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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숭고한 의리와 뜨거운 동포애를 지니시고

죽어서도 영광을 받아안은 애국렬사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달리 아끼시던 일군들가운데는 김병식도 있다.

남해의 다도해기슭에서 태여나 망국민의 설음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갔던 그가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책임일군으로, 그후 공화국의 품에 안겨 국가의 중요직책에서 사업하면서 통일애국위업에 헌신할수 있은것은 그의 운명을 보살펴주고 빛내여주신 장군님의 하해같은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때문이다.

 

첫 상봉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제1부의장으로 사업하고있던 그가 공화국적십자대표단 자문위원으로 조국에 온것은 주체61(1972)년 여름이였다.

그는 어버이수령님의 접견을 받은데 이어 몸소 숙소에 찾아오신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옵는 뜻밖의 행운을 지니게 되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자기 앞으로 다가오시는 장군님을 뵈옵는 순간 그는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사실 일본땅을 떠나기 전부터 이번에 조국에 가면 장군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뵈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 그였지만 그이께서 이렇듯 숙소에까지 찾아오실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반갑습니다.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몸은 불편하지 않는가, 식사랑 제대로 하는가, 숙소가 마음에 드는가고 따뜻이 물어주시였다.

《이처럼 훌륭한 숙소에 들게 되여 황송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 숙소로 말하면 장군님께서 친히 잡아주신 곳이였다.

얼마전 총련일군대표단의 숙소준비정형에 대하여 알아보시던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번에 김병식제1부의장이 단장으로 온다고 하시면서 좋은 곳에 숙소를 정해주시였던것이다.

이윽고 그들의 체류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오늘 저녁 1부의장을 환영하는 연회가 있다고 알려주시면서 인사나 나눌겸 들렸다고 정겹게 말씀하시였다.

《조국에서 기쁜 나날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그처럼 뵙고싶었던 장군님과의 상봉은 아쉽게도 잠간사이에 끝났지만 그는 첫 상봉에 벌써 그이께 완전히 매혹되였다.

그럴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계시는 조국에 남고싶은 생각이 더욱 커갔다.

그러던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로부터 하나의 문건을 받으시였다.

평양에 체류하고있는 그가 이번 기회에 아예 조국에 남겠다고 제기했다는것이였다.

그는 총련의 중요직책에서 일하는 일군으로서 일본정계와 남조선 그리고 기타 사회주의나라들에도 널리 알려진 사람이였다. 그런것으로 하여 그는 총련에서 할 일이 많았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시급히 사연을 알아보도록 하시였다. 이 과정에 그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것이 하루아침사이에 일어난 마음속충동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백골이 진토가 될 때까지 위대한 두분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강렬한 호소, 아무 일을 해도 좋으니 평양에 남게 해달라는 절절한 부탁 그리고 자기는 원래부터 김형직선생님과 위대한 수령님을 마음속으로부터 흠모해왔다는것, 행로가 바뀌여 그렇지 자기의 넋이 평양에 와있은지는 이미 오랬다는것, 그러니 이제는 응당 육체도 조국에 영주해야 한다는 그의 드놀지 않는 신념은 장군님의 심중을 크게 감동시키였다.

비록 한번밖에 만나지 못하셨지만 장군님께서는 그의 소원을 풀어주고싶으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그가 든 숙소로 찾아왔다.

《기뻐하십시오. 소원이 성취되였습니다.》

《예?!》

이렇게 되여 그는 그리도 소망하던 어머니조국의 품, 수령님과 장군님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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