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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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은 가없이 높고 푸르렀다. 한달에 40일간 비가 내린다고 하던 이해 여름의 장마구름은 어디론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흩어진 쪼각구름조차 한점없는 청청하늘이였다. 그 하늘밑으로 뻗은 도로의 량쪽 길섶에는 산뜻한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한들거렸다. 그뒤의 산비탈에는 또한 울긋불긋한 단풍… 어데를 둘러보아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계절이였다.
수백대의 대렬차들이 달리고있었다. 차들마다에는 훈장과 메달이 번쩍이는 가슴들을 쭉 내민 군인들이 가득가득 타고있었다. 수도 평양으로 《입성》하는 《개선장군》들이였다.
세계가 들끓었다. 안변청년발전소(
조선은 승리하였다. 야조브원수는 모스크바에서 신문 《빠뜨리오뜨》에 낸 기사에 다음과 같이 썼다.
《안변땅에서의 승리는 제2차대전에서 붉은군대의 꾸르스크의 승리와 맞먹는다. 이제 평양의 하늘에 축포가 오를것이다. 조선인민군장병들은 〈개선장군〉으로 수도에 〈입성〉할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의 위훈이 세계적의의를 가지는것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군인건설자들의 심정은 극히 소박하였다. 평양으로 가면서 그들이 눈앞에 그려본것은 그리운 부모형제들과의 상봉, 사랑하는 학우들과 선생님들과 나누게 될 회포, 정다운 모교와 다정한 고향집창가에 다시 서게 될 기쁨,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을 마주하게 될 즐거움, 따끈한 아래목에서의 단잠 그리고 극장과 영화관으로 달려가는것 등이였다. 그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내고 위훈으로 빛내이는 사회주의는 그들의 소박한 신념과 생활속에 있는것이였다.
전호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조국땅을 보위하려 총을 멘지 삼년석달
적탄알이 비발치는 격렬한 싸움에도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네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노라
자동차들마다에서 노래소리가 진동하였다. 마식령을 꿰지른 무지개동굴을 빠져나오자 시작된 그 노래소리는 평양준평원에 들어서면서 더욱 우렁차게 열정적으로 누리를 들었다놓았다.
상등병 김남철(그는 상등병이 되였다.)이도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그의 앞가슴에는 금별메달이 빛났다. 아버지의 버림을 받고 떠나왔던 그 길로 영웅이 되여 돌아가고있었다. 그의 소원은 아버지를 만나는것이였다. 아버지의 용서를 받고 떳떳하게 자기 집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치욕을 들쓰고 정신없이 뛰여내렸던 아빠트의 계단을 가슴을 펴고 자랑스럽게 올라가는것이였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품에도 안기리라. 아, 그 이상 더 큰 기쁨이 어데 있으랴.
멀리 주체사상탑의 붉은 봉화가 바라보였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평양거리에 들어설것이였다.
그순간 김남철은 갑자기 이상한 향수에 마음이 젖어들었다. 그것이 어데서 무엇때문에 오는것이였던가? 그것도 이 기쁜날에? 길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두손을 흔들어 축복해주고 길가의 들꽃들도 승리자에 대한 축복으로 설레이는 이 행복한 순간에?
이무렵 《경비함사건》에 대한 소문이 한입 두입 건너 파다하게 퍼졌다. 그 소문이 남철의 귀에 들어온것은 평양출발을 앞두고 잠 못 들던 지난 밤이였다.
중대의 소식통인 평양내기 상등병이 그의 귀에 대고 한 말은 동해앞바다에서 우리 경비함이 적과 조우했을 때 전체 성원들이 자폭했다는것이였다. 남철은 흥분했다. 자폭이야말로 병사로서 그가 꿈꾸어온 최후의 장식이였고 리상이였다. 거기에는 병사의 신념과 의지, 본분과 의무, 맹세와 열정, 영예와 영광이 있는것이였다. 그는 상등병과 이마를 맞대고 밤새 소곤거렸다. 그 자폭용사들은 어떤 사람들이였을가? 그들의 이름과 나이는? 고향과 부모들은? 그는 그저 자폭용사들에게 깊이 감동되여있었고 너무도 크게 흥분해있었던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아버지를 만나게 되리라는 꿈같은 기쁨에 휩싸여있을뿐이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갈마드는 향수는 무엇때문인가?…
꿈같은 며칠이 흘렀다.
남철이네들은 수십만 수도시민들의 연도환영을 받았고 만수대언덕에 올라
오후 6시 남철이가 자기네 중대가 가기로 된 시내의 어느 식당으로 떠나려고 대렬에 들어서려는데 눈에 익은 승용차가 숙소의 뜨락에 들어섰다. 승용차에서는 정치위원 리완수가 내렸다. 그는 대렬을 세우고있는 중대장에게 한두마디 무어라고 하더니 남철을 불러냈다.
남철은 영문을 모르고 리완수의 차에 올라탔다. 그는 의혹과 기대, 긴장감으로 하여 자기가 어느 거리를 지나왔는지 몰랐다. 차에서 내리니
장령의 군사칭호가 한급 더 올라간 심철범상장이 기다리고있었다. 그의 새
남철은 리완수와 함께 오면서 그의 표정에서 무엇인가 읽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리완수는 앞좌석에 꼿꼿이 앉은채 한번 뒤돌아보지도 않았고 말도 걸지 않았다. 차에 오른 첫 순간에 어디 아픈데가 없는가고 물었을뿐이다.
리완수가 심철범앞에 서서 거수경례를 하고 도착보고를 하자 장령은 그의 뒤에 선 남철을 한번 유심히 바라보더니 아무말 없이 돌아서 현관안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남철은 병사에 지나지 않은 자기를 데리러온것이 정치위원이고 보면 틀림없이 심철범상장이 불렀으리라고 짐작했다. 석비레모래를 발견했을 때와 궐기모임때 몇번 정치위원이 와서 심철범앞으로 그를 불러간적이 있었던것이다. 그럴 때면 장령은 앉은 자리에서 그들을 맞이하군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장령자신이 현관까지 나와 그들을 맞이했고 어디론가 안내하고있다. 어디로 가는가?
심철범을 따라 그들이 들어간 방은 목란관의 어느 한 휴계실이였다. 방은 크지 않았으나 우아했다. 쏘파와 앞탁, 차대들이 규모있게 놓여있었고 산수화가 한쪽벽을 차지했다. 그러나 남철은 그런것에는 별로 주의를 돌리지 않고 두 상급의 표정만을 번갈아 살피였다. 그들과 함께 류다른 장소에 있게 된것이 병사인 그로서는 도무지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방에는 그들 세사람뿐이였다.
남철이를 가운데놓고 두 상급이 량옆에 앉았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남철은 리완수쪽으로 더 많이 시선을 보냈다. 심철범보다는 그가 더 가까운 상급이였으므로 그에게서 무언가 알아내고싶었던것이다.
남철의 시선을 받은 리완수도 남철이를 데리고 몇시까지 목란관으로 오라는 장령의 지시를 받았을뿐 더 아는것이 없었다. 그가 아는것이 있다면 이제 여기서 시내의 각들과 식당들에서와 거의 같은 시각에 당과 국가의 간부들과 고위장령들의 참가하에 안변청년발전소 1계단준공을 경축하는 연회가 있다는 사실뿐이였다. 이 연회에는 관리국적으로 심철범외에 그와 전호진 두사람이 참가하게 되여있다. 지금 그의 안주머니에는 초대장이 들어있었다. 리완수는 남철이 못지 않게 궁금하여 그의 어깨너머로 심철범장령의 표정을 힐끗 살피군 했다. 심철범은 묵묵히 상념에 잠겨있는듯 했다. 표정은 별로 엄숙하고도 숙연해보였다. 그는 차대우에 놓여있는 담배갑을 집어 앞뒤로 굴리고있었다. 미구에 담배 한대를 뽑아 탐스럽게 냄새를 들이키더니 도로 갑에 밀어넣은 다음 차대우에 놓았다. 그리고는 손목시계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시간을 기다리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시계는 지금 6시 20분을 가리키고있다. 이윽고 몸을 움씰하며 무슨 말인가 하려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이날 오전 기념촬영이 끝난 다음
《심철범동무,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여있습니까?》
《예, 오후 6시부터 연회가 있게 되고 그것이 끝난 다음 외출입니다. 모든 병사들이 하루밤 가족 친척들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렇지요?》
《예?》
심철범은 영문을 몰라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아까 그 동무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순간에 그의 아버지를 생각하였습니다. 철범동무도 〈경비함사건〉에 대한 통보를 받았을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심철범은 금시 엄숙한 자세를 지었다.
《그 동문 오늘밤 아버지가 없는 집으로 가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으니 그는 불안과 의혹속에서 하루밤을 뜬눈으로 보낼수 있습니다. 내가 직접 알려주겠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맡길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고싶지 않습니다.》
《…》
심철범은 그저 뜨거운것을 삼키고있었다.
《우리의 귀중한 병사들이 만나게 될 가족이나 친척들중에서도 무슨 불행이나 변고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외출을 시키지 않은것만 못할것입니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지휘관이 병사들과 동행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다면 슬픔을 같이 나누도록 해야 합니다.》
심철범은
병사들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들은 《대통령급》대우를 받고있었으며 표창소나기에 몸을 적시고있었다.
《남철동무.》
심철범은 드디여 입을 열었다. 이제 곧
《옛!》
남철은 상관의 부름소리에 규정대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장령의 류다른 눈길에 흠칫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불의에 덮쳐든 해일처럼 온몸을 휩싸는것을 느꼈다.
《마음을 든든히 가지시오!》
장령의 목소리는 속삭임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남철은 금방 몸을 흠칫 떨었으나 그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장령이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마음을 든든히 가지시오. 알겠소? 남철동무.》
《알았습니다.》
남철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렸다. 아마 그는 장령의 말을 그 어떤 명령으로 받아들인듯 했다.
심철범은 《동무는 이제…》 하고 말하려다가 말머리를 돌렸다.
《이제 여기로
남철은 이 순간 가슴이 터질듯 한 환희를 느꼈다.
바로 그때에
벌떡 일어선 남철은
남철은 고막이 윙 울리고 가슴이 내려앉는 공허를 느꼈을뿐 이러한 순간에 흔히 있게 되는 비명도 오열도 터뜨리지 않았다. 바다에는 무서운
풍랑이 일고있으나
《고맙소, 고맙소…》
《나는 군인건설자들을 평양에서 맞이하고보니 희생된 경비함영웅들 생각이 더 납니다. 단 한명이라도 살아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전당이, 전체 인민이 그들을 안아줄것입니다. 나는 오전에 기념사진을 찍으면서도 속으로 울었습니다.
그들도 우리가 만나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생각하니 슬픔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지금 온 수도가 떨쳐나서 건설의 영웅들을 환영해주고있는데 거기에는 적구에서 돌아오지 못한 그들에 대한 우리의 심정이 놓여있습니다!》
《남철동무, 동무는 아버지가 받아야 할 환영도 받고있는셈이요. 나는 지금 동무의 아버지를 만난 심정이요. 어디 봅시다. 이리 가까이 오라구!》
남철은 갑자기 불뭉치를 삼킨것처럼 가슴이 확 달아올랐다. 눈굽이 뜨끔해지며 금시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비보를 들은 순간에도 참아냈던 그 눈물이 참을수 없이 쏟아지려 했다.
이때 심철범이 일어나서 굳어진듯 앉아있는 그를 일으켜세워
(김동환동무가 최후의 순간에 무엇을 생각했겠는가?…)
이윽고 누구에게라 없이 혼자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의 최후에 대한 록화자료들을 보았소. 그것은 몇순간이였소. 그는 이 짧은 순간에 병사의 제식동작처럼 행동했소. 필림을 봐서는 그의 표정도 생각도 결의도… 념원도 알수 없었소. 그러나 조국과 인민, 사랑하는 모든것과 리별하면서 목석처럼 그저 떠나갔겠는가. 그는 최후에 무엇을 생각했겠는가?》
《나는 줄곧 그것을 생각했소. 그의 희생이 애석하면 할수록 못 견디게 그의 마지막생각을 알고싶었소. 하지만 록화필림을 몇번이고 곱씹어봐도 거기에는 그 어떤 시사도 없었소!》
《그러나 나는 알수 있소. 알구말구. 그는 최후의 순간에 아들을, 그가 참다운 군인정신의 체현자가 되기를 희망했을거요. 영웅이 되기를 바랐을거란 말이요!》
《나는 그것을 믿어의심치 않소. 군인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시대정신이며 당이,
《놔두시오!》
《실컷 울게 놔둡시다!》
이때 심철범은 또다시 눈굽이 젖어들었다. 남철에게 아버지의 비보를 직접 알려주시겠다고 하신
《자, 그만하라구! 남철이…》
《내가 이제부터 남철의 아버지요. 친아버지-》
《아버지-》
남철의 열띤 부르짖음.
전사와
그다음
《무얼 제기할게 없느냐?》
《없습니다,
《아버지로서 묻는거다.》
《없습니다, 아버지.》
《왜 없겠느냐? 아버지라면서.》
《희생된 우리 중대장에게도 아들이 있습니다…》
《음, 네 심정을 알만 하다. 그애의 친아버지로 돼달란 말이지. 암 그렇구말구.》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허리띠를 조이고있는 인민들때문에 노상 마음을 쓰시는
《보시오. 우리의 병사들이 어떤 병사들인가. 그들은 의리를 귀중히 여길줄 아는 병사들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와 사상과 감정을 같이하고있는 우리 군대를 이길 힘은 이 세상에 없소! 적들이 무엇을 모르는가. 우리 군대에
여기에 모인 장령들치고 김남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모두
그들은 격동과 환희, 무적의 힘을 온몸에 느끼며 오래도록 박수를 쳤다.
장령들의 박수가 끝나자
《남철동무, 이제 우리는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오자고 하오. 적들은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수 없을거요. 그렇소. 그들은 우리를 당하지 못할것이요. 우리는 이미 판문점대표부를 통해서 만일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보복할것이라는것을 통고했소. 지금 그들은 우리의 의지를 가늠해보면서 시간을 끌고있지만 우리의 영웅들은 반드시 돌아올것이요! 몸은 죽었지만 그들의 혁명정신은 우리 군대의 대오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거요! 그러니 저녁에 집으로 가면 어머니를 잘 위로해드리시오.》
남철은 말없이 구두뒤축을 딱 소리가 나게 모아붙이며 바지혼솔에 두손을 가져다대였다. 그 동작이 어찌나 탄력이 있었던지 수만마디의 대답소리보다 더 힘있고 믿음직하게 보였다.
《자, 연회장으로 나갑시다. 우리 영웅들의 넋을 위하여, 그들의 영생을 기원하여 잔을 듭시다!》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