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해외동포들을 통일애국의 한길로

녀기자를 위해 바치신 시간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취재하고도 얼마간 조국에 머물러있던 재미교포녀류기자 문명자는 주체89(2000)년 6월 30일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특유의 잠바옷차림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현관앞에까지 마중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래간만에 만나게 되는데 건강이 어떻습니까? … 오늘은 조선옷차림을 하여 그런지 퍽 젊어보입니다.》

녀기자의 기쁨은 끝이 없었다.

온 세상이 무적의 장군으로 칭송하는 담대하신분, 하지만 자기에게는 가장 뜨거운 인간으로 간주되는분, 그분과 탁을 마주하고 앉으니 친혈육이상의 정이 고패쳤다.

앞에는 성천담배와 재털이가 놓여있었다.

그는 자기에 대한 장군님의 다심한 념려를 느끼며 스스럼없이 말씀드렸다.

《의사들이 혈압이 높다고 담배를 끊으라고 하지만 담배만은 죽을 때까지 포기 못한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따뜻이 웃으시며 고혈압에는 소금온천과 류황온천이 좋다고, 그곳에서 료양하면 혈압이 내려가니 이다음에 오면 한번 가보라고 그의 건강을 극진히 위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문명자가 진심으로 올리는 감사의 인사에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 서거하시였을 때 녀사를 만나 악수를 한 기억이 있다. 그 다음에는 내가 시간을 낼수 없어 편지를 써보낸적이 있다. 그 편지에서 앞으로 조국을 다시 방문하는 기회에 꼭 만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썼는데 나는 늘 그 약속을 잊지 않고있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주 녀사에 대한 말씀을 하시였다. …

이어 장군님께서는 내가 다른 외신기자들은 모두 사절해도 문선생만은 부르라고 했다고, 우리 민족으로서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정력적인 기자활동을 하고있는데 마땅히 초청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6. 15북남수뇌상봉을 비롯하여 그가 알고싶어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유모아를 섞어 납득이 잘되게 오랜 시간 말씀하시였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자 장군님께서는 그를 오찬회장으로 이끄시였다.

식탁우에는 감자만두튀기, 김치무우장, 잣죽, 록두묵 등 민족료리들이 올랐다.

장군님께서는 녀기자에게 먼저 록두묵을 간장에 찍어서 들고 식사하라고, 록두묵은 몸안의 독성물질을 해독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따뜻이 이르시였다.

그이의 권유대로 수저를 들던 녀기자는 문득 콩나물김치의 맛을 보고 《콩나물인데 김치맛이 납니다. 어떻게 만들었을가요?》라고 스스럼없는 질문도 드렸다.

장군님께서는 자신도 좋아하는 찬이라고 하시며 콩나물을 슬쩍 데친 후에 마늘, 생강, 고추를 넣어 김치처럼 익히면 이런 맛이 난다고 그 방법까지도 친절히 알려주시였다.

오찬회석상에서는 종교와 로인병치료, 민족음식과 건강 등 여러면의 화제가 올랐는데 그러느라니 결국 장군님께서는 그날 녀기자를 위하여 무려 여섯시간 가까이나 바치시였다. 뜨거운 동포애속에 언제 흘러간지 모른 시간이였다.

그리고 그와 헤여질 때는 다리가 불편한 녀기자의 손을 몸소 잡으시고 승용차에 편히 오르도록 보살펴주기까지 하시였다.

녀기자는 달리는 승용차에서 생각했다. 그리고 후날 이렇게 썼다.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강하면서도 소탈한분이시였고 지난 1992년과 1993년 두차례에 걸쳐 접견해주시였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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