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숭고한 의리와 뜨거운 동포애를 지니시고

원산앞바다를 여섯번이나 돌고 간 배

 

주체65(1976)년 8월 중순 미제가 일으킨 판문점사건으로 하여 조선반도의 정세가 전쟁접경으로 치달아가고있을 때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당 일군들로부터 남조선어선 《신진3》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였다.

남조선어선 《신진3》호가 풍랑에 밀리여 공화국북반부령해에 들어왔는데 《신진3》호 선원들은 북반부에서 남조선어민들을 따뜻이 돌봐준다는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정세가 복잡한 때라 긴장해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사건은 미제와의 문제이고 《신진3》호는 우리의 혈육인 남조선인민들과의 문제라고 하시면서 남조선어민들을 동포애의 정을 가지고 성의를 다해 돌봐주도록 간곡히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남조선어민들의 건강상태와 생활조건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나서 그들이 사소한 불편도 없이 지낼수 있도록 은정어린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일군들은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건강이 좋지 못한 선원들에 대한 치료대책을 세웠다.

선원들은 뜻밖의 사실앞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 하며 눈물을 머금었다.

이렇게 되여 고질병이 있으면서도 치료비가 없어 병고칠 엄두를 못내던 기관장을 비롯한 몇몇 선원들은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병을 완전히 털게 되였다.

《신진3》호 선원들은 장군님의 따뜻한 보살피심속에서 공화국북반부의 도시와 농촌, 공장과 학교들을 비롯한 여러곳을 참관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였다.

그 과정에 그들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북반부인민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으며 난생처음 별천지와 같은 생활을 목격하였다.

그러는새 어느덧 추석이 가까와왔다.

추석을 앞둔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선원들에게 잊지 말고 추석음식을 잘 차려주며 체육과 오락도 조직하여 그들이 민속명절을 유쾌하게 지내도록 해주라고 또다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신진3》호 선원들은 생각도 못했던 즐거운 추석놀이까지 하게 되였다.

공화국북반부에 머무르는 기간은 그들에게 있어서 실로 꿈같은 나날이였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그들이 돌아가야 할 날이 가까와왔다.

장군님께서는 해당 일군들에게 떠나는 그들이 섭섭해하지 않게 모든 편의를 돌봐주도록 당부하시면서 배우에서 한끼만 먹으면 가닿을 길이건만 물길이니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쌀과 부식물을 풍족히 실어주라고, 가다가 회도 쳐먹을수 있게 식초와 고추장 같은것도 잊지 말고 넣어주라고 이르시였다.

떠나는 날 장군님의 친어버이사랑이 담긴 길량식과 함께 식초병과 고추장단지들을 받아안은 선원들은 그것을 어루만지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 선원은 감격에 목메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를 낳은 어머니도 언제 한번 배길을 떠나는 나를 이렇게 살뜰히 보살펴준적이 없습니다. …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과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 우리모두의 감사를 전해주십시오.》

선원들은 한사람같이 두손을 높이 들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 만세!》,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선생님 만세!》를 높이 불렀다.

만세의 웨침이 메아리치는 속에 이윽고 배는 기슭을 떠났다.

《잊지 않겠습니다.》

《통일의 그날 다시 만납시다.》

멀어지는 《신진3》호 갑판우에서 이런 목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쳐왔다.

어느덧 배는 망망한 바다로 멀리 나갔다. 그런데 웬 일인지 《신진3》호는 커다란 원을 그리며 다시 부두쪽으로 되돌아오는것이였다.

부두에 다가와 머뭇거리다가 다시 배머리를 돌리였다. 가야 할 길이지만 남고만싶은 안타까움에 몸부림치듯 《신진3》호는 한동안 먼바다쪽으로 선수를 돌리고 가다가는 다시금 부두로 되돌아왔다.

이러기를 여섯번.

미제는 판문점에서 도끼를 들고 날치였지만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품속에서 북과 남에 이어진 혈육의 정은 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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