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숭고한 의리와 뜨거운 동포애를 지니시고
한 남녘녀성이 받아안은 영광
주체89(2000)년 10월 남조선의 정당, 단체대표들이 조선로동당창건 55돐 경축행사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왔을 때였다.
남조선에서 들어온 대표들속에는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고있던 비전향장기수 권락기선생의 안해 리옥순녀성도 있었다.
그 녀성은 일찍부터 민주화운동에 나섰고 남조선의 전국련합 대외협력위원장, 《통일을 여는 녀성모임》 회장으로서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의 길에
그는 17년간이나 옥살이를 한 비전향장기수인 남편과 감옥에 있는 동지들을 위해 모든 성의를 다했으며 그들의 송환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투쟁하였다.
그 나날에 페암이라는 불치의 병을 만나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기의 집을 《통일광장》으로 만들어놓고 언제나 밝게 웃으며 비전향장기수들을 극진히 돌봐준 그였다.
이러한 그가 불치의 병으로 앓는 몸상태로 평양을 방문하였던것이다.
그의 시각에 비낀 평양의 모습은 꿈속에서도 그려보지 못한것들이였다.
놀라움과 찬탄의 목소리가 그의 심중에서 자주 울려나왔다.
그리하여 그는 평양에 있는 훌륭한 병원에서 유능한 의사들로 무어진 의료진에 의해 종합검진을 비롯한 3차에 걸쳐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그의 치료를 위해 온갖 지성과 정성을 다하였다.
평양방문일정이 끝나고 이제는 떠날무렵이 되였을 때였다.
자기에게 안겨지는 사랑이 눈물겹도록 고마웠기때문이였다.
그는 눈시울을 적시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령수님께서 페암을 부정하시고 죽음을 이겨내는 활력을 주시였으니 저는 힘차게 살렵니다.》
그가 진심으로 터친 말은 해빛을 따라 참된 애국의 길을 걸어가리라는 마음다짐의 분출이였다.
떠나는 사람, 바래주는 사람들모두가 통일의 날 다시 만나자고 굳게 약속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 이듬해 병환으로 끝내 사망하게 되였다.
주체90(2001)년 3월초 그가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이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