스럽게 말을 타고 저이는 견마잡고 걷는것이다.
허지만 그렇게 행차를 꾸미여야 의심을 사지 않는다고 하여 내내 송구한 마음을 어쩔수없이 안고갔다.
누구나 묵묵히 길을 갔다. 뚜걱뚜걱 말발굽소리만이 울리였다.
길좌우엔 치솟아오른 바위벼랑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가도가도 끝이 없을것 같은 아름드리로송들이 울울창창 들어찬 수림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여기는 예로부터 범바위골이라고 불러오는 곳이다. 대낮에도 범이 행인들을 해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홀로 다니기에는 무섬증이 날만도 하였다.
박대산은 영아의 말안장뒤에 싣고가는 보짐속에 감추어넣은 칼을 언제든지 쓰기 좋게 칼자루를 드러내놓고 걸었다. 만약에 정말 범이 나타나면 막아낼 사람은 자기밖에 없었다.
허지만 겁날것은 없었다. 그까짓 범 한마리쯤이야 손에 칼을 들고있는데야 감당해내지 못하겠는가.
그들이 십여리를 지나니 수림이 끝나고 신기하게도 펑퍼짐한 새초밭이 나졌다. 새초밭초입에 작은 시내물이 도란도란 흘러나왔다.
《여기서 좀 쉬여갈가. 사람도 무엇을 좀 먹고 말들에게도 풀과 물을 먹여야지.》
장영실이 말을 멈춰세우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요, 오빠!》
영아가 방긋이 웃으며 반기였다.
그들은 행길을 벗어나 시내물을 거슬러 새초밭속으로 들어갔다. 이왕지사 행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 쉴만한 자리를 찾아야 하였다.
풀숲에 가리워진 시내가에는 철늦은 물봉선화가 다문다문 피여있었다. 아무도 모를 숲속에 누가 보라고 곱게 피였을가.
영아에게는 그 꽃이 남모르게 숨어서 피여도 곱게만 피면 된다고 속삭이는것만 같이 느껴졌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있는 봉선화, 물봉선화.
영아는 자기도 을지오빠와 함께 숨어서 살아가야 할 몸이길래 물봉선화가 정겹게 안겨왔다. 나도 너처럼 곱게 피리라. 영아는 방그레 웃었다.
그들이 얼마쯤 더 나아가니 반갑게도 푸른 물이 츠렁츠렁 넘치는 자그마한 못이 나지고 그옆에 너럭바위가 비스듬히 뻗어내려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고있었다. 시내물의 시원이 여기인듯싶었다. 땀난 얼굴도 씻고 먼지오른 발도 씻고 휴식하기에는 맞춤한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