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숭고한 의리와 뜨거운 동포애를 지니시고
죽어서도 영광을 받아안은 애국렬사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달리 아끼시던 일군들가운데는 김병식도 있다.
남해의 다도해기슭에서 태여나 망국민의 설음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갔던 그가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책임일군으로, 그후 공화국의 품에 안겨 국가의 중요직책에서 사업하면서 통일애국위업에 헌신할수 있은것은 그의 운명을 보살펴주고 빛내여주신 장군님의 하해같은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때문이다.
《통일옥새》
언제인가
《나는 남녘땅에 한번도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다도해가 고향인 김병식은
그에게는 조국통일이 곧 고향으로 가는 길이였다.
언젠가 그는 해외에 출장갔다가 기자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일이 있었다.
《선생님은 고향이 다도해기슭이라는데 한번 가보고싶지 않은지요?》
《꿈결에도 가보고싶소. 그러나 그것은 통일이 되여야 진정한 나의 고향이요. 지금 나의 고향은 평양이요.》
그는 고령의 몸이지만 수많은 나라들에 나가 우리 인민의 통일의지와 우리 공화국의 자주적인 조국통일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과감하고도 줄기찬 투쟁을 벌렸다.
그에게는 시간이 귀했다.
할 일은 많고많은데 한살두살 나이가 많아지고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것이 한스러웠다.
그의 건강상태는 나빴다. 그의 병은 로환이 겹치면서 치료불응성빈혈이라는 진단으로 결론되였다.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끝에
이렇게 되여 정방형옥돌통안에 갓모양의 옥돌지붕을 씌우고 그안에 옥돌로 된 인장을 넣은 선물 《통일옥새》가 마련되였다.
몇달후 운명의 시각을 예감한 그는 가까스로 펜을 부여잡고 이런 글을 남겼다.
《
부디 만년장수하십시오.
김병식 올》
마지막 《림》자는 종시 쓰지 못하게 된 이 편지는 16절지 종이 한장을 꽉 채웠다.
그는 가족들에게
그가 운명의 시각에 남긴 유언과 편지원문을 몸소 보아주신
그리고 며칠후에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한생을 바쳐온 그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나라의 자주적통일을 위한 투쟁에 헌신한 통일애국렬사들만이 받아안을수 있는 조국통일상.
김병식은 생을 마치고서도 민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