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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외동포들을 통일애국의 한길로

총련의장의 생일

 

주체86(1997)년 1월 어느날 총련의 한덕수의장은 조국에 사는 아들, 딸, 손자, 손녀 10명이 모두 함께 도꾜에 나타난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희들이 어떻게? …》

위대한 장군님께서 아버지의 생일 90돐을 잘 쇠여드리라고 저희들을 보내시였습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이렇게 아이들까지…)

한덕수의장은 목이 꽉 메였다.

원래 그의 생일은 2월 18일이였는데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일을 맞는 2월에 자기의 생일을 쇠는것을 한사코 반대하여왔다. 하여 3월에 가서 자기의 생일을 간단히 쇠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오히려 그의 건강을 념려하시면서 자기 날자보다 앞당겨 1월말에 쇠되 총련중앙회관에서 축하연을 성대히 진행하도록 해주시였던것이다.

그로부터 며칠후 한덕수의장은 김일성훈장과 함께 사회정치학 명예원사의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장군님께서 별도로 보내주신 진귀한 선물도 전달받았다.

그에게는 장군님께서 평양에 사는 자식모두를 보내주시고 높은 급의 훈장과 명예칭호, 선물을 안겨주신것만으로도 너무나 과분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이에 그치지 않으시고 그에게 생일축전까지 보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생일축전에서 한덕수의장은 총련조직을 건설하였으며 사회주의조국의 륭성번영과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온 귀중한 원로이며 해외교포운동의 명망높은 활동가, 참다운 애국충신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리고 그에게 어버이수령님의 유훈대로 로당익장하여 총련애국위업을 계속 정력적으로 이끌어나가기 바란다고 하시면서 건강과 행복을 축원한다는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자신에 대한 이런 값높은 평가를 축전의 구절구절에서 읽으며 한덕수의장은 정녕 목이 메고 눈물이 쏟아지는것을 금할수 없었다. 그것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민족의 넋을 지키고 애국의 한마음을 바치며 파란만장의 인생길을 걸어온 한덕수의장에게 베푸신 최상의 평가, 최대의 믿음과 영광이였다.

후날 총련일군들을 통해 한덕수의장이 올리는 감사의 인사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한덕수의장의 생일을 크게 차려준것은 우리 당이 생전에 한덕수의장을 아끼고 사랑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마음을 그대로 표시해준것이라고, 그가 총련의 지도중심으로 대오의 일심단결을 위해 한생을 바치였기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한덕수의장동지의 건강을 잘 돌봐주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정세하에서 한덕수의장동지가 건강하여 앉아있기만 해도 좋습니다.》

그이의 사랑은 정녕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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